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미국출생. 평범한 중산층의 가정에서 자라난 데이빗 린치는 보스턴예술대학에 진학했으나 곧 낙제한 뒤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펜실베니아 미술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된다. 아카데미 졸업후 미국영화연구소(AFI)의 연구생으로 들어간 데이빗 린치는 16mm단편영화작업을 하면서 컬트영화의 대명사가 된 <이레이져 헤드>(77)의 원안을 구상하기 시작한다. 대도시를 배경으로 기형아를 낳은 부부와 머리가 지우개로 쓰여진다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기괴한 스토리만큼이나 그로테스크한 연출로 악평 속에서 개봉되었지만 소수의 매니아가 열광하면서 소위 ‘컬트영화’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후 데이빗 린치의 잠재적인 재능과 상상력은 주류영화계를 유혹했고 곧 그는 메이져 감독으로 부상했다. 그의 두 번째 장편영화인 <엘리펀트 맨>(80)은 흥행성공과 함께 그 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 8개 부문에 노미네이션 된다. 이 영화의 성공으로 린치는 대작 SF <사구>(84)를 연출하지만 제작사와의 갈등으로 난항을 겪다가 개봉되기 전에 감독의 동의 없이 50분이 절단 당하고 흥행에서도 참패한다.
<사구>로 침체되었던 데이빗 린치는 곧 86년 <블루 벨벳>으로 전세계영화팬들을 열광시킨다. <블루 벨벳>은 린치의 악마적인 그로테스크한 스타일과 주류영화문법을 섞어 흥행성공뿐만 아니라 컬트영화 매니아와 아카데미를 동시에 만족시킨 작품이 되었다. 주류영화계에서 성공한 몇 안되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입지를 굳히던 데이빗 린치는 90년 평범하지 않은 남녀의 사랑을 다룬 <광란의 사랑>으로 칸느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는다. 그리고 같은 해 시작된 ABC의 TV 시리즈 <트윈 픽스>는 초유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최고의 시청율을 올리는 히트작이 된다. 92년 <트윈 픽스>의 극장판이 상영된 후 97년 ‘뫼비우스의 띠’ 구성이 돋보이는 <로스트 하이웨이>를 내놓았던 린치는 99년작 <스트레이트 스토리>에서 놀라운 변신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크레딧에 데이빗 린치의 이름이 없었다면 전혀 그의 영화라고 상상하지 못할 만큼 명랑하고 사실적인 휴먼드라마로 린치의 작품세계에 변화가 시작했다는 관측과 함께 평단의 호평을 얻어 아카데미, 칸느영화제 등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필모그래피 <여섯개의 형상들>(1966) - 단편 애니메이션 데뷔작 <이레이져 헤드>(1977) - 첫 장편 영화작품 <엘리펀트 맨>(1980) <사구>(1984) <블루벨벳>(1986) - 전미 비평가 협회상 수상 외 다수 <광란의 사랑>(1990) -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트윈픽스>(1992) <뤼미에르와 친구들>(1995) <로스트 하이웨이>(1997) <스트레이트 스토리>(1999) - 유럽영화상 수상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 칸느 영화제 감독상 수상 외 다수 <래빗>(2002) <인랜드 엠파이어>(2007) - 전미 비평가 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