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대종상 ‘흑역사’를 들춰보면 그러하다. 70~80년대 충무로에는 외화수입을 제한하는 외화수입쿼터제가 있었다. 국내영화보다 외화가 더 돈이 됐던 그 시절, 외화를 수입할 수 있는 쿼터를 따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제작하거나, 영화제에서 상을 타거나. 쿼터를 받기 위한 수입사/제작사들의 경쟁이 치열했다. 대종상 입맛에 맞춘 영화들이 양산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때, 대종상을 둘러싼 로비 의혹이 불거진 것도 이때부터다.
대중의 뇌에 깊이 각인된 건, <애니 깽>사태다. 1996년 대종상은 개봉도 하지 않은 영화 <애니 깽>에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몰아주며 추문의 대상이 됐다. 2000년에는 한 신인 배우가 뒷돈을 대고 대종상 신인상을 챙겼다. 권위는 타락하고, 공정성을 설 자리를 잃었다. <해운대> <내 사랑 내 결에>의 하지원 대신 장나라가 미개봉작 <하늘과 바다>로 여우주연상 후보에 등극했던 지난 2009년에도 논란은 가문의 저주처럼 대종상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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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가 상 받을 자격이 없는 영화라는 소리는 아니다. <광해>의 독식이 치명적인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분배를 했다면, ‘나눠먹기’라는 비판이 제기됐을 게다) 다만 영화를 바라보는 대종상의 안목과 취향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엔 구린 뒷맛이 남는다는 게, 함정이다. 필자는 <광해>가 받은 15개의 상 중, 일부는 대종상의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선택이라 생각한다. <광해>의 천만관객 기록 뒤엔 할리우드 영화 <데이브> 표절 논란이 있었다. 그런 영화가 시나리오상과 기획상을 받았다. <광해>를 <데이브>와 비교하며 의문을 제기했던 대중은 순식간에 의심쟁이가 돼 버렸다. 류승룡의 남우조연상 수상도 기꺼이 환영한다. 다만, 어쩌면 그는 <광해>보다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상을 받는 게 더 그럴싸해 보였을 수 있다. 시각 차이는 있겠으나, 류승룡의 배우적 가치를 발견해 준 건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장성기라 생각하니까.
물론, 가장 큰 피해는 <광해>일지 모른다. 실제로도 그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러니까 <광해>로서는 가만히 있다가 논란의 주역이 된 셈이다. 담임이 티 나게 편애하는 바람에 왕따 당하는 꼴이다. 부모가 대기업 간부(CJ엔터테인먼트)라는 사실 때문에 미운 털 박힌 격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대종상이 <광해>의 ‘지능적 안티’가 돼 버렸다. 먼 훗날 제49회 대종상영화제를 영화로 만든다면, 엔딩 크리딧은 다음과 같지 않을까. 제목-<광해> 밖에 난 몰라, 제작/감독/각본-대종상영화제조직위원회, 주연-<광해>와 CJ 엔터테인먼트, 조·단역-최민식 안성기 황정민 임수정 이하 충무로 영화인들. 아, 시상식 도중 말없이 퇴장한 <피에타>의 김기덕 감독은 특별출연쯤 되려나.
2012년 10월 31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