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반가운 손님이 왔다. 다름 아닌 차태현의 아들 차수찬. 차태현은 유치원이 방학해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아들을 데려왔다고 했다. 워낙 부자간의 사랑이 두터운지라 수찬이는 아버지의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고, 어쩔 수 없이 동반 인터뷰를 하게 됐다. 하지만 더위에 지쳤는지 수찬이는 인터뷰가 시작하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역시 용산구 최고의 아빠답다.
죄송하다. 와이프가 한꺼번에 아이 둘을 돌봐야 해서 수찬이를 데리고 나왔다. 양해 부탁한다.
괜찮다. 부자의 정을 느낄 수 있어서 좋은데.
절대 홍보 목적으로 데리고 온 건 아니다.(웃음)
평소에도 아이를 잘 보는 편인가?
일단 볼 시간이 많다. 요즘은 <1박 2일>만 하고 있잖나.
<승승장구>를 보니까 결혼 전에는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고.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웃음) 오늘처럼 인터뷰 장소에 아이를 데리고 올 줄 누가 알았겠나. 결혼하기 전에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아내가 수찬이를 가졌을 때부터 2살까지 거의 내가 돌봤더니 정이 든 것 같다. 내가 안 보면 막 불안해진다니까.
당시 태교를 위해서 일을 안했던 건가?
수찬이를 위해서 일을 좀 쉬었는데, 공교롭게도 수찬이가 태어나고 1년 반 동안 쭉 일이 없었다. 그래서 애만 봤지 뭐.(웃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경쟁작들이 많아서 신경이 좀 쓰이겠다.
괜찮다. 그냥 <도둑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미리 다 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8일 날 깔끔하게 우리 영화보고.
사극 코미디 장르는 같은데,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지금 다른 영화를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냥 내 영화가 여름에 개봉한다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둔다. 여름에 개봉하는 영화는 처음이거든. 여기에 흥행까지 되면 금상첨화지.
<과속스캔들> <헬로우 고스트>는 흥행 성적이 좋았던 반면, <챔프>의 성적은 좋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의 흥행이 더 중요할 것 같다.
흥행이 안 되는 영화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챔프> 때는 관객들이 더 이상 내가 가족 영화에 나오는 걸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라. 아마 관객들은 눈물샘을 자극하는 게 아닌 웃음을 줬으면 하고 바랬을 거다.
그래서 코믹요소가 다분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선택한 건가?
그건 아니다. 같은 시기에 <챔프> <과속스캔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세 작품 모두 구두로 출연 결정을 했는데, 그중 <과속스캔들>이 먼저 제작에 들어간 것뿐이다.
도둑들이 얼음을 훔친다는 설정으로 범죄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상 코미디가 주를 이루는 작품이다.
외피는 범죄영화지만 실질적으로는 코미디 영화다. 내용상으로는 배신과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까 오히려 신선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도 중후반부에 반전을 숨겨두고 이야기를 배배꼬는 영화들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다. 그냥 보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영화 있잖나. 다 보고 나서 “이 영화 괜찮은데”라고 말하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그런 작품이다.
배신과 복수가 없다보니 후반부에 긴장감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온 가족이 재미있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도 된다.
시작은 가족 영화가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가족들이 볼 만한 영화가 돼버렸네.(웃음) 뭐 다들 편하게 볼 수 있으면 좋지.
이번 영화는 특히 CG 장면이 많았다. 찍을 때 걱정 되지 않았나?
걱정 많이 했지. 우리 관객들의 눈높이가 워낙 높지 않나. 좋은 CG 영상을 만들려면 자본과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여건이 안 되다보니 완성도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서빙고의 얼음을 훔친다는 설정이 독특해서 위안을 삼았었다.
<챔프> 때는 말 타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
당나귀 타는 거.(웃음)
그거 보기보다 어렵다. 당나귀는 탈 수 없는 동물이다. 말처럼 컨트롤이 안 되니까. 당나귀 주인도 타본 적이 없었다고 해서,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감독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챔프> 때의 경험을 한 번 살려보라고 하는 거다. 아니 말하고 당나귀하고 같냐고.(웃음) 어찌됐든 당나귀 장면을 무사히 마쳤다. 속상했던 건 힘들게 탔는데, 다들 그 고초를 몰라줬다는 거다. 당연히 탈 줄 알았다는 듯이 다들 “잘 타네”라고 했다. 촬영감독이 그 장면에서 테이크를 몇 번 간지 모르겠다.
극중 맡은 덕무는 다른 인물들을 소개해주고, 연결시켜주는 교두보 역할이다. 전작들에 비해 역할 자체의 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쉽더라.
아마 친형이 제작을 하지 않았다면 출연을 고사했을 거다. 다른 인물들보다 너무 밋밋했거든. 그래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애드리브를 많이 했다.
원래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편 아닌가?
다들 그렇게 알고 있더라고. 평소에는 애드리브를 잘 안한다. 대본에 있는 대로 따르는 편이다.
이번엔 얼마나 많은 애드리브를 했기에.
처음부터 끝까지.(웃음) 횟수는 생각이 안 나지만 매 장면마다 새로운 걸 시도한 것 같다. 심지어 작가한테 뭐라고 했다니까. 다른 캐릭터들은 잘 살려주고 나한테만 왜 그랬냐고. 그랬더니 잘 살려주실 것 같아서 믿고 쓴 거라고 말하더라. 작가가 예전에 <투 가이즈> 제작부 했던 친구거든. 그러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온갖 애드리브는 다 해봤다. 그러다보니 시사회 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시나리오 보다 백번 낫다고 혼자 감탄도 하고.(웃음) 나름 만족도가 있더라.
만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했겠다.
재미있었다. 그게 다 감독님이 캐릭터에 대해서 전적으로 맡겨주신 덕분이지. 이번에 대사도 원래는 사극톤이 아니었다. 그냥 지금 현대극 톤으로 연기를 하는 설정이었다. 생각해보니 최근 사극들이 대사를 그런 방식으로 해서 오히려 사극톤으로 하는 게 더 신선해 보일 것 같았다. 다행히 감독님이 수락해서 그때부터 ‘~~소이다’라고 말했다.
시나리오는 아내에게 보여주는 편인가?
도움을 많이 받는다. 일단 아내가 시나리오를 보고 허락해야 내가 출연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영화 관계자가 나보다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더라니까.(웃음) 시나리오를 보면 일반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가장 가까운 일반인이 아내다. 그래서 매번 보여주고, 평가를 듣는다. 요즘에는 긴가민가하는 시나리오들이 너무 많아서 여과가 필요하다. 그런 부분에서 아내에게 고맙지.
읽고 말고가 어디 있나. 형이 제작하는 영화니까 잘 하라고 했다.
친형은 어떻게 제작자로 참여하게 된 건가?
한 5년 됐다. 멀쩡한 직장 놔두고 영화 제작을 하겠다고 하더라. 당시에는 가족들이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안 나오니까 다들 그만하라고 했지. 그 때 응원해준 건 나뿐이었을 거다. 그래도 올해 <미확인 동영상 : 절대클릭금지>가 개봉했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5년 만에 결실을 맺으니까 기분은 좋다. 지금 생각해보면 형이 능력자다. 5년 동안 고생 많이 했는데, 결국 영화를 만들었잖나. 아내도 형의 능력을 인정하더라.
이번 영화에서 도둑 멤버로 나오는 배우들이 많다. 이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워낙 배우들이 많이 나오잖나. 9명과 호흡을 맞춰야 하고, 때로는 그들을 돋보이게 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매번 힘들었다. 하는 수 없이 인물들을 관찰하면서 조금씩 호흡을 맞춰나갔다.
<헬로우 고스트>에서 호흡을 맞췄던 고창석과 아역 천보근 덕분에 조금은 연기하기 수월했겠다.
창석이 형하고, 보근이 없었으면 어휴~~. 두 사람에게는 개인적으로 출연 부탁을 했다. 영화를 같이 한 덕분인지 호흡이 잘 맞았지. 그리고 (송)중기도 개인적인 친분을 앞세워서 출연시켰다. 결과적으로 이 영화에서 네가 주인공이라고 하면서 꼬드겼다. 그리고 (이)문식이 형이나 (민)효린이, (이)채영씨도 비중이 그리 크지 않지만 선뜻 출연을 승낙해서 고마웠다.
<과속스캔들>부터 아역들과의 인연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네 작품을 모두 아역들과 함께 했네. 아역들은 정말 의외성이 있는 것 같다. 촬영장에서 (왕)석현이하고 연기할 때는 영화가 재미있게 나올지 몰랐다. 강형철 감독의 연출 힘이겠지만 아역들은 정말 연기를 잘한다. 보근이도 연기를 잘하지. <헬로우 고스트> 때는 내가 예상한 만큼까지만 연기를 보여줬는데, 이번에는 깜짝 놀랄 정도의 코믹연기를 보여주더라. 너무 천연덕스럽게. 실제로는 조용한 편인데, 카메라 앞에만 서면 잘 논다.
혹시 수찬이를 아역배우로 키울 생각이 있나?
아직은. 자기가 하고 싶다면 모를까. 그리고 수찬이는 아마 안할 거다. 내 실제 성격처럼 앞에 나서서 하는 걸 꺼려하는 편이거든.
예전에는 아이들이 떠들고 하면 화부터 냈는데, 이제는 나도 모르게 이해를 한다. <과속스캔들> 때는 모든 스케줄이 석현이에게 맞춰서 갔는데, 몸이 힘들고 짜증이 나도 다 이해가 되더라. 아이를 키워서 그런지 인내심이 넓어졌다고나 할까.
예전에 인터뷰마다 예능 출연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고, 이제 그 꿈이 실현됐다. 해보니 어떤가?참 적절한 타이밍에 잘 한 것 같다. 원래 <1박 2일> 보다는 (유)재석이 형하고 (김)종국이가 나오는 <런닝맨>에 출연하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1박 2일>에서 섭외가 들어왔다. 문득 의외의 사람들과 프로그램을 같이 하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했지. 만약 재석이 형하고 종국이랑 프로그램을 했다면 뻔했을 거다.
아마 거기서 또 ‘차희빈’(<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했을 당시 유재석과 김종국 사이에서 특유의 깐족거림과 이간질을 통해 얻었던 차태현의 별명)을 하고 있었겠지.
이상하게 재석이 형이나 종국이 앞에서는 그 캐릭터가 나온다. 편해서 그런 거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절친 김종국과 동시간대 라이벌이 됐다.
예능 하고나서 전화 안한다. 으하하하. 심지어 우리 프로그램 시청률이 낮으니까 기분이 상하더라고. 시청률 역전하면 바로 연락할거다.(웃음)
언제나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차태현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 때 잃었던 것과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잃었던 건 역시 인기 아니겠나. 그렇게 짧을 줄은 몰랐다. 1999년도부터 2004도까지니까 딱 5년이다. 그 때 남우주연상만 빼놓고 상이란 상은 거의 다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당시 인기를 얻으려고 발버둥 쳤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얻은 건 가족이다. 개인적으로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평범한 결혼 생활과 그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고 싶은 게 목표였는데, 다 이뤄졌다. 결혼하고 수찬이 낳고 나서 <과속스캔들>이 들어왔으니까. 결혼을 안했다면 그 역할 못했을 거다. 정말 지금 나에게 가족은 소중한 보물이다.
최근 <도둑들>로 전지현이 다시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예전 생각이 났을 법 한데.
지현이도 고생 많이 했잖나. <엽기적인 그녀>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잘 안됐으니까. 역시 사람들은 <엽기적인 그녀>의 지현이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번 영화를 보니 그 때의 모습이 나오더라. 지현이는 그 캐릭터가 가장 잘 어울리는 옷 인거다. 아무튼 지현이도, <도둑들>도 잘 됐으면 좋겠다.
<엽기적인 그녀>의 견우지. 관객들이 나에게 가장 원하는 모습은 견우인 것 같다. 나 또한 그런 역할을 잘할 자신이 있고. 주변 사람들이 <엽기적인 그녀 2>를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많이들 한다. 지현이도 나도 결혼을 했으니까 결혼 버전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엽기적인 그녀 : 그 후로 10년> 이런 거.
그렇지. 요즘 리메이크나 리부트를 많이 하니까.
최근 예능을 시작했지만, 너무 올인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다 보면 이미지가 한 쪽으로 고정되어 배우에게는 득보다 실이 더 많아질 것 같은데.
예능을 시작한 이유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하고 나서 다음에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마땅히 떠오르지 않더라. 그래서 예능에 올인 해보자라고 마음먹게 됐다. 초반 6개월간 아무것도 안하고 <1박 2일>만 참여했는데, 벌써 1년 동안 예능만 하고 있다.(웃음) 그래도 괜찮다. 지금은 배우로서 휴식기다. 어쩌면 <1박 2일>은 또 다른 나의 모습을 찾는 여정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올해 KBS 연예대상에서 오랜만에 상을 받을 수 있겠다.
기회만 된다면. 그나저나 남우주연상은 언제 받지?(웃음)
2012년 8월 10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2년 8월 10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