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반부터 낯 뜨겁다. 처음부터 너무 세게 나오는 거 아닌가.
제작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감독의 입장에서 해야 할 얘기보다 제작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영화 관련 기사를 보면 우리 영화가 관객을 웃길지 모르는 작품이라 썼더라. 과연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고 난 후였다면 그 기사가 나올 수 있었을까. 영화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 많다는 건 트위터가 증명한다.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트위터에 거짓말을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 기자들이 <가문의 영광 4>에 왜 악평을 했다고 생각하나?
분석하는 게 직업인 기자들은 단순히 보고 즐기면 되는 코미디 영화에서도 뭔가를 분석해내려고 한다. 여러 공식석상에서 우리 영화는 감동과 메시지가 있다고 말한 적 없다. 그런데도 하나같이 감동과 메시지 운운하며 안 좋은 평을 내린다. <가문의 영광 4>는 <무서운 영화> 시리즈와 같은 코미디 영화다. 왜 그런 쓰레기 같은 영화를 만들었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물론 <도가니> 같은 영화를 만들면 기자들이 좋아하겠지. 하지만 거기에 맞추다보면 관객이 안 든다. 낸들 방귀로 물고기를 잡거나 사람들을 질식시키는 장면을 쓰고 싶겠나. 하지만 이런 장면들을 대다수의 관객들이 좋아한다. 그들의 본능적인 웃음을 가장 잘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다. 관객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코미디의 연을 놓지 않는 것 같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코미디 영화가 개봉했지만, 최근에 들어와서는 주춤하다. <가문의 영광 4>도 5년 만에 나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장르가 코미디다. 그러나 기자들이 코미디 영화에 혹평을 하니 어느 제작사가 작품을 만들겠는가. 코미디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들도 의욕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 계속되다 보니 국내 코미디 영화가 죽어 버린 거다. 대부분 관객들은 스트레스를 풀려고 극장을 찾는다. 그런 사람들에게 코미디 영화는 ‘딱’이다. 하지만 코미디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 사람들이 볼 기회가 없다.
얘기를 들어보니 기자시사회를 아예 진행하지 않으려고 했다던데.
기자시사회를 하면 뭐하나. 욕만 먹는데. 그것도 다 돈이다. 돈 들여가면서 욕을 먹을 필요가 없잖나. 그래서 이번엔 배급사한테 기자시사회를 하지 말자고 얘기를 했다. 그 대신 영화가 개봉한 이후에 간담회를 하자고 제안한 거지. 만약 개봉 이후에 간담회를 했다면 질문부터 달라졌을 거다.
200만을 넘겼어도 별로 기쁘지 않다. <포화속으로>도 마찬가지였다. 포항에서 찍었다고 친정부영화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 덕택에 다음 아고라에서 0점을 유지했지. 그나마 지금은 8점대로 올라왔다. 게다가 월드컵 시즌이었고, 권상우 뺑소니 사건이 일어나면서 예상보다 적은 330만 밖에 들지 못했다.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기자시사회부터 악평에 시달렸으니까. 이현승 감독의 <푸른소금>을 봤는데, 영상이나 작품성은 좋았지만 흥행성 면에서는 걱정이 됐다. 하지만 흥행성은 우리 영화보다 높게 나왔다. <챔프> <통증>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를 봐라. 작품성은 바라지도 않는다. 1점이라도 괜찮다. 다만 흥행성 좋게 줘야 하는 게 아닌가. 관객들의 의견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일반 관객들의 적극적인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블라인드 시사회도 했다고 들었다.
세 번에 걸쳐서 블라인드 시사를 했다. <가문의 영광 4>는 철저히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관객들의 의견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설문지에 기입된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서 계속 수정 작업을 거쳤다. 재미있다는 의견이 나온 장면은 살리고, 그렇지 않은 장면은 과감히 편집했다. 헷갈리는 건 관객들에게 물어보고 수정해왔다. 이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전작에 비해서 높은 성적은 아니지만 200만 관객을 동원한 것 같다.
1편부터 그래왔지만 이번에도 서울보다는 지방에서 사랑을 많이 받았더라.
이번 영화는 예매율도 좋았는데, 예매는 지방이 아닌 서울에서 많이 하는 편이다. 서울 관객들도 끌어 모은 이유는 가족 관객이 즐겁게 볼 수 있는 코미디였기 때문이다. 제작단계에서 가족 관객을 모으기 위해 조폭 코드를 뺐는데, 그게 딱 들어맞았다. 노모부터 아이까지 가족관객이 단체로 관람을 많이 했다.
특히 30,40대 영화 예매율이 좋았다.
그렇다. 아빠 세대들이 예매를 많이 한 거지.
자의든 타의든 이번 영화에서 연출을 맡았다. 그동안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제작했다고 하지만 연출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감독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개봉일은 다가오고 남아 있는 시간은 별로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배우들이 감독을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하더라. 올 추석에 이번 영화를 안 하면 아예 시리즈 자체가 없어질 것 같았다. 최근에 추석에 코미디 영화가 사라지는 추세라서 예전에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제작했던 한 사람으로서 의무감이 들었다. 그래서 연출을 맡게 된 거다.
욕과 폭력이 난무했던 전편들과 달리 조폭 코드를 과감히 삭제했는데.
3편이 2편보다 흥행 성적이 낮았던 이유 중 하나가 같은 배우가 나와서 식상하다는 거였다. 제작 기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었다. 전작과의 차별성을 고심하다가 조폭 코드를 빼기로 결정했다. 결과적으로 그 결정이 흥행 성적이 큰 영향을 줬다.
극중 일본은 영화의 주된 배경인 동시에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두 달 밖에 안 되는 촉박한 제작기간에 일본 로케이션 촬영은 무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일단 기획 때부터 일본을 유념해두고 진행됐다. 한국과 비슷하지만 다른 나라가 일본이잖나. 일본 로케이션을 진행했던 <아이리스> 스탭들이 참여해서 별 무리는 없었다. 무엇보다 숙식을 제공받아 경비를 절감할 수 있어서 결정했다. 그리고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이웃나라로 잘 지내고 있는 두 나라의 관계가 재미있어서 코미디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수미 선생님한테 죄송스럽지. (신)현준이나 (탁)재훈이 한테는 미안하지 않다. 나도 힘들었는데 뭘.(웃음) 그리고 남자 배우들은 군대도 다 다녀 왔잖나. 김수미 선생님은 나이가 많으시니까 촬영을 할 때 마다 미안함이 들었다. 그래도 다들 즐거웠던 시간이었다고 말해주더라.
빠듯한 촬영기간이라서 변수가 많았을 것 같은데.
미리 정한 장소에서 촬영을 할 수 없으면 고민 없이 곧바로 이동했다. 빨리 찍어야 하는 부담감이 있어서 하나의 변수가 생기면 그 자리에서 수정했다. 그래서 항상 시나리오가 지저분했다. 볼펜으로 매번 수정했으니까 말이다. 대사 고치고, 리허설 하고, 찍었다. 비가 오면 그친 후에 찍고. 어두우면 조명을 밝게 해서 찍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안개가 자욱해서 “갑자기 안개가 끼고 지랄이야”라는 대사를 새로 집어넣기도 했다. 그냥 현실적으로 맞췄다. 고집은 부리지 않았다. 제작자였던 노하우를 발휘해서 효율적으로 찍으려고 노력했다. 상업영화니까.
일본이 아닌 한국에서 찍은 장면도 있다고 들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배 안 장면하고, 산에서 지내는 장면 모두 한국에서 촬영했다. 그런데 억울하다.
뭐가 억울한가?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떤 매체는 왜 이런 산속 장면을 찍는데 외화를 낭비 하냐고 썼더라. 그건 아니다. 우리는 외화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스탭들은 배타고 일본으로 건너갔고, 먹는 걸 아끼려고 밥차도 가져갔다. 일본 현지에서 호텔과 차량을 지원해줘서 제작비를 더 아낄 수 있었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 때문에 감독이 잡히지 않은 건가?
그건 아니다. <가문의 부활: 가문의 영광 3>를 연출했던 정용기 감독하고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박성균 감독이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정용기 감독은 다른 작품을 하고 있었고, 박성균 감독은 시나리오를 고쳐서 하고 싶어 했는데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연출은 내가 하게 된 거지.
이번 작품에서 정통 코미디를 보여주기 위해 나름대로 신경을 쓴 부분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본능적인 웃음을 끌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코미디에도 장르가 다양하다. 그런데 정작 정통 코미디는 자주 볼 수 없다. 블랙 코미디는 종종 나오는데, 문제는 모든 관객들이 웃지 못한다는 거다. 영화를 보고 웃으려고 왔다가 마음 놓고 웃지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다. 블랙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만 웃는 거지. 실생활에서도 길거리 지나가다 누가 넘어지면 걱정보다는 먼저 웃게 된다. 이번 영화에서 그런 본능적인 웃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본능적인 웃음의 중심에는 정준하가 있었다. 원래 정준하를 필두로 화장실 개그를 내세울 계획이었나.
2편 주인공이 신현준, 김원희였고 3편은 탁재훈이었다. 4편은 홍회장 셋째 아들로 나오는 임형준을 주축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려 했는데, 다들 알겠지만 형준이는 인지도가 약하다. 그래서 그보다 인지도가 높은 정준하를 택했다. 그래도 다른 캐릭터가 돋보일 수 있는 상황은 다 마련해줬다.
영화제에서 코미디를 인정해 줬으면 좋겠다. 미국 골든글러브시상식은 뮤지컬·코미디 부분이 따로 있다. 국내만큼 영화제가 많은 나라도 없을 거다. 그중 한 영화제라도 코미디 부분을 신설해서 상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장르에 종사하는 제작자, 감독, 스탭들은 사기가 진척되고, 계속해서 코미디 영화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코미디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언론시사회도 기자들만이 아닌 관객들과 함께 보면서 반응을 살피고 글을 쓰면 지금보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코미디 장르는 죽을 수밖에 없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제작 능력을 보여줬다. 2009년에는 <아이리스>가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2010년에는 <아이리스>의 스핀오프인 <아테나: 전쟁의 여신>이 방영됐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있어서 확실한 차이점은 무엇인가?
많은 차이점이 있겠지만 시청자 반응에 따라 계속해서 시나리오가 수정된다는 게 가장 크다. 영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일주일 간격으로 2회분 126분을 만들어야 하니까 힘이 더 든다. 초반에는 많은 분량을 찍어 놓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거의 생방송으로 진행되니까 모두들 힘들어한다.
최근 한예슬 사태로 인해 드라마 환경 여건에 대한 문제점이 크게 대두됐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사전제작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사전제작 방법을 택하면 드라마 여건은 한층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시청률이 안 나오면 조기 종영 되는 국내 드라마 현실에서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미국은 시청률 상관없이 계속해서 방영한다. 주 1회, 광고 포함해서 총 방영시간은 60분이다. 본 드라마는 46분이다. 일본도 이 시스템으로 드라마가 방영된다. 국내도 시간을 줄이고, 주 1회 방영시스템으로 바뀌면 지금보다 나아질 거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만약 20부작 드라마를 주 1회로 방영하면, 배우들은 5개월 동안 다른 작품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광고수익이 줄어드니까 제작비 충당이 힘들어진다. 반면에 다른 나라 제작사들은 국내 드라마를 부러워한다. 시청자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드라마는 우리나라가 유일하기 때문인 거다. 아무튼 뭔가 절충안이 나와야 하는 시점임에는 틀림없다.
<아테나: 전쟁의 여신>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였을까. 예상외로 시청률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 드라마의 주 시청자들은 남성들이었다. 지금 일본에서도 여성들보다는 남성들이 더 좋아한다. 의도적으로 멜로 보다는 사건위주로 갔다. 그리고 선과 악을 미리 알려준 상태에서 박진감 있는 대결구도로 20부작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런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는 못했나보다. 시작하자마자 선과 악을 극명하게 보여주다보니 신선한 이야기를 구성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리고 8회까지의 분량을 다 찍어놨음에도 대본이 안 나와 후반부에서는 생방송처럼 급박하게 찍었다. 그런 방식으로 드라마를 만들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더라. 그래도 첫 방송 시청률이 25%였고, 평균 시청률은 16.1%를 기록했다. 새로운 기획과 이야기 구성으로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어다는 점에서 나름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아이리스 2>는 언제 만나볼 수 있나.
이번 주에 <아이리스 2> 사무실이 오픈됐다. 작가들이 들어왔고,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중이다. <아테나: 전쟁의 여신>때 겪었던 어려움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기획 단계부터 차근차근 준비해 가고 있다.
여타 인터뷰를 보니까 <가문의 영광 5> 제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데.
5편은 아직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고민 중이다. 그보다 먼저 <가문의 영광> 시리즈를 시트콤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그리고 드라마 <제3병원>에 집중하고 있다. 한의와 양의가 합쳐진 협진 병원이 배경이고, 각기 다른 의술을 가진 배다른 형제가 엮어나가는 이야기다.
오늘 전반적인 코미디 영화 장르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마지막 할 말이 있다면.
코미디 영화. 많이 좀 사랑해 달라.
2011년 9월 24일 토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사진_태원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