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만, 최강희, 김규리, 박진희 그리고 박기형. 50만, 박예진, 김민선, 공효진, 그리고 민규동, 김태용. 180만, 박한별, 송지효, 조안, 그리고 윤제연, 40만, 김옥빈, 차예련, 서지혜, 그리고 최익환. 1편부터 4편까지, 이 숫자와 명단은 <여고괴담> 시리즈에 관해 회자되는 숫자와 이름들이다. 흥행 성적, 신인 여배우, 그리고 신인 감독. 이 세 가지는 언론의 의해, 그리고 대중들 스스로 <여고괴담> 시리즈를 환기시키는 키워드 역할을 해왔다.
그렇게 충무로 최초의 프랜차이즈 호러의 길을 개척한 <여고괴담> 시리즈는 몇 가지 원칙을 내세우게 된다. 매번 다른 신인 여배우를 등용시킬 것, 메가폰 역시 신인 감독에게 맡길 것, 그리고 소재의 차별화를 시도할 것. 그러니까 '여고에 귀신이 등장한다'라는 기본 전제를 제외하고 <여고괴담> 시리즈는 매번 다른 소재를 취하는 동시에 공포에 있어서도 다른 온도차를 보인다. 입시경쟁, 동성애, 소원, 목소리, 등 5명의 감독들은 각개의 흥행 성적과는 자신의 개성과 입맛에 맞는 소재와 호러 장르에 대한 해석을 가지고 관객들을 만나왔다.
제작사인 '씨네2000' 이춘연 대표는 <여고괴담5-동반자살>을 <여고괴담> 시리즈의 종합판 같은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10주년 기념작에 대한 예우 차원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여하튼 5편은 최근 그 해 첫 호러 영화가 흥행 1위 자리를 차지한다는 속설에 충실하게 18일을 개봉일로 선점하며 이슈 몰이에 성공했다. 일찌감치 5명의 신인 여배우 공개 오디션으로 관심을 끌었고, 본의 아니게 시리즈 최초로 영상물등급위원회의 1차 심위에서 18세 등급을 받으면서(재심에서 15세 관람가로 확정됐다) 다시금 화제를 집중시켰다. 무엇보다 작금의 사회 분위기에 발맞춘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자살'이란 민감한 소재를 택한 것으로 볼 때, 현실을 반영하는 호러 장르와 <여고괴담> 시리즈의 미덕을 계승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여고괴담5-동반자살>가 진정한 종합편이며 전술한 미덕을 보여주고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1편부터 4편까지의 '언니' 영화들을 복기해 보도록 하자.
1. <여고괴담>, 10대의 억압을 고발하다.
고요한 복도 위에서 담임선생 은영에게 성큼 성큼 다가오는 귀신의 점프컷
1998년 여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제작사 씨네2000에 항의 서신을 보낸다. 영화 속에서 선생님들의 별명을 불러 비하하고, 악의적으로 묘사했으며,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지 않은 일을 묘사하였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였다. 하지만 이러한 항의는 영화를 홍보해주는 꼴이 됐고, 교복을 입은 10대들이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전국 관객 250만을 동원한 <여고괴담>에 관련된 일화 한 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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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신드롬이었다. 1998년 개봉한 <여고괴담>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지만 보란 듯이 전국 관객 250만 명을 동원하며 호러영화 최고 흥행작의 자리에 등극했다. 그때까지 1990년대 충무로는 제대로 된 공포영화가 전무한 상태였다. <구미호>는 재앙이었으며, <퇴마록>은 호러 마니아들을 만족시키기엔 내공이 한참이나 부족했다. 그러나 <여고괴담>은 달랐다. <샤이닝>을 가장 좋아하는 스릴러로 꼽았으며, 한 인터뷰에서 '폐쇄 공간 안에서 역이는 인물들이 피를 보고야 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고 밝힌 신인 박기형 감독은 호러와 스릴러 장르를 '이해하는' 감독이었다. 스타일 면에서 클로즈업과 적절한 정지 프레임, 부감 쇼트의 적절한 사용, 붉고 푸르거나 어두운 색감에 대한 탁월한 이해, 넘치거나 과하지 않은 음악과 음향 효과의 사용 등 10년이 지난 지금 봐도 <여고괴담>은 뛰어난 호러다.
무엇보다 <여고괴담>이 학생들을 극장으로 끌어 모은 이유는 교총이 우려에 부응하는(?) 리얼리티를 수반해 내러티브상의 공포감을 조성했다는 점에 있다. 귀신이 9년 동안 떠돌다 선생이 된 친구와 재회한다는 설정은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그 사이를 채우는 진정한 공포는 억압적인 교육 현실이다. 그건 <닫힌 교문을 열며>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같은 드라마와 달리 한국영화에서 조금은 금기시되어왔던 교육 현장의 갑갑한 현실을 귀신의 복수를 통해 깨부수는 어떠한 쾌감을 전달해줬다. 그러한 현실적인 공포는 초자연적 호러와 일종의 후더닛 구조와 맞물리면서 장르적인 쾌감을 극대화 시켜줬다(이러한 현실적인 공포감을 스크린에 투영시키는 박기형 감독의 재능은 최근작 <폭력써클>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여고괴담>의 성공은 단순히 '여고'의 '괴담'을 (여전히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라는 <교실 이데아>가 10대들의 애창곡이던)1998년 당대의 사회로 소환시킨 것뿐만, 아니라 그러한 장르적 완성도가 수반되었다는 것을 잊으면 곤란하다.
2.<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히스테리를 수반한 여성 혹은 퀴어 영화
청명한 하늘 아래 학교 옥상에 마주한 시은과 효신을 조망한 롱 숏,
사실 민규동, 김태용 감독은 데뷔작으로 가장 잘 할 수 있는 영화를 선택 혹은 간택 받은 셈이다. 두 사람은 10대들의 현실에 가감 없이 카메라를 가져간 단편 <열일곱>을 통해 단편영화로는 이례적으로 한 월간지의 1998년 베스트 10에 꼽히기도 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또한 10대들의 교실에 부유하는 카메라가 인상적인 영화다. 여기에 효은과 시은, 두 주인공의 사랑을 전면에 내세우고, 효신의 자살 뒤 둘의 비밀 일기장을 주은 민아에게로 이야기가 확장됐다. 전형적인 장르영화에서 탈피한 이 속편은 일종의 퀴어영화이자 10대 여성의 성장담으로 읽을 수 있는 다층적 텍스트란 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영화였다. 그 결과는 개봉 전 쏟아졌던 관심과 달리 전국 관객 50만이란 흥행 참패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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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즉 죽음을 기억하라는 꽤나 복합적인 텍스트인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문이다. 비밀 일기장을 주은 민아는 이를 통해 자살한 효신과 그와 소문난 커플이었던 시은의 비밀스런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그러니까 교실이란 현실의 공간과 플래시백을 통한 비극적 로맨스의 세계, 그리고 효신의 시점 숏이 중점이 되는 공포의 공간이 맞물리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이 신체검사 날이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들의 정신과 육체는 성인과 소녀의 경계에 서 있다. 담임선생님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의심을 받는 효신은 시은과 격렬한 키스로 구설수에 오를 정도로 조숙한 친구다. 일종의 탐정이자 관찰자인 민아에게 귀신이 된 시은은 교실에 나타나 은밀한 언어로 말을 건넨다(이러한 장면은 공포영화다운, 그러나 비관습적인 효과들로 표현된다).
결론적으로 전편과 전혀 다른 길을 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는 독창적인 이야기 안에 호러 영화의 관습들과 더불어 다채로운 형식을 도모한 풍요로운 텍스트다. 귀신 효신의 폐쇄회로와도 같은 시점 숏이 긴장감을 조성하는 가운데 적절한 핸드핼드 카메라가 주인공들의 불안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특히나 효신의 죽음이후 교실 안에 맴도는 히스테릭한 기운은 모든 학생들을 히스테리에 빠져들게 만든다. 이 공포감과 히스테리의 요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학교 건물을 굽어보는 효신의 눈이다. 더불어 민아에게 달려드는 시은의 손을 적절한 카메라워크로 처리해내는 관습적인 장면들도 적재적소에 무리 없이 배치되어 있다. 이 모든 건 효신, 시은 커플의 사랑과 애증이란 농밀한 정서를 집단적 히스테리로 확장시킨 김태용, 민규동 감독의 연출력의 공으로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3. <여고괴담3 - 여우 계단>, 시리즈의 개성을 잃어버리다.
소원을 들어주는 '여우계단'에서 진성과 재회한 소희의 클로즈업.
예상치 못한 2편의 흥행 실패는 타격이 컸다. 불과 1년 밖에 걸리지 않았던 1편과 2편의 개봉 시기와 달리 3편은 무려 4년이 걸렸다. 하지만 그 4년이란 시간이 관객들의 기대감을 키워놨는지, 인터넷 '얼짱' 출신인 박한별의 유명세 덕인지, <여고괴담3 - 여우 계단>은 <터미네이터3>와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두며 180만의 관객을 동원한다. 그러나 시리즈는 개성 없는 호러라는 평단의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그것이 1, 2편을 지켜온 오기민 PD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인지, 2편의 흥행 실패에 기인한 전략의 전환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말이다.
"여우야, 여우야 내 소원을 들어줘." 3편의 소재는 전형적인 도시괴담의 범주에 속할 여우계단이다. 간절한 소원을 간직한 채, 한 칸 한 칸 28개 계단에 올라가 빌면 여우가 들어준다는 도시 괴담 말이다. 3편은 이 매력적인 괴담을 예술고등학교를 무대로 시기와 열등감, 복수의 드라마로 옮겨 놓았다. 예고를 배경으로 한 만큼 전공인 무용 실력이 더 뛰어난 '절친' 소희를 질투하는 진성과 뚱뚱한 외모로 인해 열등감에 빠진 효주의 캐릭터는 좀 더 명확하다. 그러나 이건 바꿔 말하면 스테레오 타입에 가깝다는 얘기다. 특히나 거의 모든 인물들이 팔딱팔딱 살아 숨쉬었던 2편과 비교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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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예쁘고, 무용까지 잘하는 소희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매력적인 혹은 근거있는 귀신으로 승화되지 못하고, 시기와 본의 아닌 실수가 연결되어 소희를 자살로 이끈 진성은 중반 이후 시종일관 환영과 공포에 떨기 급급하며, 자살한 소희를 만난 효주는 살이 빠진 뒤 예상가능한 광기에 물들게 된다. 하지만 전형적인 캐릭터보다 3편이 저평가 받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사다코'를 등장시킨 게으름, 관습적인 쇼크 효과, 스타일 빈곤, 그리고 공포영화다운 리듬의 부재와 같이 총체적인 문제였다. 확실히 1, 2편이 관객들의 심연을 건드리는 묵직한 공포에 다가선 반면 3편은 평면적인 드라마와 캐릭터, 스타일로 인해 평범한 공포물에 머무르고 말았다. 분명 2편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종류의 귀신과 쇼크 효과를 삽입했지만 결과는 무섭지도 않고, 개성도 없다는 않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3편은 2편의 4배에 가까운 흥행 성적을 거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4 <여고괴담4: 목소리>, 색다른 시도로 시리즈를 재건하라!
영언과 선민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악한 악령의 존재와 부딪치는 장면의 교차편집.
분명 3편은 명확한 콘셉트와 공포영화의 여러 클리쉐들을 이리저리 끌어 모았지만 비판을 면치 못한 바 있다. 그래서 제작진은 오히려 2편의 독창성에 젖줄을 기대기 위해 소리라는 색다른 설정을 가져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힘에 살해를 당해 유령이 되어 학교를 떠도는 영언과 유일하게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단짝 친구 선민. 이렇게 <여고괴담4: 목소리>는 그들을 엮어주는 목소리란 아이디어에 사활을 건다. 이건 괜한 수사가 아니다. 미국 유학파 최익환 감독은 관습적인 공포엔 전혀 관심이 없다. 내러티브 안에 녹아있는 목소리라는 소재는 종종 쓰이는 날카로운 음향 효과의 사용 등 형식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이러한 다소 실험적인 시도는 역시나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40만이라는 시리즈 최악의 성적을 기록하는 원인이 되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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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4편이 2편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자살한 학생이 귀신이 되고, 사제간의 어긋난 애정이 존재하며, 2편의 민아와 같이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또 다른 친구,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오고가는 플롯, 후반부 귀신의 등장으로 교실을 뛰쳐나오는 아이들 등등. 그러나 4편은 좀 더 애잔한 비극에 가까웠던 2편과 달리 좀 더 건조하고 정돈되어 있다. 무엇보다 차별화되는 건 피해자인 줄만 알았던 영언에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반전이 존재한다. 그러니까 내러티브 자체는 분명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그것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공포를 유발하는 지점 또한 다르다. 시각적인 분장에 기댄 귀신의 등장이나 관습적인 음향의 쇼크 효과 따위는 없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인 영언이 귀신이기에 전형적인 공포 효과가 무의미하기 때문. 그보다 시종일관 날카롭게 기분 나쁜 '소리'에 의한 공포 효과의 창출이야 말로 <여고괴담4: 목소리>의 차별화 지점이다. 그러나 영언의 이중적인 자아가 등장하는 클라이막스에 접어들 때, 영화의 형식적 야심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여고괴담4: 목소리>의 개봉 후, 흥행에 있어 1, 3편은 성공과 2, 4편은 실패라는 법칙을 만들어냈다. 모든 실험에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5. 그리고 불성실한 종합선물세트 <여고괴담5: 동반자살>
"우리 아이들을 놓고 흥행을 위해 자극의 강도를 높이는, 어른들의 욕심을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고괴담에는 공포와 갈등, 화해와 구원이 있다. 결국 아무런 희망도 없다고 말하는 영화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여고괴담>시리즈의 끈을 놓지 않았던 제작자 이춘연 대표의 변이다. 이렇게 2편과 4편에 이미 자살이란 모티브가 등장하긴 했지만, <여고괴담5: 동반자살>은 선의가 도드라지는 영화다. 일찌감치 귀신이 된 언주의 자살 동기를 밝혀나가면서 그의 복수와 가해자들에 대한 죄의식, 그리고 단짝 소이와의 화해가 그려지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영화에 대한 평가에 있어 선의가 완성도를 이겨낼 수 없는 법. <여고괴담5-동반자살>은 마치 과자의 종류는 모두 겸비했지만 맛은 현저히 떨어지는 종합선물세트와 같다. 전면에 내세운 자살부터, 임신, 경쟁, 우정, 단짝이 된 귀신, 교장으로 대표되는 학교의 억압 등등 그간 선배들이 써 먹었던 소재들로 인한 익숙함이 넘실거린다. 굳이 새로움을 찾자면 시리즈 중 가장 많은 5명이나 되는 주요인물, 그 안에 한 명 포함된 친구가 아닌 동생의 등장 정도랄까. 그러나 이러한 익숙한 모든 속편이 부딪치고 싸워내야 할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여고괴담5: 동반자살>이 어떠한 예술적 자의식이나 완숙한 장르적 통제, 심지어 자극적인 공포 효과의 창출에도 재능이 없어 보인다는 점은 무척이나 심각한 문제다. 가톨릭 성당은 보이지만 학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우정과 음모, 복수와 화해의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왜 굳이 여고여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등급마저 청소년 관람불가였다면 과연 누가 이 공포영화를 환영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10주년을 이런 식으로 기념하면 곤란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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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5편에 대한 대부분의 혹평은 아마도 장르에 대한 기본을 오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피 칠갑한 귀신이 수차례 등장하고, 음악으로 관객들의 심리를 먼저 관장하며, 권선징악과 같은 결말을 보여준다고 해서 10대를 위한 공포영화가 탄생된다고 생각하면 어불성설이다. 10년 동안 다섯 편이 만들어진 시리즈에서 관객이나 평단이 원하는 것은 동일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여고괴담> 시리즈는 각 편마다 신인감독의 본인의 색깔을 분명히 하는 자의식을 아로 새겨왔다. 그러한 자의식은 때로는 예술적, 작품적 완성도로 혹은 흥행의 성공으로 평가받거나 보상받아 왔다. 여고와 교복, 귀신이라는 기본 콘셉트 외에 아무런 흥미를 끌지 못하는 밋밋함으로는 시리즈의 법칙에 이미 익숙해져 버린 팬들을 만족시키는 일은 소원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여고괴담> 시리즈의 초심으로 돌아갈 때다. 장르에 대한 철저한 이해 속에 시대상을 녹여냈던 1편, 10대 여고생들의 정서를 애잔한 비극으로 창조적으로 그려낸 2편, 부족한 예술성을 상업적인 마인드로 밀어 붙였던 3편, 소품과도 같은 사이즈 안에 형식적 실험을 마다 않았던 4편까지. 5편이 배워야 할 것은 영화적으로 최고는 아니어도 최선을 다했다는 나름의 개성과 독창성, 최소한의 장르적 재미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여고괴담> 시리즈가 제작사의 예전 바람대로 10편까지 계속 만들어지기 위해서 명심해야 할 과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자살에 대해 심오한 성찰을 보여주거나 작금의 사회 분위기를 리얼하게 담아낼 생각이 거의 없다. 영화는 그보다 그간 <여고괴담> 시리즈의 장점들을 다이제스트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고 있는 듯 보인다. 자살이란 코드를 제외하고는 먼저 작품성 면에 있어 가장 성공한 2편과 닮아 있다. 동성애 코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여고생들 사이의 죽음을 뛰어넘는 우정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자살을 둘러싼 이유 중 하나로 임신이 제시되는 것도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친구들 사이의 경쟁심리를 다룬 것은 3편 <여우계단>과 닮아 있고, 소중했던 친구가 귀신으로 귀환한다는 면에서는 4편을 연상시킨다. 자, 1998년 개봉, 당시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흥행에 성공하며 시리즈물로 안착한 <여고괴담>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자 10주년 기념작은 이렇게 당도했다.
2009년 6월 22일 월요일 | 글_하성태(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