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안 좋다고 들었다.
지난 주에 좀 안 좋았지만 이젠 괜찮아졌다. 촬영 스케줄이 타이트했는데 또 홍보 때문에 거의 쉬지 못했거든. 과로 때문에 목에 염증이 심하게 일어나서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은 괜찮나?
생생하다! (웃음) 병원 가서 응급수술을 했거든. 생살을 찢어서 목 안에 있는 염증을 꺼내지 않았으면 아마 지금까지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을 거다. 이젠 괜찮다.
하지만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색하지 못한다는 게 괴롭진 않았나?
관심 받지 못해서 불러주는 데가 없을 때 정말 더 힘들지. 지금은 저에게 관심 가져주고 불러주는 데가 많아서 오히려 기분은 더 좋다.
필모그래피만 봐도 꾸준히 활동해온 인상인데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있나?
꾸준히 많은 작품을 했지만 그 중 관심 받는 작품이 있는 반면, 관심 받지 못하는 작품이 있다. 작품 안에서의 비중에 따라 관심을 받는 정도를 떠나서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만으로도 확연한 차이가 있으니까. 지금은 너무나 감사하게도 많이 예뻐해 주니까 요즘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너무 좋다. 사실 요즘 잠을 많이 못 자는데도 웃으면서 일어나고 있다. 나도 모르게. (웃음)
<하류인생>이후로 한동안 영화보단 드라마에 주력했다가 작년부터 다시 영화에 주력하는 느낌이다.
날 찾는 곳이 있고, 내가 거기서 배울 것이 있으면 영화든 드라마든 상관없이 필요한 곳으로 이동하려 한다. 영화만 할 거야, 드라마만 할 거야, 그런 건 없다.
주로 어떤 작품에 흥미가 생기는 편인가?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한가지를 배울 수 있는 것이라면, 내가 가진 9가지는 버리고 그 1가리를 얻으러 갈 수 있다.
<미인도>에서의 1가지는 무엇이었나?
신윤복이었다. 윤복이가 나를 통해서 세상 밖으로 나올 때 내 가슴에서 풀리는 게 상당히 많았다. 그 동안 가슴에 꾹꾹 눌러 담겨있던 감성을 가슴에 묵혀두는 게 아니라 폭발시켜서 밖으로 내던질 수 있는 거지. 그걸 풀어버릴 수 있는 <미인도>라는 공간이 있어서. 덕분에 지금 너무 홀가분하다.
올해가 연기경력 10년째가 되는 해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이하, <여고괴담2>)이후 10년만이다. <여고괴담>때는 정말 연기의 이응(ㅇ)자도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가 연기하겠다고 신인 감독님들과 몸 부딪혀가며 배웠던 작품이다. 그 후로 이런 저런 경력을 쌓았지만 <미인도>에서 그렇게 쌓아온 걸 다 무너뜨려서 잠시 내려놓고 <여고괴담2> 당시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대했다.
10년이 짧은 세월은 아니다. 그런데 김민선이란 배우의 10년은 실감이 안 난다. 외모 덕분일지도 모르겠지만 배우로서 고정적으로 축적되거나 결정적으로 관통할만한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 아닌 거 같다.
난 지금까지 한 단계 한 단계 밟아오며 나에게 오는 상황에 대해서 최선을 노력을 다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됐고. 글쎄, 나를 온전히 다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아직까지 영화에선 만나보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다만 내실을 다지고 싶단 생각에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다. 나를 버리고 새로운 것에 계속 도전하려 했고, 모험을 하려 했다. 내가 어떤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지, 어떤 것이 나와 제일 잘 맞을 수 있는지 스스로 잘 모르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찾게 되면 놓치고 갈 수 있는 부분들이 있지 않을까. 도전과 모험이라는 건 젊음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까 아마도 그런 활기나 생기가 지속적으로 활발한 이미지를 부여해서 그렇게 보여지는 게 아닐까.
작품에 따라 이미지의 변화가 다분하다. 작품 선택에 따른 의무적 감내일 수도 있지만 개인의 취향도 배제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생각된다. <미인도>도 비슷한 맥락 같다.
<미인도>는 모든 여배우가 탐을 낼만한 작품이다. 지금 베드씬이 과하게 관심을 얻고 있지만 그것보단 아름다운 영상미의 옷을 입고 있다. 자칫 노출에 대해 부담을 가질만한 여배우도 아마 영화를 보면서 부러워할지 모른다. 나도 당연히 시나리오를 보고 여배우의 동물적인 감각으로 이 작품이 그럴만한 작품이라 느꼈다
여배우에게 노출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스스로 자신을 납득시켜야 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텐데.
시나리오를 읽는 순간 가슴 한 구석에서 형체가 뚜렷한 녀석이 보였고 연기로서 그걸 풀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필연성을 느꼈다. (신)윤복이를 표현하려면 남자에서 여자로 본성을 찾는 과정의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말 백마디 하는 것보다 한 번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게 더 완벽하고 더욱 진정성이 생긴다. 단지 인간 김민선은 잘 못하는 부분이라며 선택을 망설일지라도 스태프들이 나를 보호해줄 거라는 믿음이 생기면 그 다음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나의 젊은 시절 모습을 담을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나.
난 톰보이 같은 녀석이다. 그만큼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줬고 그런 모습이 내가 세상과 소통하기 가장 편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런데 내가 남들이 보는 정도만큼 나 자신을 보고 있다면 난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겠지. 하지만 윤복이가 남자를 사랑하면서 여자로서의 본성을 찾아냈듯이 나도 김민선이라는 여성성을 안다. 윤복이의 역할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안으로 담고 담았던 여성성이 거꾸로 드러나게 된 거다. 촬영하고 나서 내가 모르던 부분들이 많이 드러나서 나도 새삼스럽게 당황스러웠지만 나에게 이런 여성스러움이 있다는 걸 발견해서 기쁜 측면도 있었다. 세상하고 소통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넓어진 기분이다.
신윤복의 여성성보단 김민선의 여성성을 발견했다는 게 더 맞는 말 같다.
신윤복 그가 피어나다, 그런 문구가 있는데 김민선 그녀도 피어났다. (웃음) 예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아예 달라졌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많이 넓어졌다. 이제부터 해야 할 작업은 넓어진 작업을 깊이 있게 만드는 거다.
<미인도>는 사실 통속적인 멜로다. 멜로라는 장르를 잘 이해할만한 세월이 지나기도 했다.
적당히 아픔도 알고, 적당히 슬픔도 알고, 소중한 것도 알고, 행복해지는 방법도 아는, 적당한 나이인 거지.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본능적으로 지금의 나이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걸 느꼈다.
<미인도>는 10년을 기다린 시나리오라고 말했더라. 전윤수 감독을 직접 찾아갔다고 들었다.
집 근처로 찾아갔다. 감독님께서 마지막으로 시나리오 집필을 수정하러 지방으로 내려가시기 직전이었는데 한 10분 정도 잠깐 얼굴만 뵀다. 열정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물론 그게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면서 나 꼭 할래요, 이러는 게 아니라 그만큼의 준비가 됐다는 걸 보여드린 거다. 배우의 자존심은 카메라 앞에서 연기로 보여주는 거라 생각한다. 이 작품이 너무 하고 싶다면서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보단 내가 정말 하고 싶을 때 정말 하고 싶다고 직접 말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게 멋있는 게 아닌가 싶고.
이런 작품 만나게 되면 이렇게 해봐야지, 라고 생각만 했다가 비로소 배운 거지. 물론 그런 작품이 나한테 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지만.
사실 국내에서 여배우를 위한 캐릭터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욕심이 났을 법한데 배우로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연기를 위해 뭔가를 익히고 배워야 할 것이 많다는 건 부담이 아니었을까.
가능성만 봤다. 후차적으로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 라는 걱정부터 했다면 순조롭지도 않고 되게 힘들어했을 거다. 그런 건 하나도 보지 않고 가능성만 보고 뛰어들었다.
일단 그림을 배우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을 거다.
디테일하게 그리는 건 대역들의 손을 빌렸다. 다만 이게 무슨 그림을 그리는 건지도 모르면서 이 동작이 그저 흉내 내는 것만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붓만 제대로 잡자, 두 번째는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모르는 채 흉내내지 말자. 실제로 영화에서 나오는 그림들을 안보고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했다.
신윤복이란 사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신윤복에 대한 역사적인 공부는 캐스팅 전에 이미 마쳤다. 고서에 나와있는 것부터 후세사람들이 신윤복에 대해서 평가하는 자료들까지, 역사를 거슬러서 공부했다. 나름대로 내가 본 신윤복의 그림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를 토대로 한 역사적 사실을 두고 그 위에 즐거운 상상을 덧입힌 거지.
<바람의 화원>은 봤나?
초반에만 봤다. 요즘은 너무 바빠서 학교도 못 가는 중이라. (웃음)
의식되는 바는 없나?
문근영 씨와 내가 하는 신윤복이 어떻게 보였나?
사실 맥락적으로 많이 다르다. 다만 소재 자체가 동일하기 때문에 선점된 이미지에 후발주자가 비교될 가능성을 배제하긴 힘들 거 같다.
나는 단순해서 그런 건지 몰라도 그런 걱정은 하나도 안 된다. 아마 그런 걱정부터 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겠지. 나는 윤복이다. 그래서 <바람의 화원>의 문근영 씨를 볼 때는 같은 윤복이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시청자의 입장에서 즐기는 드라마로 보게 됐다. 그녀와 비교하는 것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하지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다 .그냥 즐거운 관심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되려 기분이 좋다.
자꾸 윤복이 윤복이라 하는데,
나 윤복이다. (웃음) 혜원이라고도 부른다.
윤복이, 신윤복이라는 캐릭터는 김민선과 동떨어져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내 발끝에서부터 끌어내진 녀석이기 때문에 또 한 명의 나인 거지. 김민선의 또 다른 자아? 그렇기 때문에 애정이 느껴지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난 아직까지도 민선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윤복아, 윤복아, 하는 게 더 좋은 거 같다.
나도 윤복 씨라고 불러야 할까? (웃음)
윤복 씨는 이상하고. 윤복아, 이래야 된다. (웃음)
촬영장에서도 분위기가 비슷했을 거 같다.
현장에서 민선이라고 하는 분들은 없었다. 대부분 우리 윤복이, 아니면 혜원아. (웃음)
그런 상황들이 캐릭터에 대한 몰입에 도움되는 바가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그렇게 애정이 남는 캐릭터라면 촬영 후에도 배우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나는 나다. 내가 조선 후기 신윤복이라는 인물의 자리로 들어간 것뿐이다. 김홍도를 만나고, 강무를 만나고, 설화를 만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나의 성(性)을 버리고 남자로 살아간다. 그렇게 내 인물에게, 나에게 정체성을 주는 거다. 그럼 윤복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촬영장에서 벗어나면 나는 내 일상을 지나고 있다. 그럼 나는 김민선인 거다. 그 자리에 가면 사람이 변하는 것과 같다. 시상식에 있으면 격조나 품위가 생기다가도 친구들과 카페에 가면 떠들며 놀게 되는 것과 똑같다. 그 자리의 성격에 맞게 내 모습이 변하는 거지.
모든 사람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너무 집착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되려고 집착하고 되지 않으려고 집착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굳이 벗어날 필요도 없고, 끌어안고 살 필요도 없다. 또 하나의 나니까.
배우로서 뭔가 자신만의 특별한 시각을 느낀 적이 있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다른 거 같다.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하려 한다.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회사원일 것이고, 저 사람은 애인 만나러 갈 것이고, 이런 식으로 인생을 부여한다. 그냥 지나치는 그 짧은 순간에 보여지는 발걸음만으로. 그건 그 사람에게 애정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이렇게 다르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시각이 남들보다 예민하고 감정적일 수 밖에 없는 게 아닐까.
내가 캐스팅되기 전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공부를 했던 이유도 그런 게 밑바닥에 쌓여있지 않으면 어떤 상상력을 입혔을 때 상당히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뿌리가 깊고 튼튼히 박혀있어야 꽃이 예뻐지는 거다. 꽃이 예뻐지라고 꽃잎만 닦아주고 좋은 햇빛을 아무리 비춰줘도 뿌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금방 죽어버린다. <미인도>라는 발칙한 상상이 지금 가능할 수 있는 것도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 준비된 세상이란 바탕을 보여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땐 그런 것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거다.
이런 저런 경험을 해봤기에 가능한 법이지. 고속도로가 어디 있는지 알면서도 차에 타거나 기차에 타지 않고, 걸어서 가볼 수 있는 데까지 가보고 싶다. 강에서 수영도 하고, 자갈밭에서 뛰어보기도 하고, 넘어져서 피도 흘리고, 손을 덜덜 떨어보기도 하다가도 산들바람에 기분 좋아지기도 하고, 꽃도 보고 나무도 보고, 그런 사람이고 싶다.
본인에게 그런 연기적 철학을 정립하게 만들어준 특별한 작품이 있었나.
얼마만큼의 비중을 가지고 있고, 얼마만큼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느냐를 떠나서 매 작품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한다. 혹은 첫 작품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다만 우연적으로, 혹은 필연적으로 겉으로 보여지기에 정말 인생의 터닝포인트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나는 보여지는 터닝포인트를 위해서 매 순간을 그렇게 살아왔고 잘 넘어온 거 같다. <미인도>를 통해서도 속풀이를 제대로 했고 마음껏 연기할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하이틴 잡지 모델 출신이다. 현재 동년배의 여배우 중 당시에 함께 활동했던 잡지 모델 출신이 적지 않다.
활동하기 참 좋은 시기에 같이 일을 하게 됐고 그만큼 다른 분야로 연결이 용이했다. 어렸을 때부터 봤던 동료들이 옆에 있다는 게 한편으론 든든하고 의지가 많이 된다. 나는 단 한번도 연기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TV도 잘 안보는 학생이었던 나와는 전혀 먼 세상이었다. 모델이나 연기나 처음 했을 때 내가 너무 잘했으면 지금 이 일을 안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무 잘했다면?
처음에 너무 못하는 거다. (웃음) 당연히 못하겠지. 너무 소극적이었으니까. 누군가가 날 이렇게 바라볼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내 관심 밖이었던 만큼 당연히 카메라 앞에서 내가 어떻게 보여지는지,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도 몰랐었고. 너무 소극적이고 부끄러운 사람이라 그걸 통해서 뭔가 관심을 끌고 싶다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다. 첫 촬영할 때 그 어색함이 여실히 다가왔다. 그게 너무 창피해서 오기로 모델을 계속하게 된 거다. 그런데 그게 고맙게도 단계적으로 연결돼서 연기도 하게 됐지만 역시나 너무 못해서 또 오기로 계속 달려왔던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안 타고 자갈밭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가 싶고.
난 여전히 부끄러운 게 많이 보이는 사람이라 그걸 이겨내는 게 사명이다. 남들이 너무 못해, 라고 얘기하기 전에 내가 보는 내 모습이 너무 못해, 라고 생각하면 그걸 이겨내고 싶은 거지. 사실 내가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구나, 라는 걸 알았던 건 <가면>에서부터다. 그전까진 배우는 과정이 즐거운 작업이었지만 <가면>때부터 내가 가장 마음 편한 곳이 현장이구나, 이게 내 천성이구나, 현장에서 살아야 되는 사람이구나, 라고 깨닫게 됐다. 내 직업의식이 그 때부터 생기기 시작한 거지. (웃음)
불과 1년 전이다. 10년을 다 채우고 나서야 비로소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건가.
시기에 따라서 목표점이 다르지 않을까. 20살 초반의 김민선은 연기를 잘 하자는 오기가 그 목표점이었던 거 같다. 연기를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러다 5년 후에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그 목표점이 사라진 거 같더라. 그리고 다음 5년 동안 방황하면서 꾸준히 연기했지만 찰나마다 내 안에서 고민이 상당히 많았다. 목표점이 사라지니까 어딜 갈지 몰랐던 거지. 익숙하게 현장에 있긴 하지만 내 안의 생명력을 내가 느끼지 못했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그 시기를 보내다가 현장에서 사는 내가 너무 행복하다는 느낌을 얻는 순간 나의 목표점이 다시 생긴 거지.
5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하더라. 어머니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력이 적잖아 보인다.
아마도 내가 그분의 존재감을 살아계실 때 알았다면 지금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었을 거다. 자식은 그런 거 같다.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에 몰랐던 부분이 그 공간이 비워지고 나면 그게 너무 큰 공간이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우리엄마는 완전 멋있는 분이셨다. (웃음) 남자보다 더 대담하고 어느 여자보다 더 소녀 같았다.
현재 자신의 중성적인 매력도 유전인가 보다. (웃음)
그 어머니에 그 딸? 난 엄마처럼 안될 거야, 라고 했는데 난 엄마보다 더 하는 거지. (웃음) 내가 엄마한테 너무 죄송한 건 내 엄마가 여자라는 걸 까맣게 잊고 살았다는 거다. 가신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엄마도 여자였다는 걸 깨달았다. 너무 어렸지. 내가.
대부분 자식들이 그렇다. 여자라고 인식하기 보단 그냥 엄마인 거지.
엄마는 또 다른 성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남자보다 더 강한 게 엄마라고도 하잖아. 그게 가능한 건 수많은 위험 속에서 내 자식을 보호하는 엄마는 남자보다 강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여자다. 그 누구보다 순수하고 너무 여린 여자. 그리고 앞으로 나 역시도 엄마가 될 것이고.
그리고 분명 아들보단 딸이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는 지점도 있는 거 같다.
여자끼리 통하는 뭔가가 있다. 남자끼리 통하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몇 자의 단어와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우리 어머니께서는 분홍색 립스틱을 좋아하셨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화장을 자주 하시는 분은 아니었고, 거의 안 하고 사셨지.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위해서 빨간 립스틱을 안 바르신 거다. 여자가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시기가 빨간 립스틱이 어울리는 시기다. 난 아직 잘 안 어울리지만. (웃음)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싶어도 가족들을 위해서 분홍립스틱을 바르거나 그것조차도 안 바르고 맨 얼굴로 다니신 거다.
결국 어머니는 여자로서보다 어머니로서의 삶을 택한 거다. 여자가 어머니가 된다는 건 결국 나를 버리는 것에서 시작되는 건가 보다.
자식이 생각하기에 그게 아픈 거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나도 그렇게 전철을 밟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거다.
어쩌면 <미인도>에서 신윤복의 삶도 비슷하다. 여자지만 남자로 살았으니까.
그녀는 그런 여자였던 거지. 내 마음이 가는 곳을 그 누구한테도 말 못하는 아픔이 있는 여자지만 제 눈에 비치는 세상을 그림으로 옮길 줄 알았던 대담성을 가진 여자랄까.
신윤복은 자신이 봉인한 여성으로서의 자아에 둔감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신윤복이 여성으로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건 진짜 자신의 삶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김홍도에게 그런 고민들이 무의미하다는 걸 다시 한번 이야기해주고 싶어한 거다. 더 이상 나로 인해서 불행이 없길 바랍니다, 그래서 정사가 이뤄지는 거고.
<미인도>는 배우경력에 있어서 가장 큰 파격처럼 보인다. 그만큼 모험의 여지도 있었고.
나는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천천히 생각하고 싶었고, 천천히 찾고 싶었다. 관객은 한 사람이나 어느 상황을 볼 때 자신들의 시각을 가지고 본인이 원하는 것만 본다. 나에게 찾은 모습도 그렇게 발견된 모습일 테고. 그런데 <미인도>를 기점으로 아마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전형적인 여성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어쩌면 <미인도>를 통해 뒤늦게 그런 이미지를 스스로 발견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이 없진 않았다. 비유를 하자면 담장에 장미꽃들이 만발해있다고 하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너무 예쁘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그 장미꽃들은 누군가가 와서 예쁘다고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야만 내가 사랑 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깨닫는다면 그건 참 가슴 아픈 순간일 거다. 난 이미 날 사랑하고 있고 내가 날 아낀다면 남들이 날 어떻게 봐주는가는 그 다음 문제인 거다. 그건 그리 중요한 얘기가 아닌 거 같다. 지금 <미인도>로 인해서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주시니 기분은 참 좋다. 이렇게 사랑 받을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그 전부터 이미 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순간에 대해서 휩쓸리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다. 사람들이 관심 없을 때가 있을 때보다 더 많을 수 있는 법인데 거기에 휩쓸리고 싶진 않다.
전체적으로 카메라에 잡힌 다채로운 풍경들이 아름답더라. 그만큼 로케이션 이동도 잦았을 것 같고 고생도 많았을 거다.
정말 대단한 건 순제 32억에 100일 74회 차 촬영을 했다는 거다. 매일같이 이동하고 밤새면서 촬영만 했다는 소리다. 그것도 장마철이 한참 피크일 때. 단 하루도 촬영을 미룰 수가 없었다. 그러면 개봉 날짜가 틀려지는 거니까. 후반작업도 한달 반 정도밖에 여유가 없었다. 아주 타이트했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을 거다. 사극을 어떻게 32억으로 찍어. 정말 그 적은 제작비로 필요 없는 건 아끼고 허리띠 졸라매면서 갔다.
한여름에 겹겹이 한복을 껴입고 연기하느라 고생도 많았겠다.
그건 배우가 견뎌내야 할 몫인 거지. 우리 스태프들도 나름대로 견뎌내야 할 몫이 있었고, 서로 불편한 걸 불평하지 않는 것에 감사하면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했다.
처음으로 사극에 출연했다. 사실 외모가 이국적이라 사극에 어울리는 인상은 아니다.
도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틀려지는 거 같다. (생각하다가) 연필, 글 쓰는 물건이다. 하지만 연필을 비녀처럼 꽂아도 된다. 혹은 연필로 스트레칭도 할 수 있다. (웃음) 연필은 도구다. 배우도 도구다. 배우가 난 이렇게 생겼으니까 이런 것만 해야 돼, 라고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진전도 없고 성장도 없을 거다. 배우에게 정말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내가 그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도 불편하지 않은 거다. 만약 내가 <미인도>를 어색해했다면 보는 분들도 어색해했을 거다.
자신감이 느껴진다.
생각한대로 이뤄지는 것 같다. 내가 피곤하다고 느끼면 정말 피곤한 일이 생기고 행복하다고 느끼면 행복한 일이 생기는 거 같다. 앞서서 걱정하는 것보단 가능성을 보는 게 훨씬 더 값지지 않을까. 그러다 보니까 하루하루 너무 즐겁게 사는 것 같고 재미있다. 사는 게.
도전적이면서도 긍정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만큼 누구보다 삶에 집착과 욕심이 큰 사람일 수도 있다.
2008년 11월 20일 목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