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게 말이다.(웃음) 그런데, 뭐. 예전부터 그랬으니까. 내가 남자 중학교, 남자 고등학교 출신인데, 대학도 경호학과를 나왔다. 그 다음에 해병대, 전역 후에는 남자들이 득실거리는 액션스쿨을 다녔고.(웃음) 자연스럽게 남자들이 훨씬 편하다.
남자들 세계엔 그만의 룰이 있지 않나? 남자집단에 오래 있다 보니, 그 세계에서 만큼은 남들보다 상황 파악이 빠를 것 같다. 일찍이 룰을 터득했다고 할까?
그럼.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느 자리에 가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많이 달라진다. (언제가 가장 정석원답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친구들 만날 때겠지. 선배들 만나면 엄청 딱딱해진다. 운동하는 사람들 특징인데, 주위에서 아무리 “편하게 해” 이래도 긴장모드 유지다. 처음 연기 시작할 때, 선배님들이 그걸 되게 신기해하더라. 인사할 때는 “(군인 말투로)안녕하십니까!” 딱딱하게 하고, 밥 먹을 때는 숟가락을 다 세팅하고 했거든. 그런데 여자 선배님들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여기는 군대가 아니라며. 그렇게 하면 바보 취급당한다는 얘기도 하더라.
그나마 여자들이 많은 공간에 있었던 건, 언제인가?
연기하고 나서? 고등학고 때, 가끔 미팅을 나가면 말 한마디 못했다. 쑥스러워서. 액션스쿨 다니면서 여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그때부터 여자를 대하는 게 조금 편해졌다. 그 전에는 여자를 만난다고 해도 말이 별로 없으니까, 금방 차이고.(웃음) 실제로 나와 사귄 여자들은 모두 먼저 다가오고, 먼저 떠났다. 맨 날 운동 하러 간다고 하고, 말수도 적으니까 재미가 없었겠지. 친구나 가족과 있을 때는 과묵하지 않은데, 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연애경험이 연기에 도움이 된다는 말도 있지 않나.
처음 멜로연기를 한 게, 드라마 <인연만들기>에서다. 연상의 미혼모 윤희(김정난)를 사랑하는 사진작가 역이었는데, 사랑해 본 경험이 많지 않다보니 감정 표현이 쉽지 않더라. 그때 선배들에게 그 비슷한 말을 들었다. “연기를 하려면 사랑도 많이 해 보고, 연애도 해 봐야 한다”는 말. 다행히 김정난 누나에게 많이 배웠다. 나중에는 기분이 묘해지는 느낌도 받았다니까.(웃음)
장서희씨와 호흡을 맞춘 <사물의 비밀>은 어땠나? 이번 전주국제영화에서 처음으로 공개되는데, <인연만들기>에 이어 또 한 번 연상연하 커플을 연기한다.
두 남녀의 사랑을 사물에 초점을 맞춰 그려낸 블랙코미디다.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이 많은 영환데, 첫 멜로 영화가 아닌 게 도움이 됐다. 이제는 사랑이 뭔지 조금은 알겠더라고.
이별의 감정. 사실 전에는 “나는 이별을 해도, 아무렇지 않을 거야” 했었다. 그런데 막상 헤어지고 나니까, 그게 아니더라. ‘슬픈 영화를 보면 다 내 애기 같다’는, 그런 말들이 이해가 됐다. 그러면서 내 안에 내공이 쌓이는 걸 느꼈다. 물론 연기에 접목시키려고, 이별을 하면 안 되겠지만 그런 간접 경험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내 무덤 파는 발언인가?(웃음) 요즘 내가 이렇다. 예전에는 생각의 90%가 운동이었는데, 지금은 연기 생각이 대부분이다.
처음부터 연기에 욕심이 많았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렇게 된 터닝 포인트가 있나?
처음에는 연기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스턴트 하다가 현장에서 단역 캐스팅이 된 거였는데, “연기가 왜 이래?”하는 말에 자존심이 상하더라. “액션 하러 온 사람한테 연기시켜 놓고는, 왜 못 한다고 혼을 낼까” 싶었던 거지. 그러면서 조금씩 오기가 생기고, 관심이 생기고, 카메라 욕심이 생겼다. 주위 선배들이 “오~ 정배우”라고 해 주는 것도 재미있었고. 이후, 드라마 <워킹맘> <맛짱> 등을 통해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사는 세상> 촬영차, 송혜교 선배와 싱가포르에 간 일이 있다. 두들겨 맞는 씬을 찍으려고 기다리는데, ‘여기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겠다’는 마음이 갑자기 들어라. 그래서 무술 감독님에게 “(조심스럽게)감독님, 발차기 하나만 해도 되나요”했는데, 바로 “네가 뭔대?” 이러시더라.(웃음) “(더 작아진 목소리로) 저… 서울액션스쿨 15기 출신인데….” 이러니까, 그제야 흔쾌히 “아~ 그래?” 이러면서 기회를 주셨다. 그런 게 있다. 스턴트맨들 사이에서는 서울액션스쿨이 서울대학 같은 느낌이.
그건,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를 보면서 느꼈다. 서울액션스쿨은 들어가는 것 자체가 경쟁이던데. 오디션도 봐야 하고, 경쟁률도 높더라.
맞다.(웃음) 자부심이 있지. 아무튼, 덕분에 현장에서 발차기도 하고 이것저것 능동적으로 보여 줄 수 있었다. 표민수 감독님이 그 모습이 마음에 드셨는지, “대사 한마디 해 본 적 있냐?”고 물으시더라. 순간 ‘잘만 하면 기회가 올 수 있겠다’는 감이 왔다. 내가 직접 무술 합도 짜고 더 열심히 했지. 새벽 3-4시까지 촬영을 했나? 감독님이 “됐어요, 충분해요” 이러시는데, 내가 나서서 “감독님 안 돼요! 다시 가야 해요!” 이랬다.(웃음) 그 때는 무슨 깡이었는지,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액션만 들어가면 눈에 뵈는 게 없던 시절이었다.
(웃음) 다른 일에서도 그렇게 능동적인가?
전혀. 다른 곳에서는 의기소침. 액션에서만 뭐에 홀린 것 마냥 그런다. 그 때 마침, 송혜교 선배랑 촬영한 사진이 싱가포르 신문에 실렸다. 월드스타 비로 오해를 받은 건데, 그때 ‘제2의 비’라고 해서 갑작스럽게 팬 카페도 생겼다. ‘연기라는 게, 참 재미있는 거구나’를 그 때 느꼈던 것 같다.
그러게 말이다. (매니저 부르며)내 핸드폰 줘봐~. (비와 함께 찍은 사진 보여주며) 형과 있으면 참 즐겁다. 형이 “쌍꺼풀 없는 게 대세야, 그지?” 그러면, 내가 “그럼요, 형님이 쌍꺼풀 없는 시대를 안 만들어줬으면 지금 저는 이 자리에 없었겠죠” 이런다. 서로 이러면서 논다.(웃음) 현장에서 둘이 형제라고 불리는데, 형이 “너 같은 동생 있으면 정말 좋겠다”는 말을 해 주더라. 둘 다 빵을 좋아해서 남들 자는데, 몰래 군것질 하러 나가기도 하고, 촬영장 가는 게 재미있다.
<레드 머플러> 촬영은 얼마나 진행됐나?
총 80-100회 차를 예정하고 있는데, 어제 19회 차를 찍었다. <오션스 11> 같은 느낌의 영화다. 그러니까, 비형이랑 세경이가 메인 주인공이긴 한데, 나머지 인물들에게도 다 에피소드가 있다. 우리나라 영화로 치면, <해운대> 같은 느낌? 내 역할은 <해운대>의 이민기 정도 된다.(웃음) 최민호 중사라고, 임팩트 있는 역할이다.
<마이더스>도 촬영 중이다. <레드 머플러>와 병행하느라 힘들진 않나.
예전에 <사물의 비밀>이랑 <닥터챔프>을 동시에 했었는데, 엄청 힘들었다. <닥터챔프>가 초반에는 안 그랬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쪽 대본으로 바뀌었다. 촬영이 거의 생방송 수준이 된 거지. 당장 방송에 나가는 걸 찍어야 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영화 쪽에서 그걸 다 이해해 줄 리가 있나. 특히 장서희 선배가 난리가 났다. “네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이 이러면 어떻게 하냐”고.(웃음) 그때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또 영화 촬영현장은 부산이고, 드라마는 탄현이라 서울과 부산을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차 안에서 매니저는 전화로 스태프들과 계속 싸우고, 나는 나대로 스트레스 받고, “다시는 겹치기 안 한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사실 <레드 머플러>는 안 하려고 했었다. “힘들어서 못 한다”고 정중히 거절도 했고. 그런데 미팅 자리에서 <레드 머플러> 감독님께 완전히 설득 당했다. 감독님이 “비랑 신세경 유준상 스케줄을 맞추는 게 아니라, 너 스케줄을 맞춰줄게, 그러니까 하는 거다! 빨리 말해! 하는 거다! 알았지?” 이러시는 게 아닌가. 결국 하게 됐는데, 기대 이상이다! 안 했으면 후회했을 정도로. 그리고 사실, <마이더스>에서의 내 분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출연 부탁을 받고 들어간 거라, 기대를 했었는데 아니더라. 그것 때문에 처음에는 섭섭하기도 했다.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이다. 덕분에 영화도 편하게 할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그래도 <마이더스>로 많이들 알아보지 않나?
음… 사실 그것 때문에 더 아쉬웠던 거다. <찬란한 유산>에서 이승기 친구 진영석으로 나올 때도 지금만큼은 알아봐 주셨다. 버스타면 아줌마들이 “진영석 아니냐”고 물어봐 주실 정도로. 물론 <찬란한 유산> 시청률이 47%나 됐으니까, 가능했겠지. <닥터챔프>때도 비슷했다. 많이들 알아 봐 주셨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났던 거다. 이게 종이 한 장 차이이긴 한데, 뭔가 더 보여주고 싶은 게 생긴 거지.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
맞다. 김희애 선배를 짝사랑하는 모습이나 로맨스가 있었으면 조금 더 좋았을 텐데. 그런데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사물의 비밀> 이전에 <짐승>이 작년 5월 개봉 예정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다가 개봉이 미뤄졌는데, 실망하진 않았나?
실망할 시간도 없었던 게, 작품 때문에 많이 바빴다. 물론 <짐승>은 첫 주연작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이 가는 작품이다. 다행히 완성본을 봤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테이큰> 같은 느낌도 들고. 지루함이 없었다.
<짐승>은 특수부대 출신의 한 남자가 납치된 여동생을 구하는 이야기다. 콘셉트가 <아저씨>랑 많이 비슷하다.
아닌 게 아니라, <짐승>과 동시에 촬영을 시작해서 끝난 게 <파괴된 사나이>와 <아저씨>다. 세 영화 모두 콘셉트가 비슷하지. 당시 “<파괴된 사나이>가 7월에 개봉하고, <아저씨>가 8월 개봉이니까, 우리는 9월에 하자” 그랬었다. 그러고 나서 <파괴된 사나이>를 먼저 봤는데, 솔직히 “이건 문제없겠다!” 싶었다.(웃음) 그런데 <아저씨>를 보고, “헉!”했지. <아저씨>는 액션도 액션인데, 감동이 있더라. 원빈 선배님과 꼬마 아이의 감정도 너무 좋고. 그에 비해 우리 영화는 사람 구하는 데에만 급급하다. 감정은 별로 없고.(웃음)
본인 영화를 굉장히 객관적으로 평가하네?
아무리 내가 나오는 영화라도 객관적으로 보는 편이다. 우리 영화라고 무조건 “와~” 하지는 않는다. 물론 <짐승>만의 장점도 있다. 일단 액션 만큼은 최고다!(웃음) <아저씨>를 총 5번 봤다. 보면서 모니터를 했는데, 원빈 선배 액션은 기술의 도움을 받은 부분이 많다. 카메라 기법이랑, 음향 효과가 원빈 선배 액션을 조금 더 멋지게 해준 거지. 어디가 진짜이고, 페이크(fake)인지도, 스턴트맨들은 보면 다 알 수 있다. 그에 비해 <짐승>은 카메라 움직임이 거의 없다. 대부분이 풀 샷이다. 좋은 그림도 많다. <달콤한 인생>같은 그림이 있고, <추격자>같은 그림도 있고. 다만! 단편 영화 같은 그림도 있다는 거.(웃음) 그게 아쉬운 거다. 하나의 색깔로 쭉 가야 하는데, 저예산이다 보니 그게 들쑥날쑥 하다. 그래도 만족한다. 그런 상황에서 기대 이상의 결과물이 나왔다. <짐승>은 올해 부천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영화를 300번 봤다는 감독님은, 볼 때마다 너무 재미있었다고 하더라. 나는 아직 완성영화를 못 봐서 모르겠는데, 시나리오 봤을 때는 “이거 대박이다!” 싶었다. 정말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덕분에 많은 여자배우들이 관심을 가진 걸로 알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김선아, 김혜수, 전도연, 김남주 이런 선배님들이 대부분 ‘반 오케이’ 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장서희 선배님이 하게 된 거고. 사실 처음에는 이미연 선배님이 거의 확정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상대역이 돼서 실망을 하셨는지..(웃음) 감독님이 고집이 있으시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나 보더라.
많은 여배우들이 관심을 보였는데, 석원씨 개인적으로 함께 하고 싶었던 배우는 없었나?
어느 분이든 나야 너무 감사한 상황이지. 그런데 그 시나리오가 이미숙 선배에게까지 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땐, “(소리 높여)악~ 이거는!” 이랬다.(웃음)
스턴트맨 할 때도 그랬고, <레드 머플러> <사물의 비밀>에서도 그랬고, 사람들이 먼저 관심을 가져줬다. 주목받는 스타일인가 보다.
안 그래도 어제 오달수 선배님과 정경호 선배님이 그런 얘기를 해 주시더라. 나보고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띄게 됨을 이르는 말이라는데, 듣는 순간 너무 기분이 좋아서 마시지 않는 술도 막 마셨다. “막걸리 한 잔 주십시오!” 이러면서.(웃음)
학창 시절에는 어땠나?
학창 시절에는 총대를 많이 잡았던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체육부장을 놓쳐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하겠다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시켜주더라. 군대 가서도 조교를 했고. 덕분에 통솔은 잘 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게 연기하면서 완전히 쪼그라들었지.
여러 가지 운동을 했다고 들었는데, 가장 먼저 한 운동이 뭔가?
초등학교 때, 육상. 보통 육상부는 5-6학년이 돼야 하는데, 나는 3학년 때부터 100미터랑 멀리뛰기를 했다. 기록? 초등학교 때는 잘 기억 안 나고, 고등학교 때 11초 중간 정도로 뛰었다. 달리기에서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다. 전국대회에 나가서 상도 타고. 그런데 부모님이 운동하는 걸 심하게 반대하셨다. 공부를 시키려고 하셨거든. 어느 정도였냐면,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명상을 해야 했다. 그 다음에 책을 30분 읽고, 예습 복습을 하고, 그러고 나서 학교에 가는 거지. 그것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 어린 아이가.(웃음) 마음은 자유롭고 싶은데, 총도 못 가지고 놀게 하고, 욕도 못하게 하고. 오락실에 갔다가 들키는 날엔, 뒤지게 맞는 거다.(웃음)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한 게, 중학교 2학년 때다. 어릴 때 내가 싸움을 많이 했는데, 오기가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아이에게 발차기를 크게 맞은 후에, “뭔가를 해야 겠다”싶어서, 부모님이 준 학원비를 ‘삥’ 뜯었다. 그걸로 체육관을 등록한 거지. 다니다가 걸려서, 또 엄청 혼났다. 부모님이 “깡패 하려고 이러냐”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대회 나가서 상도 타고, “운동으로 대학 갈 겁니다” 어러니까, 그 때부터 지원을 해 주시더라. 학원비도 대주고.
말했듯이 구속이 너무 심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일에는 굉장히 노력하는 스타일이다. 새벽 6시에 일어나서 산 뛰고, 레슬링 선수랑 운동 하고, 체대 입시 운동하고, 또 합기도 하고. 거의 국가대표 수준으로 운동만 했다. 부모님이 그런 모습이 조금 기특했나보다. 조금씩 믿어주기 시작했다. 또 부모님이 “집에서 돈 얻어 갈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정말 집에 손 벌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생활비가 없어서 10만원 꾼 적은 있지만, 바로 갚았고.(웃음) <찬란한 유산>할 때까지만 해도, 버스를 타고 다녔다. 반면, 연기를 한다고 했을 때는, 엄청 웃으시더라. “개그맨을 한다고 하면 믿겠는데, 네가 무슨 연기냐!”그러면서. 지금은 TV에 나오고 하니까, 너무 좋아하시지.
개인적으로는 어떤가. 그래도 10년 넘게 무술감독을 꿈꿔 왔는데, 미련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감정은 없나?
전혀. 아깝다기보다는 꿈이 더 커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실, 무술감독의 꿈도 놓지 않고 있다. 혼자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팀을 하나 구성 할 거거든. 액션 디자인팀을. 서울액션스쿨 같은 팀을 만들어서, 멋진 액션을 디자인 하고 싶다.
이전 인터뷰를 찾아보니까, ‘짐승남’이란 수식어가 참 많더라. 오늘 보니, ‘짐승남’보다는 ‘꽃미남’ 쪽에 가깝지 않나 싶은데, 어떤 수식어가 더 마음에 드나.
‘옴므파탈’이든 ‘팜므파탈’이든,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기준이 조금 남다르다. 예를들어 내가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효리보다 수애 쪽이다. 짧은 치마를 입은 사람보다 롱 치마를 입은 사람이 더 섹시해 보이거든. 겉모습과는 다른 색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편이다. 그래서 나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짐승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천진난만한 모습도 있더라’ 하는 식의 모습들을. 틀에 갇혀 있기보다는 항상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남들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해병대 특수수색대 출신이라는 수식어, 액션스쿨 출신이라는 수식어가 현장에 가면 엄청 부담이 된다. 내가 만약 액션을 하다가 실수를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내 타이틀만 보고 이렇게 말한다. “스턴트 했다며? 스턴트 했는데 그것도 못 해?” 운전을 서툴게 해거나 술을 못 마셔도 “야, 스턴트 했다며! 해병대 나왔다며!”이러고. 그건 아니라고 본다. 해병대 나오고 스턴트맨 한 사람도 실수를 할 수 있고, 두려움도 느낀다. 그리고 나는 그곳을 강해지려고 간 게 아니라, 버텨보려고 간 거였다. ‘사람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나’를 느끼고 싶었던 거지. 다행히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음 덕분에 노력하는 자세도 배웠고. 지금도 많이 부족하다. 채워가는 중이다.
연기지, 연기! 예전에는 한국최고를 넘어 세계최고의 무술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지금은 진정한 배우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10년 후에 뭘 하고 있을지 물어보려고 했는데, 답이 이미 나온 것 같다.
연기를 계속 할 것 같다. 그런데 또 모르지. 사업을 할지도.(웃음) 아까 말한 스턴트 사업. 일반인들을 위한 게 아닌, 연기자들을 운동시키는 사업을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몸 쓰는 것도 하나의 연기다. 배우들이 연기 연습을 하듯, 액션을 하는 사람도 똑 같이 연기 연습을 해야 한다. 감정을 넣고 주먹을 치는 거랑, 그냥 치는 거랑은 아주 다르다. 화면을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그런 걸 알려주는, 연기자들을 위한 사업도 재미있을 것 같다.
2010년은 정석원 개인에게 의미있는 일이 많은 해였다. 2011년은 어떤 것 같나?
2010년은 너무 좋았다. 영화도 많이 찍었고, <닥터챔프>에서 상봉이란 캐릭터도 만났다. 상봉이를 통해 많이 느꼈고, 많이 배웠다. 그리고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정석원이라는 사람이 운동을 잘 하고, 캐릭터를 잘 소화한다고 인정해 준 게, <닥터챔프> 때다. 2010년은 배우로서 너무나 많은 걸 얻은 해지. 2011년은 지금 딱 종이 한 장인데, 그걸 깨고 싶다. 연기도 그렇고, 인지도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큰 갭(gap)이 있는 건 아닌데, 그걸 뚫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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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9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1년 4월 29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