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인터뷰 기사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배우로 잘 알려져 있다.
밑줄 쳐가면서 본다. 애정이라고 생각해 달라.(웃음)
<고지전> <최종병기 활>때와 <내 아내의 모든 것> <광해, 왕이 된 남자> 때의 인터뷰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작품 흥행 이후 얻은 자신감 때문인가?
자신감은 무슨. 2012년 개봉한 두 작품이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다보니 종종 그런 오해를 사더라. 변한 건 없다. 그냥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바뀐 것뿐이다.
2012년 개봉한 두 작품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글쎄……. 다양한 시나리오가 들어온다는 점. 예전에도 시나리오가 많이 왔지만 읽어보면 대부분 비슷한 성향의 인물이었다. 이제는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7번방의 선물>의 용구는 전작의 캐릭터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다른 노선이다. 새로운 캐릭터 도전에 따른 두려움은 없었나?
모든 역할마다 두려움과 부담을 느끼긴 하지만 이번 캐릭터는 그 강도가 심했다. 일단 용구를 연기하기에 앞서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비춰졌던 이미지에서 탈피해야 했다. 굳어져 있던 자아도 깨야 했다. 용구는 바보가 아니다. 동심을 갖고 있는 어른일 뿐이다. 용구를 연기함에 있어 무엇보다 필요했던 건 동심이었다. 사회의 찌든 때를 벗고 동심으로 가득한 용구를 표현해내기가 힘들었다. 100% 만족은 못한다. 하지만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부담이 가장 심했던 장면을 꼽자면 무엇인가?
용구가 7번방 문을 열고 “(용구 목소리로)안녕하세요 이용구...”라고 하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장면이 있다.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이 보는 가운데 용구라는 캐릭터를 선보이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쟁쟁한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 앞에서 내 연기를 선보이는 게 창피했다. 그 때만 생각하면 어휴~~~. 우는 장면도 힘들었다. 아이처럼, 숨넘어갈 정도로 운 건 처음이었다. 눈물, 콧물 닦으면서 연기를 하는데, 감정 수위 조절이 안 되니까 연기하기 어렵더라. 어색하기도 했고.
예승을 끝까지 돌보려는 용구의 부정(父情)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부정이야말로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영화에서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거든. 7번방 동료들도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처럼 행동했다.
표정이나 말투만 들어도 용구라는 인물은 독특하다. 어떻게 캐릭터를 잡아나갔나?
솔직히 말하면 첫 촬영 들어가기 전, 모든 배우들이 모여 대사를 맞춰 볼 때까지 용구 캐릭터를 잡지 못했다. 어느 날 감독님과 제작부가 나를 일산의 한 유기농 빵공장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한 친구를 만났는데 용구를 보는 듯 했다. 우물쭈물하는 행동, 문장 순서에 상관없이 단어를 내뱉는 말투와 특이한 억양 등을 관찰하면서 용구 캐릭터를 잡아나갔다. 이후 힘겹게 만든 캐릭터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평소에도 용구처럼 말했다. 언제나 기죽어있는 용구의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현장에서 앉아 쉴 때도 낚시용 의자에 쭈그리고 앉았다. (오)달수 형님 이하 다른 배우들도 류승룡이 아닌 용구처럼 대해줬는데, 그게 캐릭터 유지에 도움이 됐다.
<말아톤>의 초원(조승우), <마더>의 도준(원빈) 등 장애는 다르지만 용구 캐릭터와 흡사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영화가 많았다. 이들과 달리 용구만의 차별성이 있다면 무엇인가?
초원이나 도준은 엄마가 있었다. 그들은 보호를 받는 입장이다. 하지만 용구는 딸을 키워야 하는 아빠다. 누군가를 보호해주는 입장이다. 다른 영화들과의 차별성은 지능이 멈춘 아버지가 딸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나온다. 또 다른 차별성은 용구안에 어린 아이와 어른의 모습이 공존한다는 거다.
어린 아이와 어른의 모습이 공존한다고?
용구가 예승이에게 “콩 먹어야 해. 입 벌려 입 벌려”하는 장면이 있다. 지능이 부족하지만 딸에게 몸에 좋은 걸 먹이고 싶은 아빠의 마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장면을 촬영할 때 용구가 아빠 같았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실제 아들들에게도 그렇게 밥을 먹여주나?
그럴 필요가 없다. 알아서 미친 듯이 먹거든. 그럼 내가 그런다. “그만 먹어. 살쪄”(웃음)
소원이와 함께 찍은 장면은 모두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갈소원 양에게 연기는 이 영화가 처음이다. 호흡은 잘 맞았나?
물론 연기적 메커니즘은 떨어진다. 하지만 어떤 배우보다 훌륭한 감정 연기를 선보였다. 하얀 도화지 같은 느낌이랄까. 순수한 모습에 나 또한 순수해지는 느낌이었다. 정말 배우 하나 잘 만났어.(웃음)
개인적으로 둘의 호흡이 가장 좋았던 장면은 부녀가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다. 용구와 예승이가 ‘하나 둘 셋’하고 돌아서서 우스꽝스럽게 짓는 표정이 인상에 남는다.
그거 실제 우리 아들들하고 하는 거다. 이걸 소원이랑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시도해봤는데, 약속이나 한 듯 소원이도 아들처럼 리액션을 했다. 소원이한테 물어보니 집에서 아빠랑 한다더라. 자식을 가진 부모들이 이 장면을 보면 격하게 공감할거다.
다른 인터뷰에서 <내 아내의 모든 것>의 호흡은 ‘딱딱딱’ 치는 탁구,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호흡은 ‘타악타악’치는 테니스에 비유했다. <7번방의 선물>를 스포츠에 비유한다면?
핸드볼이다. 출연배우들이 많잖나. 단체전처럼 각각의 호흡을 ‘척척척’ 맞추면서 촬영했다.
연기 내공이 출중한 배우들과 촬영하면서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았을 것 같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영화 현장은 거울 같다. 동료들과 일을 하면서 내 연기의 부족함을 확실하게 알게 되거든. 이번 영화는 연기 내공이 출중한 배우들이 많이 나와서인지 자극을 심하게 받았다. 도움도 많이 받았고. 언론시사회 이후 배우들끼리 술자리를 가졌는데 나만 그런 생각을 가진 게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동료 배우들도 서로에게 연기적으로 자극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김)정태는 자기 성장, 반성을 진지하게 하더라. 옆에 있던 (정)만식이는 눈물까지 보이고 말이다.(웃음) 그만큼 알게 모르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팀워크를 이뤘던 것 같다.
영화는 전반부에 코미디를, 후반부에는 감동을 전한다. 하지만 감동을 전하는 방식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신파라서 아쉽긴 하다.
<7번방의 선물>을 <아이엠 샘>과 비교하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두 영화는 다르다. <7번방의 선물>은 <아이엠 샘>처럼 따뜻한 영화가 아니다. 슬픈 영화다. 현 사회는 용구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친구들이 살아가기에 척박한 곳이다. 영화는 불합리한 사회시스템에서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는 한 장애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신파라는 점이 아쉬울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겨진 의미를 찾는다면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00나이스 비데 조립공장.(웃음) 그때 해진이랑 같은 극단이었는데, 마침 연극일이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우연히 새벽에 만나 조치원 비데 조립공장에서 한 달 동안 일했다.
거기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에게 인기가 좋았다고 하던데.
그건 해진이지. 난 젊은 여자들한테만 인기가 좋았어.(웃음)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연기자로서도 성장을 했고 말이다. 감회가 새롭겠다.
지금의 위치까지 온 건 나를 꾸준히 사랑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20대를 돌아보면 항상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실에 대한 불평으로 가득했다. 그러다가 문득 해결되지 않을 일로 고민하는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풀리지 않는 고민으로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지 말자는 다짐을 하면서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됐다. 아주 힘들 때는 열등감과 피해망상을 가지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많은 일을 하면서 좋았던 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거다. 돈과 맞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학교에서는 이런 거 못 배운다.
학교(서울종합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에게 경험을 강조하는 편인가?
“내가 이런 경험을 했으니 너희도 꼭 해”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 경험을 구구절절이 늘어놓지도 않는다. 청유나 제안을 하지. 경험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걸 몸으로 체험해서 얻을 수는 없지 않나. 대신 아이들에게 책 많이 읽고, 양질의 영화를 보라고 한다. 그리고 여행도 될 수 있으면 다양한 곳을 가보라고 권한다. 비행기 타고 다른 나라를 가는 것보다 기차나 자전거 타고 떠나는 국내 여행을 추천해준다. 특히 정선, 구례, 하동장 같은 민속장과 어시장은 필수 코스다. 모란장은 개시장이 유명하다. 그 공간이 참 묘해. 왼쪽은 식용견, 오른쪽은 애완견이 나란히 있거든. 식용견은 눈에 초점이 없는 반면 애완견은 눈이 초롱초롱하다. 왼쪽 길 끝에는 보신탕이, 오른쪽 길 끝에는 동물병원이 있다. 참 아이러니 하지 않나. 어시장도 볼거리가 많다. 생선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눈치작전이 재미있다. 경매인의 말소리에 생선을 구매하는 도매상인들, 남은 걸 나눠 사는 소매상인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연기할 때 응용하기도 했다.
요즘 학교는 우리 때와 다르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는 연극영화과가 전국에 6개였다. 지금은 60개다. 예전보다 인구는 줄어들었는데, 학과는 많아진 셈이다. 내가 강의 나가는 학교는 정원제가 아니라 졸업제다. 가르치다 보면 연기를 배우기 위함이 아닌 자신감을 찾기 위한 치유의 개념으로 오는 친구들도 있다. 연기가 좋아서 미친 듯이 생활했던 내 모습은 찾기 어렵다.
연기할 때 대사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
눈이다. 대사보다 더 캐릭터를 극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은 눈이라고 생각한다. 연기할 때 눈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최종병기 활>에서는 집요함과 무서움을,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는 진중함과 근엄함을, 이번 영화에서는 동심을 표현했다.
그럼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는
뭐랄까. 알 수 없는 눈?(웃음)
<최종병기 활>처럼 무서움이 느껴졌던 눈빛은 <시크릿> 때도 볼 수 있었는데.
<시크릿> 때는 눈이 너무 아팠다. 대사하면서 눈을 한 번도 안 깜박였거든. 재칼의 강렬함과 동시에 묘한 느낌을 주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었다.
촬영 중인 <명랑 - 회오리 바다>에서는 강렬한 눈빛을 볼 수 있겠다.
왜군 장수 역이니까. 아무래도 눈에 힘을 줘야겠지.(웃음)
류승룡에게 있어 2012년은 배우로서 행복한 한해였다. 2013년은 어떤 한 해로 기억되고 싶은가?
2013년에 내 모습이 어떨지는 모르겠다. 두렵다. 하지만 두려움 없이 사는 삶이 더 두렵다. 매번 새로운 작품에 참여하면 시행착오를 겪지만 그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올해도 그 마인드로 한 해 열심히 연기하고 싶다.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