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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스럽지만 단연코 ‘올해의 발견’, <세븐데이즈> <헨젤과 그레텔>의 박희순
2007년 12월 28일 금요일 | 하성태 기자(무비스트) 이메일


하성태(이하 “하”) <러브토크> 이후 2년 만에 다시 만난다. 먼저 <세븐 데이즈> 200만 돌파 축하한다. 요즘 여기저기 축하 전화 많이 받겠다.
박희순(이하 “박”) 전화 오는 건 좋은데 술을 너무 마셔서(웃음).

요즘 이틀에 한 번 꼴로 술자리가 있다고?(웃음) 이제 개그맨 박휘순과 헷갈리는 사람들은 많이 줄었겠다. 인지도가 올라간 건 실감하나?
헷갈리는 사람 아직도 많다(웃음). 인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길거리 지나다니면 많이 알아봐주지 않나? 하긴 <세븐 데이즈>에서의 성열과 일상적인 모습과는 또 다르니까. 지금도 안경 쓰고 있으니 <러브토크> 때 지석같이 조용한 느낌이다.
아직은 많이 못 알아본다. 모자 안 쓰고 안경만 써도 못 알아보는 걸. 몇 일전에 극장에서 <세븐데이즈>를 마지막으로 봤는데 그때도 아무도 못 알아보더라고(웃음).

기분 좋은 일이 또 하나 생겼더라. 시나리오 작가들이 뽑은 ‘올해의 발견’인 배우로 선정됐던데.
그 작가들 중에 <얼렁뚱땅 흥신소> 작가도 있고 연극할 때 만났던 작가도 있고 측근들이 다 뽑아줘서 그럴 거다(웃음).

발견이란 단어는 좀 쑥스럽지 않나? 전작들이 일찍 개봉만 됐다면...
좀 그렇긴 하다. 그래도 늦게나마 발견해 주셔서(웃음).

시나리오는 많이 들어오나? 이제 깡패 역할은 안 들어오고?
옛날보다는 좀 덜하긴 하지. 웃긴 게 이제 형사 역할만 들어온다(일동 웃음).

어찌나 영화판이 획일적인지(웃음). 형사 영화도 많겠다, 대한민국 형사 캐릭터는 다 들어오겠다.
그렇진 않다. (<세븐 데이즈>) 이미지가 있으니까. 술 먹느라 시나리오도 아직 다 보진 못했다(웃음).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부터 풀어보자. 왜 또 이렇게 극악무도한 역할을...
글쎄(웃음). 악역이라고 무조건 안 한다는 생각은 없고 (변집사가) 매력 있는 역할이다.

영화를 보니 왜 수락했는지는 이해가 가더라. 그래도 <세븐데이즈>로 한참 주가를 올렸는데 다시 악역 이미지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걱정도 되던데.
하하, 글쎄. 근데 <세븐데이즈> 보다 먼저 개봉이 됐으면 작품 속 인물로 봤을 텐데 이제 좀 알려졌기 때문에 ‘어, 박희순이 연기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장점일 수도 단점일 수도 있는 거지.

어쨌건 <가족>의 조폭과는 다른 악역이라 다행이란 생각이 들더라. 아무래도 <남극일기>때 인연으로 출연하게 된 건가? 임 감독은 어찌 그리 어려운 역할만 맡기나.
임필성 감독은 꼭 막판에 날 캐스팅한다(웃음). 다른 역할 다 캐스팅하고 시나리오 다 돌린 후에. 그래도 친한 감독 중 내 다른 점을 발견해 주는 감독이라 참 고맙다.

<남극일기> 때랑 비교하면 육체적으로는 아무래도 쉬웠겠다.
편하게 연기하다 클라이맥스 부분에 굉장히 힘들었다. 에너지와 집중력을 요하는 신에서 아이들하고 붙다보니까 더 성심성의껏 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집중력이 깨지니까. 보통 때는 내 컷에 최선을 다하고 상대방 컷에는 에너지를 아끼는데 아역배우들은 다 백지 같은 친구들이라 그럴 수 없었다.

감독님이 아무래도 아역과의 연기를 더 신경 쓰라고 하던가?
노는 꼴을 못 보지(웃음). 어린친구들이라고 해서 봐주는 거 전혀 없고 똑같았다. 워낙 그 친구들이 잘 하니까.

라스트엔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역들 연기가 좋더라. 그래도 악역인데 시나리오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망설여지지 않았나?
음... 그 당시가 <세븐 데이즈>가 다시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였고 또 악역이 많이 들어 왔었을 때다. <남극일기>나 <러브토크>가 흥행이 잘 안 돼서 여전히 악역이미지가 셌거든. 근데 깡패든지 악역이든지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정도의 악역이라면 굳이 마다할 필요가 없는데, 천편일률적이고 전형적이고 좋은 놈이 돋보이기 위한 나쁜 놈이 자꾸 보이니까 재미가 없더라. 그래서 안 한다고 했는데 <헨젤과 그래텔>은 1인 2역이기도 했고 나이보다 위의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장점도 있었다. 대신 <세븐 데이즈>와 촬영이 겹치지 않게 해 달라는 단서를 달았다. 근데 흔쾌히 조절할 수 있다고 해서 두 편을 동시에 찍었다.

월드스타 김윤진이 ‘어, 두 편 동시에 찍네’라는 말은 안 하던가?
(웃음)많이 놀렸다. ‘뭐, 나보다 더 바빠?’ 그러면서.

외적인 부분도 많이 신경을 쓴 것 같다. 머리도 희끗희끗하고 안경도 그렇고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외형적인 부분에서 좀 더 이국적이고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느낌을 갖자고 했다. 세트나 미술도 그렇고. 변희봉 선생처럼 나이든 배우를 쓸 수 있는데 굳이 날 쓴 이유가 조금 더 이국적이고 동화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것 같더라.

발성 자체도 초반엔 연극적이었다가 후반부에야 리얼리티를 살렸다는 느낌이 들던데. ‘우리 천사들’ 이런 대사는 앙드레 김 선생이 떠오를 정도였다(웃음).
맞다. 정체를 숨겨야 하는 설정이라 초반에는 좀 숨기는 듯한 느낌이 필요했다. 초반에는 좀 더 여성적으로 갈까도 생각하고 리딩 할 때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는데 결국 그 쪽으로 가닥을 잡은 거다.

인물 해석은 임필성 감독의 처음 이미지와 차이가 좀 있었나? 두 번째 작업한 임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임필성 감독이 제시한 모델은 <달빛 사냥꾼>이란 외화의 멋있고 찬송가 흥얼거리는 목사였다. 난 또 ‘가오’가 있으니까 그건 따라 할 수 없었고. 그래서 난 더 꼬았고 감독은 노멀한 것이 더 무서울 수 있다고 해서 둘이 접점을 찾은 거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장단점을 알고 있으니까 충돌이 거의 없었다. 서로의 마음을 아니 몇 마디로 정리가 다 되더라고. 장준환 감독과 친구인데 임필성 감독이 나 보고 형이라 부른다. 그래서 ‘형! 준환이 형은 형 안 쓰잖아. 날 더 좋아해줘’ 그러더라(웃음).

그러게 ‘아귀’ 버금가는 역할로 <타짜2>에 합류해야 될 텐데(웃음). 처음 설정부터 1인 2역이었던 건가? 후반부 플래쉬백 부분은 얼굴이 안 나온 것이 다행일 정도더라(웃음). 개인적으론 박희순이란 배우가 걱정돼서 몰입이 잘 안됐다. 이 영화 대박 나도 박희순은 또 악역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하하. 보고나오면서도 다들 ‘나쁜 어른이다’, ‘이 변태야’ 그러던데. 오히려 입만 보이고 (얼굴이) 좀 덜 보인 것이 다행인 것 같다(웃음). 김지용 촬영 감독이 실루엣만 잡아 준 게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치아도 끼는 걸로 새로 해 넣은 거다.

기존 캐릭터는 리얼리티가 돋보였는데 이번 작품은 나름 판타스틱한 분위기임에도 잘 어울리더라. 두 촬영장을 오가면서 인물이 섞였을 텐데 연기할 때 힘들지는 않았나?
오히려 그래서 더 편했던 것 같다. 비슷하면 어떻게 다르게 연기할까 고민을 했을 텐데 완전히 달랐다. <세븐 데이즈>는 촬영 자체가 엄청 빠른 열탕이었다면 <헨젤과 그레텔>은 차분하게 누르는 냉탕이었다고 할까?

개인적으론 어떤 스타일이 연기하기 편했나.
<세븐 데이즈>는 템포가 TV드라마보다 빨랐다. 카메라도 두, 세대였고. 반면 <헨젤과 그레텔>은 너무 세심하고 꼼꼼하고 하나에 목숨을 거는 쪽이니까. 연이어 찍었다면 답답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두 작품 같이 가니까 오히려 나를 다스리는 계기가 되어줬다.

아역배우와 제대로 호흡 맞춘 건 영화에서는 처음이었지?
이렇게 계속 붙어서 연기한 건 <가족> 때 박지빈 군 외에 처음이다. 근데 세 친구가 다 다르다. (만복 역의) 원재 같은 경우 릴랙스하게 놀고 있다가 슛 들어가면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영희 역의) 은경이는 진짜 백지 같은 친구다. 진짜 주는 만큼만 받아서 세게 주면 반응만큼만 오고 약하면 약한 데로 오니까 그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정순 역의) 진지희가 여우다, 연기에 대해 서로 논의할 정도로. ‘지희야 여기서 난 이렇게 할 건데 넌 언제 대사 칠거야?’라고 하면 ‘전 두 호흡 이따 칠거니까요 세 호흡 있다 해 주세요’라고 받아 치고.

(웃음) 정말 그 꼬맹이가 호흡이란 표현을 쓰던가?
그럼! 기성배우와 대화하는 듯 했다니까. 연기 호흡이 자~알 맞았다(일동 웃음). 별명희 ‘진여사’다. 배우들이 촬영 직전 연기에 몰입하고 있다 슬레이트를 세게 치면 감정이 깨질 때가 있다. 근데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배우는 송강호 정도?(웃음) 근데 우리 진여사가 ‘슬레이트 좀 살살 쳐 주세요’라고 또박또박 말하면 다음부터 어떤 배우 앞에서도 살짝 쳐 주고 그랬다. 그리고 감정 몰입하다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는데 조명이나 스탭들이 준비하는 시간이 걸리잖나. 그럼 얘기도 안 해요. (손바닥을 직접 치며) 짝짝짝!(일동 웃음) 그럼 (스탭들이) 뛰어다니고 난리가 났다. 우린 못 그러지 않나. 근데 진여사가 다 해줘서 우린 편했다(웃음).

스탭들에게는 귀여움을 넘어 무서운 존재였겠다(웃음). 천정명과의 호흡은 어땠나?
정명이는 촬영하면서 ‘나른한 릴랙스’라고 불렀다. 연기에 전혀 긴장이 없잖나. 나른하지만 그 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더라.

천정명이란 배우는 자신만의 매력을 찾아가는 것 같더라.
자기화 시키는 연기가 이제 구축이 된 것 같더라고. 아, 하나 덧붙이면 내가 아이들을 너무 좋아하고 예뻐한다. 근데 나쁜 놈 역할이니까 친해지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예뻐하고 장난치면 막상 촬영 들어가서 웃음 나오고 집중을 못할 것 같아서. 그래서 처음 두 달은 말도 안했다. 그 친구들도 날 무서워했고. 나만 혼자 꾹 참았는데 막판 가니까 그 친구들 집중력이 나 좋더라(웃음). 그래서 까불어도 되겠다 싶었지.

혹시 자녀분이?
저, 아직 결혼 못 했습니다. 여자 친구도 없다.

(급 당황 모드) 아, 내가 왜 잘못 기억하고 있었는지 몰라. 이런 큰 실수를... 2년 전에 기혼인 걸로 메모리에 저장해 놔서 따로 찾아보지도 않았나 보다. 왜 여자 친구가 없을까? 이제 <세븐 데이즈>로 소위 떴는데 말이다. 좋은 분 소개시켜 드려야겠다.
뜨긴 뭘 뜨나(웃음).

이제 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세븐 데이즈>는 배우 박희순 개인적으로 볼 때 관객 수가 아니더라도 어떤 분기점이 되어주는 ‘내 인생의 영화’가 될 것 같다.
맞다. 알려지고 그런 의미보다는 지금까지 우울하고 무거운 캐릭터를 많이 했는데 박희순이 이런 면도 있다는 걸 보여준 계기가 된 점이 가장 크다.

필모그래피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중인데 참 다양한 영화를 찍었다. 감독과 시나리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배우 박희순이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뭔가.
삼박자가 다 맞아야겠지. 작품이나 감독이나 배역까지. 솔직히 말하면 선택의 폭이 그렇게 넓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선택한 것이 크다. 작품과 배우가 만나는 것 자체가 운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장르는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작품을 고르는데 고집이 있는 편이고 비슷한 역할은 배제하는 스타일이라 다양하게 한 것 같다. 앞으로도 그래야지.

박희순이 나온 영화를 모두 봤지만 고집이 조금 있는 것 같아 보이진 않던데?
(웃음) <바보>란 작품이 아직 개봉을 안 했지만 그때부터 너무 어두운 것 말고 상업적인 것도 가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게 딱 멈추는 바람에(웃음).

말이 나와서 그런데 <바보>는 영화계 미스터리다. 차태현, 하지원에 <동감>의 김정권 감독이고 원작이 강풀인데 왜 개봉을 못하느냐는 거다.
제작사 차원의 문제가 있었긴 하다. 그래도 3월에 개봉한다는 것 같던데.

신동일 감독의 <나의 친구, 그의 아내>도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봤다. 어찌 보면 불운의 배우기도 하다. 연달아 두 작품이나 관객들과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 작품도 언젠가는 개봉하겠지, 단관 개봉으로라도. 그 역할이 간만에 착한 역할이었다(웃음). 처음에 상대 배우인 장현성씨 역할 두 가지 모두 제의가 왔는데 감독님이 술 한 잔 하면서 ‘굉장히 세게 봤는데 실제로 보니 아니다’라고 하더니 역할이 결정됐다.

자, <세븐 데이즈>로 돌아가자. 성열은 시나리오보다 얼마만큼 본인 것으로 만들었나.
말이 조금 와전됐다. 애드립은 그렇게 많이 없었고 거의 다 감독님이 쓴 거였다. 대본에 없는 건 감독님이 현장에서 써서 준 거 플러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협의한거고.

그런데 와전된 건?
‘박희순이 50%를 했다’, 이렇게(웃음). 그럼 나쁜 놈이지(웃음). 한 장면 통으로 애드립을 한 건 열쇠수리공한테 ‘직업의식이 없어’라고 말 하는 그 한 장면. 그게 첫 촬영이었다. 근데 윤진 씨와 호흡도 안 맞춰보고 인사한 후에 리딩 30분만 하고 촬영에 들어간 거라 서먹하고 어색한 상태였다. 그래서 일부러 준비를 몇 개 해 갔다. 원래 원신연 감독은 준비 많이 해 오는 것 보다 현장에서의 날 것 그대로를 좋아하는 분인데 그 날만 많이 한 거다.

그런 거 보면 연극할 때 장기 공연하면서 대사니 행동이니 수정해 나갔던 경험들이 자양분이 되었을 것 같다.
맞다. ‘목화’는 매 공연마다 바뀌고 심지어 그대로 있으면 혼난다. 오태석 선생님이 원래 ‘배우는 레미콘 같아야 한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면서 데생을 몇 천 장 했다’는 얘기를 매 번 한다.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한다, 잘 나가는 부분, 관객한테 반응이 오는 부분은 고치고 또 바꿔야 한다면서. 그래서 대사든 호흡이든 바꿔준다. 그러면 관객한테 반응이 오기까지 또 만들면서 노력을 해야 된다.

속으로 ‘아, 짜증나’ 이러기도 했을 것 같다.
그러니까 노는 꼴을 못 보는 거지(웃음). 요게 딱 터지는데, 대박인데 바꾸라니까(웃음).

연극판에서의 훈련이 자기화 되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 아니겠나. 근데 원신연 감독도 야박한 게 아무리 김윤진씨 스케줄이 빡빡해도 촬영 전에 밥도 먹고 그랬어야 하지 않나?
원신연 감독하고는 술도 마시고 했지. 근데 진짜로 김윤진씨와는 시간이 안 됐다. 윤진씨는 미국에 있었고 난 <헨젤과 그레텔> 준비 중이고. 촬영 이틀 전에 잠깐 30분 인사했다(웃음). 윤진씨도 낯을 많이 가린다. ‘안녕하세요’ 한 번 인사하고 30분 동안 멍하니 있다가 ‘슛’ 사인 오면 촬영하고.

그래도 나중에는 친해졌다면서? 연배도 비슷하고.
그렇지. 나중에 친해지려면 들이대는 수밖에 없더라고.

수줍은 희순씨가(웃음)?
그래서 내 촬영 없을 때도 촬영장에 자주 갔다. 뭐, 별 말은 안 했지만(웃음). 앉아만 있었더니 윤진씨가 왜 이렇게 자주 오냐고, ‘내 촬영 분량 없을 때 나도 찾아가야 되는 것 아니냐, 작작 해라.’ 그러면서 친해졌다.

<세븐 데이즈>는 드라마보다 빠른 현장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워낙 컷도 많고 스피디한 화면이니 완성된 영화만 봐도 그럴 거라 짐작이 가던데.
초반에 카메라 두 대를 돌리는데 조금 부담스럽더라. 한 대도 부담스러운데 두 대를 들이대니(웃음). 근데 현장 편집을 봤을 때 관객들이 느낄 긴장감이 첫 촬영에서도 느껴지는 거다. ‘와 이거 재미있네, 되겠는데’ 이러면서 신나게 연기 했다.

한 컷 찍고 카메라 바꾸는 기다림의 과정이 생략되니까 배우 입장에서는 편할 수도 있었겠단 생각이 들던데.
나나 윤진씨나 연극을 해 봐서 안 끊고 가는 걸 좋아한다. 근데 영화에서는 한 컷 끊고 가면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한 번에 쫙 찍고 뽑아 쓰니 편하고 재미있었다.

<세븐 데이즈>가 우여곡절이 많았지 않나(처음 <목요일의 아이>로 시작된 프로젝트가 감독과 배우가 교체되는 난산 끝에 결국 200만을 돌파한 현재의 <세븐 데이즈>의 결과를 낳았다). 김윤진이란 배우가 캐스팅되고 다시 제작 소식이 들려왔을 때 기분이 어땠나?
일단 대본이 바뀌어서 왔을 때 너무 좋았다. 원래도 좋았지만 거기에 곁가지가 생기고 캐릭터가 단단해지고 가장 중요한 건 내 역할이 많이 늘어났고(웃음). 연출도 좋게 본 <구타유발자들>의 원신연 감독인데다 윤진씨까지 캐스팅돼서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지.

김윤진은 ‘월드스타’ 면모가 묻어나던가? 첫 호흡이라 그런 느낌은 없었을 듯도 싶은데.
그런 건 딱히 없었지. 대신 배우로서, 여자로서 그 정도의 카리스마를 가진 배우가 드물잖나. 카리스마를 가진데다 자연스럽고 편한 연기까지. 그리고 호흡도 잘 맞았다.

근데 관객들 사이에선 ‘김윤진 보러 갔다 박희순 발견했다’는 말 들이 많던걸.
그건 윤진씨는 워낙 유명한 배우고 또 잘하는 배우인줄 알고 있었는데 비해 난 홍보도 안 됐고 아무것도 없다 튀어나왔으니까 ‘얘는 누구야’ 하는 심정이었을 거다. 또 성열이란 캐릭터 자체가 어떤 배우가 했더라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역할이고.

연기력이 뒷받침 됐기에 호응을 얻었지만 그래도 배우들은 다 ‘운 때’가 있는 것 같다.
맞다. 그런데 요즘 확실히 영화계가 불황인 것 같다. 예전 같으면 이 정도 입소문에 호응이면 몇 백만은 거뜬했을 텐데. 그래도 200만이 어딘가(웃음).

원신연 감독 스타일과는 잘 맞는 편이었나?
그 분은 현장에서의 판단력이 정확하다. 얘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도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빨리빨리 결정해서 상황을 바꿔버리니까. 또 내가 어떤 연기를 하던 정확하게 얘기를 해 준다. 코믹한 상황을 저지르면 이걸 더 해야 되나 자제해야 되나 얘기해주니까 난 그냥 저지르면 된다. 갈수록 그런 믿음이 생기니 굉장히 편했다.

역으로 생각하면 엄격하게 연기를 통제하는 연출 스타일이기도 하지 않나.
난 감독님들 스타일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기 때문에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편집에서 잘리면 그만이니까(웃음). 임필성 감독은 철두철미한 사람이라 자기 걸 정해 놓고 대입을 시키는 편이다. 원신연 감독과는 반대 스타일인 거다. 원신연 감독은 배우의 성향과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연출하다면 임필성 감독은 자기가 정해놓은 캐릭터에 배우가 젖어들게끔 주문을 한다. 아까도 얘기했지만 자유롭고 고정되는 상반된 두 가지 매력이 있으니 열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할 수 있었던 거다.

요즘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좀 다양해 졌나?
시나리오를 많이 받는 편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선택의 폭이 넓어지긴 했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영화 데뷔작인 <보스상륙작전>을 제외하고 모든 감독들이 작가주의 성향이 묻어난다. 고집이란 단어도 그래서 잘 어울리고.
그렇다. 아무래도 자란 놀이터가 ‘목화’니까. 오태석 선생님도 직접 쓰고 연출하기 때문에 그쪽 성향에 대해서 내가 많이 이해하고 좋아하는 편인 것 같다. 감독님들도 그런 쪽으로 봐줘서 서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 같고.

근데 또 ‘목화’ 출신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니잖나. 그런 점에서 박희순이란 배우 개인의 성향이 많이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없지 않아 있겠지(웃음). 그니까 상업적인 영화도 많이 하고 싶은데 폭이 너무 좁다. 거의 악역만 들어오고. 작품이 좋아도 내가 좋아하는 배역을 맡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손이 안가더라. 좀 어둡고 무거운 얘기라도 진정성이 있고 새로운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면 흥행과 상관없이 하고 싶으니까. <세븐 데이즈>가 처음 중단됐을 때 돈도 다 받았고 계약기간 끝났으니 안 해도 되는 거였다. 근데 굳이 한 이유는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장르, 새로운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지금껏 보여줬던 무거운 면을 탈피할 수 있는 기회라 1년을 기다리고도 할 수 있었던 거다. 지금까지 모두 그런 식의 작품 선택이었던 것 같다. 깡패는 무조건 안 한다고 했었고 이후에 깡패 역할 수백 개가 들어왔다. 하지만 아무리 작가주의고 멋있는 작품, 배역이라도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죽어도 손이 안 간다. 그런 식이다 보니 고집 있는 놈으로 낙인이 찍혔지만(웃음).

<바보>와 <세븐데이즈>는 솔직히 작가 색깔은 조금 옅잖나. 그걸 계기로 ‘고집 많이 꺾였네?’란 소문이 돌지 않을까?(웃음)
그럼 좋지. 인지도란 얘기도 이제는 가끔 하게 되는데 내가 아무리 잘 하고 좋다고 감독들이 생각을 해도 제작 쪽에서 거부를 하면 못하는 거니까. 필요악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넓게 보고 고르는 중이다.

인지도에 대한 인식도 그렇고 감독, 시나리오에 대한 욕심이 슬슬 발동 걸릴 때다.
그런 욕심은 인지도 없었을 때부터 있었다(웃음). 운 때가 안 맞아서 못한 거지 그런 욕심은 (배우라면) 다 있다.

올 해 방영된 드라마시티 <저수지>에서는 선량한 소시민 역할도 맡았는데.
그 때가 <목요일의 아이> 중단되고 한 6개월 쉴 때다. 연기를 너무 하고 싶은 거다. 연극을 하고 싶은데 영화가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속병 앓을 때다. TV 드라마는 안 한다고 했었는데 ‘할래, 대본 좀 가져와봐’ 그랬다. 근데 딱 마침 <저수지>의 홍석구 PD가 이전에도 여러 번 시나리오를 줬다고 하더라. TV 안 한다고 했으니 체념하고 있다가 이번에도 시나리오만 넣어 보자 했는데 ‘아다리’가 딱 맞은 거지. 읽어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다. 진짜 연기가 목마를 때 갈증을 해소해 준 작품이라 의미가 크다.

그 때도 인터넷에 ‘박희순, TV 외도’ 이러고 기사는 다 떴다. 소속사에서 보도 자료는 다 뿌렸으니까(웃음). 드라마 <얼렁뚱땅 흥신소>는 생각지도 못한 반향을 일으켜서 놀랐겠다. 근데 또 깡패 역할이었는데.
그러니까 안 하려고 도망 다녔었다. PD는 계속 전화오고. 내가 선균이랑 지원이랑 친하니까 이 친구들 동원해서 또 전화오고. 게다가 6회 첫 등장이라 처음엔 안 한다고 했다. 근데 7, 8회 대본이 죽인다며 한 번 봐 달라 길래 읽긴 읽고 재미있긴 했는데 깡패라서 싫다고 했다(웃음). 근데 예지원이 급파돼서 술 마시며 회유하고 선균이랑 원희까지 오고. 그 친구들은 ‘형이 <가족>, 깡패한 거 아무도 몰라, 다 까먹었어. 인지도 높여야 돼 형’ 이러고.

실제로 인지도가 올라가지 않았나?
공중파의 힘이 무섭더라. 근데 TV에 나오는 내 얼굴은 적응을 못하겠더라. 연기고 얼굴이고 간에 내 얼굴 보는데 적응시간이 좀 필요하다. 스크린도 초반에는 창피해서 못 봤거든. TV 보면서 식은땀이 절절 나고 어머니랑 동생은 거실에서 보고 난 방에서 문 잠궈 놓고 보고. 9회부터인가 모니터가 좀 되더라고. ‘각도를 이렇게 하면 좀 더’ 이러면서(웃음).

그래도 PD가 결정적인 한 마디를 뭐라고 하던가. 그래도 깡패 역할인데.
멜로도 있지만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지닌 인간적인 인물이고 아픈 추억을 가진 사내였다. 무거운 거 안 한다고 해 놓고 또 그런 게 끌린다. 고독한 남자, 우울한 남자.

깡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개인적으론 <귀여워>의 전라도 깡패 ‘막내’ 연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귀여워>는 앞으로 영화 연기를 어떤 식으로 해야겠다는 지향점이 되어 준 작품이다. 정재영이란 친구한테도 많이 배웠고 김수현 감독도 그렇고. <보스 상륙작전>이 영화 매커니즘과 현장을 느끼게 해줬다면, <귀여워>는 영화 작업과 영화 연기는 어떻게 해야겠구나하는 감을 잡을 수 있게 해줬다.

2년 전에는 그 당시 만났던 전라도 조폭들한테 계속 연락이 온다고 했었는데.
전화는 지금도 온다(웃음). 영화 봤다고도 하고 공연도 보러오고. ‘식사 하셨습니까, 형님’ 이러면서. 그 친구들이 예전에 <가족>을 보고 그랬다. (전라도 사투리로) ‘아, 이 사람 나쁜 사람이여. 우리도 그런 사람은 없어~’(일동 웃음)

참 다양한 팬 층을 가졌다(웃음). 원래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라고 알고 있는데 인터뷰도 그렇고 이제 좀 적응이 돼 보인다.
인터뷰는 한 30, 40개 하다보니까(웃음). 근데 사람을 만나는 일이니까 힘들기도 하지만 재미있기도 하다. 악의적이거나 사람을 씹기 위해서 만나는 사람은 없잖나.

<남극일기>때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게 인터넷’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좀 어떤가?(웃음)
검색해야지, 나 씹는 사람 있나 없나(웃음). 그 때 인터넷에 흥미를 잃었다가 조금씩 찾고 있다. 댓글 들도 찾아보고.

요즘은 다들 좋은 얘기만 있지 않나?
좋은 얘기들이 많은데 아직 ‘박휘순인 줄 알았다’, ‘문천식인 줄 알았다’도 있고(웃음).

연극 무대도 슬슬 설 때가 된 것 같다.
지금 당장도 하고 싶은데 언제 어느 때 좋은 영화가 들어올지 모르는 거니까. 어느 정도 입지가 있다면 텀을 두고 연극을 할 수 있겠는데 지금은 딱 결정을 못 내리겠더라고.

<클로저>로 기억하는 젊은 관객들도 굉장히 많더라.
<클로저>가 마지막 연극이다. (연극하자는) 연락이 지금도 많이 온다.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이게 또 두, 세 달이 아니라 네 달, 다섯 달이 걸리니까. 지금 이 시점에 주가도 조금 올라갔고 좋은 작품 하고 싶은 욕심도 있으니 좀 더 참았다가.

데뷔작이 장준환 감독의 단편 <2001 이매진>이다. 장준환 감독과는 작업 안 하나?
해야 되는데 써 줘야죠(웃음).

그 때와 지금과 몸무게는 얼마나 늘어나. 그 때가 10년이 더 지났는데 그땐 눈도 들어가고 그래서 굉장히 독특한 배우구나 싶었다.
한 5kg? 몸무게 차이는 거의 없다. 연극할 때니까 무대에서 2시간씩 뛰고 연습하고 하루 종일 그러고 살았으니 살이 찔 수가 없었다. 왜,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던가?

그때는 사실 좀(웃음). 그 이후부터 장준환 감독과 계속 친분을 쌓아온 건가?
그때부터 친구가 되서 연극할 때 매번 오고 술도 같이 마시고. 근데 감독과 배우 이전에 굉장히 재미있는 친구라 그 친구랑 있으면 술 마실 때도 그렇고 늘 즐겁다. 엉뚱하고 목소리도 가늘 하다. (성대모사를 하며) ‘희순아’ 이러고. 어제도 문소리씨와 함께 술 마셨다.

요즘 한국 영화계에 장준환 감독 같은 젊은 감독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이런 감독과 작업하고 싶다, 이런 작품은 참 좋았다고 생각해 본 적 있나?
굉장히 많지. 이창동 감독님 작품은 다 좋고, 박찬욱 감독님도 그렇고. 근데 누구를 좋아하기 이전에 많은 감독들하고 만나고 싶다.

배우들은 좋은 시나리오를 받기 위해 스크린 속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사석에서의 모습도 중요할 것 같다.
(손을 마주하고 비벼 보이며) 이런 거?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감독들이 봤을 때 사석에서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캐스팅할 때도 있지 않느냐는 거다.
내가 낯가림이 심하고 어른들 앞에서는 말을 잘 못한다. 박찬욱 감독님 앞에서도 술자리에서 한 세 마디 했나? 4~5번을 만났는데 말이다. 예전에 (박감독님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찍기 전에 일순이 역을 사석 본 박희순의 뚱한 이미지를 떠올리기도 했다더라. 나랑 작품을 해 본 감독님들은 재미있다는 말을 많이 한다. ‘희순인 코미디 해야돼’ 이러면서.

앞으로는 밝은 이미지로 많이들 기억할 것 같다. 재미있지 않나? 처음에는 조폭, 깡패 이미지를 벗어나기 힘들었는데 영화 한편으로 반전을 이루는 것이.
그러니까 말이다. 코미디도 몇 편 제안이 들어 왔었다. 역할 자체에 코믹 요소가 있는 배역이. 조금씩 다양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심사숙고 하고 있는 중이다.

기다리는 일은 참 잘 할 것 같다. <바보>도 그렇고 출연작이 개봉이 늦어져 많이 속상 했겠다. 2006년이나 올해 가을까지도. 속이 타진 않았나?
버티는 거 하난 잘한다(웃음). 물론 속은 탔지. 내가 일을 하면서 묶여있으면 하나도 문제 될 게 없다. 근데 영화가 중단된 상태에서 개봉이 안 되니까 미치는 줄 알았다.

그때 술 참 많이 마셨겠다.
그때는 대인기피증이 생겨서 사람을 못 만날 정도였다. 왜냐하면 하도 주변에서 (영화 진행 상황에 대해) 물어보니까. 근데 난 아는 것도 없으니까 사람 피해 다니느라 힘들었다.

<세븐데이즈>가 성공해 다행이다. 평소에는 뭐하며 보내나? 주량이 무척 셀 것 같은데.
저요?(웃음) 요즘 많이 약해졌다. 술 마시면 잔다(웃음). 그렇게 여유 있게 사는 편이 아니라 여행도 못 다니고. 무슨 고민이 그렇게 많은지, 불안도 하고(웃음).

그럼 스트레스는 다 술로 풀겠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커피마시면서 사람 만날 일은 없지 않나.

들어 온 시나리오 중 차기작은 결정했나?
아직. 대부분 3월에 다 크랭크인을 하는 것 같아 급하게 결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더라.

진짜인가? 난 인터뷰 다음날 바로 캐스팅 기사 나오는 거 제일 싫어한다.
그럼, 진짜다(웃음).

다음 인터뷰는 1년 안에 다시 했으면 좋겠다. 차기작이 무척 궁금하다.
하하. 물론 그래야지.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트)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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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suk85
세븐 데이즈 정말 재밌었는데 ㅎㅎ   
2008-01-07 00:51
kiki12312
저도 이분 세븐 데이즈 보고 너무 좋아졌어요 ^^   
2008-01-06 22:23
js7keien
그만의 독특한 질감을 가진 배우 박희순   
2008-01-06 21:53
iamjo
포스최고 킹왕짱   
2008-01-06 20:27
lovelygw
아아, 열심히 하세요^-^   
2008-01-06 18:38
ranalinjin
매력 쟁이 ~~ >.<ㅋㅋㅋ   
2008-01-05 23:03
ananoo
세븐데이즈에서 잘 봤어요.   
2008-01-05 18:51
firstgun
이제서야 빛을 보시다니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2008-01-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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