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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몇 가지 것들...
2008년 8월 7일 목요일 | 백건영 영화평론가 이메일


곽경택 안권태 공동연출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하 <눈눈이이>)를 보게 된 것은 순전히 한석규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닥터 봉>에서 <텔 미 썸딩>까지 영화데뷔이후 9연타석 홈런을 날렸음에도 <이중간첩>으로 명성에 상처를 입고는, 와신상담하며 찍은 영화들에서조차 별 재미를 못 본 그의 연기 인생이 <눈눈이이>를 통해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관심사였다는 얘기다. 영화를 보기 전 평을 읽지 않는 습관임에도 <눈눈이이>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몇몇 매체와 관객리뷰를 읽어보고는 극장으로 향했다. 한석규의 연기를 칭찬하는 다수의 리뷰가 있었고 몇몇 매체에서는 작품 평가와는 별개로 배우들의 호연에 주목하고 있었다. 물론 한석규와 차승원의 연기도 좋았고, (아! 정말) 송영창의 연기는 발군이었다. 하지만 한석규는 ‘좋았다’라는 수사로 끝나서는 안 되는 배우이다. 어쩌면 <눈눈이이>를 본 후 허탈한 감정이 앞섰던 것도 그의 연기가 ‘단순히 좋은’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니 이 글의 시작 또한 여기에서 비롯된다.

<눈눈이이>에서 한석규가 연기하는 ‘백성찬’은 회색 머리에 은빛 트렌치코트와 틈날 때마다 질겅질겅 씹어대는 껌이 말해주듯이 신경질적이고 강박적인 인물이다. 이전 영화에서 한석규가 연기했던 유사 캐릭터, 즉 <쉬리>의 유중원이나 <텔미 썸딩>의 조 형사와 비교할 때 백성찬은 판이하게 다른데, 마치 잘 아는 사람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내 앞에 서있을 때의 낯선 느낌이랄까? 거칠게 말하자면 한석규의 연기력을 논하기엔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빈약했고 (전적으로 그에게 책임지울 수는 없을 일이지만) 영화가 혹은 곽경택이 한석규의 이름값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범죄수사물에서 주인공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요컨대 내러티브를 견인하는 동시에 현장을 지배하고 정리하는 강력한 이미지로 어필함으로써 캐릭터를 극대화시키며 영화의 긴장감과 흥미로움을 배가시키는 것일 테다. 이를테면 차승원이 연기하는 범죄자 ‘안현민’과 수사반장 백성찬은 대극에 놓여있는데, 경쟁자이면서 파트너일 수 있고 분노와 좌절을 안겨주는 동시에 연민의 대상이기도 하다. 범죄세계에서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니 최고의 범죄자가 베테랑 형사를 몰라 볼 리 없다. 각자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정상에 오른 만큼 자존심도 강해서 조무래기들과 노닥거릴 처지가 아니라는 것. 때문에 고수는 고수의 눈에만 띄고 잡히거나 혹은 패배하더라도 그 대상은 반대편의 다른 고수여야 한다는 것이 범죄수사물의 특징이자 그 세계의 생리라는 말이다. 이처럼 상위 인물들의 대결구도는 영화의 잔재미와 긴장감을 촉발함으로써 범죄영화를 필수구성요소로 기능하게 된다. 할리우드 영화의 예를 보자면, 마이클 만의 <히트>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하는 민완형사반장 ‘빈센트 한나’와 로버트 드니로가 분한 범죄자 ‘닐 맥컬리’의 관계망이 유사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죽도록 잡고 싶은’ 대상을 쫓아다니는 동안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그 과정에서 분노가 연민으로 뒤바뀌면서 헛웃음을 칠 수밖에 없는 것, 혹은 <넘버 3>에서 태주가 마동팔 검사를 살려준 것도 다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현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면서도 현장 이외의 장소에서 피어나는 인간적 갈등이나 고독 같은 하위 질료들을 적절히 결합시킨 것이 한석규의 이전 캐릭터들이었다면, <눈눈이이>의 백성찬은 사무실에 앉아 지휘자로서의 역할에만 머물면서 단선적 내러티브에 무임승차하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눈눈이이>에서 내가 보고자 했던 것은, ‘섬세하면서도 투박한 한석규의 아우라가 어떤 방식으로 상대배우를 경쟁과 조력의 관계망 속으로 포섭할 수 있을 것인가’였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영화는 다른 차원의 캐릭터를 만들고 있었다. 즉 차승원이 범죄기획과 현장 지휘는 물론 직접 행동하는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건을 만들어가는 반면, 한석규는 부하에게 현장을 일임한 채 머리로 밑그림을 그리는 일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물론 캐릭터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니 감독의 의도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주지할 것은 한석규의 명성을 만들어주었던 과거의 캐릭터들은 결코 단선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즉, 하나의 캐릭터가 각기 다른 세계를 넘나들면서 영화를 만들어갔다는 말이다.

한석규의 이미지는, 강한 카리스마로 영화전반을 압도하는 최민식이나 거칠고 어눌하지만 뚝심 있는 송강호, 잡초 같은 끈질김과 능청스러움을 겸비한 설경구의 이미지와는 분명한 차이를 보여왔다. 다른 이들이 연극무대를 통해 스케일과 액션이 큰 연기와 풍부한 성량 전달에 익숙한 것과는 달리, 성우와 TV드라마 출신의 한석규는 특유의 차분하고 나직한 목소리에 섬세한 연기를 보여 왔다. 뒷골목 인생이지만 고향의 가족을 그리워했고 조직과 출세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 아내와 가정을 소중히 여겼으며, 사랑과 이념 사이에서 갈등하거나 생의 마지막 직전 다가온 사랑 때문에 가슴아파하는 인물들. 결코 한 가지로 특징지어 설명할 수 없고 단순한 가정사와 과거지사로 논의할 수 없는 다층적인 캐릭터를 연기함으로써 한석규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남자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주목할 것은 한석규는 90년대 한국영화 부동의 남자 주인공이었음에도, 권위와 힘이 느껴질 만한 캐릭터를 가진 적이 없었거니와 다른 배우를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는 사실이다. 때론 강하고 거칠게 또 때론 순박한 인물을 연기해왔지만, 그 바닥에는 언제나 낭만주의자의 그림자가 깔려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석규는 그런 배우였다. 어느 변두리 어스름한 가로등 아래 쭈그리고 앉아 연신 “씨팔 씨팔”을 내뱉으며 훔친 지갑을 뒤지다가도 귤 한 꾸러미를 들고 누군가를 안심시키러 잰 걸음을 걷는 인물이 한석규였다는 말이다. 때문인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석규의 캐릭터는 <넘버 3>의 ‘태주’다. 어차피 삼류로 기억될 삶이지만 그 안에서나마 넘버 2가 되고자하는 인간의 욕망과 비루한 남성성을 여실히 까발리던 태주는, <초록물고기>의 막동에서 <구타유발자들>의 문재에 이르기까지 한석규가 연기한 캐릭터들을 한데 넣고 버무려 만들어낸 인물이란 생각에서이다. 그런 그가 도무지 정돈되지 않는 인물을 뒤집어쓴 <눈눈이이>로 돌아왔다. 그러나 반가움도 잠시 <구타유발자>들에서 품었던 희망이 물거품이 될 지경이었다.

나는 한석규가 제 몸에 맞는 옷을 입기를 바란다. 그 자신과 그의 팬을 위해서 무엇보다 한국영화를 위해서 말이다.

2008년 8월 7일 목요일 |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네오이마주 편집장)

14 )
sasimi167
예전이 좋았는데..   
2008-12-30 14:00
ambitious87
휴;; 잘봤어요~   
2008-08-16 09:46
asil
눈눈이이는 한석규 마저 없었으면 정말 별로인 영화 될 뻔   
2008-08-13 22:41
frightful
아   
2008-08-12 23:19
lhohj
화이팅   
2008-08-12 03:47
mvgirl
한석규씨...예전만 못하단 느낌이   
2008-08-10 21:59
gt0110
음....   
2008-08-10 01:48
oppa815
난 그래두 한석규 횽아가 짱이더라. ~ 홧팅   
2008-08-09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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