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한물 갔다는 인상이 강한 스타다.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탄 후 〈더 록〉〈콘에어〉로 일약 흥행스타에 오르고, 헐리웃에서 오우삼을 완전히 부활시킨 〈페이스 오프〉에서 상대역인 존 트라볼타를 압도하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하던 그때 그 니콜라스 케이지는, 이제 더 이상 없는 듯하다. 널리 알려진 영화라고는 〈크로우〉〈다크시티〉〈아이, 로봇〉 세 작품인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 또한 일반적인 관객들에게 쉽게 개성을 드러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두 사람의 조합이라니, 예상은 더 미궁으로 들어간다.
B급 영화의 유망주가 흥행스타로 발돋음하다
영화배우로 데뷔할 당시 이미 거물 영화감독이었던 삼촌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와 엮이는 것이 싫어 예명 '케이지'를 쓰기 시작한 개성 넘치는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는 지금도 그런 것처럼 미남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부러 삼촌의 성을 피해갈 만큼 재능은 있었다. 영민한 재능에 영화를 고르는 안목까기 갖춘 그였기에 그리 잘 생기지 않은 그의 얼굴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앨런 파커의 〈버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페기 수 결혼하다〉, 코엔 형제의 〈아리조나 유괴사건〉, 노먼 주이슨의 〈문스트럭〉에 출연하던 시절의 니콜라스 케이지는 독특한 독립영화에 걸맞는 개성 넘치는 외모를 가진 좋은 배우였다. 그의 이런 장점은 지금도 독립영화 단골 배우 시절 니콜라스 케이지의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꼽히는 데이빗 린치의 〈광란의 사랑〉에서 절정에 달한다. 지금도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마지막 프로포즈 씬은 니콜라스 케이지 이외의 배우가 했다면 지나치게 우스웠거나, 너무나도 진지했을 미묘한 장면이었을 터, 환상과 현실이 정신없이 오가는 〈광란의 사랑〉에서 케이지는 단연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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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에 나쁘지 않은 로맨틱코미디였지만 이전 영화에 비하면 훨씬 일반적인 작품이었던 〈당신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같은 작품을 만나면 미묘한 지점에서 폭발력을 발휘하는 니콜라스 케이지의 장기는 상당 부분 수그러드는 편이다. 살짝 내려간 끝 눈매가 선량하게 보이는 케이지의 인상을 돋보이게 했고 순박한 보통 사람들의 행운에 대한 로맨틱코미디인 〈당신에게도 생길 수 있는 일〉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가진 또 다른 개성인 불안정한 비뚤어짐은 밖으로 드러날 기회를 가지지도 못했다. 그러다 만난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는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에게는 힘이 넘치는 물고기를 너른 호수에 풀어준 격일 터,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가 지닌 불안한 선량함은 '알콜 중독'이라는 배경을 만나서 빼어난 질감을 가지며 깊은 현실감을 불러 일으킨다. 현실스럽지 않은 설정에서 극단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코미디 〈아리조나 유괴사건〉이나, 현실과 환상이 폭력스럽게 교차하는 기괴한 박력의 로맨스 〈광란의 사랑〉에서 단연 그 이상한 세계의 사람같았던 니콜라스 케이지의 불안정한 매력은 알콜의 힘을 빌러 살 냄새 나는 땅에 안착했다.
안과 밖이 모두 어두운 세계에 집착하다
현실감 넘치는 알콜중독자 연기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가져간 니콜라스 케이지가 〈더 록〉이후부터 흥행배우가 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미묘하게도 감독 알렉스 프로야스가 우리 시선에 나타난 시기도 그와 비슷하다. 이소룡의 아들인 브랜든 리가 주연을 맡았고, 비운의 총기 사고로 유작이 된 영화 〈크로우〉의 감독으로 각 나라 영화관에 걸린 것. 동명 만화를 각색한 〈크로우〉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의 복수라는 매우 일상적인 테마를 파우스트같은 변주에 고딕풍 분장을 조합해 만든 독특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영화적인 재미나 개성이 빼어난 〈크로우〉로 이름을 알린 알렉스 프로야스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원작이 가지는 어두운 매력과 부자가 대를 이어 요절하는 비운의 가족사에 시선이 집중됐다. 영화의 비전 대부분을 책임 졌을 감독이 영화 외적인 이유로 관객의 시야에서 벗어났으니 여러 모로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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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정서가 블록버스터를 만날 때
니콜라스 케이지와 알렉스 프로야스가 만난 것은 이번 영화 〈노잉〉이 처음이다. 흥행배우로 변신한 이후 니콜라스 케이지는 미묘한 길을 걸었다. 그가 독립영화계에서 이름을 알릴 때만큼 개성 넘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블록버스터에 캐스팅될 만한 스타이긴 하지만 완전히 주류 영화에 어울리는 흥행배우는 아니다. 그는 여전히 마틴 스코시지의 〈비상근무〉나 올리버 스톤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 출연하려고 하는 작품 욕심 많은 배우지만 초창기만큼 강렬한 연기를 남기지는 못했고, 이야기꾼 앤드류 니콜의 〈로드 오브 워〉나 스파이크 존즈가 감독한 〈어댑테이션〉을 고를만큼 실험적인 안목을 가졌지만 좋은 평가를 얻지는 못했다. 여전히 〈내셔널 트레져〉 시리즈나 〈고스트라이더〉같은 영화에서 나쁘지 않은 흥행성적을 올리는 스타지만 그 만의 자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만큼 확고부동한 흥행스타는 아니었고, 심지어 자신이 제작해서 〈넥스트〉같은 영화를 찍기도 했다. 그의 부실한 지붕헤어을 필두로 꽃스럽지 않은 외모는 독립영화 시절의 삐딱한 힘을 잃으며 가치를 낮추는 요소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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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두 사람이 만났다. 독립영화 시절의 삐딱함이 아쉬운 노쇠한 스타와 B급 시절의 감각을 미처 보여주지 못한 미완의 작가. 미래를 예언하는 난수표에 대한 〈노잉〉이 단순한 예언 스릴러로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은, 평범한 필모그래피를 쌓아오지 않았던 두 사람의 과거를 비추어 볼 때 뻔하다. 예상대로 영화는 설마설마싶은 곳에서, 설마하고 나아간다. 그게 실망이건 환호이건, 두 사람 앞의 예언과 재난은 헐리웃의 상식과는 거리가 있다. 정신 나간 듯 써내려간 난수표가 어떤 재난을 예고할 지, 그 재난이 얼마나 B급 정서에 기대고 있는지, 삐딱한 순박과 어둠의 비전이 만나는 자리에서 영화화된다.
2009년 4월 17일 금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