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11월 19일 전라남도 나주시 시골 중에 시골에서 태어났다. 학교가 끝나면 부모님 농사일을 도와주는 게 하루 일과였다. 농사일이 너무너무 싫어 커서 농사는 절대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나에게 하나의 꿈이 생기고 있었다. 바로 TV 나오는 것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동네 노래자랑을 하면 아침부터 그 곳에 가서 음악이 나오고 있을 때 몇 시간을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 행동을 중학교 2학년 때까지 했다. 공업고등학교를 진학 해 또 하나의 꿈이 생겼다. 바로 백댄서. 친구 중에 춤을 굉장히 잘 추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에게 브레이크 댄스 기술을 배워서 매일매일 연습을 했다. 하지만 친구랑 싸우게 되는 바람에 한가지 기술만 터득하고 춤의 세계에서 멀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 말에 막내 이모의 슈퍼를 맡아 일을 하게 됐다. 장사가 엄청 잘되는 곳이었는데 3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내가 너무 외상을 많이 줘서 돈을 회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후배들을 장어집에 데리고 가 장어를 먹고 대신 외상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첫 사회생활에 큰 타격을 받은 나는 TV에서 엑스트라에 대해서 나오는걸 보고 그 길로 보조출연을 시작하게 되었다. 많은 연예인들을 보는 게 신기해서 정말 정말 직업을 잘 선택했다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워낙 보조출연자들이 많아서 한 달에 네 번 정도 밖에 출연을 하지 못했다. 일당 3만 5천원으로는 서울에서 생활하기 너무 힘들었다. 연예인의 꿈을 한풀 꺾고 스포츠센터에서 코치 겸 영업을 했는데 어깨 좁고 마른 나를 보면 "그 쪽이 먼저 몸을 키우셔야겠는데요" 하는 말뿐이었다. 호스트바 웨이터도 했는데 팁도 외상으로 하는 바람에 6개월을 밀려 고생만 하다가 나왔다. 그 다음으로 배달을 하게 됐는데 전에 공익근무요원 했던 곳이라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쪽 팔려서 그만뒀다. 큰 좌절과 슬럼프를 안고 있던 나는 벼룩신문을 보고 [말 타시면서 돈 버실 분]이라는 구인광고를 보고 아무 연고도 없는 제주도로 떠났다. 그곳은 새로운 곳이었다. 사람도 차도 많지 않고 어디를 가든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매일 말을 탈수 있었다. 말 타는 걸 빨리 배우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연습을 했다. 떨어지고 또 떨어졌지만 재미있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오기 때문에 사람 사귀는 것도 좋았다. 몇 달을 그렇게 살고 있었는데 친한 친구의 권유로 액션스쿨 오디션을 보게 됐다. 어렸을 때 합기도도 다녔고 사극에서 필요한 말을 탈수 있었고 왠지 멋있어 보였다. 6개월을 정말 힘들게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훈련기간 동안에 인정을 받지 못했다. 체력은 정말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다치고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나에겐 너무 컸다. 그건 스턴트맨을 절대 할 수 없는 사람의 생각이다. 그래서 난 또 그렇게 그곳도 떠나게 됐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그 곳에서의 삶은 내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