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움직이기만 하면 전 세계 매스컴의 이목을 받는 한 여인이 있다. 조금만 피곤해도 금방 쓰러져 버릴 것 같은 가녀린 모습을 하고도 영화에서는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녀, 자신의 이름만으로도 많은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매력적인 그녀. 바로 ‘니콜 키드먼’이다. 같은 호주출신 여배우인 케이트 블란쳇과 절친 나오미 왓츠가 조용히 연기파 배우로서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살 때, 이런저런 이유로 시끌벅적한 화제의 중심이 되었던 그녀.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못하는 것 없는 니콜 키드먼은 그야말로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수식어가 딱인 여배우다. <물랑루즈> 이후 7년 만에 다시 호흡을 맞추는 바즈 루어만 감독의 신작 <오스트레일리아>로 우리 곁에 돌아 온 그녀의 파란만장하고도 드라마틱한 연기 인생 속을 들여다보자.
폭풍처럼 시작 된 그녀의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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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6월 미국 하와이, 호주인의 피가 흐르는 양친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연기에 대한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 16세에 영화계에 입문한다. TV시리즈 등을 통해 호주에서 꽤 유명한 배우로 활동하던 그녀는 헐리웃으로 진출하게 된다. 하지만 헐리웃에서는 그저 ‘호주에서 온 유명한 아역배우 출신 여배우’정도의 관심만을 받았던 그녀는 자신의 삶을 일순간에 180도로 바꿔 놓은 작품을 만나게 된다. 그야말로 폭풍처럼 찾아 와 니콜 키드먼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리게 된 사건을 만들어 준 영화 <폭풍의 질주>이다. 토니 스콧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에서 극중 레이서로 출연한 톰 크루즈와 실제로도 사랑에 빠지게 된 니콜 키드먼은 결국 199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결혼을 하게 된다.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였던 톰 크루즈와의 결혼으로 일순간 화제의 중심이 된 그녀는 이후 부부동반으로 출연한 <파 앤 어웨이>를 비롯 <맬리스> 등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한다. 하지만 그녀의 이름 앞에 항상 붙어 다니던 이름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톰 크루즈의 여자, 혹은 아내’. 1m80cm에 육박하는 큰 키 덕에 남편이었던 톰 크루즈에게 매번 굴욕을 안겼지만 그래도 모든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은 그녀가 아닌 남편 톰 크루즈였다. 그러기에 아무리 니콜 키드먼의 팬일지라도 초창기 그녀의 출연작 중에서는 <폭풍의 질주>, <파 앤 어웨이>처럼 톰 크루즈가 함께 출연한 영화만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당연할 일일 것이다.
내 이름은 ‘니콜 키드먼’...
늘 남편의 후광에 가려져 있던 니콜 키드먼은 사람들에게 그녀의 이름을 다시금 주목하게 한 작품을 만나게 된다. 바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1995년작 <투 다이 포>. 이 영화에서 자신의 야심을 위해 남편까지 청부살인하는 팜므파탈 연기로 “배역에 완전히 몰입했다”는 호평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녀에게 이듬해 열린 제 53회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다. 이후 니콜 키드먼은 내로라하는 유명 감독들에게 러브콜을 받으며, 블록버스터 영화에까지 출연하는 등 그야말로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이후 출연하는 영화들의 면모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엘 슈마허 감독, 발 킬머, 토미 리 존스, 짐 캐리 등 쟁쟁한 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된 영화 <배트맨 포에버>와 미미 레더 감독, 섹시스타 조지 클루니와 호흡을 맞춘 재난 블록버스터 <피스 메이커>까지 꾸준한 행보를 보인다. 하지만 정작 ‘여배우로서의 니콜 키드먼’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피아노>로 깐느영화제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한 여성감독 제인 캠피온의 영화 <여인의 초상>과 산드라 블록과 함께 나온 코믹 판타지 <프랙티컬 매직> 등 다양한 연기를 선보였음에도 <미션 임파서블>, <제리 맥과이어>로 승승장구하는 남편 톰 크루즈와 비교해 연기나 흥행에 대한 평가에서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던 것이 사실이다.
순간의 위기를 최고의 황금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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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유작인 <아이즈 와이드 셧>을 통해 다시한번 부부파워를 과시했던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의 이혼선언은 그들의 만남보다 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배우에게 있어 아픔의 극복은 더 나은 연기자로의 도약을 위한 과정임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2001년 이후 니콜 키드먼은 그야말로 연기 인생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한다. 전 남편이었던 톰 크루즈가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던 영화 <디 아더스>와 바즈 루어만 감독의 <물랑루즈>로 동시에 59회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된다.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물랑루즈>를 통해 멋진 연기와 노래까지 선보인 니콜 키드먼은 골든글러브 여우주연상 수상은 물론 74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까지 오르며 명실공이 최고의 여배우로 거듭나게 된다.
그녀의 황금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디 아워스>에서 작가 버지니아 울프를 겉모습까지 완벽하게 연기하며 75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은 물론 베를린영화제, 골든글러브 등 각종 수상을 독차지하게 된다. 또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도그빌>과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콜드 마운틴> 등 거침없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며 니콜 키드먼은 당당하고 멋진 여배우의 모범으로 자리한다. 전 남편이었던 톰 크루즈가 다른 배우들과의 열애설로 시끄러울 때, 니콜 키드먼은 자신의 연기와 작품에 대한 호평들로써 모든 매스컴을 집중시켰다. 어떤 이들은 그녀에게 찾아 온 순간의 아픔이 위기가 될 것이라 했지만 그녀는 그 아픔을 오히려 디딤돌 삼아 인생의 최고 황금기를 오롯이 일궈낸 셈이다.
아내, 엄마, 그리고 여배우라는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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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뉴질랜드 출신의 컨트리 가수인 ‘키스 어반’과 부부가 된 니콜 키드먼은 작년 7월에 마흔이 넘은 나이로 늦둥이 딸 ‘선데이 로즈’의 엄마가 되었다. 최근 오프라 윈프리쇼에 출연해 지갑 속의 사진을 꺼내 처음으로 딸의 모습을 공개하기도 한 그녀는, 딸의 이름을 선데이 로즈라고 지은 이유에 대해 "일요일은 우리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며 "행복한 일요일처럼 새로운 가족이 된 딸과 함께 평생 여유롭고 아름다운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작년 한해동안 <인베이젼>, <마고 앳 더 웨딩>, <황금 나침반> 등 3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역시나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었던 니콜 키드먼은 올해 경제전문지 ‘포브스’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과 ‘고수입 스타 커플’ 8위에 오르기도 했다. 반면 전작들의 흥행이 부진한 탓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전 남편 톰 크루즈와 함께 ‘Hollywood's Most Overpaid Star (몸값 못하는 배우)’의 대열에 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그렇지만 니콜 키드먼이 여전히 헐리웃 최고의 여배우임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다. 이제는 한 남자의 아내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는 니콜 키드먼. 핏기 없어 보이는 창백한 피부로 보여주는 각양각색의 얼굴과 가녀린 몸에서 풍기는 강렬한 카리스마, 무엇보다 자신의 이름값을 분명히 하는 그녀의 연기는 매 작품마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7년 만에 다시 바즈 루어만 감독과 호흡을 맞춘 영화 <오스트레일리아>로 2008년을 장식해줄 니콜 키드먼. 이 영화에서 그녀는 영국 귀부인의 새침함, 여장부의 당당함, 그리고 여성스러운 로맨스와 모성애적 따뜻함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재 촬영 중인 롭 마샬 감독의 뮤지컬 영화 <나인 Nine>에서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케이트 허드슨, 주디 덴치, 페넬로페 크루즈 등과 함께 그녀의 멋진 춤과 노래를 선보일 예정이다. 니콜 키드먼은 언제나 사람들에게 연기로써 전해지는 아름다움과 황홀함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배우다. 영화를 통해 관객들을 즐겁게 해줄 줄 알며, 여배우가 지닐 매력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이 되는 배우, 니콜 키드먼. 수년이 흘렀을 때, ‘니콜 키드먼’이란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그런 배우로 남아주길 바람 해본다.
2008년 12월 9일 화요일 | 글_김진태 객원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