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30대 젊은 여성들에게 물었다.
“남자 배우, 누구 좋아하세요?”
2010년, 예상 가능한 답은 둘 중 하나였다. 강동원이거나, 원빈이거나. 먼저 강동원. <전우치>에 이어 <의형제>까지, 도합 천만이 넘는 관객이 강동원을 만났다. 강동원이면 믿을만하다는 분위기는 서사가 덜컹거렸던 <초능력자>까지 이어졌다. 다음으로 원빈. 초가을, 조각같은 외모인데다 사람마저 잘 죽이던(?) 원빈이 일약 <아저씨> 신드롬을 일으켰다. 근육을 드러낸 채 홀로 머리를 깎던 장면에 이정범 감독을 필두로 “원빈에게 고맙다”는 반응이 속출했다.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는 대사는 예능 프로그램의 단골 패러디 소재가 됐다. 적어도 <시크릿 가든> ‘김주원’이 등장하기 전까진 그랬다. 그리고 2010년 연말, 답안에 현빈이 추가됐다.
팬들을 제외한다면, ‘현빈 앓이’를 예상했던 이가 얼마나 됐을까. 분명 흥행 요소 중 하나였지만, <시크릿 가든>이 처음부터 현빈의 작품으로 갈무리될 것이라 예상됐던 건 아니었다. 그보다 <파리의 연인>의 그 김은숙 작가, 신우철 PD 콤비가 신데렐라 드라마에 다시 도전했다는데 화제가 쏠렸다. 게다가 첫 콤비작의 기록적인 성공이후 “의미 있는 작품에 도전”했다는 야심작 <시티홀>의 시청률 저하로 고민하던 흥행콤비가 남녀의 영혼이 바뀐다는 판타지 카드를 꺼내든 형국이었다. 브라운관에서의 시청률 또한 하지원이 우세했다. ‘천만 영화’ <해운대>의 대중성을 제쳐두더라도, <다모>부터 <발리에서 생긴 일>, 그리고 <황진이>까지 줄줄이 시청률과 호평,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그였다. 이를 어쩌나, 현빈은 <내 이름의 김삼순>의 ‘삼식이’, 그게 전부였다. 표면적으로, 시청률에 가장 목말랐을 이도 그가 아니었을까. 심지어 입대설도 솔솔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시크릿가든>이 터졌다. 김은숙 작가가 “한 땀 한 땀 이태리 장인이 정성껏 수놓”는 심정으로 썼다고 자평하고 싶을 <시크릿 가든>은 최고 시청률 35.2%, 평균 시청률 24.4%을 기록했다. 평일에 비해 시청률이 떨어지는 주말, 그것도 중장년층까지 흡수하기엔 무리가 따르는 로맨틱코미디와 멜로 장르로서는 대박 수준이었다. 하지만 ‘현빈 앓이’는 ‘주원 앓이’가 아니었다. ‘서변 앓이’ ‘걸오 앓이’ 등 여타 ‘앓이’들이 캐릭터에 국한되는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무엇보다 20~30대는 물론 폭넓은 여성 시청자들이 ‘까도남’ 김주원에 열광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신드롬은 불가능했을 터다. 그렇다고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 신드롬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도 아니었다. 그간 현빈은 분명 절차탁마의 시간들을 보냈다.
소신 있는 현빈씨의 행보를 지지한다
‘삼식이’ 신드롬을 <시크릿 가든>과 비교하자면, <내 이름은 김삼순>은 전적으로 김선아의 드라마였다. 현빈은 여기서 여성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까칠하고 상처 있는 재벌2세였다. 김주원과 다를 것 없지 않느냐고? 극을 주도하는 것이 김삼순이라면 <시크릿 가든>은 분명 김주원의 드라마다. 같은 작가의 <파리의 연인>이 시종일관 신데렐라 드라마의 내러티브를 충족시킨다면, <시크릿 가든>은 남녀의 영혼이 바뀐다는 판타지를 경유한 김주원의 성장드라마였다. ‘사회지도층 김주원이 어찌하여 가난한 스턴트맨 길라임과 사랑에 빠져 커 나가는 가’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여기서 로맨틱코미디로 출발한 드라마는 후반부로 갈수록 김주원과 길라임의 멜로드라마에 치중한다. 이 시기부터 극의 중심엔 현빈의 눈물이 자리한다. 17~18부에 이르러 김주원의 과거가 밝혀진 뒤, 길라임을 위해 죽음을 선택하는 김주원의 눈물은 멜로드라마에 현실성을 부여하는 현빈의 연기에 많은 것을 빚지고 있었다. 유행어가 된 ‘이태리 장인’이나 ‘사회 지도층’ 운운하는 코믹스러운 대사는 물론이요, 판타지를 포함한 드라마가 후반부 멜로로 접어들었을 때, 여성스러운 현빈의 얼굴과 눈물은 극의 몰입도를 키우는 일등공신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현실성은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삼식이’ 이후 현빈이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선택했을 때만 해도 그가 원하는 건 송승헌의 길일 거라 짐작됐다. 더욱이 <겨울연가> 윤석호 PD의 ‘계절시리즈’ <눈의 여왕>을 연이어 택했을 때만 해도 이러한 의심은 확신이 되어갔다. 안전하고 또 한류까지 바라보는 스타의 길. <내 이름은 김삼순>이 일본에서조차 신드롬을 일으켰기에 2007년까지 스타성에 초점을 둔 그의 행보는 무척이나 자연스레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는 일사천리였다. 특히 영화 쪽 활약은 도드라진다. <소름>의 윤종찬,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멋진 하루>의 이윤기. 그가 2009년부터 출연한 <나는 행복합니다> <만추>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연출자들이다. 그는 보란 듯이 저예산과 예술영화만(순제작비 70억의 <만추>는 특이한 프로젝트다)을 선택했다. 장진영을 연기자로 만들었던 윤종찬 감독은 현빈을 가난에 못 이겨 정신을 놓아버린 정신병자 만수로 만들었다. 윤종찬 감독은 시나리오를 본 현빈이 먼저 얘기를 해왔다며 작품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고 했다. 특히 현빈은 노래방에서 우는 감정신에서 실제 맥주를 마시는 열의도 보였다. 다음은 <만추>. 비록 탕웨이의 영화지만, 그가 연기한 훈은 장기수 애나에게 잠시간의 사랑을 전해주는 천사와도 같은 존재다. 현빈의 미소는 애나는 물론 여성관객들 모두에게 햇살과도 같았으리라. 그리고 이윤기 감독은 현빈과 임수정을 미니멀리즘의 공간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두 사람을 식어버린 감정을 부여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부부로 탈바꿈시켜놓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올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마지막으로 드라마 <친구, 우리들의 전설>. 곽경택 감독은 드라마판의 ‘장동건’ 동수로 현빈을 선택했다. 동수는 강인한 남성 이미지를 원하는 남자배우들에게는 판타지와도 같은 배역이다. 그리고 현빈 역시 그가 갈망하던 역할을 맡아 수컷에 배인 상처와 외로움을 무리없이 소화했다. 더욱이 연기 논란도 일지 않았다. 그런 그 ‘김태평’씨가 7일 해병대에 입대한다. 인터넷은 현빈의 기사로 연일 도배중이다.
추신, 김흥국을 위시한 연예계 해병대 선배들은 부디 멀리해주시길!
군 입대 파문이 즐비한 연예계에 현빈은 진정한 지도층 인사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그의 해병대 입대는 9시 뉴스의 메인기사로 등장했다. 선배 박중훈이 “현빈이는요, 제가 데뷔 전부터 쭉 알고 지켜봤는데요. 참 괜찮은 녀석이에요. 안타깝게도 이 동네에서는 좀 스타로 뜨고 나면 변하는 경우가 제법 있는데요. 빈이는 정말 똑같습니다. 변하질 않았어요.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사람이죠”라고 칭찬할 법한 행보다.
서두로 돌아가 보자. 군 복무 중인 강동원은 티켓파워를 입증해냈다. 게다가 강동원은 2003년 이후 TV엔 얼씬도 않고 있다. <아저씨> 이전 원빈에겐 <마더>가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는 충무로에서 인맥을 넓힐 수 있는 보증수표다. 심지어 원빈은 <태극기 휘날리며>의 진짜 ‘천만’ 배우다. 군 입대 후 직접적인 경쟁상대는 그 누구도 아니겠지만, 분명 현빈이 따라잡아야 할 상대들임에 분명하다. 1982년생, 현빈은 셋 중 막내다.
그러니 더 이상 ‘현빈 앓이’에 연연하지 말자. 그의 최고 흥행 성적은 80만을 조금 넘긴 <만추>가 이제 써 나가고 있을 뿐이다. 여타 한류스타들의 일본에서의 인기나 국제영화제에 진출한 선배들과 비교해서도 외국에서의 지명도도 한참 떨어진다. 그래서 그가 연이어 작가주의 감독들과의 작업으로 보폭을 넓힌 것은 더없이 현명했다. 그러한 선택이 있었기에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의 눈빛이 더 깊어질 수 있었으리라. 스스로 인생 좌우명이라 밝힌 “인생 뭐 있어”마냥, 2년 후에도 여전히 소신 있는 선택으로 사랑받으시길. 그런 소신만이 ‘현빈 앓이’의 신드롬을 이어나갈 수 있는 진짜 원동력이 되어줄 것이다. 추신, 김흥국을 위시한 연예계 해병대 선배들은 부디 멀리해주시고.
2011년 3월 4일 금요일 |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트)
2011년 3월 4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