시작이 반이다? 역전과 반전이 난무하는 영화 비즈니스 세계에서 그리 통용되는 속담은 아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첫 단추를 잘 꿰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설날이 예년보다 이른 1월에 찾아오기 때문이다. 설 연휴는 극장가 최대 대목 중 하나. 배급전쟁도 덩달아 일찍 시작됐다. CJ E&M(이하 ‘CJ’)은 황정민ㆍ엄정화 주연의 <댄싱퀸>으로 2012년 한국 영화 배급의 포문을 연다. 롯데엔터테인먼트(이하 ‘롯데’)의 첫 주자는, <페이스 메이커>다. 전 연령층으로부터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감동 스토리, ‘명민좌’ 김명민을 무기로 내세운다. 복병은 NEW가 준비한 <부러진 화살>이다. 1995년 ‘석궁 테러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로 사법부를 정조준하고 있다. 입소문이 이미 예사롭지 않다. 2011년 극장가에 최종병기 ‘활’이 있었다면, 올해에는 부러진 ‘활’이 있을 거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도가니>에서 확인된 실화의 힘도 무시할 수 없는 지점이다. 이 와중에 쇼박스는 차별화 된 전략을 구사한다. 설 연휴에 맞춰 쇼박스가 배급하는 영화는 없다. 대신 ‘선방어 후공격’을 선택했다. <원더풀 라디오>를 일찍 개봉시켜 <댄싱퀸> <페이스 메이커> <네버엔딩 스토리> <부러진 화살>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로 후공격한다는 전략이다.
영화업계에서 잔뼈 굵은 CJ가 두고만 볼 리 없다. 알짜배기 <하울링>을 설 연휴 뒤로 빼놨다. 자신들이 배급하는 또 다른 영화 <미션 임파서블 : 고스트 프로토콜>과의 경쟁을 피하고, <댄싱퀸>도 살리자는 의도로 보인다. 덕분에 2월 극장가 대결이 설 연휴 극장가보다 더 흥미로워질 예정이다. 80억 대작 <하울링>의 주연은 무려 송강호다. 지난해 <푸른소금>으로 짠 눈물을 삼키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충무로 최고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다. 감독 유하라는 이름이 지닌 파급력도 상당하다. 이에 맞선 쇼박스의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는 독한 놈들이 있다. <악마를 보았다>의 살인마 장경철(최민식). <추격자>의 사이코 패스 지영민(하정우). 두 나쁜 놈이 만나 ‘누가 누가 더 나쁜가’를 두고 내기하는 격이다. 2:8 가르마에 포마드를 듬뿍 바르고, 한껏 폼을 잡은 허세 넘치는 포스터만 봐도 호기심이 절로 인다.
비수기를 공략하라!
봄이 오면, 극장가는? 꽁꽁 얼어붙는다. 3-4월은 극장가의 대표적인 비수기로 꼽힌다. 학생들은 신학기로, 연인들은 봄나들이로 바쁜 게 이 시기다. 하지만 비수기 극장가에도 단비는 내린다. 지난해 봄, 비수기를 뚫고 슬리퍼 히트(Sleeper Hitㆍ예상 밖 흥행 성공)를 기록한 <위험한 상견례>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면, 올 봄에는 어떤 영화들이 극장 가뭄을 해갈해 줄까. CJ는 이선균ㆍ김민희 주연의 미스터리 드라마 <화차>로 봄을 맞는다.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 원작 영화의 붐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롯데가 배급하는 3월의 영화는 <건축학 개론>이다. 첫사랑을 그린 로맨스 드라마다. 봄에 안성맞춤이다. 주연 엄태웅-한가인보다 그들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이제훈-미쓰에이 수지의 만남이 더 주목받는 분위기다. <고지전> <파수꾼>이 건져 올린 이제훈이 여심을 공략한다. 쇼박스는 에로틱 스릴러 <간통을 기다리는 남자>를 내보낸다. 바람피우다 죽은 남자와 내연녀, 그리고 섹시한 미망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박희순ㆍ박시연ㆍ주상욱이 타이틀 롤을 맡았다. NEW는 2월 29일 개봉하는 <러브픽션>으로 봄바람을 일으킬 계획이다. 공효진과 하정우. 두 사람의 조합만으로도 일단 눈길이 머문다.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하정우의 물오른 연기가 관람 포인트. 남자판 ‘브리짓 존스’를 보여준다는데, 그의 연기 변신엔 끝이 없어라.
할리우드발 대작에 맞서라!
5월을 전후로, 할리우드발 대작들이 몰려온다. 소니가 배급하는 <어벤져스>를 시작으로 <맨 인 블랙 3> 등 외풍이 심하다. 한국영화끼리 경쟁하기도 바쁜데, 외화까지 막아야 한다. 점입가경이다. CJ가 외화에 맞서는 영화는 이름하야, <코리아>다.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때 사상 첫 남북 단일팀이 우승한 실화를 그린 스포츠 영화다. 현정화 역을 맡은 하지원도 하지원이지만, 현정화의 맞수인 북한대표 이분희로 분한 배우나의 사투리 연기가 기대된다.
롯데는 사극으로 외화와 맞붙는다. 그냥 사극이 아니다. 에로틱 궁중 사극 <후궁: 제왕의 첩>이다. 김대승 감독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 영화의 홍보는 현재 에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색,계> 수준의 파격 베드신이 등장한다는 자극적인 홍보가 성인관객들에겐 먹힐 테니까. <방자전>의 조여정이 다시 파격을 예고하고 있다. 박해일의 <은교> 역시 롯데가 공들이는 작품이다. 17세 여고생 은교를 사이에 둔 70세 시인과 30대 제자의 서로 다른 사랑을 그린다. 박해일이 30대 제자로 나오리라 생각한다면, 틀렸다! <이끼>의 정재영이 선보였던 노안 연기에 도전한다. 동안으로 유명한 박해일이기에, 8시간에 걸친 분장이 필요했다는 후문이다.
쇼박스는 <미확인 동영상>을 드디어 내보낸다. 계획대로라면 지난여름 관객의 평가를 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급기야 해를 넘겼다. 쇼박스는 “영화의 완성도가 나빠서가 아니라, 좋은 작품이기에 호시기에 내보내고자 개봉을 미뤘다”고 밝혔다. 그 말의 신빙성 여부는 6월에 확인 가능하다. NEW에게는 <미스 GO>가 있다.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여자가 마약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로, 고현정을 비롯해 박신양ㆍ 유해진ㆍ성동일ㆍ이문식ㆍ고창석 등이 출연한다.
상반기 출격을 계획 중인 영화들은 이 외에도 많다. SM 소속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I am>, 기생충을 소재로 한 김명민의 <연가시>, 이범수ㆍ류승범ㆍ김옥빈의 <시체가 돌아왔다>가 CJ를 통해 배급된다. 송새벽의 복귀작 <아부의 왕>과 유지태의 장편 데뷔작 <소년, 산세베리아 꿈을 꾸다>는 롯데가 맡는다. 쇼박스는 정재영과 박시후 주연의 <내가 살인범이다>, 송중기ㆍ박보영의 <늑대소년>를 하나씩 풀어낸다. NEW는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하는 한 남자의 ‘이혼 프로젝트’, <내 아내의 모든 것>을 내놓는다. 이선균ㆍ임수정이 부부로 분하고, 류승룡이 마성의 남자로 변신한다. 과연 류승룡은 임수정을 유혹할 수 있을까?
여름, 그 뜨거운 전쟁속으로
지난 여름, <퀵> <고지전> <7광구>등 제작비 100억대 영화들이 잇따라 체면을 구겼다. 물량공세가 소용없었다. 스타파워가 무색했다. 올해는 어떨까. 여전하다. 100억대 영화들의 행렬은 계속된다. ‘한국영화 위기론’, ‘대작 강박증’ 어쩌구 저쩌구 해도 만들어질 영화는 결국 만들어진다. CJ는 총제작비 140억원에 달하는 <타워>와 120억원 규모의 <비상: 태양가까이>로 출격한다. <타워>는 한국판 <타워링>을 표방한 작품이다. 서울 고층빌딩에서 발생한 화재를 소재로 한다. 설경구ㆍ손예진ㆍ김상경ㆍ김인권 등이 불에 맞선다. <7광구>로 흥행 KO패 당한 김지훈 감독이 <타워>로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을지 지켜볼 대목이다. <비상 : 태양가까이>는 당초 1월 개봉 예정이었다. 후반 작업이 길어지면서 3월로 또 한 차례 밀렸다. 개봉 시기를 두고 조율의 조율을 거듭하던 영화는 결국 여름으로 개봉시기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그러니까 <퀵>과 <7광구>를 2주차 간격으로 내놓았던 것과 유사한 그림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가 (군대로) 떠난 극장가에 단비가 내릴지 지켜보자.
롯데는 곽경택 감독의 100억대 프로젝트 <적>으로 여름을 맞는다. 북한군이 점령한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에 북파공작원 출신 남자가 헤어진 연인을 구하기 위해 침투하는 액션블록버스터다. 여타의 경쟁작에 비해, 알려진 정보가 많이 없다. 그래서 수상한 동시에, 더욱 궁금하다.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으로 불리는 <도둑들>은 7월 개봉한다. 자존심 회복을 벼르고 있는 쇼박스의 야심작이다. <범죄의 재구성> <타짜>의 최동훈 감독 연출작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이목을 끄는데, 김윤석ㆍ김혜수ㆍ이정재ㆍ전지현ㆍ오달수ㆍ김수현 등 초호화 캐스팅이 입을 딱 벌어지게 한다. 카지노를 털기 위해 모인 도둑들이 관객의 마음까지 훔칠 수 있을까.
보여줄 게 아직, 남았다
여름이 지나가면, 추석까지 극장가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간다. 하반기 라인업을 재정비할 시간이다. CJ가 마련한 하반기 최고 기대작은 사극 <조선의 왕>이다. 광해군 시대를 배경으로 왕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천민 ‘하선’이 가짜 왕의 역할을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일단 이병헌의 첫 사극 도전이라는 점에서 화제다. 어색할 것 같다고? 이병헌의 부드러운 음색과 깊은 눈매라면, 조선의 왕으로 손색이 없다. 광해군과 천민 역까지 1인 2역을 맡는다는 점도 기대를 높인다. 이명세 감독이 <M> 이후 4년 만에 선보이는 장편 영화 <미스터 K>도 CJ를 통해 소개된다. 키워드는 한국판 <007>. 비밀요원이 국가의 운명이 걸린 대형사건을 해결한다는 첩보영화다. 설경구ㆍ다니엘 헤니ㆍ문소리가 출연한다.
쇼박스는 소지섭ㆍ이미연 주연의 <회사원>으로 하반기 시장을 공략한다. 제목만 봐서는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서민 드라마쯤 돼 보인다. 소지섭과 그리 어울리는 그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센스 있다. 그냥 회사원이 아니라, 살인청부회사 회사원이다. 소지섭이 프로페셔널한 킬러로 변신해 액션을 펼친다.
<도둑들>이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이라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조선판 <오션스 일레븐>’이다. 차태현 주연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NEW가 준비한 대형사극이다. 이병헌과 마찬가지로, 차태현이 생애 첫 사극연기에 도전한다. NEW의 하반기에는 <점쟁이들>도 있다. 전국 팔도 용하다는 점쟁이들이 대거 모였다. 한국 최고 슈퍼 히어로 무비로 불리게 된 이유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나’는지 사뭇 궁금하다. <차우> <시실리 2km>를 만든 신정원 감독의 신작. 김수로ㆍ이제훈ㆍ강예원 주연이다.
2012년 1월 18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