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 김주혁에게 지난 <투혼> 제작보고회 때 찍은 3D 영상을 보여줬다. (관련 영상을 보고 싶다면 여기를 클릭!) 그날 김주혁은 어떻게 하면 입체감을 잘 드러낼 수 있는지 아는 사람처럼 손과 발을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낯 뜨거워했지만, 3D 영상이 신기한지 모니터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원래 3D 영화에 관심이 있었나? 제작보고회 촬영 때 곧바로 3D 카메라라고 물어보는 배우는 드문데, 바로 알더라.
그냥 렌즈가 두 개가 달려 있어서 물어본 건데.(웃음) 정확히 말하면 안게 아니고 저건 뭐지 하고 관심을 보인 거다.
최근에 본 3D 영화가 있나?
<아바타>는 봤고, 최근에는 <트랜스포머 3>를 봤다. <트랜스포머 3>는 3D 입체감의 몰입도가 컸는데, 드라마 부분은 별로였다. 아! 그리고 눈이 아팠다.
아까 자신이 출연한 3D 영상을 보니 어떤가?
신기하다. 살아 움직이는 생생함이라고나 할까.(웃음)
<투혼>도 야구 경기 장면이 3D 영상으로 구현됐으면 어땠을까.
야구 장면이 3D 영상으로 나왔으면 투구 장면에서 공이 훅! 훅! 나오고 재미있었겠지.
언론시사회가 지난 9월 22일에 열렸다. 이날 영화는 처음 본건가?
그날 처음 봤다. 매번 그렇지만 언론시사회 자리는 쑥스럽다. 아직도 내가 출연한 장면을 보는 게, 창피하다. 남들은 괜찮다고 하지만 영상을 보면 부족한 연기가 보이니까. 투구 폼도 엉성하고.
그래도 160km의 강속구를 뿌리는 정통 우완투수처럼 보였는데.
영상을 보면서 ‘아! 저 팔을 좀 더 올렸어야 하는데’ 하고 혼잣말 많이 했다. 부족한 면들이 너무 많이 보이더라.
극중 윤도훈은 통산 149승을 자랑하는 최고의 투수다. 이 캐릭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공을 프로선수처럼 던져야 한다. <YMCA 야구단>에서 이미 야구를 해서 그런지 투구폼은 잘 나왔더라.
정말 다행이다. 야구 장면에서 욕 많이 안 먹어서.(웃음) 처음 공 잡았을 때 엉망진창이었다. 5m앞에서도 제대로 못 던졌다. 매니저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 <YMCA 야구단>때 했던 건 옛날 야구라서 폼이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프로야구다. 아예 롯데 자이언츠 로고를 박고 나오는 거라 투구 폼에 신경을 안 쓸 수 없더라. 안 그러면 관객들이 등을 돌릴게 뻔하니까. 그래서 연습에 매진했다.
일반인이 던져서 80km 구속이 나온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100km 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또 마운드에서 포수가 있는 곳까지 일직선으로 던지는 게 쉽지 않다. 다 포물선을 그리면서 간다.
그럼 매번 포물선을 그리면서 던졌겠다.
아니다. 포물선은 아니고, 미세한 곡선.(웃음)
아! 눈으로 보이는 슬라이더?(웃음)
에이. 직구인데 슬라이더. 일명 직포(직구인데 포크볼)라고도 한다. 직구인데 홈플레이트에서 힘없이 뚝뚝 떨어진다. 아마 프로선수들은 내 공을 잘 못 칠거다. 제대로 던진 공이 없을 테니까.
겨울에 야구 장면을 찍어서 어깨에 무리가 갔다고 들었다.
여름에 <퍼펙트 게임>(1987년 5월 16일 열린 롯데와 해태 경기에서 운명적인 맞대결을 펼친 故 최동원 선수와 선동열 선수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조승우가 故 최동원을, 양동근이 선동열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을 찍은 승우나 동근이는 좀 나을 거다. 우리도 여름에 찍고 싶었는데, 어쩌나. 사직 구장은 나와야 하는데, 시즌 중엔 찍기 힘들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월에 촬영했다. 롯데 자이언츠인데 엉뚱한데서 찍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어깨가 안 좋았지만 입금이 됐으니 어깨가 부서져도 던져야 하는 상황이었다.(웃음) 그리고 스태프들도 고생하는 건 마찬가지잖나. 이 악물고 주구 장창 던졌다.
이번 기회에 다양한 구질을 배웠을 것 같은데.
같은 자세에서 다양한 구질을 던질 수 있어야 프로라고 할 수 있다. 뭐 프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양한 구질의 공을 던질 수 있는 방법을 배웠으니까. 그런데 하나 못 배운 게 있다. 공을 끝까지 가져가는 방법이다. (실제 팔로 동작을 보여주면서) 원래 공을 잘 던지려면 손을 앞으로 끝까지 뻗어서 던져야 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항상 머리에서 공을 놓았다. 그러니까 시속이 잘 안 나온 거다. 속도를 높이려면 몸을 활처럼 휘어서 던져야 한다. 허리를 쓰는 거지. 그건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한 사람만 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던질 때 뒷발을 차주면 시속이 올라간다. 그래야 탄환처럼 ‘튕’하고 몸이 앞으로 쏠리면서 공 속도가 빨라지는 거다. 그때 디딤발의 힘이 중요하다. 디딤발이 잘 버텨줘야 공을 잘 뿌릴 수 있다. 투수들의 허벅지가 굵은 게, 그 이유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서 야구선수 허벅지를 만들려고, 나름대로 운동을 많이 했다. 물론 몸의 볼륨감 위해 옷 안에 뭘 좀 넣었지만.
홍보 때문인지 <투혼>을 야구 영화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실제 영화를 들여다보면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방불케 하는 이야기다. 이혼 위기를 겪는 부부의 이야기. 더 나아가 한 가족의 이야기다. 가족 이야기라는 점에서 추석 때 개봉했을면 좋았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말이다. <투혼>을 추석 때 개봉했어야 했다. 배급이나 홍보팀이 추석에 개봉한 영화들을 너무 두려워한 게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 오히려 <도가니> <카운트다운> <의뢰인>까지 한국영화가 몰려서 흥행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추석이 그립네.
오히려 플레이오프 때 집에서 야구 보느라 영화를 보러 오지 않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 롯데 자이언츠 때문에 이슈는 됐는데, 정작 사람들이 극장으로 안 오면 말짱 도루묵이잖나. 추석에 개봉했다면… 에이 아니다. 후회하면 뭐하겠나.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홍보나 열심히 해야지.
영화는 안하무인 최고 투수 윤도훈의 개과천선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무엇인가?
이야기자체가 심플해서 좋았다.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가 화해하고, 가족과 아내를 위해 마운드에 오른다는 이야기, 얼마나 심플한가! 관객들은 이야기가 배배 꼬인 영화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내용의 영화를 더 선호한다. 그리고 신파도 좋아한다. 고전을 좋아하는 거지.
그 심플함이 영화의 장점이라 생각하나?
우리 영화는 어려운 변화구보다는 직구로 승부한다. 직구처럼 이야기가 관객에게 ‘퍽’ 하고 들어가니까 감정 전달이 수월하다. 있는 그대로 윤도훈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가족의 소중함을 전하는 영화라서 그런지 시사회에 온 많은 사람들이 좋은 평가를 내려주신 것 같다.
윤도훈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건 무엇인가?
이번 영화는 촬영 후 모니터로 연기를 확인하지 않았다. 의상이나 헤어 또한 신경 안 쓰고, 단순히 느껴지는 그대로 연기 했다. 윤도훈은 폼 잡는 사람이 아니다. 공도 고심해서 던지는 스타일이 아닌, 느낌으로 던지는 사람이니까 성격도 이점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보니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투혼>은 김상진 감독이 연출한 작품이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드라마가 강한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의구심이 들었을 것 같다.
그게 참 의외였다. 시나리오를 보고 감독이 누구냐고 물어보니까 김상진 감독님이라고 하더라. 처음에는 동명 이인인줄 알았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왠지 감독님이 이번 영화에는 ‘투혼’을 발휘할 것 같더라고. 몇 개 엎어진 후니까.(웃음) 그 독기 한 번 잘 이용해보자라고 생각하며 출연을 결심했다. 그래서 좋은 영화 만들어보자 했고, 열심히 연기했다. 그동안 김상진 감독님과 같이 작업했던 스태프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예전 영화하고는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더라.
배우들 연기에 대해 디테일한 주문을 하거나 테이크를 많이 간 건 아니었다. 그냥 배우들이 연기하면 무조건 오케이를 외치셨으니까. 그래서 ‘감독님이 뭐가 변했다는 거지. 그전에는 어떻게 연출했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후반 작업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들었다. 예전 같으면 편집도 금방 끝냈다고 하던데, 이번에는 편집실에서 사셨다고 하더라.
그전에는 편집을 어떻게 했기에.
윤도훈이었던거지. 아마 감독님도 자만했던 자신의 모습을 봤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가 탄생했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은 극중 윤도훈이 퍼펙트게임(투수가 무안타, 무사사구(無四死球), 무실책으로 단 한 사람의 주자도 루상에 출루시키지 않고 이긴 경기)을 앞두고 가족을 위해 마운드를 내려오는 장면이다.
남자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장면이다. 윤도훈이 마운드를 내려오는 이유는 가족을 위해서, 특히 아내를 위해서 결정하는 거 아닌가. 남자의 마지막 자존심을 꺾고 결단을 내린 윤도훈의 모습에 남자들은 남성다움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시나리오 상에서도 퍼펙트 게임을 눈앞에 두고 마운드를 내려온다는 설정이었나?
그건 아니다. 끝까지 던지는 거였다. 야구 경기 장면은 촬영 때 감독님이 조금 손을 봤다.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야구 경기 장면이 좀 더 스릴 있고, 재미있게 진행됐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뭐 이를테면 1사 만루 상황에서 실점 위기를 넘기는 박빙의 승부 같은 거 말이다. 그랬다면 휴먼 드라마와 스포츠의 감동을 다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뭐 동시에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으니까.
윤도훈은 왕년에 잘 나갔던 투수였지만 2군 투수로 전락하지만 뒤늦게 깨달은 가족의 사랑으로 다시 마운드에 서는 남자다. 인생의 굴곡을 겪는 이 인물을 만들어갈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무엇이었나?
야구선수와 배우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상승 곡선이 있으면 하향 곡선이 있는 것처럼, 배우들도 작품이 잘 될 때도 있고 망할 때도 있다. 야구선수도 마찬가지다. 재미있는 건 둘 다 자존심으로 버틴다는 거다. 이런 공통점들을 찾다보니까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오히려 어려웠던 건 남편이자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실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져 본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감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다행이 (김)선아하고 호흡이 잘 맞았다. 만약 윤도훈과 오유란(김선아)이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었다면 잘 못했을 거다. 사랑보다는 정으로 사는 친구 같은 부부였기 때문에 애증의 감정이 잘 표현된 것 같다.
감동은 액션을 하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리액션을 하는 사람 때문에 오는 거다. <나는 가수다>를 봐라.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만 나오는 게 아니라 그 노래에 취해 감정을 발산하는 관객들의 모습이 나오니까 감동이 배가 된다. 단순히 도훈이가 회국수를 먹는 장면만 나왔다면 별로 기억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란이가 도훈이 국수 먹는 모습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예전에 처음 만났던 추억을 떠올리니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거다.
영화의 후반부는 신파로 흘러간다. 죽음을 앞둔 오유란이 가족들을 하나씩 만나면서 눈물바다를 이루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윤도훈은 홀로 눈물을 감추고 감정을 억제한다.
가족보다는 야구를 사랑했던 남자가 하루아침에 변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게 더 이상해 보이지 않나. 거의 모든 남자들이 다 그렇지 않을까. 항상 잘해주려는데 행동으로는 잘 안 되는 남자들의 모습을 보려주려 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 보다는 감정을 툭툭 쳐주면서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는 게 좋았다고 본다. 윤도훈이 울고 짜면 재미없지.
<세이예스>부터 <투혼>까지 11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그중 김현석 감독이 연출한 <광식이 동생 광태>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벌써 6년 전 작품이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그 영화 귀엽지(웃음). 김현석 감독 자체가 광식이자 광태다. 말도 광식이처럼 어눌하게 얘기하고.
그동안 김현석 감독과 두 편을 작업했는데, 감독과는 잘 맞는 편이었나?
김현석 감독하고는 동갑인데(둘 다 1972년생이다.), 같은 시대를 살아와서 그런지 생각하는 게 비슷하다. 소심해서 그런지 둘 다 흥이 나면 말을 잘 하는데, 또 뭔가 삐거덕하면 말이 없어진다.(웃음) 영화에서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을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둘 다 중·고등학교 때 들었던 노래라서 의견 차이 없이 사용한 거다.
개인적으로 김현석 감독과 다시 한 번 작업을 할 생각이 없나?
물론 있다. 김현석 감독과 함께 작업하면 일단 마음이 놓인다. 시나리오를 워낙 잘 쓰거든. 원래 글쟁이라서 그런지 시나리오가 잘 읽힌다. 만약 같이 작업한다면 광식이와는 다른 캐릭터로 연기하고 싶다. 다른 작품을 해도 다들 광식처럼 보인다고 하더라.(웃음)
예나 지금이나 그 목표는 똑같다. 그렇다고 해서 삶에 안주한다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것을 계속해서 도전하되, 그 도전 자체를 천천히 한다는 말이지. 나하고 안 맞는 캐릭터를 억지로 도전하지는 않는다.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려는 생각으로 욕심을 낸다면 결과는 뻔하다. 내 스타일은 할 수 있는 범주 안에서 조금씩 연기의 폭을 넓히는 거다. 그렇게 하면 연기의 스펙트럼은 자연히 넓어진다. 안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뚜~~욱 떨어진다.
그럼 이번 영화를 통해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혔다고 생각하나?
나이를 먹으니까 인물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더라. 남자 배우는 특히 연륜이 쌓이면 연기를 잘한다고 하는데, 그 말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그리고 선아와 연기하면서 상대방의 연기를 어떻게 받아줘야 감동을 줄 수 있는지도 깨달았다.
대답을 들으니 철든 윤도훈 같은데.
하하하. 과거에는 윤도훈처럼 철없이 연기했지. 우물은 팠는데 깊이는 무시하고 넓게 파는데 집중했으니까. 앞으로는 우물을 깊게 팔 생각이다.(웃음)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1년 10월 5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