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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그늘에서 (오락성 6 작품성 6)
여덟 번의 감정 |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충무로에서 홍상수라는 이름은 이제 하나의 브랜드로 안착한 느낌이다. 언제부터 홍상수 없는 홍상수 느낌의 영화들이 이리도 많아진 걸까. ‘홍상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식의 수식어를 받는 영화는 그나마 애교수준. 대놓고 ‘제2의 홍상수’라 말하는 감독의 영화가 보이고, ‘홍상수 스타일’을 표방한 작품도 눈에 띈다. 그리고 이 영화 <여덟 번의 감정>처럼 ‘여자 홍상수’라는 감독의 닉네임을 홍보 마케팅으로 사용한 영화도 있다. 나쁜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홍상수가 지닌 독특한 미학적 스타일이 보다 다양하게 변주된다는 건,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나쁘지 않으니 말이다. 문제는 그것이 별다른 변형 없이 그대로 되풀이 될 때다. 나아가 그것이 몰개성한 영화를 양산하게 될 때다. 홍상수의 영화와 견주어 봤을 때, <여덟 번의 감정>은 아쉬움을 남기는 영화다. 오히려 영화가 빛나는 부분은 그 대척점에서다. 아이러니 하게도 영화는 홍상수의 자장에서 벗어났을 때, 훨씬 위트 있고 인상적인 장면을 여럿 보여준다.

남자들은 종종 말한다. 다 잡은 물고기에게 먹이 주는 거 봤어? 물으나마나 물고기는 여자. 그 물고기를 건지려고 ‘정성’이라는 미끼를 던지는 낚시꾼은 남자다. 아, 정정하자. 잡기 전의 물고기는 여자가 확실하지만, 잡은 후의 물고기는 가끔 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심드렁한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랑 앞에 변덕스러운 남성들의 연애심리를 통해 사랑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는 사람의 마음은 인간의 본능임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성지혜 감독은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생성되고 변화, 소멸하는지를 주인공 종훈(김영호)을 통해 추적한다.

종훈은 자칭 타칭 지식인이라 자부하는 갤러리 큐레이터다. 그림 하나에도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재능을 지닌 이 남자는 유명 화가 출신인 전 화백(명계남)의 전시를 위해 부산에 갔다가 오래전 알고 지내던 은주(윤주희)를 만난다. 새하얀 간호사복을 입고 반겨 주는 그녀는 종훈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물고기다. 소유욕이 불탄다. 새로운 게 탐난다. 공략해서 덥썩 문다. 이내 오랫동안 곁에 있던 물고기인 여자 친구 선영(황인영)은 버려진다. 그렇게 종훈은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장거리 여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지? 내 것이 아닐 때는 그토록 곁에 두고 싶던 은주에 대한 감정이 서서히 식어간다. 내 손에 없는 물고기가 더 맛있어 보인다.

종훈은 영화 곳곳에서 홍상수의 남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속물적인 유전자를 여러 번 드러낸다. 자기가 차버린 전 여자 친구를 찾아가 진상 아닌 진상을 떨기도 하고, 여자 앞에 잘난 척 하다가 이내 유치한 질투심을 들키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유전자가 일상에 숨겨진 절묘한 페이소스까지 전하지는 못한다. 단지 웃길 뿐이다. 홍상수 영화에서 만날 수 있는 키득거림과는 명확히 다른, 단선적인 웃음에 그친다는 얘기다. 이는 인물들의 감정을 충분히 쌓아올리지 못한 탓이 크다. 특히 주인공을 둘러싼 여자들의 감정선을 빈약하게 내버려 둔 건, 패착이다. 입체감이 명확하게 살지 못한 여성 캐릭터들은 종훈의 캐릭터마저 희미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주목해야 한다면, 몇몇 부분에서 발견되는 통통 튀는 설정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홍상수스럽지 않은 부분들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섬나라 피지로 떠난 주인공 남녀의 신혼 여행기를 ‘동물의 왕국’ 형식(실제 동물의 왕국 성우가 내레이션을 맡았다.)으로 담아낸 씬이 그렇다. 두 남녀의 균열을 ‘동물의 왕국’ 속 야생 동물에 빗대 독창적으로 풀어낸 건, ‘여자 홍상수’가 아닌 ‘ 성지혜’ 만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이러한 그만의 독창성이 조금 더 발휘됐으면 어땠을까.

2010년 9월 24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실제 동물의 왕국 성우가 전하는 재치 넘치는 내레이션! 독특하다.
-김영호가 이토록 매력 있었던가!
-저예산 영화라는 걸, 감안하면 기특하다
-홍상수의 그늘이 느껴지는 게, 이 영화에게는 오히려 독.
-김영호에게 많이 밀리는 여성 캐릭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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