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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강렬한 체험.. 박쥐
ldk209 2009-05-07 오후 5:52:30 1425   [8]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강렬한 체험.. ★★★★


박찬욱이라는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린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의 박찬욱 감독 작품은 모두가 좋아할 영화는 분명 아니다. 그의 영화를 싫어하건 좋아하건 상관없이 어쨌거나 인정하게 되는 건 그의 이름이 붙은 작품의 영상은 매우 기괴하고 강렬하다는 것이다.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가 점점 더 깊어진다는 평가와 관계없이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어쩌면 단순할 수도 있는 이야기 - 그것이 복수이건 로맨틱 코미디이건 - 를 감싸고도는 그의 표현 방식이었다. 그건 신작인 <박쥐>에서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박쥐>가 <복수는 나의 것>이 주었던 충격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매우 강렬한 체험(!)임은 분명하다.


신부(神父)인 상현(송강호)은 이브 바이러스 백신 개발 실험에 자원해서 아프리카로 갔다가 바이러스 감염으로 죽음에 이르지만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 받아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나 여사(김해숙)는 그가 치유력을 지니게 됐다는 소문을 믿고 찾아와서 아들 강우(신하균)의 병을 고쳐달라고 애걸한다. 강우는 기도를 위해 병원에 찾아온 상현이 어린 시절 친구임을 알아보고 반긴다. 강우의 집을 드나들던 상현은 곧 그의 아내인 태주(김옥빈)에게 격정적으로 끌리기 시작한다.


<박쥐>라는 영화는 우선 다양한 장르의 혼종 영화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신부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인간의 욕망과 고뇌를 다룬다는 점으로 보면, ‘종교영화’이며, 흡혈귀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보면 ‘뱀파이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삼각관계에 의한 살인과 죄의식을 다룬 ‘스릴러 영화’이기도 하며, ‘팜므 파탈 영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괴한 유머가 있는 ‘블랙 코미디 영화’로 이해할 수도 있으며, 무엇보다 진한 ‘멜로 영화’로서의 관람도 가능하다. 그런데 <박쥐>가 놀라운 건 그 중 어떤 하나의 장르로 영화를 평가해도 최상급의 수준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영화의 혼종 장르적 성격은 영화의 무대가 되는 ‘행복한복집’의 무국적 상황(한복, 트로트, 마작, 보드카, 그리고 나중엔 서양식 생활까지)과도 연결된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에 드리운 건 ‘딜레마’에 처한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들이다. 어떠한 자살도 죄라고 생각할 정도로 원칙에 충실하지만 자신의 주위에서 계속 일어나는 죽음의 상황에 지친 신부 상현이 아프리카의 백신 개발에 지원하는 것 자체가 딜레마의 상황이다. 아프리카 의사가 말했듯이 순교와 자살은 명백히 구분하기 힘들기 때문이다.(나는 상현이 일종의 실험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부인 상현이 뱀파이어가 된 상황 자체가 가장 큰 딜레마이다. 그럼에도 그는 식물인간의 피를 빠는 등 살해를 피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상현이 사랑하게 되는 태주(김옥빈)는 가슴에 뜨거운 욕망을 품은 여인이나, 자신을 만족시켜 줄 수 없는 남편 강우(신하균)와 남편만 감싸고도는 시어머니(김해숙)로 인해 마치 시체와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물론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남편의 주위 남자들에게 풀었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안정된 삶을 제공하는 현실과 그곳에서 탈피해 자유롭게 비상하고 싶은 그녀의 욕망은 날카로운 칼처럼 발밑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지옥이라고 생각해서 탈피한 현실 밖도 여전히 지옥이다. 뱀파이어의 피를 수혈 받고서라도 앞을 보고 싶은 상현의 아버지와도 같은 노신부(박인환)이나 아내를 사랑하지만 사랑해 줄 수 없는 육체를 지니고 있는 강우 역시 딜레마에 처한 인간 군상들이다.


그런데, 박찬욱 감독은 아마도 이 영화가 현실로 받아들여지길 원치 않은 모양이다. 시종일관 <박쥐>는 마치 ‘나는 현실이 아니야. 그저 영화적 상상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우선 배우들의 연기는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뛰어나지만, 하나같이 연극적으로 약간 과장된 듯 대사를 읊조린다. 거기에 이 영화엔 극히 필요한 인원 외에는 소거되어 있다. 무슨 말이냐면 ‘행복한복집’엔 손님이 없고, 주위에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거의 없다. 영화 내내 약 2~3명의 사람만이 한복집 앞을 지나가며 그것도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고 유리창에 비친 모습 등으로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태주가 뛰어다니는 새벽에 그곳을 지나는 사람은 전혀 없고, 심지어 상현이 가로등을 넘어 뜨려도 창문을 열고 내다보는 사람 한 명 없다. 다른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상현과 태주가 지붕과 지붕을 뛰어다니는 장면은 거의 정물화처럼 보인다. 이것이 가지고 온 효과는 두 가지라고 보이는데, 우선 잔가지를 없앰으로서 영화에 집중하게 만든다는 것이고, 둘째는 현실이 아닌 판타지로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즉, 이 영화는 판타지다.


예고편에서부터 대단히 밀도 높은 영화로 다가왔던 <박쥐>는 의외로 대단히 유머러스하고 재밌다. 물론, 일부러 웃기기 위한 장면은 없다. 그럼에도 객석에선 끊임없이 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그 웃음의 느낌은 묘하다. 웃으면 안 되는 장면인데도 웃을 수밖에 없는 그런 모호한 상황. 즉, 딜레마적 웃음이다. 근엄한 표정의 신부가 “당근이죠”라고 말한다거나, 뱀파이어임을 알고 무서워하는 태주를 설득하는 화장실 장면(대사의 리듬이 대단히 뛰어나다), 그리고 맹인인 노신부가 상현에게 자신의 팔을 내밀며 “드세요”하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유머감각이 상당히 탁월함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박쥐>엔 혀를 내두를 만한 기막힌 세 장면으로 인해 인상 깊은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첫 번째는 영화의 거의 정중간에 등장하는 태주의 죽음과 부활(!) 장면이다. <박쥐>의 흡혈 장면은 기존 뱀파이어 영화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기존 뱀파이어 영화의 흡혈장면이 마치 일종의 장치, 모양, 꾸밈에 가깝다면 <박쥐>에서의 흡혈장면은 생존의식과 결부된다.(정말 먹고 살기 위해 빤다) 그런 모습과 관련해 <박쥐>에선 여러 차례 순환구조(불교에서의 환생 또는 현재 삶의 다음 생애)와 관련한 장면들이 등장한다. 현상현이라는 이름 자체가 순환적인데, 상현은 태주의 발을 빨고, 태주는 상현의 손가락을 빤다. 그리고 상현과 태주는 서로의 손목에서 흐르는 피를 빨아들임으로서 그 순환구조를 완성하며, 태주는 기괴한 미소로 부활하였음을 선언한다. 상현이 “해피 버스데이, 태주씨”라고 말할 때, 등골에 흐르는 짜릿함은 이후의 파국을 예고하는 듯하다. (다음 생을 믿는 상현과 “죽으면 끝”이라며 말하는 태주의 입장은 상반된다)


두 번째는 식물인간으로 지내는 나 여사가 눈빛과 손가락만으로 아들을 죽인 범인을 지목하는 장면에서다. 이 장면에 이르러서야 왜 마작이 영화에서 선택되었는지 알 수 있다. 상현이 “안 그래도 어머님 때문에 다 죽게 생겼어요”라고 농담을 건넬 때조차 긴장은 떨어지지 않는다. 태주가 “마작하다보니 오빠 생각났구나”라며 나 여사의 시선을 훔치는 장면은 대단히 드라마틱하며, 한국말을 거의 모르는 이블린의 비명은 그런 소름끼치는 긴장감이 부여한 파국의 예고편이다. 당연하게도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관객이 이 장면에서 서스펜스를 느꼈다고 한다면 그건 마작을 위해 모인 세 명이 어떤 끔찍한 운명을 맞게 될 지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장면이 인상 깊은 건 살고자하는 태주의 몸부림이 아무런 대화 없이 몸짓으로 처리되는 과정 자체가 그 절박함과는 별개로 유머러스한 분위기를 풍김으로서 묘한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다. 매우 절박하고 슬픈 장면인데, 웃음은 나고, 맘대로 웃기엔 어쩐지 꺼림칙하고, 그러다가 느닷없이 흐르는 처연한 분위기는 관객을 약간은 벙찌게 만든다. 물론 난 그러한 반응 자체를 박찬욱 감독이 충분히 예상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뱀파이어라는 설정을 빼놓는다면, <박쥐>는 ‘사랑과 전쟁’의 잔혹 버전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로 뻔하다. 불륜, 범죄, 죄의식, 파국으로 이어지는 경로. 그런데 그런 뻔한 얘기에 박찬욱식 디자인이 플러스되는 순간, 영화는 전혀 다른 색깔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것이 박찬욱의 힘이다.


※ 송강호, 김옥빈, 김해숙, 신하균 등 모든 출연 배우들의 연기는 말 그대로 출중하다. 다른 배우들이 그 동안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 왔다는 점에서 김옥빈의 연기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앞으로 김옥빈이 어떤 역할로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녀의 연기 인생에서 <박쥐>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길 것이다.


※ 예기치 않게, 이틀 연속 <박쥐>를 관람하게 되었다. 첫날은 직장인들이 많은 시네마 정동에서, 둘째 날은 대학생들이 많은 대학로 CGV에서 보았다. 그런데 반응이 상이하다. 직장인들이 상대적으로 조심스럽고 약간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었던 반면, 대학생들의 반응이 좀 더 적극적이었다. 어쩌면 박찬욱식의 독특함이 기성세대보다는 신세대에게 더 어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총 2명 참여)
zoophi
저도 보고싶네요   
2010-02-01 22:00
ekduds92
ㄳ   
2009-12-16 23:33
prettyaid
잘읽었어요^^   
2009-06-19 17:13
powerkwd
기회가되면 볼께요~   
2009-05-26 22:51
karamajov
2번째 문단 이동진 기자 리뷰에서 통째로 복사해서 붙여넣기하셨군요. 물론 줄거리부분이긴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요?   
2009-05-15 00:45
kdc98
굿   
2009-05-12 10:58
1


박쥐(2009, Thi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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