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보다 수위가 세더라. 연기하면서 느꼈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 영화에 담긴 표현 수위는 예상보다 더 강하던가, 약하던가.
베드신은 베드신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보고 충격 받았다. 찍을 때는 몰랐는데, 상황으로 연결해 놓으니까 되게 야하더라. 감독님이 두 커플을 통해 의도한 게 있었다. 김혜선-김산호 커플을 통해서는 행위 자체를 많이 보여주려고 하셨다. 그래서 그 커플의 경우엔 성행위 장면이 많다. 반면, 나와 윤채이는 남녀사이의 친밀감, 연인들이 침실에서 일상적으로 어떻게 움직이는 가를 보여주고자 하셨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엔 발가벗고 음식도 먹고, 발가벗고 농담도 하는 그런 씬들이 많았다.
당신 에피소드에 공감이 간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사랑을 나눈 남녀가 언제 그랬냐는 듯, 이불로 몸을 꼭꼭 가리잖나. 현실성이 떨어지는 디테일들이었다.
맞다. 실제의 커플이라면 그러지 않지. 남녀 간의 친밀감을 보여주는 작업이 많아서, 우리 커플은 별로 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도 않더라. 일단, 윤채이씨 몸이 예쁘잖나. 나도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이 있었고. 채이가 “오빠, 우리 몸짱 커플이야”라고 하더라.(웃음)
많은 인터뷰에서 베드신을 위해 가꾼 몸에 자신감을 내비쳤는데, 화면으로 만족할만하게 나왔나?(김영호는 이 영화를 위해 몸무게를 20-30kg 감량했다.)
나는 영화를 어제, VIP 시사회 때에야 봤다. 기술 시사회 때 우리 매니저와 스태프들이 영화를 먼저 봤는데, 첫마디가 “형 몸만 남는다”였다. “어떻게 나왔길래, 몸만 남느냐?”라고 물었더니, “몸이 중세 로마 전사 같다”고 하더라.(웃음) 기자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후배들도 같은 말을 했다. “진짜, 형 몸만 남더라”고. 그래서 잔뜩 기대해서 봤는데… 몸만 남지는 않던데?
아! 당신 기대에는 못 미쳤구나.
그런 셈이지. 그리고 김혜선씨 노출에 묻혀서 내 몸 얘기는 거의 없어졌더라.(웃음)
(웃음) 당신과 윤채이 커플이 평범해 보일 정도로 김혜선-김산호 커플에 강하긴 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너무 섹시 콘셉트에 맞춰서 홍보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보고 나서 변했다. 이건, 섹시 콘셉트를 빼고는 말할 수 없는 작품이더라. 노출 신에 편중된 시선이 안타깝게 느껴졌던 <미인도>와는 다르지 않나 싶은데, 공감하나?
맞다. 이 영화는 야한 걸 빼고는 얘기 할 수 없는 영화다. <미인도>의 경우 야한 영화가 아니었다. 굉장히 잘 쓴 시나리오와 잘 만들어진 영화였는데, ‘조선에로티시즘’ 이렇게 홍보 되는 게 많이 아쉬웠지. 그에 비해 <완벽한 파트너>는 야한 걸 빼고는 얘기 할 수 없는 영화다. 다만, 김혜선씨 노출에만 너무 과다하게 집중돼서 홍보되는 건 아쉽다. 물론 나도 이 영화가 작품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완벽한 파트너>는 유쾌하고, 재미있고, 야한 영화다. 김혜선씨는 “이 가을에 재미있고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하던데, 재미있게 볼 수는 있지만 편하게는 볼 영화는 아닌 것 같고. 노출신이 워낙 강해서 말이지.(웃음) 이런 건 있다. 지금까지 영화 흥행에 한 번도 기대를 해 본 적이 없는데, 이번 영화는 관객이 많이 찾지 않을까란 기대가 있다. 상업적인 코드가 꽤 강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영화에 출연한 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의아해 하는 것 같다. 그동안 보여 온 이미지랑 달라서 놀라는 것도 같고.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시나리오 때문에 출연한 건 아니다. 사람들 때문에 선택했다. 일단 박헌수 감독, 캐스팅 디렉터 문용승 기자. 그리고 <미인도> 대표이기도 했던, 김세훈 대표. 이 세 명의 농간에 속아서 출연했다. “영호씨가 원하는 모든 걸 바꿔주겠다”고, “베드신 빼라고 하면, 다 빼주겠다”는 말을 믿고 계약서를 덜컥 쓴 거다.
그래서 베드신, 뺐나?
하나도 안 빠졌지.(좌중 폭소)
시나리오 설정상으로는 바꿔달라고 요구한 게 있나?
그건 있지. 사실 베드신은 필요한 것 같아서 내가 빼지 말라고 했다. 시나리오를 읽어 봤는데, 이건 베드신이 빠지면 안 되는 영화였다. 다음날 박헌수 감독님께 가서 그냥 가자고 했더니, 완전 고마워하는 게 아닌가. 투자자가 “김영호씨가 출연을 해 줘야만 투자를 하겠다”고 말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감독은 나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김영호씨가 빼달라고 하면 다 빼야 하는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하더라.
왜, 투자자가 당신만 찾았나. 굉장한 신임인 걸.
네임벨류 있는 배우가 벗는 영화에 출연하는 게 쉽지 않잖나. 대안이 나 밖에 없었겠지. 괜히 만만해 보이고. 또, 내 귀가 얇다는 걸 알고 있더라고. 조금만 칭찬해줘서 좋아하는 스타일이거든. 어쨌든 그렇게 출연을 하게 됐는데 코미디 부분이 문제였다. 사실, 시나리오 상에서는 코미디 부분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인물이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색깔이 달라지는데, 만약 내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모습으로 준석이라는 인물을 표현했다고 상상해 봐라. 그러면 에로만 남는 영화가 됐을 거다.
음.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색이 어떤 색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나는 진지한 편이지. (놀라며)혹시, 영화 속 모습이 내 모습 같나?
그건 아니고. 작품으로는 봐 왔지만, 평상시의 당신은 내가 잘 모르니까.
<미인도>에서의 모습이 내 모습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드라마에서도 진지한 역할을 많이 했었고. 내가 코미디를 의외로 잘 하는데, 이미지랑 성격상 잘 하지 않는다. 코미디가 가미된 연기는 <여우와 솜사탕>이라는 드라마에서 한번 한 적이 있다. 상대방의 말에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템포적인 코미디를 구사했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다. 그러다가 이번 작품을 통해서 다시 “김영호가 코미디시 되는 구나”라는 말을 듣고 있다.
다음에 코미디 시나리오가 들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안 하다!
이미지 때문인가? 작품을 선택할 때, 플랜을 짜 두는 편인가 보다.
그런 건 없다. 내가 생각이 별로 없거든.(웃음) 그냥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일단 몸이지, 몸. 20대 때는 몸을 빨리 만들 수 있잖나. 그런데, 40대가 넘으면 몸 만드는 게 10배 이상 힘들거든. 그걸 봐 준 것 같다. 성비로 보면, 여자 분들은 ‘의상’, ‘몸’ 얘기를 많이 하고, 남자들은 ‘엉덩이’ 얘기를 많이 하더라. 임창정씨도 엉덩이 얘기만 했다. “형, 엉덩이는 남자가 봐도 좋았다”고. 코미디가 재미있었다는 얘기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 때 어렵게 만든 몸은, 지금 유지하고 있는 건가?
(매니저를 향해) 나, 지금 많이 유지하고 있냐? 조금 전에 옷 갈아입을 때도 매니저에게 물어봤었거든. 그랬더니, “네. 거의 유지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그랬다.
관리에 신경 쓰나 보다.
그렇진 않고. 심하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망가지는데 시간이 걸릴 거다.(웃음) 처음보다 망가지긴 했다. <우리들의 일밤-바람에 실려> 촬영 때문에 한 달 간 미국에 있었는데, 그 기간 내내 햄버거만 먹었거든. 지금까지 살면서 먹은 햄버거 보다, 이번 미국에서 먹은 햄버거가 더 많을 거다. 미국이 굉장히 넓잖나. 광활한 대지를 10시간 넘게 달려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햄버거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배우라도 큰 스크린을 통해 자신이 연기하는 걸 보면, 민망해지는 경우도 종종 있지 않나. 이번 영화에서는 강도 높은 베드신이 많아서 더욱 그랬을 것 같은데.
내가 생각이 없는 놈 같다. 민망한 것도 별로 없고, 떨리는 것도 별로 없다. 배우가 사실 굉장히 예민한 존재거든? 그런데 예민하지도 않다. 아, 이번에 다이어트 할 때는 조금 달랐다. 아마, 이번 출연 배우 중에 내가 가장 강도 높게 다이어트를 했을 거다. 김혜선씨가 빼는데 열중했다면, 나는 빼는 것도 빼는 거지만 몸을 만드는데 열중했다. 김혜선씨가 1을 했다면 나는 10을 한 거지. 3개월간 하루에 닭 가슴살 두 쪽, 방울토마토 40알, 고구마 두 개로 버텼다. 그러다보니, 예민해지긴 하더라.
운동도 병행해야 했으니, 더 힘들었을 거다.
운동이 가장 지랄 맞았다.(좌중폭소) 빠른 시간 내에 몸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1년치 운동 분량을 3개월 동안 했다.
중고교 시절에 아마추어 헤비급 복싱 선수였다.
복싱은 지금도 하고 있다. 집에도 샌드백이 달려있고.
운동에 소질이 많은 것 같다.
운동은 소질이 아니다. 남자는 웬만하면 다 운동을 잘 하지 않나?
그래도 기본적으로 뭐.(웃음) 운동은 ‘잘 한다 못 한다'의 차이는 크게 없다. 기술을 요하는 운동이 아니면 대개는 비슷하지. 왜, 자전거 다 똑같이 타잖나. 운동을 좋아하긴 한다. 최근엔 서핑을 시작했다. 몸을 만들고 나서 서핑을 했더니, 사람들이 몰리더라. 웃통 다 벗고 쉬고 있는데, 사람들이 사진 찍어 달라 그러고. 나중엔 장사진을 이뤘다.(웃음) 폭풍주의보가 오는 날, 생애 첫 서핑을 했는데 너무 좋았다.
패트릭 스웨이지, 키아누 리스브 주연의 <폭풍속으로>가 생각나네.
아, 그 영화 되게 좋아한다. 작년까지는 격투기를 많이 했는데, 앞으로는 서핑을 많이 할 생각이다.
확실히 몸을 만들고 나면, 배우로서 자신감이 붙는 게 있겠지?
그런데 나는 100kg 이상 나갈 때도, 내 몸에 자신감이 있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성격의 변화가 별로 없다. 그러니까 배우로서는 안 맞는 성격이다. 배우는 조금 예민해야 캐릭터에 잘 접근하거든. 대신 나는 인물에 빙의는 잘 한다. 그러니까, 예민하진 않은데 몰입은 굉장히 잘 한다. 이번 영화에서 맡은 인물도 소심하고 예민한 면이 있는 친구잖나. 생각보다 그런 부분이 잘 표현된 것 같아서 만족했다.
빙의 됐다가 빠져 나오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나?
나는 잡는 성격이 아니다. (녹음기를 들며)이렇게 잡으면 내게 되지만, (내려놓으며) 놓으면 바로 내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라, 유착이 잘 안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잡는 거에 행복을 느낀다. 잡았을 때, 안았을 때, 입었을 때, 좋아하는 누군가가 내 것이 됐을 때, 이런 거에서 인간이 행복이 생기잖나. 그런데 나는 반대로 뭔가를 비워뒀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올렸다, 내렸다를 되게 잘 하는 편이다. 한번은 누가 물어보더라고. “좋아하는 여자를 쉽게 떠나보낼 수 있느냐”고. “미안한데, 그렇다”고 답했다.
아! 사랑하는 사람도?
올려놓는 건 집착이다. 그런데 보내는 것도 집착이다. 그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비는 것도 집착이다.
그럼, 집착이 아닌 건 뭔가?
집착이면서 집착이 아닌 게, 삶의 주다. 잘 담기도 하지만, 잘 비우기도 한다는 거지. 담는 것과 비우는 것은 다르지만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철학적이다.
사실은 훨씬 더 철학적인데, 더 얘기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말을 자제하는 편이다. 주위에 친한 스님들이 나에게 언어장애인이라고 한다. “영호씨가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아무도 이해를 못한다”고.
왜, 류시화씨 시집도 있잖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라는 시. 그 말이 좋은 게, 담았지만 비운 거고, 비웠지만 담았다는 점이다.
뜬금없는 질문일 수 있는데,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은 뭔가?
매 순간이 행복이다. 나에게 최선을 다 하고 있고, 진실을 다 하고 있으니까 행복한 거지. 아까 홍보팀 미선씨에게도 말했는데, 제가 뭐라고 했죠?
(홍보팀) “내일을 위해 아끼지 말고, 오늘 최선을 다해 표현하라”
당신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나?
그렇다.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그러니까 내일 다시 만나서 얘기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이 순간 아끼지 않고 다 한다. 애인이나 부모님에게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는 말, 좋아한다는 말. 내일 만나서 할 생각하지 말고,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거다.
이것도 깨달음의 하나일 텐데,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산 건 아닌데, ‘가진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가지지 않은 것이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 편해졌다. 내겐, 세 가지를 극복하면 멋진 남자가 될 수 있다는 잣대가 있었다. ‘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를!’, ‘명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를!’, 그리고 그거보다 58,975배는 더 힘든 ‘여자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를!’ 그런데 그게 미친 짓이었다. 돈의 유혹에 흔들려야 하고, 명예에 흔들려야 인간이고. 여자의 유혹은 정말 즐겨야 하고. 내가 미친 짓이었지. 내가 원효대사도 아니고. 그래서 그 다음에 알았어요. 가지지도 않고! 주지도 하고! 그리고 가지고 있고! 주기도 하고! 이것이 하나라는 것을! 만 가지를 깨우치면 하나밖에 모르는 거고, 하나를 깨우치면 만 가지를 깨우친다는 걸 알았죠.
계기가 있었나?
삶이 그랬다. 혼자 고독을 되게 즐겼다. 고독한 순간, 오는 그 엔돌핀이 약간 변태 같다. 고독이 엄습해올 때, 몸에서 느끼는 전율은 정말 엄청나다. 고독하고, 나른하고. 그리고 고독한 순간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리가 없어지면서, 듣지 못하던 소리들이 들린다. 흡사 영혼의 소리 같다.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다. 본인이 고독에 빠져 행복을 느낄 때, 당신 주위의 누군가는 불행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건 생각 안 해 봤다. 그냥 고독에 집중한다. 그 순간 느껴지는 그 엄청난 정적이, 또 다른 형태의 세상을 보여준다. 4차원 세상, 5차원 세상. 6차원 세상… 거기에 있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멈칫하며) 아~ 이거 계속 이상해지는데.(좌중 폭소) 그땐, 영혼의 세계에서 떠돌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썼던 시 중에 그런 게 있다. ‘문득 내 옆에 바람이 스치면, 그건 나를 좋아했던 사람들의 영혼이라고 생각해’라는 문구. 누군가가 나를 그리워 할 때, 그것이 바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황은 별로 없다. 이런 인터뷰가 아니면 사람을 거의 안 만나거든. 이게 ‘피해갈 수 없으면 즐겨라’다. 인터뷰는 사실 힘들다. 생각을 별로 안 하고 사는 사람인데, 물어보면 자꾸 뭔가를 끄집어내야 하잖나. 숨겨놨던 내 안의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말이다. 그런데 이 언어가 당신처럼 재밌어 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이상한 언어다. 지금 수위를 자꾸 누르고 있는데, 이 얘기를 평범한 사람들과 하면, “저거 미친 놈 아니야? 무슨 영혼의 소리 하고 있어?” 이럴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런 모습은 잘 안 보여준다.
이런 식의 대화를 마음 터놓고 하는 친구가 있나?
없다. 내 얘기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더 나가면 선문답이 나오니까. 선문답 하나를 설명하다보면, 4시간이 훌쩍 넘어버린다.
집안에서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하나?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이다.
가족과 있으면 그냥 평범한 가장이된다. 가족들에게 괜히 어려운 말 던질 필요는 없잖나. 그래서 늘 고독한 거다.
애매하다. 본인을 솔직하게 내놓고 산다고 봐야 하는지, 숨기고 살고 있다고 봐야 하는지.
완벽하게 내놓고 살고 있는 거지. 완벽하게 내 놓고 사는데, 진짜 나는 얘기하지 않는 거다. 혼란을 주니까. 나에 대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믿는 만큼만 보여준다. 가령 “괜찮겠어, 이 얘기?”라고 묻고, “네” 하면 그때 얘기 해 준다. 그런데 얘기가 더 깊게 나가면 나중에 힘들어 하더라고(웃음). 그런 적이 몇 번 있다. 정말 재미있게 듣길래, 계속 얘기해 줬다가 나중에 큰일 났다.
이 대화, 나는 너무 재밌는데?
그러면 여기서 멈춰야 한다.(좌중폭소)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을 보면, 여성들로부터 구애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런데, 본인이 섹시하다고 생각하나?
섹시하다고는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데, 어제 엉덩이를 보고 섹시하다고 느꼈다.(웃음) ‘내가 많이 오리궁뎅이구나’, 싶었지. 예전에는 오리궁뎅이가 인기가 없었는데, 요새는 좋아들 한다고 하더라. 탐스럽다고.(웃음)
여자들 중엔 남자 엉덩이에 집착하는 경우가 꽤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 그런데 내가 얼굴은 전혀 아니라서. 얼굴은 건달에 가깝잖나.
그렇지도 않은 게, 예술가 역할을 유독 많이 해왔다. <밤과 낮>에서 화가, <여덟 번의 감정>의 큐레이터, 이번에는 작가다. <황진이>에서는 아예 김홍도를 연기했고. 실제로도 당신 안에 예술가 기질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사진전을 열었었고, 영화 연출을 준비 중이고, 시집 출간도 앞두고 있고. 그림도 그렸었다고.
요즘 사람들이 나를 보고 혼란을 많이 느낀다. 얼굴하고 몸하고 상반된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고. <밤과 낮>으로 유럽에 갔을 때, 유럽에 있는 기자들도 물어보더라. “화가 팔뚝이 어찌 그리 두껍냐”고. 그래서 내가 “무거운 캔버스를 옮기다 보면, 팔뚝이 두꺼워지고 그런다” 했더니, 거의 뒤집어 지더라. 유럽 사람들은 웃는 거에 되게 익숙하다. 그래서 인터뷰하는 게 되게 즐거웠다. 그리고 카메라를 되게 단순하게 찍더라. 카메라 앞에서 뭔가 포즈를 잡았더니, 사진기자가 난감해 하는 거다. 이유를 물었더니, 배우가 뭔가 포즈를 취하면 돈을 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더라. 배우의 상품인데, 그런 걸 너무 많이 보여주면 부담스럽다고.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서 정확하게 푸시를 주는 거지. 그래서 그 때 인터뷰를 100개 정도 했는데, 자세가 다 똑같았다. 차렷 자세.
부모님이 알게 모르게 유전자를 주셨겠지. 나는 불안정한 존재인데, 불안정하지 않은 사람이다. 흔들리는 사람인데, 꽤 많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고. 그러니까, 날씨에 흔들리지 않고, 조울증에 걸린 것처럼 아침 저녁 바뀌지 않고, 사람에게 크게 영향 받지 않는다. 아마, 영혼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33살에 내 영혼은 이미 죽었다. 33살에 그 때까지 가지고 있던 영혼을 보내버렸거든. 그러니까 지금은 어차피 죽었다고 생각하며 산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잠시 빌려 쓰면서 사는 거지.
당신이 보낸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글쎄. 누군가에게 유착되지는 못했을 거다. 너무 강해서.
<완벽한 파트너> 속 인물들은 모두 ‘창조력의 근원은 연애’라고 말한다. 실제 김영호는 어떤가? 시를 쓰거나, 시나리오를 준비할 때 어디에서 영감을 받나.
머리를 비웠을 때 가장 많이 얻는 것 같다. 생각이 없으면 다른 사람이 들어오잖나. 나도 외 사랑을 하거든. 그러면 그 영혼을 당겨다가 내 안에서 같이 사는 거지.
이거, 위험 발언 아닌가? 부인이 알면!
괜찮다. 집사람은 내가 이런 상태인지 잘 모른다. 집에서는 안 보여 주니까.
보여 줘 볼 생각은 안 하나?
몇 번 보여줬다. 결혼 초에. 그랬더니, 헤어지고 싶어 하더라고.(웃음)
외람된 질문일 수 있는데, 배우자는 평생을 같이 할 사람이잖나. 그런 사람에게 숨기면 답답하지 않나.일부러 숨기는 건 아니다. 감각적으로 그렇게 된 거다. 그리고 떨어져 지낸 시간이 꽤 돼서, 괜찮다. 아내와 아이들이 외국에 가 있거든. 지금 5년째 떨어져 살고 있다. 그래서 최근엔 내가 가장 행복하지.(좌중폭소) 아! 아내도 안다. 오빠가 가장 행복해 하는 것 같다고, 말하거든.
서운해 하진 않나?
이렇게 지내는 게, 나한테 맞다고 하더라. 내가 가지고 있는 영혼의 기운이 너무 세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정을 한 것 같다. 그리고 정말 떨어져 있는 바람에 최근 작품 활동을 굉장히 많이 한다.
그렇다면 당신보다 기가 더 세다고 느끼는 사람은 누군가?
그런 개념은 잘 모르겠다. 특별히 없는 것 같은데.
전혀. 오히려 여자가 나에게 다가오는 스타일이다. 앞으로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까지는 그랬다. 내가 진지한 얘기 잘 하고, 노래 좋아하고, 사랑 얘기도 잘 하는데, 사랑 표현은 하찮다고 생각하는 게 조금 있다. 그래서 잘 안 하게 되고. 그리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전에 여자들이 먼저 표현해주니까, 굳이 내가 할 필요도 못 느낀다.
사랑을 많이 받아서, 행복한가?
영감은 되지. 에너지를 받으니까. 어리고 예쁜 친구들이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에너지가 되고, 창작력이 된다.
아까, 앞으로는 잘 모르겠다고 한 이유는?
앞으로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언젠가는 표현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은 한다. 그런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들지만.
어떤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지.
여자에겐 다 매력을 느끼는데, 일단 밝은 여자, 잘 웃는 여자.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 때문에 고민할 일이 생기면 다시 만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만났을 때 유쾌하고 밝은 여자는 다시 만나고 싶고 다시 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좋다고 말하는 여자에게도 매력을 느낀다. "선배님이 참 좋아요" 해 주면 다 좋다. 키가 작든 키든. 나는 나 좋다는 사람은 철저하게 내 편으로 본다.
혼자 있을 땐 뭐 하나?
게임하는데 2-3시간 쓴다. 피아노도 치고. 피아노 치면 사람들이 또 다 웃더라. 내가 슬랩스틱 코미디 한다고. 그런데 꽤 잘 친다. 또 기타도 치고, 노래도 하고, 글도 쓰고, 되게 바쁘다.
최근 <바람에 실려>에서 불렀던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이 굉장히 큰 인기를 끌었다. 다들 당신이 노래 부르는걸 의아해 하는데, 사실 시작은 연기보다 노래가 먼저다. 강변가요제 출신이기도 하고. 그 때 가수로서 성공했다면 지금 배우 김영호가 아닌, 가수 김영호였을까?
생각 안 해 봤는데, 그 삶도 괜찮았을 것 같다.
고정 예능을 처음인데, 어떤가?
힘들다. 특히 인터뷰를 계속 해야 하는 게 힘들다. 계속 뭔가를 물어보는데, 사실 말하기 싫거든. 내가 1대 1로 만날 때는 대화를 잘 하는데, 세 사람만 되면 말을 한 마디도 안 하는 스타일이다. 거기는 세 사람 이상이어서 말을 안 했더니, “예능 나와서 말은 안 하고 왜 자꾸 카메라만 찍고 다니냐”고 한 소리 듣고. 그게 조금 힘들었다.
부추기는 거 아니다. 상당히 심각했었다. 그런데 나는 안 심각했고, 재범이 형만 심각한 거였다.(웃음) 지금은 잘 지낸다.
아까 기 얘기를 잠깐 했는데, 임재범씨도 사람을 빨아들이는 뭔가가 있는 사람이다.
있지. 어마어마하게 있지. 그런데, 강하다는 느낌은 안 든다. 나는 그냥 편하게 생각한다. 어느 인터뷰에서도 얘기 했는데, 재범 형은 순수하고 착하고, 여린 사람이다. 물론, 노래 부를 때의 카리스마는 최고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보이스 칼라를 가기고 있다. ‘데스페라도(desperado)’를 부를 때는, 와우~ 정말 빙의되는 줄 알았다. 심장을 긁는 소리가. 영혼의 소리가 막 나오는데 그 감동이 대단하다. 너무 노래를 잘 해서 나에게는 예쁜 여자, 사랑스러운 여자 같다.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 중인 걸로 알고 있다.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고 들었는데, 덕분에 이번 영화에 시나리오 작가로 나오는 주인공이 더 이해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해됐지. 시나리오를 잘 쓰려면 사랑이 필요하다. 영감이 필요하고, 잘 웃는 여자가 필요하고, 옆에서 힘을 주는 여자가 필요하다. 그게 에너지니까. 아마데우스도 그랬잖나. 세계적인 음악가인 그도 여자가 옆에서 “당신은 최고야” 라고 말했을 때 에너지가 생겨서 음악을 만들었다. 바보 같은 짓인지는 알지만 나에게도 옆에서 “네 말이 다 맞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래서 <완벽한 파트너>가 100% 이해 됐지.
준비 중인 영화 촬영은 언제쯤 들어가나?
원래는 내년 4월을 계획했는데, 3월에 영화 출연을 하나 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3월부터 4월 말까지 영화를 끝내고 5-6월에 찍을까, 8-9월을 찍을까 하고 있다. 그때까지는 12월부터 방영되는 드라마 <인수대비>에 열중해야지.
김영호 인생의 ‘완벽한 파트너’는 누구인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는 말이지만.
(매니저를 바라보며)내 파트너는 매니저 상길이? 완벽하진 않지만! 많이 모자라지만!(웃음) 현재로서는 가장 완벽한 파트너다. 그런데 파트너는 매 순간 바뀔 거다. 나도 모르게 외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이 파트너가 될 테고, 누군가 잘 맞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이 파트너가 될 테고. 지금은 당신이 아닐까?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집중하고 있으니까. 오늘 100% 집중했다.
2011년 11월 18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1년 11월 18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