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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둔 그릇을 채워나가다. <가면> 김강우
2007년 12월 28일 금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살이 잘 빠지는 편 아닌가?
놀면 금방 찐다.

예민한 성격처럼 보인다.
맞다. 예민해서 일을 하거나 신경을 많이 쓰면 살이 금방 빠진다.

우여곡절 끝에 출연작들이 개봉됐다. 올해 초중반엔 조급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생각은 안 가졌다. 만약 내가 생각하기에 작품의 질이 떨어지거나 메리트가 없어서 개봉이 연기됐다면 불안했었을 텐데, 그런 건 없었기 때문에.

올해 개봉한 작품들은 사실 하나같이 개봉이 미뤄진 작품들이었다.
작년에 찍었거나 찍기 시작했던 영화가 다 올해 개봉을 했는데, 글쎄, 뭐 그건 내가 의도했던 것도 아니니까. (웃음) 작년부터 올해까지 영화 시장이 힘들었던 것도 있고, 그래서 개봉이 미뤄진 탓이 큰 거지.

<식객>같은 경우는 원작에 대한 기대도 어느 정도 있었을 거라 짐작되고, <타짜>의 흥행을 지켜본 입장에서도 어떤 예감이 있었을 법하다. 나름대로 기대될만한 작품의 개봉이 미뤄진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나?
아무래도 인지도가 있는 작품이다 보니, 우리가 어떤 노력을 더한다고 해도 한편으론 부담이 있더라. 원작이 워낙 많이 팔렸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일간지에 연재까지 됐던 만화이기 때문에 기대되는 한편으론 부담감이 생기지. 기존에 작품을 좋아했던 팬이 많은데 우리가 그에 대한 기대치만큼 할 수 있을까라는 부담감. 그리고 우리가 <식객>을 찍기엔 다소 적게 느껴지는 예산을 가지고 촬영에 들어갔기 때문에 보여지는 면들이 좀 미흡하지 않을까라는 나름대로의 고민들은 있었다.

결과적으로 흥행이 됐다. 더욱 기쁜 일이 된 셈이다.
흥행하면 당연히 배우들은 기분 좋다.

앞서 올해 개봉한 두 편의 영화들이 나름의 보답을 해준 것 같다. <경의선>으로 토리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식객>은 흥행배우의 타이틀을 줬으니까.
찍을 때 마음고생을 했던 작품들이 보답해준 것 같다. 물론 흥행이나 수상 같은 건 내가 노력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어쩌면 적은 예산 때문에 주목 받지 못할 수 있었던 영화나 저 예산 영화였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했던 것도 있는 것 같고.

예전에 인터뷰했던 기사에서 언제쯤 기회가 오는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답변을 봤다. 올해 그 기회가 왔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식객>에 캐스팅될 때도 난 아무것도 없었다. 메인으로 주인공을 맡았던 것도 전작인 <경의선>밖에 없었고, <가면>도 <식객>촬영 중에 캐스팅됐으니까 어떻게 보면 아무 것도 없는 나를 써줬다는 자체부터 운이 좋았던 거다. 그게 나한테 기회였을 수도 있고. 그렇지만 한편으로 그래도 지금까지 뭔가를 해왔기 때문에 내가 노력해서 잡은 기회일 수도 있겠지. 그냥 해나가는 과정 안에서 언젠가는 (기회가) 올 거란 생각을 하긴 했는데……글쎄, 잘 모르겠다. 이게 그 기회인지. 물론 나를 더 극대화시켜 줄 수 있는 기회인 건 맞는 것 같다.

데뷔작이었던 <해안선>을 비롯해서 차기작이었던 <실미도>까지 초기 출연작 두 편이 군대와 관련된 영화였다.
내가 아무것도 없는 신인배우로서 영화를 고를 단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 두 작품이 공개 오디션이란 기회를 통해서 할 수 있는 작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신인 배우들을 공개 오디션으로 뽑는 영화이기에 나한테는 그나마 기회가 있는 거였다. 처음 두 작품 이후로 하게 된 드라마 <나는 달린다>도 그런 식이었다. 보통 드라마는 신인들의 공개 오디션을 보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달린다>는 신인이건 기존 배우건 망라하고 그냥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실력으로 캐스팅하는 특별한 경우였다.

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되는 신분이고, 동시에 자신의 결정권이 없다. 이는 자신의 정체성이 원숙하게 자리잡지 못한 청년의 과도기와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경의선>이전까지는 위태로운 청년의 내면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했다. 아마도 초반에 출연했던 작품들의 영향력이 아닐까 싶더라.
우연히 하게 된 <나는 달린다>의 이미지가 굉장히 독특했던 것도 있었다. 치기 어리지만 자기 의지대로 가는,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듯한. 그 이후로 <태풍 태양>도 그랬고, 그런 이미지들이 쌓여오게 되더라.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서른이란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이는 느낌이다. 물론 동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웃음) 캐릭터를 통해 드러낸 이미지의 응축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이를 먹어도 눈동자는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특히 남자배우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기도 한데, 소년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어야 나이를 먹었어도 예전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려고 노력한다. 사람은 모든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는 감정 표현을 가장 잘 한다. 그런데 교육 과정과 사회 생활을 거치면서 감정을 하나씩 없애버리게 되고 점점 나이 들면서 감정은 단순해져 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난 그 느낌만큼은 버리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캐릭터들이 청년기의 불안함이었다면 <가면>의 조경윤이 지닌 불안함은 어른의 것이었던 것 같다. 이전의 캐릭터들은 자신에게 다가온 불안을 충돌로서 극복했지만 조경윤은 도피하려고 했으니까. 그 불안으로부터 달아나서 안주해버리려는 태도는 어른의 습성에 가깝다고 본다. 그래서 조경윤은 지금까지의 캐릭터 중 어른에 가장 가깝게 느껴지더라.
내 생각에도 <가면>이라는 영화가 나한테 주는 의미는 나에게 소년과 청년의 중간 사이에서 성년으로 뛰어넘는 과정이다 싶었다. 또한 그 역할을 하게 된 것 같았고. <식객>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까지 내 이미지에 풋풋한 모습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가면>을 통해 그에 반(反)하는 이미지를 가하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얻을 수 있을 거다. 나 역시도 그걸 어느 정도 염두에 뒀으니까.

그 동안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표정을 토대로 연기한다는 느낌이었다면 <가면>은 새로운 표정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가면>이 스릴러 장르라서 힘들었다. 일단 그렇게 느꼈다면 내겐 성공인 것 같다. 왜냐면 캐릭터 자체가 어떤 과거를 숨기고 있기 때문에 현재에 지니고 있는 어떤 생각을 눈을 통해서 얘기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가면>이전의 영화들은 다른 상대 배역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는 것이었다면, 조경윤은 내 스스로의 눈으로 모든 걸 말해야 되는 캐릭터라서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그러한 것들이 읽히게끔 만들어야 했다. 동시에 오히려 그걸 어느 정도 숨기기도 해야 했고. 그런 것들이 제일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가면>의 엔딩은 출연작 중 <실미도>와 함께 가장 극단적이었다.
속이 후련했다. 왜냐면 조경윤이란 캐릭터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운명에 이끌려서 그로부터 빠져 나오려고 하지만 결국은 그 상황으로 다시 가서 자기 의지로 풀어버리니까. 어떻게 보면 <태풍태양>과도 비슷하게 뛰어들지만 그건 결국 도피였다. 결국 모기라는 아이는 결말을 짓지 못한 거다. 그게 바로 청춘, 청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할 수 있고,
내 스스로에게도. 하지만 <가면>은 다른 이상향을 찾아서 결말을 지어버린다. 이젠 자기 의지대로 삶과 죽음을 가를 수 있을 정도가 됐다는 거지. 그냥 내 개인적으로도. 물론 그것도 운명일 수 있지만 마지막에 악셀을 당기는 건 자기 의지였다고 생각한다.

상황만으로 보면 언해피엔딩이지만 인물들의 뉘앙스는 해피엔딩처럼 보였다.
둘은 행복한 거지.

어쩌면 지금까지 출연작 중 가장 절절하면서도 유일한 로맨스 영화 아니었을까?
맞다.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조금 특별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라는 점이다. 둘은 그렇게 손가락질 받지 않는 세상으로 떠나는 거지. 둘만 있으면 그게 남자건 여자건 뭐가 중요하겠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가는데.

하지만 그게 너무 특별한 사랑이라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이야기를 접했을 때도 본인에게도 어떤 당혹감은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올해로 서른이니까 아직 나이가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대한민국의 남자로서 쌓인 고정관념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조금 충격 받긴 했다. 배우는 ‘내가 만일’이라는 개념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는데 절대로 이해가 안가는 경우가 있으니까 고민하게 됐고, 그 지점에 대해서 감독님과도 제일 많이 얘기했다.

결과적으로 작품을 선택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뭐였나?
하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이건 새로운 소재이고 내가 연기할 새로운 꺼리가 있는 캐릭터란 생각이 들었다.

그 전에 본인을 납득시키는 과정도 필요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되겠더라. 남자, 여자라는 성별을 떠나서 본능적으로 끌리는, 인생 단 한번의 대상인 거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매몰차게 버리고 갔더라도 나이를 먹고 다시 우연히 만났을 때, 상황이 바뀐 것에도 불구하고 다시 끌리는 거지. 그래서 본능적으로 끌리는 운명에 따라가게 됐지만 또 그 안에서 자신의 의지를 찾아간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도 결국 자기도 모르던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다. 그리고 그걸 감추려고 더 남성적인 직업인 형사를 택하게 됐고, 마초적으로 살아갔던 게 결국은 이중적인 모습인 거다. 그리고 그게 비로소 조경윤의 가면이라는 거지.

그런 과정이 본인에게 극복이었나, 포용이었나?
도전의 대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는 내가 가지고 있던 모습 중에서 하나를 꺼내 부풀려놓은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가면>은 나한테, 어떤 남자도 대부분 지니지 못한 요소를 만들어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도전의 대상이고, 처음에는 두려웠었다.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그런데 그만큼 성취감도 있었다. <식객>같은 경우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나한테 기대하는 이미지에서 플러스 마이너스였을 뿐이지만 <가면>은 지금까지 해왔던 그런 이미지와는 정반대로 가는 거니까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더라. 이걸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하나, 내가 잘 해내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이런 두려움이 셌지.
캐릭터의 이중성에 염두를 뒀을 것 같다. 이전까지의 캐릭터들은 직설적으로 자신을 숨김없이 드러낸 것에 비해 조경윤은 자신을 감춘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그게 어른들인 거 같다. 연령이 낮은 친구들, 어린 친구들은 자신을 솔직 담백하게 드러낸다. 흔히 대표적인 예로 정치인들만 봐도 너무 이중적이지 않나. 그건 정치인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사회 생활을 겪은 모든 성인들이 결국은 그렇게 이중적으로 변해갈 수 밖에 없는 거 같다. 자기의 약점들을 감추려고 들기 때문에 그에 반하는 겉모습으로 드러내는 거지. 그래서 센 척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약한 것처럼. 조경윤도 마찬가지다. 그도 성인인 거지. 그렇지만 본연의 순수함이 남아있었던 거다.

그런 의미에서 <경의선>의 만수는 청년에서 성인으로 가는 길목 같은 느낌이었다.
그럴 수도 있다. 왜냐면 자기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까. 모기까지만 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는 것뿐이지, 그걸 생계수단으로 이용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와 자꾸 부딪히게 되는데 만수는 악몽을 꾸면서까지 생계 수단에 담근 발을 빼지 못한다. 결국 거기서부터 시작된 거다. 그리고 난 <식객>의 성찬도 초반에서 후반으로 가는 동안 완벽한 성인으로 성장했다라고 가정하고 싶다. 결국은 자기의 목표를 이룬 거고, 새롭게 꿈을 실현한 거니까. 그러나 그전의 모기는 그렇지 못했다.

조경윤은 다른 의미에서도 이중적이다. 평소엔 껄렁껄렁하게 곧잘 장난도 치다가 내면적인 혼란 속에서 진지함도 엿보이고.
나 역시도 그렇다. 사실 모두 다 그런 면들이 있지 않나? 양아치 같은 모습도, (웃음) 진짜 한없이 진지해질 때도.

아웃사이더의 느낌이 드는 캐릭터가 많았다. 그게 어쩌면 본인의 것이란 생각도 든다.
그게 내 성향인 거 같다. 주류를 좋아하지 않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그런 성향. 솔직히 잘 하고 싶다, 나도.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이 보여지나 보다.

뭔가 밖으로 드러내는 걸 많이 꺼려하나 보다.
난 남들이 내 사생활을 알거나 나에 대해서 알려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우리 가족들한테도 나에 대해서 속속들이 얘기하지 않는다. 한 2~30년쯤 후,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모르거나 관심 없어도 상관없다. 다만 내가 원하는 건 캐릭터로서 남는 거다. 물론 내가 만약 그때까지 스무 편의 영화를 했다면 스무 편의 영화를 다 본 관객은 별로 없겠지. 많아야 세네 편일 텐데, 그 영화 속의 이미지가 각자에게 남는 이미지였으면 됐다. <식객>의 성찬이 각자의 머릿속에 남아준다면 그건 배우로서 정말 해피한 삶이 될 거다.

베드씬 같은 경우도 처음이었다. 긴장되지 않던가?
긴장되지. 사람이 가장 민망한 게 자기 알몸을 보여주는 순간인데. 배우들이 연기의 일부분이라고 얘기했을 때, 이해하지 못했는데 많이 수긍하게 됐다. 물론 중요하지 않은 상황에 베드씬이 들어간다면 그건 얘기를 해봐야겠지만 <가면>에서 베드씬은 초반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이건 당연히 가야 하는 씬이니까 긴장은 됐지만 수긍하게 됐지.

기자시사 이후, 포털 사이트에서 <가면>을 검색해보면 그 베드씬에 관한 기사로 도배가 되어있더라.
좀 부담스럽다. 하지만 <가면>은 참 홍보하기 애매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기자 분들한테도 숨겨야 할 부분이 많고, 일반 관객에게도 공개를 감춰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건 그냥 반사적으로 다른 걸 찾게 된 상황에서 베드씬이라는 게 튀어나온 거 같다. 그래서 그거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두진 않겠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나름대로 본인과 잘 어울렸던 건 기존에 자신의 이미지를 특별하게 각인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나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가 없다는 게 좋고,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 만약에 내가 대중들에게 많은 노출이 되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고정적인 이미지가 생겼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배우가 관객들에게 캐릭터에 대한 이입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관객이 영화를 보러 온다면 날 보러 오는 관객은 소수다. 결국은 영화 속의 캐릭터를 보러 오는 건데, 내 대중적인 이미지로 인해서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면 그건 분명 그 배우의 책임이라고 본다. 난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면을 많이 드러내긴 싫다. 어떻게 보면 저만의 전략이지.

그런 면에 있어서 같은 소속사(나무 액터스)에 속한 김태희 같은 배우가 반대의 케이스로 느껴진다. CF를 통해 쌓아온 스타 이미지가 작품 내의 캐릭터적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 몰입도에 있어서 떨어지는 부분들이 분명 존재하는 거다. 그건 본인도 굉장히 속상할 거다.

사실 <가면>은 불쾌한 영화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건 영화의 적나라한 태도 때문일 수도 있고 어떤 혐오감을 드러내는 시선을 배치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결국 그것을
인식하는 관객의 무의식적인 고정관념을 자극하는 탓일 수도 있다.

어떤 사실이 분명히 있는데 모두가 그것을 소외시하고, 꺼내지 마, 덮어, 들추지 마, 하는 것이 있다. 분명 우리나라에서도 백년 전이나 이백년 전에 존재했던 사실이다. 예전에 발견된 오래된 화첩에도 동성애가 묘사된 그림이 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신문에서 봤다. 하지만 유교 문화에서는 더더욱 터부시됐겠지. 외국은 그런 성향을 공개하는 것에 대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는 정도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초기 단계인 것 같다. 하지만 난 이런 문제는 우리보다 어린 세대들이 봤을 땐, 별거 아니라고 느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이걸 받아들일까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해가 지날수록, '이게 뭐가 세?' 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더 무서운 것 아닐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

<가면>은 현재 우리 사회가 소수의 취향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시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자기들과 다른, 평범하지 않은 특별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씹히기 좋은 가십거리가 분명히 된다. 게다가 성경의 기독교 사상에도 그에 대해서 죄를 치러야 된다고 명시되어 있고, 더군다나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했던 우리나라는 더더욱 그렇겠지. 물론 그에 대해서는 나도 확실히 말하긴 힘들다. 외국은 지금 동성결혼을 허용하느냐, 마느냐까지 발전이 됐지만 나도 역시 대한민국 남자고, 30년이란 세월을 그 틀에서 살다 보니까 그걸 깨는 게 쉽진 않을 것 같다.

데뷔 초기에 인터뷰했던 내용들을 보면 자신만만한 포부가 많이 드러났던 것 같다. 아마도 그건 그만큼 긴장이 돼서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간 게 아니었나 싶더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자신감밖에 없었던 거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그거라도 없으면 나의 장점이 뭐라고 말할 게 아무 것도 없는 거다. 그러면 주문처럼 외우는 거지. 촬영이 들어가면 나는 최고다라는 주문을 외우는 거다. 그 기사를 보면서도 자신감을 되찾는 거지. 지금도 그 때 마음 그대로 똑같다. 지금 내가 연기가 나아져봤자 얼마나 나아졌겠어. 그냥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다시 도전하게 되는 거지. 그래, 할 수 있어, 이렇게. 나한테 모두 다 없는 면들이거나 있는 면들일 수도 있다. 다만 자신감이 없다면 내가 몰랐던 그런 면들을 꺼내놓지 못한다. 일종의 주문이지. 나에 대한 주문.

결국은 그것들이 자신을 위한 기록이 되는 셈이다. 마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일기장 같은.
난 인터뷰는 최대한 솔직하게 하려 한다. 가끔 어떤 분들은 자신을 꾸민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사실 그래 봤자 아무 소용없다. 그냥 인터뷰는 그 당시 자신의 생각이 잘 묻어나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 생각한다. 물론 내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지금은 예전에 비해 어느 정도 안정감이 생긴 것 같다.
그냥 대처하는 법이 늘었을 뿐이지, 항상 두렵다. 작품 할 때마다 항상 무섭고, 항상 대본이 옆에 없으면 잠을 못 잔다. 정신적으로 굉장히 디테일하게 가야 하는 편이다. 항상 갖춰져 있어야 하고, 준비되어 있어야 되고, 긴장해야 되고. 그래서 작품 하면 살이 쭉쭉 빠지게 된다. 그래서 살이 안 찌냐는 질문도 받게 되는 거겠지. (웃음)

확실히 올해 초에 촬영 현장에서 봤을 때보다 지금은 살이 쪘다.
그때는 의도적으로 음식도 안 먹었었고, 더 예민해져 있었고. <식객>끝나고 7kg 정도를 뺐으니까.

그런 예민한 성격은 <경의선>의 만수를 많이 닮았다.
거기에 내 이미지가 담겨 있었다. 초 단위로 살아가면서 굉장히 괴로워하는, 그런 면이 있었지.

연출을 배우기 위해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고 들었는데 결국 배우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배우라는 삶을 굳히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 4년 동안 정신 없이 연극을 하고 나니까 내가 할 줄 아는 건 이거밖에 없더라. 결국 이제 사회에 슬슬 나가야 되는데, 할 줄 아는 게 이거밖에 없었던 거지. (웃음) 그냥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어쩌면 운명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제 내 용돈은 내가 벌어야 될 나이가 돼버렸는데 할 줄 아는 건 이것뿐이고, 남자라면 이해되지 않을까.

용접공이나 요리사, 지하철 기관사처럼 영화나 드라마에서 쉽게 묘사되지 않는 전문직업에 종사하는 인물을 종종 연기했다. 그런 분야의 연기를 위해서는 나름대로 그 직업에 대한 탐구도 선행됐어야 했을 텐데.
탐구보단 먼저 중요한 게 이해더라. 그래서 나는 어느 한 곳에 안 꽂히려고 노력한다. 그러니까 어떤 걸 너무 좋아하지도 않고, 너무 싫어하지도 않고. 솔직히 난 특별한 취미도 없다. 예전엔 난 왜 그럴까 그랬는데, 이젠 오히려 그게 좋더라. 어디든 쉽게 동화할 수 있다. 정치적인 색깔을 드러내지도 않고, 누가 좋지도 않고, 누가 싫지도 않고. 배우는 어떤 편에 들어야 되는지, 또 어떤 직업군을 갖게 될 지 모르는 거 아닌가.

<세잎클로버>나 <야수와 미녀>같은 작품을 선택했던 건 상업적인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고 종종 피력했던 걸 봤다. 아무래도 한때 배우로서 지명도에 대한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올해는 그와 반대로 흥행 배우의 타이틀을 얻게 됐다. 어떤가?
물론 그것도 나한테 중요한 과정이었고, 그 덕분에 여러 가지 느낌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건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다 내 작품이니까. 모두 그 당시 내 모습이다. 다만 조급할수록 그런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는 걸 느꼈지. 그때는 그게 나한테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저것 고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고 선택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마음가짐을 조금 더 길게 가져가야 한다는 걸 깨닫는 계기가 됐다.

사실 초반에 출연했던 작품들이 대중에게 나름대로 어필됐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출연작이 흥행에 실패하고 캐릭터에 대한 비판도 있었고,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가 있었을 것 같다.
색깔을 찾아나가는 과정이었다. 나한테 어떤 옷이 맞는 건지, 나도 나에 대해서 몰랐으니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배우를 그만 두기 전까진 계속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인 거 같다. 지금에 와서 그것들이 안 맞는 옷을 입었던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또 아닌 거 같다. 또 한번 그런 과정들이 다시 반복될 것 같다. 지금 작품이 흥행됐기 때문에 그것이 나의 옷이라고 인식하는 숫자가 많은 것뿐이지, 또 다시 계속 순환될 것 같다. 그리고 난 또 계속 찾아나갈 거고.

2007년 12월 28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2007년 12월 28일 금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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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k209
왠지 수컷 냄새가 풍기는 배우...   
2007-12-28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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