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 한창 추운 날에 2006 년 여름 기대작에 대한 기사를 올렸더랬다 . 슬금슬금 신작에 대한 정보가 쌓이는 연초가 되면 으레 , 영화관련 미디어들은 그 해 여름 헐리웃 블록버스터에 대해 특집기사를 구성하기 바쁘다 . 물론 , 올해도 마찬가지다 .
무비스트에서는 작년 여름 헐리웃 기대작을 “속편 ? 만화 원작 ? 거장의 귀환 ? 다크호스”로 구분했었다. 제목만 짚어보아도 알 수 있다시피, 작년 여름 개봉작은 시리즈의 “속편”이 많았고, 마블과 DC의 미국 만화 양대 산맥에서 수혈한 작품이 영화로 많이 각색되었으며, 이름만으로 관객을 끌어 모으는 거물들이 복귀한 해이기도 했다.
올해는? 별반 다르지 않다.
헐리웃 블록버스터의 여름은 항상 ‘속편의 천국’이었고, 만화 원작을 각색한 미국 영화는 요 몇 년 사이 꾸준한 유행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올해 여름 헐리웃에는 유난히 속편이 많다는 정도. 원래 여름 영화 시장에 속편이 강세이긴 했지만, 올해의 속편 시장은 몇 년 만에 돌아온 “초강세”다.
거대한 3편
여름 시즌을 시작하는 5월에 이미 세 편이 개봉하고, 그 중 두 편은 올 여름 최고 흥행작 강력 후보에 속하는 강자들이다. 공교롭게도 올 여름 시리즈물은 대부분 3편째에 해당한다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다.
예고편 영상만으로 전세계 팬들을 들썩이게 했던 〈스파이더맨3〉가 5월에 선두도 나선다. 일정만 보자면 올해 여름, 초반에 개봉해 박스오피스를 장악했던 〈미션 임파서블 3〉와 비슷한 일정. 작품성과 흥행 양쪽 모두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얻었던 〈스파이더맨〉시리즈인 만큼,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도 무척 크다. 여름 시장에 선빵을 날리는 것 말고도 〈스파이더맨3〉가 가진 매력은 꽤 많다. 우선, 시리즈 첫편부터 함께한 스텦과 배우들이 여전히 〈스파이더맨3〉에서도 함께 나선다는 것. 서로를 잘 알고 있으며, 내내 시리즈를 함께 한 만큼 팀웤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예고편을 통해 팬들을 흥분시켰던 〈스파이더맨3〉의 장면은 바로 ‘베놈’의 등장. 외계에서 온 물질에 스파이더맨이 오염되어 악이 밖으로 발현된 ‘검은 스파이더맨’ 베놈은, 원작만화에서 가장 강력한 스파이더맨의 상대 중 하나로 묘사된 악당이다. 원작의 숨겨진 무게를 끌어내는데 능했던 샘 레이미 감독의 솜씨는 몇 분 되지도 않는 예고편에서도 베놈의 악마적 존재감을 보여주는데 성공했으니, 원작 팬들이 흥분한 것은 당연할 듯. 게다가 전편에서 스파이더맨에게 복수를 다짐한 (첫번째 편 악당이었던 그린고블린 노먼 오스본(윌렘 데포)의 아들이자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절친한 친구였던) 해리 오스본이 본격적으로 스파이더맨의 적으로 나서고, 몸이 모래로 변하는 괴상한 능력을 갖춘 샌드맨이 적진에 가담하는 〈스파이더맨3〉의 악당 진용은 1대 3이라는 엄청난 볼륨의 대결이 될 예정이다. 걱정이라면, 세 명으로 늘어난 악당과의 대결을 정해진 시간 내에 소화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수준.
선공은 〈스파이더맨3〉에게 양보했지만, 영화를 완벽하게 끝내지 않는 〈스타워즈〉〈매트릭스〉 수법의 2편을 남기고 최고조의 기대감을 이끌어낸 〈캐리비언의 해적 3: 세상의 끝〉 역시 5월에 개봉하는 작품이다. 역시 시리즈 처음부터 함께한 배우와 스텦이 그대로 유지되어 마지막 편을 만들었고 전편이 모두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기록을 참고한다면, 올해 가장 커다란 흥행 성적을 거둘 영화로 꼽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전편의 마지막에서 이어지는 것처럼, 저승으로 간 잭 스패로우 선장(조니 뎁)을 구하기 위해 일행이 바르보사(제프리 러시)의 도움을 얻어 떠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헐리웃 역사 상 가장 독특한 캐릭터 중 하나일 잭 스패로우를 비롯해, 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남녀 주인공 윌 터너(올랜도 블룸)와 엘리자베스 스완(키이라 나이틀리),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명우 제프리 러시를 바르보사 역에 기용한 화려한 캐스팅도 여전하지만 새롭게 이름을 올린 스타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사오 펭 선장 역의 주윤발. 이미 포스터부터 매우 〈캐리비언의 해적〉스러운 센스로 등장하는 주윤발의 모습에 기대감 상승. 또 캐스팅 리스트에는 잭 선장과 성이 같은 틱 스패로우라는 인물이 올라 있는데, 이름으로 볼 때 잭의 가족으로 설정한 인물이 가능성이 높겠다. 이 역을 맡은 사람은 전설적인 록그룹 롤링스톤즈의 기타리스트인 키스 리처즈. 영화 사운드트랙에는 무척 많이 참여했어도 배우로 나선 적은 거의 없는 인물이라, 다시 한 번 〈캐리비언의 해적〉의 역발상 캐스팅을 기대하게 한다.
작지만 강한 3편
규모와 지명도에서 워낙 차이가 나는 두 편의 3편 사이에는, 메가톤 급 흥행은 아니라도 쏠쏠한 매력을 차곡차곡 쌓아왔던 시리즈가 3편을 내놓는다.
전편인 〈오션스 트웰브〉를 찍을 때 〈본 슈프리머시〉 사이에서 일정을 조정해야 했던 맷 데이먼은 역시 이번에도 〈본 얼티매텀〉과 비슷한 일정에서 〈오션스 써틴〉을 찍었다. 좋은 평을 얻었던 〈본 슈프리머시〉의 감독 폴 그린그래스와 맷 데이먼이 다시 뭉친 시리즈 최종편 〈본 얼티매텀〉은 최후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제이슨 본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는 정체성 삼부작의 마지막 장이 될 예정. 첫편부터 제이슨 본과 함께 했던 니키(줄리아 스타일스)와 전편부터 제이슨 본을 알았던 파멜라 랜디(조앤 앨런)가 여전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편부터 제임스 러들럼의 소설과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어, 이야기의 전모는 영화가 개봉되어야만 알 수 있는 상황. 거칠고 빠른 스파이 영화의 미덕을 갖추고 있던 〈본 슈프리머시〉를 기억하며 기대하는 팬들이 많을 법 하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 중에 가장 좋은 평을 얻고 있는 〈레지던트 이블〉도 3편을 선보인다. 역시 속편을 강력하게 예고한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의 엔딩에서 아직 풀리지 않았던 다국적 군산복합체 엄브렐러의 비밀이 속속 드러날 예정. 원작 게임과 핵심 이야기를 공유하고, 미묘한 선을 지키며 진행하는 〈레지던트 이블〉의 전편을 생각할 때 이번 작품도 여전히 비슷한 노선을 지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겠다. 팬들에게는 〈레지던트 이블: 아포칼립스〉에서 등장한 질 발렌타인(시에나 길로이)이 최신작 〈레지던트 이블: 멸종〉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쉬울 듯. 게임판 1과 3의 주인공으로 인기 캐릭터였던 질 발렌타인은 〈레지던트 이블: 멸종〉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게임판 2편에서 여주인공으로 등장했던 클레어(알리 라터)가 등장하니 아쉬움을 반가움으로 벌충할 수 있을 듯 하다. 게다가 캐스팅 리스트에는 인기 가수 아샨티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편이 모두 흥행에 성공한, 헐리웃 성룡영화의 대표작 〈러시아워〉도 올 여름 세번째 시리즈를 공개한다. 무대를 파리로 옮긴 최신작에서도 여전히 입담 쎈 크리스 터커와 성실하지만 날랜 성룡의 버디 액션을 볼 수 있다. 감독은 여전히 〈러시아워〉를 출세작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브렛 래트너가 맡았고, 파리로 무대를 옮긴 만큼 유럽계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다. 익숙한 얼굴이라면 〈엑소시스트〉의 메린 신부 막스 폰 시도우나 스필버그의 〈뮌헨〉같은 헐리웃 작품에도 출연한 이반 아딸 같은 배우 정도. 특이하게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 배우로 투입되었다.
예고편을 공개하며 다시 한 번 골 때리는 동화의 세계로 안내할 〈슈렉〉도 세번째 시리즈를 여름에 공개한다. 전편에서 슈렉에게 패배를 당했던 챠밍 왕자의 음모로 왕국이 위기에 빠지고, 언제나처럼 슈렉과 피오나 공주와 당나귀가 이들을 물리친다는 이야기. 포복절도하는 센스의 유머와 패러디를 확인하는 것은 예고편으로도 충분한 수준이다. 주인공이 그렇다는 것은 마이크 마이어스 ? 카메론 디아즈 ? 에디 머피 삼인조가 여전히 목소리를 맡는다는 뜻이고, 전편에서 활약한 고양이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기품있는 목소리의 왕비 줄리 앤드류스도 이어서 목소리를 출연한다. 챠밍 왕자가 음모를 꾸미는 만큼 〈슈렉 2〉에서 목소리를 맡았던 루퍼트 에버렛이 다시 챠밍한 목소리를 내는데 덧붙여 〈슈렉〉시리즈의 센스다운 목소리 캐스팅이 최신작에 추가된다. 귀에 띄는 목소리는 명MC 래리 킹과, 아티 왕자 역을 맡는 카메론 디아즈의 (옛) 연인 저스틴 팀버레이크.
장수 시리즈, 다시 한 번
확실히 3편이 많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장수 시리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제임스 본드가 없는 올 여름 가장 숫자 카운트가 큰 작품은 메가히트 원작 소설을 따라 다섯번째 편을 내놓는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아이들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원작 자체도 점점 어둡고 격렬한 이야기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여전히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 외적으로는 한층 아름다워지고 있는 헤르미온느가 화제. 부활한 볼드모트와의 일전을 벌이는 최신작에는 전편에서 볼드모트로 등장해 카리스마있는 악마를 묘사한 레이프 파인즈가 포스터 전면에 나서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를 대변한다. 호그와트의 교수진과 해리 포터의 친구들은 시리즈에서 익숙한 얼굴 그대로인 반면에 벨라트릭스 역으로 투입된 헬레나 본햄 카터는 새롭게 모습을 보이고, 원작소설처럼 한층 발전하는 해리 포터의 연애담 탓에 초 챙 역을 맡은 케이티 륭은 이번에 훨씬 모습을 오래 보여줄 예정이다.
그 뒤를 따르는 작품은 12년만에 네번째 영화로 돌아온 〈다이하드〉시리즈의 최신작 〈자유롭게 살거나 어렵게 죽거나Live Free or Die Hard〉. 죽도록 고생하다 사건을 해결하는 존 맥클레인 형사로 브루스 윌리스가 출연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예고편을 통해 드러난 맥클레인은 이전 세 편과는 다르게 노련한 프로 같은 여유가 표정에 묻어있다. 시간이 흐르기도 했거니와, 첫편을 만들고 세번째 편을 감독했던 존 맥티어넌이 시리즈에서 빠지고 〈언더월드〉시리즈로 스타덤에 오른 렌 와이즈먼으로 감독이 교체된 까닭일 듯하다. 어쨌건 고생 끝에 구출했던 부인은 온데간데 없고 다 큰 딸이 등장할 지경이니 새로운 〈다이하드〉는 마지막 〈리셀웨폰〉과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가 될 듯 하다. 홍콩 여배우이자 〈미션 임파서블 3〉에서 매혹적인 각선미를 선보인 매기 Q가 출연하는 점이 특이사항.
청춘을 앞세운 시리즈
제시카 알바를 앞세운 가볍기 짝이 없는 〈판타스틱 포〉도 여름에 두번째 작품을 내놓는다. 초능력을 얻고 영웅이 된 후, 리드(요안 그루퍼드)와 수전(제시카 알바)의 결혼식장 하늘을 가르고 지나가는 운석이 이야기의 시작. 초능력 악당 실버 서퍼가 지구를 위기로 몰아넣는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등장〉은 전편처럼 별다른 고민 없이 가볍게 원작만화를 옮긴 틴에이져 SF영화가 될 듯 하다. 캐스팅에 올라있는 전편의 핵심 멤버는 여전한데, 특이한 점은 전편에서 영웅들에게 제압당한 둠 박사(줄리언 맥마흔)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 마블 만화의 최고 레벨 악당 중 하나인 둠 박사(수많은 마블 코믹스 만화에서 겹치기 출연하기로 유명하다)가 너무 쉽게 사라져 이상하다 생각하던 차에, 속편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지구를 위기로 몰아넣을 작정인가 보다.
배우의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캐릭터의 유명세는 아쉬울 것이 없는 〈한니발 라이징〉도 있다. 한니발 삼부작 〈레드 드래건〉〈양들의 침묵〉〈한니발〉로 독보적인 사이코 악당의 문을 연 한니발 렉터 박사가 어떤 어린 시절을 보내며 만들어졌는지를 다루는 프리퀄 성격의 영화. 당연히 앤소니 홉킨스가 연기하는 한니발 렉터를 볼 수는 없지만 영화의 마지막 쯤에는 깜짝 출연 형식으로 그림자라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하게 하기도 한다. 영화 공개에 때를 맞추어 소설도 공개한 만큼, 원작자인 토마스 해리스가 각본을 직접 썼고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스텝포드 와이브즈〉로 기품있는 영화를 만드는 실력을 보여준 피터 웨버가 감독을 맡았다. 젊은 렉터 역을 맡은 배우는 프랑스인 가스파르 울리엘로 한국에서는 장 삐에르 주네의 〈인게이지먼트〉에서나 얼굴을 볼 수 있는 신인이지만, 무라사키 부인으로 등장하는 공리가 부족한 렉터의 2%를 메워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올 해, 속편이 많기도 하다. 익숙한 얼굴은 여전히 반갑지만 식상할 수도 있을 터, 익숙함만큼이나 흥미롭게 만들어서 재미있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