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영화에 대한 팀 버튼의 애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시기상으로는 <에드 우드>에서 그 흔적을 제일 먼저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팀 버튼이 에드 우드에게 매료된 이유가 영화의 방법론이나 정서뿐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사상 최악의 감독이라 불리는 에드 우드의 인생에 통째로 감정이입을 했고, 말하자면 그를 소년 같은 순수함의 상징으로 삼았던 게 아닐까. 그러니 우리가 <에드 우드>에서 보는 에드워드 우드는 팀 버튼의 프리즘을 통해 다시 그려진 별자리다. 자신의 세계에 과하게 빠진 에드의 캐릭터는 <프랑켄위니>의 빅터에도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는 듯하다.
<에드 우드>에서 두드러지는 건 에드와 벨라 루고시의 관계다. 재미있는 건 <드라큘라>로 유명한 루고시가 <프랑켄슈타인>으로 스타가 된 보리스 칼로프와 라이벌―물론 미디어가 만든 허상도 한몫 했겠지만―관계였다는 것이다. <에드 우드>를 보면 영화 스태프가 칼로프의 이름을 언급하자 루고시가 버럭 성을 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프랑켄슈타인 따위 특수촬영만 있으면 되지만, 드라큘라는 연기력이 필요한 거야!” 루고시를 연기한 배우는 생전의 그와 정말로 흡사한 외모를 지닌 마틴 랜다우였는데, 그는 <프랑켄위니>에서 과학교사 리지크루스키 역을 맡으며 팀 버튼과 다시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갈매기 눈썹의 여배우 역을 맡은 리사 마리는 한때 팀 버튼의 연인이었다.
|
그로부터 2년 뒤인 1984년 만든 작품이 바로 <프랑켄위니>의 원안이 된 동명의 30분짜리 단편이다. 당시에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였는데, 지나치게 암울하다는 이유로 디즈니와 배급 문제로 마찰을 겪었다. 이런 관계를 돌이켜보면 팀 버튼이 거물이 된 후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디즈니를 통해 소개된 점, <프랑켄위니>의 배급사 역시 디즈니라는 점은 호사가들에게 꽤 재미있는 아이러니다.
팀 버튼이 2000년대에 만든 영화들―<스위니 토드> <다크 섀도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의 상상력을 오버클록으로 확장한 거라면, <프랑켄위니>는 그 상상력이 출발한 정신적 창고의 문을 열어젖히고, 그 안에 든 것들을 끄집어내 한데 모아놓은 완전체에 가깝다. 비교하자면 앞에서 말한 <가위손>이나 <비틀쥬스>, <크리스마스의 악몽>과 같은 노선이다.
|
사실 <프랑켄위니>를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들 데리고 이 영화 보겠다는 부모가 있다면 말리고 싶어진다. 외양에서부터 암울함이 비어져 나오는 캐릭터들은 마치 그의 우화집 <어느 우울한 굴 소년의 죽음>에서 입체화되어 튀어나온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가 정상적인 성장담이 되려면 ‘소년이 상실과 죽음에 대해 배우는’ 결말로 끝났어야 하지 않을까. 이 영화는 얼핏 보편적인 해피엔딩인 것 같지만, 그런 상실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소년의 뒤틀린 꿈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전에 이명세 감독은 “영화란 영원히 영(young)한 게 영화”라고 말했다. 팀 버튼이 그렇다. 그래서 <프랑켄위니>의 결말은 슬프고 기괴한 구석이 있다. 결코 자라지 못하는, 빅터 아버지의 대사대로 “어른들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영원히 이해하지 못하는 우울한 소년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에.
P.S
|
2.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이고, 괴물은 별다른 이름 없이 그냥 ‘괴물’로 불린다. 그러나 속편까지 인기가 이어지면서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의 이름처럼 잘못 굳어져버린 것이다. 3. 빈센트 프라이스의 트레이드 마크는 공포영화에 딱 어울리는 목소리였다. 그 유명한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에서 그의 음산한 내레이션과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4. 단편 <프랑켄위니>에는 반가운 얼굴이 두 명 등장한다. <네버 엔딩 스토리>의 주인공 바렛 올리버, 그리고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딸이며 지금은 영화연출을 하고 있는 소피아 코폴라다.
5. 이름만 보면 동구권 출신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보리스 칼로프의 본명은 윌리엄 헨리 프래트이며 영국 출신이다. 마약 중독으로 초라한 노년을 보낸 벨라 루고시와 달리, 그는 공포영화 외에도 다양한 작품에 출연하며 롱런한 배우였다. 물론 팀 버튼은 <에드 우드>에서 루고시의 그런 노년까지도 아름답고 감상적으로 담아냈지만.
2012년 10월 18일 목요일 | 글_최승우 월간 PAPER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