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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의 주검을 넘고 넘는 이야기꾼, < GP506 > 공수창 감독
2008년 4월 16일 수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알 포인트>만큼이나 <GP506>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낯선 외국에서 찍느라 힘들었던 <알 포인트>와 달리 <GP506> 촬영현장에서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조금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다만 촬영이 중단됐을 때 힘들었지. 이런 말하긴 뭐하지만, 마지막 컷으로 폭파씬을 찍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난 평생 우아하게 영화 찍긴 글렀나 보다라는.(웃음) 욕지거리하고 악다구니 쓰는 그런 스타일의 영화만 찍어야 되나 봐. 운명 비슷한 걸 느꼈다고 해야 하나.

<알 포인트>당시 했던 고생이 <GP506>의 불미스러운 과정을 견디는데 도움을 준 건 없었을까. 인내심을 함양시켜줬다던가.(웃음)
아무리 겪어도, 면역이나 단련이 안 되는 일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내 능력과 상관없이 벌어지는 상황을 마냥 바라봐야 했던 게 제일 안타깝고 힘들었지. 지금도 정신적인 후유증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까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에게 전우애 비슷한 위계감 같은 것도 좀 생겼나 보다.

자신의 군대 경험이 <GP506>의 모티브가 됐다고 종종 밝혔다.
아무래도 극단적인 상황은 드라마톤으로 만든 것이라 해야겠지만 군대에서 겪은 경험적인 부분들을 극화시킨 게 많다. 물론 지금 군생활 하는 젊은 친구들과 다른 건 많다. 가뜩이나 난 군사독재시절에 군대를 경험하기도 했고. 하지만 흔히 그런 얘기들 하잖아. 아무리 편해도 힘든 게 군대라고, 그런 점에서는 여전히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모티브를 얻은 건 오래 전이지만 본격적인 시나리오 집필은 1년 반 전에 이뤄진 것이라고도 했다.
본격적인 집필로만 따지면 1년 반 정도, 다만 구체적인 구상까지 포괄하면 한 3년 정도라고 보면 될 거다. 사실 모티브의 시작이 된 프롤로그는 10년 전에 써놨던 거다. 10년 전에 GP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도 그때 작성된 시놉시스 중 프롤로그만 거의 시나리오 수준으로 디테일하게 작성이 됐다. 그리고 10년 전에 썼던 그 프롤로그를 그대로 <GP506>에 썼지. 물론 그 다음 이야기들은 상황을 많이 바꿨지만 아마 그게 계속 남아있었기 때문에 지금 <GP506>을 만들게 된 건 아닌가 싶다.

그 프롤로그는 분명 연출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단지 시나리오로서의 완성만을 염두를 뒀을 텐데.
당연히 그땐 이야기를 완성하려고 했을 뿐, 연출까지는 생각을 안 했었다.

어쩌다 보니 직접 연출하게 됐다.
한번 연출을 하게 된 이상, 투자사에서 바라는 건 다음 작품에서도 연출하는 것이더라. 원래 이 이야기는 두 가지 설정으로 시작했었다. 지금 <GP506>같은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면 해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코믹한 설정의 이야기가 있었다. 남북의 현상황도 결부가 되어있는 블랙코미디 같은 느낌. 그렇게 두 가지 설정을 잡아서 제작자들을 만났었는데 제작자들은 코미디 쪽을 많이 선호하더라.

그런데 어떻게 전자를 선택했을까?
코믹한 걸 먼저 만들어버리면 <GP506>을 못 만들 것 같더라. 하드하고, 오소독스(orthodox)한 이야기를 만들고 나서도 코미디를 만들 기회는 있을 것 같아도 코미디를 먼저 만들고 정곡을 찌르는 쪽으로 가긴 좀 힘들겠다 싶어서 <GP506>을 먼저 만들었다. 농담 삼아 이게(<GP506>) 잘 되면 이것도 만들겠다는 식이지.(웃음)
군대와 코믹이란 게 은근히 어울린다. 사실 개인적으로 군대에 있을 때 내무반에 몰래 CCTV하나 달아서 외부인에게 보여주면 이거야 말로 코미디 같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웃음)
그런 것들이 많이 있지.

사실 군대라는 조직이 조폭성과 비슷한 면도 많다.
그렇지. 그 조직의 특성상.

조폭성을 희화화시키는 것처럼 군대를 희화화시킬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그 의견은 좋은 거 같다. 내가 계속 군대이야기를 하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조직에 대한, 그런 시스템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니까, 맞네. 사실 난 거기까진, 조폭과 군대를 등차 시켜서 비교해본 적은 없는데 그 얘길 듣고 생각해보니까 정말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사실 말투 자체도 기이하게 닮았다.(웃음)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원래 그게 우리 때는 안 그랬다. 내가 83년 12월에 입대해서 86년 5월 1일에 제대를 했는데 그때까지도 그랬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랬다가 정확히 언제부터 그렇게 된 건지 모르지만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부터, 이렇지 말입니다, 이런 말투들이 등장하는 것 같더라. 근데 난 영화에 그런 말투를 안 쓰려고 굉장히 많이 노력했다. 그건 자칫 잘못되면 ‘동작 그만’ 같은 코미디 프로의 느낌이 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기 설정들을 하면서 말투도 준비해온 배우들에게 내가 되려 많이 자제하길 부탁해서 처음엔 배우들이 대개 당황스러워하더라. 자기가 애써 준비해온 설정을 자꾸 커트시키니까.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비해 그런 부분들이 너무 깨는 느낌이라 주객이 전도될 것 같았다. 그래서 통제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장르를 그릇 삼으려는 의도에 부합한 결과를 얻고 싶었던 거 같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 다른 장르영화들과 <GP506>이 다른 점은 누가 범인이냐,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에 중점을 두지 않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냐, 에 중점을 뒀다는 거다. 누가 범인인지, 가해자인지, 가 아니라 가해자가 곧 피해자고, 피해자가 곧 가해자가 되는 혼돈, 카오스를 표현하는데 역점을 뒀다. 물론 미스터리 스릴러란 장르의 형식들을 취하지만 어디까지만 가져가고, 어디서부터 파괴시켜버려야 할지에 대한 나름대로의 특별한 시도를 해보려 했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만들면서도 그런 부분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많이 낯설어하는 것 같더라. 생각해보면 <알 포인트>때도 기자시사 후에 기자들 반응이 굉장히 싸늘했다고 느꼈었다. 그것도 나름대로 유추해보면 어떤 생소함 때문이라 해야 할 것 같다. 공포라는 장르적 형식을 벗어난 생소함이랄까. 어쨌든 <GP506>에 대한 평가들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것도 그 때문인 것 같다. 나도 처음부터 많이 갈릴 것이라고 예상했었고. 그런데 감염의 수위라던가, 그에 관련된 바를 세다고 받아들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에 조금 당황한 건 그래서다.

많은 이야기를 담기엔 러닝타임이 버거웠던 것 아닌가.
많은 이야기 때문에 그런 것 같진 않다. 산만하다는 의견은 장르의 공식을 쫓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거 같다. <GP506>은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현재에서 GP에 들어온 새로운 수색대원들이 사건을 풀어가는 와중에 어쩌다 그들이 몰살을 당하게 됐을까라는 과거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런데 사실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는 결국 똑같은 이야기다. 그래서 이 똑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까를 고민했다. 두 이야기를 각자 그대로 풀어가면 시간적인 제약에 오버가 되는 것도 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비능률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상징적인 씬들을 통해 계속 진짜와 가짜를 의심하게끔 이야기를 펼쳐갔다. 그런데 아마도 과거부분에서 이야기를 펼쳐가는 게 장르적 공식과 많이 벗어난 것에 혼동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장르적 스타일대로 누가 범인인가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5분의 3지점에서 그걸 다 풀어져버리고 드라마로 가니까 굉장히 낯설 수 있는 거다. 물론 내가 극복하지 못한 나름대로의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내 나름대로 이야기나 장르적 플롯을 풀어간 갔음에도 불구하고 산만하게 느껴진다면 그건 내 한계 때문이다. 단지 해석의 측면에서 나름 상충되는 부분들이 있는 거 같다.

<알 포인트>는 전장을 배경으로 함에도 치열한 전투씬 한번 없다. 반면에 <GP506>은 실제 전장이 아닌 곳에서 전장보다 참혹한 상황을 그린다. 아무래도 그건 스스로가 과거의 베트남보다 현재의 GP를 더욱 민감한 사안으로 여기고 있다는 반증 아닌가.
사실 사람이 죽거나 (사람을) 죽인다는 게 무서운 거다. 하지만 군대는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곳이다. 물론 비상상황에 국한된 바겠지만 그런 폭력의 합당화가 아이러니했다. 그런 참상들을 관객들에게 가깝게 다가서게 하고 싶어서 두 번의 총격씬에 공을 들였다. 그 총격전에 참혹하고 끔찍한 느낌으로 다가서길 바랬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

<알포인트>와 <GP506>은 폭력성의 전의를 묘사한다. 하지만 <알포인트>가 빙의라는 초자연적 방식을 택한 것과 달리 <GP506>이 감염이라는 물리적 방식을 택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까지 의식하진 않았다. 집단 최면이나 집단 공황에 대한 메타포(metaphor)를 생각했고,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은 그런 상황에서의 공포를 야기시키는 경로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감염에 대해서, 너무 정보가 없다, 이야기를 끌고 가다 포기한 거 아니냐,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데, 거기에 너무 중점을 두면 <레지던트 이블>같은 영화가 될 것 같았다. 사실은 그에 대한 이유들이 다 있었지만 모두 배제시켰다. 정작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후에 과연 이 젊은 친구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중요했으니까. 나름대로 감염에 대한 상징성을 부여하려고 애썼다.

그 감염이란 게 군대라는 강압적 체제의 지지를 위한 체제적인 훈육, 노골적으로 세뇌와도 결부되는 느낌이었다.
군가를 통해 피와 생명을 요구하는, 그런 것과 마찬가지다. <GP506>에 논란이 많은 건 피상적으로 보여지는 걸 지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지금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 해석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겠지. 물론 전혀 엉뚱하게 이야기를 보는 사람도 있지만.(웃음) 물론 나는 관객들 각각이 나름대로 해석하는 게 궁극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해서 한편으로 재미있지만, 한편으론 비의도적인 맥락이 보이기도 해서 아쉽기도 하다.

<알포인트>도 그렇지만 <GP506>도 많은 해석을 부르는 영화다.
물론 의도적인 건 아니지만 그런 얘기는 많이 들었다. 촘촘하게 짜놓은 이야기를 어떤 한정된 시간 안에 집어넣는 게 내 시나리오 스타일이다. 그렇다 보니까 영화상에서 함축되는 부분도 있고, 떨궈져 나가야 되는 부분도 있고, 군데군데 점프가 되는 부분들이 생긴다. 자기 나름의 해석을 통해 그런 부분을 좋게 보는 분들도 있지만 무책임하다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다. 그리고 제작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항상 내 이야기가 두 시간 안에 담기엔 굉장히 분량이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난 어떤 한 상황에서, 어떤 한 샷에서, 어떤 한 장면에서, 어떤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보단 이야기가 화면을 빡빡하게 채워주길 바란다. 예를 들자면 나와 당신이 이렇게 이야길 나누는 와중에 이 옆을 지나는 사람이든, 주변에서 뭔가를 하는 사람이건, 여기저기 일이 동시에 진행되는 듯한 꽉 찬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알포인트>의 프롤로그가 원래 최태인 중위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쏭카우 전투였지만 촬영을 못해서 포기했다고 들었다. 본인도 그 부분을 찍지 못해서 상당히 아쉬워 했다고 하던데.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최태인 중위에 대한 이야기는 <알포인트>시점의 전이 됐던, 후가 됐건, 한번 더 해보고 싶다. 물론 후는 전사(戰死)한 상태겠지만. 쏭카우 전투는 최태인 중위라는 캐릭터가 왜 그렇게 시니컬하게 됐는지 잘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히스토리를 갖고 있는 부분이라 굉장히 안타까웠다. 그래서 <GP506>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적어도 돈이 없어서 못 찍는 부분은 없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최태인 중위의 쏭카우 전투만큼이나 <GP506>에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
GP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다. 그곳이 50년 동안 버려진 대자연 속에 외롭게 떠 있는 섬이라고 느껴졌고, 그런 것들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헌팅도 많이 다녔지만 좋은 장소도 많이 없었을뿐더러 좋은 장소를 찾으면 장비가 못 들어가더라. 우리는 계속 비를 뿌려야 했기 때문에 살수차나 발전차도 있어야 되고, 그 밖에 여러 가지 장비들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럴 수 없어서 그 부분을 포기하게 됐고, 결국 시나리오를 다시 썼다. 그래서 GP안에서의 상황들만을 다룬 미시적인 이야기로 가게 됐다. 만약 그런 것들이 가능했다면 지금보다 더 풍부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런 건 아쉽지. 아까도 말했지만 총격전은 관객들한테 섬뜩한 느낌을 줄 수 있게 찍고 싶었다. 우리가 특효탄만 7~8천 발 쏘고 피탄효과나 파편효과도 냈지만 그래도 많이 부족하더라. 그래서 그 부분을 좀 더 잘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GP506>은 호러적인 연출로 심리적 불안을 조성하지만 고어적 충격으로 물리적인 타격을 준다. 단순히 공포로 에두를 수 있지만 특정장르로 구분할 수 없는 복합성이 있다.
그 예는 분명하다. 일단 공포스럽게 연출한 씬에서 음악은 많이 배제했다. 심지어 목덜미에서 바이러스에 관한 정체가 발견됐을 때도 음악을 배제했다. 목덜미가 클로즈업될 때, 임팩트를 줄 수 있게 ‘쿵’하는 음악이 들어가야 되는데 그걸 다 빼버렸거든. 그런 방식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난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믹싱을 한 뒤, 영화를 본 몇몇 분들은 그에 대해서 음악을 집어넣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의견을 많이 개진했지만 내가 그렇게 의도한 게 아니라서 그냥 그렇게 갔다. 게다가 장르에 어울리지 않게 왈츠를 종종 배경음으로 깔아버리곤 했다. 아마 내가 무의식적으로 장르적인 느낌들을 많이 지워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공포심이 유발되는 부분에서 관객들이 특별한 분위기로 젖어 들게 하려고 그런 스타일로 연출했던 거지.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의식적으로 많이 배제했다.
<GP506>에서 두드러지는 건 아무래도 GP의 미로적인 구조였던 것 같다. 미로의 폐쇄성은 영화에서 많은 역할을 한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은 GP라고 생각한다. 공간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고 신경을 썼다. 그 공간 자체가 인간의 정신 밑바닥에 있는 복잡미묘한 느낌일 수도 있고, 우리 스태프 중 누구는 조직이나 시스템을 상징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틀린 생각은 아닐 거 같다. 우리가 찍어놓고 편집상에서 백지화시킨 부분에서 우리는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은 존재다라는 대사가 있다.

게오르규의 작품에 나오는 ‘잠수함 속의 토끼’말인가?
맞다. 나는 GP가, 좀 더 거시적으로 보면 군대 자체가 우리 사회에서 잠수함 속의 토끼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했다. 병사들이 군대라는 조직적 시스템에 대해 갖는 생각들이 공간으로 표현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그래서 GP라는 공간에 의도적인 장치들도 가미했다. 사실 GP안이 영화처럼 그렇지 않거든. 복잡한 파이프 라인이라던가, 콘크리트의 질감이라던가, 그런 부분들에 많이 신경을 썼었다.

그런 공간을 연출한 건 <코마>시리즈를 거쳐서 더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코마>에서 등장한 병원의 통로와 GP의 통로엔 유사한 면이 보이더라.
병원 지하의 느낌과 유사한 면도 있었지. 그리고 <GP506>세트팀장이 <코마>때 함께 했던 세트팀장이라 그런 점도 있을 거다.

<알포인트>와 <GP506>의 병사들이 결국 몰살당한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40년의 시대적 격차를 지닌 두 이야기가 군대란 체제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파국을 드리우는 건 변치 않는 체제의 속성에 대한 문제제기처럼 보인다. 게다가 <GP506>은 현실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해 보인다.
군대는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군대라는 조직 자체는 끊임없이 자기 쇄신을 해야 되고, 자기 채찍질을 해야 되는 곳이다. 특히 우리는 분단상황을 비롯해 여러 가지 사안들이 있으니까 더더욱 철저해야지. 앞으로도 기회만 된다면 그런 조직이나 시스템이 유발할 수 있는 폭력의 참혹한 결과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해보고 싶다. 그건 자이툰이 됐든, 레바논에 있는 평화유지군이 됐든 상관없다. 물론 내가 해답을 지닌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그저 물음표를 던져주는 거지.

노성규 원사는 은폐된 사건을 밝히려는 사람인데 후에는 모든 걸 함구하는 쪽으로 선회한다. 이는 당신이 현상황의 체제로부터 느끼는 망연자실이 투영된 것 아닌가.
이거 국방부에서 보면 굉장한 블랙리스트가 될지도 모르겠는데.(웃음) 그런 건 당연히 있지. 노성규 원사는 최태인 중위와 더불어 가장 애착이 남는 캐릭터다. 아내 발인 날, 발인을 하지 않고 GP를 가게 된다거나 자기 자식 같은 병사들을 죽여야 하는 상황들 때문에. 나는 그가 내린 결정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냐에 대한 논란도 되길 바라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을 파시스트처럼 볼 수도 있고, 군의관처럼 네가 무슨 자격이 있어서 걔네 들을 죽이냐고 따져 물을 수도 있다. 역으로 누군가 손에 피 묻히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고. 일단 노 원사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낸 사람이다. 내가 경험한 하사관은 두 부류였다. 아주 악랄하고 새디스트 같은 인물도 있지만 반면 아버지 같은 마초형 양반들도 있다. 노성규 원사는 그런 분들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헌사라고 생각한다. 그 양반들이야말로 청춘을 모두 군에 바친 분들이니까. 별 달고 있는 장군 같은 사람들은 청춘을 바쳤다기 보단 그저 출세를 위해 달려온 사람들이고. 그런 것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마음이 노성규 원사에게 들어가 있다. 난 그런 인물이 개인적으로 좋다. 예를 들자면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로렌스처럼, 이 사람이 과연 영웅인지, 제국주의의 꼭두각시인지 애매한, 어떨 땐 자기 멋에 취해서 오버하기도 하고. 그런 인물들이 나에겐 굉장히 깊이 각인된다.

혹시 노성규 원사의 선택과 다른 방향을 염두에 둔 적은 없었나?
난 노성규 원사는 그렇게 갈 수 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대신 노성규 원사의 반대측에서 그와 강하게 대립하고 갈등할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지. 내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것도 그래서다. 사실 군위관이나 유중위는 노 원사의 포스에 대해서 큰 상대가 못 되는 것 같아서 여러 인물들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수색대 소대장을 대위나 소령 정도로 설정해볼까 생각했지만 리얼리티 때문에 포기했고, 자칫 그렇게 되면 지나치게 갈등상황이 노 원사에게 미화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게 최선은 아니지만 그나마 제일 낫다는 판단 하에 유중위나 군의관, 때론 선임하사까지 그와 대립하고 갈등하는 상황에 동원했다. 그래도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쉽긴 하다. 노 원사와 대립각에 놓인 인물이 좀 더 강했다면 노 원사의 행위가 과연 옳은 행위인지, 옳지 않은 행위인지를 더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을 테고 그런 면이 관객들과 의사 소통하기에도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알포인트> 최태인 중위             <GP506> 노성규 원사
<알포인트> 최태인 중위             <GP506> 노성규 원사
<알포인트>가 최태인 중위의 전사를 궁금하게 만들듯이 <GP506>도 노원규 원사의 전사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건 인물의 사연을 배제한 채 그들을 단지 이야기를 밀고 가는 역할에 집중시킨 까닭이기도 하다. 그건 본인의 캐릭터 취향에서 기인한 게 아닌가.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굉장히 드라이(dry)하다더라. 노 원사가 상주로 앉아서 절하는 장면은 네 컷으로 이뤄졌다. 원래 세 컷이었는데 중간에 한 컷을 썰어서 네 커트가 됐다. 그런데 그 장면을 넣을까 뺄까, 백 가지 고민을 했다. 모두 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난 노성규 원사의 캐릭터를 위해서 넣기로 했고 그 정도가 제일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사를 그렇게 네 컷으로 처리해버리니까 조금 더 있는 게 좋지 않았냐는 의견도 있었고 그러면서 내가 드라이하다는 말이 나왔다. 그리고 처음엔 노 원사의 아들을 어머니가 죽어서 관혼상제 명목으로 휴가 나온 군인이라 설정했었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에 노 원사가 다 죽이는 상황이 됐을 때 너무 직설적인 대비가 되는 거 같더라. 그래서 머리에 물도 들인 날라리 여중생으로 설정할까 했는데 그렇게 되면 너무 쓸 때 없는 의미를 두게 될 것 같아서 포기했다. 결국 어린 남자 중학생으로 정했다.

본인이 시나리오를 쓴 <하얀전쟁>과 <알포인트>는 같은 시대를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시선을 느끼게 한다. 더 나아가 <GP506>도 마찬가지고.
<하얀전쟁>시나리오를 쓸 때 부담스러웠던 건 본격적으로 월남전을 다룬 영화가 처음이란 것이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때 정지영 감독님이 주문하신 건, 후에 시간이 지나서 우리에게 월남전은 무엇이었고, 월남전 참전에 대한 의미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거시적인 느낌이었던 거 같다. 그 반대로 <알포인트>는 미시적으로 접근했던 거 같다. 월남전에 참전한 젊은 병사들의 개인적인 사연과 더불어 그들이 거기서 어떤 상처들을 받았고 그것들이 그들의 인성이나 인격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하얀전쟁>은 이데올로기적인 접근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면 <알포인트>는 그와 반대였다. 이렇게 나이를 먹다 보니 그들이 무슨 죄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전쟁에서 범죄행위를 했지만 그걸 범죄라고 인식했을까? 예전에 오지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다. 재일교포청년이 누구를 죽여서 교수형을 당했다가 죽지 않고 혼절했는데 그가 깨어나고 보니 과거를 다 잃어버린 거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을 또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 그러다가 결국 다시 사형을 시키는 내용이었다. 과연 월남전에 참여한 개개인들에게 무슨 죄의식이 있었을지, 이들이 과연 자기들이 한 게 범죄행위라는 걸 알기나 할까, 그런 연민이 생각났다. <GP506>같은 경우는 일단 남북의 이데올로기 같은 건 젖혀놓기로 했다. 지금 군대를 가는 젊은 친구들도 그렇게 남북의 이데올로기에 관해 별로 신경 쓰지 않기도 하고. 그냥 이 애들한테 좀 더 집중해보자, 란 생각들을 했지.

<GP506>은 겉으로 강해 보이는 남성들의 나약한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영화상에서 남성성을 바탕으로 한 군대의 나약한 본성이 드러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그 나이대가 제일 그렇지 않나.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스무 살, 스물 한 살 친구들이 군대를 많이 간다는 것에 대해서 난 많이 놀랐고 한편으로 굉장히 안타까웠다. 방황의 시기도 보내지 못하고 그냥 바로 청소년기의 마지막 찰나에 바로 군대를 경험하고 사회로 나오는 거니까. 그리고 제대하면 사회에선 성인 취급을 하지 않나. 이 친구들은 청년기 없이 바로 기성세대화 돼버리는 거다. 그리고 군대에선 체제에 순응하는 요령을 배운다. 내가 군대에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억압이었다. 훈련소에서 종종 어두컴컴한 밤에 줄 맞춰서 어디론가 막 데려가서 그곳에 도착하면 영화를 상영했다. 그 영화는 주로 탈영했다 죽은 애들 이야기와 같은 국방부 정훈영화들이었다. 그건 결국 군대에서 사고 치지 말고 죽은 못처럼 있다가 제대하라는 억압이었고 그걸 본 뒤, 내무반으로 돌아왔을 때 찝찝함을 잊을 수 없다. 그런 억압들이 군대라는 조직이 조직원을 통제하는 수단이고 난 그게 너무 싫었다. 난 굉장히 피곤하면 군대 꿈을 꾸는데 그런 것들이 그런 억압에 대한 강한 반감이나 저항심 때문에 발생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제대한지 오래됐을 텐데 아직도 군대 꿈을 꾸나 보다.
그보다 더 피곤하면 고등학교 꿈을 꾼다.(웃음) 그런 억압에서 비롯된 데미지가 나에겐 굉장히 오래가는 거 같다. 요즘 주변에서 월남전 참전 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은 아직도 자다가 마당에 뛰쳐나가서 포복한다더라. 벌써 40년 이상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렇다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그런 억압이 얼마나 강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체제의 하위적 폭력에 대한 이야기가 본질이지만 그를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이들에 대한 고발의지도 언뜻 보인다. 내몰린 자들을 배후에서 압박하는 건 그곳에 그들을 내몬 자들이다.
그렇다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내몰린 자들의 이야기란 점은 확실히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화면밖에 존재하는 내 몬 자들 역시 무전을 통해서 계속 압력을 가하고, 수사 방향을 전환시키려고 하니까 그것도 맞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궁극적으론 당신의 영화적 뿌리가 반체제적인 것에서 출발한다는 걸 숨기기는 힘들 것 같다.(웃음)
아무래도 난 80년대를 살아왔고, <파업전야>같은 영화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까, 그런 성향은 분명히 투영돼있을 거다. 나도 그런 부분은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것들이 과연 직설적으로 표출되느냐, 우회적으로 표출되느냐, 그런 문제지. 아무래도 나이를 먹으니까 그런 것들을 되도록 우회적으로 표출하는 게 훨씬 좋지 않겠나 싶어진다.

시대적 변화와도 관계가 있을 것 같다.
분명히 그에 따른 변화가 있지. 그와 함께 나도 퇴색된 부분이 있고, 더 유연해진 부분도 있고, 좀 더 닳아져서 모가 난 부분도 있고. 그래도 아주 커다란 원칙 같은 건 많이 변하지 않았던 거 같다. 그래서 언제나 그것과 갈등하지. 예를 들면 공분을 느끼거나 울컥하는 측면들은 분명히 아직 남아있지만 이젠 내가 총대를 매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많이 닳아진 거다. 아무래도 가정도 생기고 자식도 있고 하니까 중산층의 꿈이 생겼다고 할까. 그런 부분과 내가 개인적으로 꿈꾸는 부분들과 충돌하게 된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거지.

아무래도 좀 더 작가적 욕심이 늘어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직설보단 허구를 가미하고 싶은 창작욕이 늘어난 게 아닐까.
나는 관객들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흥행과 직결되는 사안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그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본다.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어떤 스타일로, 어떤 이야기들을,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되는가라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영화계가 침체된 상황에서 그건 더더욱 중요하다. 어떤 이는 위기에 대한 원인을 자본에서 찾고 있는데 분명히 영화는 많은 자본이 들어가는 산업이기 때문에 그 얘기가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좀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관객들의 패러다임에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관객들이 궁극적으로 보고 싶은 이야기가 지금 현재 우리가 만드는 영화들과 괴리가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렇다면 그게 과연 무엇인가가 중요하겠지. 지금 분명히 관객들은 영화를 하는 우리보다 한발자국 먼저 가있는 거 같다. 그 한발자국이 작을 수도 있고, 클 수도 있지만 그 갭을 메우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을 빨리 캐치해야 되는데 쉽게 말하면 선호도가 될 수 있겠지. 어느 누구는 <추격자>처럼 그런 이야기가 대안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단편적이거나 직설적인 것보단 어떤 큰 게 움직이고 있는데 우리가 지금 그걸 쫓아가지 못하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이 든다.

어쩌면 현재 국내 문화산업 전반에 걸친 총체적 문제와 연관된 사항일 수도 있다. 문학이 죽었다고 하는데 사실 시나리오의 기반은 문학이 아닌가. 결국 문학의 죽음은 시나리오의 창구가 되는 이야기의 감소와 연계되는 게 아닐까. 최근에 나온 좋은 미국영화들도 대부분 소설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작품이란 점은 우리에게 좋은 선례인 것 같다.
그래서 작가들이 파업도 할 수 있겠지.(웃음) 그런 고민들이 많이 있어야 될 것 같다.세미나든 심포지엄이든, 어떤 형식이 되던 간에 그런 것들이 공유될 수 있는 계기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말한 것처럼 어떻게 보면 문화전반의 문제와 연관된 사안일 수도 있다. 음악도 일개 통신사가 쥐고 흔드는 정도가 돼버리지 않았나. 문화전반적으로 그런 사안에 대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각개 약진을 해야 될 부분은 각개 약진을 할지라도 그런 부분은 분명 있어야 될 것 같다.

<알 포인트>현장에서 많이 고독했다고 밝혔었다. <GP506>현장에서는 어땠나?
아주 행복했다.(웃음) <알 포인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간 게 아니라 갑자기 발령받아서 간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해야 될 고민을 내가 안 해도 되는 고민과 같이 해야 되는 것과 같은 부분들이 있어서 많이 힘들었고 그만큼 고독했다. <알 포인트>당시 경험도 있어서인지 상대적으로 <GP506>현장은 굉장히 행복하게 느껴졌다.

<GP506>은 <알 포인트>에 비해 전체적인 인원이 늘었다.
무지무지하게 늘었지.

그래서 아무래도 현장에 대한 통솔이 <알 포인트>에 비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일단 인원수가 많으니까 아무래도 의사전달이나 통제가 제대로 안되더라. 그래서 군대식으로 통제를 했지. 예를 들어 대기하는 중에 화장실 갈 사람은 주변에 얘기하고 가라고 지시하고, 디렉션을 위해서 모두 집합시켰을 땐 다 모였는지 모르니까 뒤로 번호 시키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내가 마치 중대장 같은 느낌도 들었다. 덕분에 재미있었다.

설마 2인 1조로 다닌 건 아니겠지.(웃음)
그러진 않았다.

인원은 많았지만 <알 포인트>보다 중심캐릭터는 상대적으로 적어진 만큼 캐릭터에 집중하긴 더 수월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포인트가 있는 인물들은 많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알 포인트>같은 경우는 전부 방점을 주려고 노력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알 포인트>는 약간의 차이들은 있지만 배우 대부분에게 비중이 있다 보니까 그 땐 배우들 통제가 굉장히 어렵기도 했다. 근데 <GP506>같은 경우는 인원통제나 외에 배우들의 디렉션에 대한 통제는 더 좋았다. 우리 인원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게다가 3개월 정도의 공백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한 명이 일탈 없이 노력해준 게 일단 고맙다. 물론 영화계 시장상황이 안 좋아서 다른 영화촬영이 많이 못 들어간 것도 한몫을 하긴 했지만 그걸로만 설명이 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배우나 스태프들에게 영화에 대한 애정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고마운 부분이지.

<알 포인트>에 출연한 배우들에 비해 연기 경험이 적은 젊은 배우들 위주로 구성된 탓에 천호진 씨에 대한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을까 싶다.
천호진 씨는 있는 자체로도 힘이 됐다. 가끔씩 연기가 잘 안 되는 친구에게 이렇게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라고 그 친구만 들을 수 있게 흘리듯이 한마디 하면 그 친구가 딱 감을 잡더라. 그런 점이 굉장히 좋았지. 배우들이 내게 익숙하지 않고, 나도 배우들한테 익숙하지 않은 처음에는 소통이 잘 안돼서 테이크도 많이 가고 그에 따라 고민도 많이 했는데 테이크가 지나갈수록 서로 익숙해지니까 연기에 대한 것들이 많이 나아지더라. 그렇게 촬영이 진행되면서 몇몇 단역들조차 연기가 좋아지는 것들이 눈에 보이더라.
황석영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밝혔었다. 게다가 <알 포인트>는 황석영 작가의 단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도 했었고.
황석영 선생님은 내 인생을 좀 책임져야 될 필요가 있는 거 같다.(웃음) 지금 내가 여기로 오기까지의 여정은 작가로서 황석영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에서 출발했으니까. 지금도 그 분의 작품은 많이 보고 있고. 몇몇 작품을 뺀 대부분의 작품은 보통 열 번 이상 읽었다.

본의 아니지만 <알 포인트>를 찍으면서 감독까지 겸임했고, <GP506>을 찍으면서 제작자까지 겸임하게 됐다. 이러다가 차기작에서는 배우까지 하게 생겼다.(웃음)
다음 작품에서는 배급사까지 차리는 거 아니냐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긴 한다.(웃음) 사실 작가에서 감독으로의 변화는 내게 천지개벽과도 같은 큰 변화였다. 그에 대한 압박도 굉장히 많았고. 그런데 제작자로의 변화는 내게 별다른 영향을 안 미쳤다. 게다가 지금도 제작자로서의 고민은 전혀 안 하고 있으니까. 이름만 제작사 대표일 뿐이지, 제작에 대한 모든 권한은 나와 함께 작업하는 PD들한테 나눠줬고, 앞으로도 나눠줄 거다. 난 비즈니스 쪽은 하지도 않을 거고, 아마 그전에 주변에서 날 말릴 거다.

<알 포인트>와 <GP506>, 그리고 멀게는 <하얀 전쟁>까지,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말은 살고 싶다가 아닐까. 그건 군대를 간 남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본인의 절실한 경험이 영화에 반영된 게 아닐까.
그런 의도는 없었지만 아마 그런 게 없진 않았을 거다. <알 포인트>나 <하얀 전쟁>은 군대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정치체제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GP506>같은 경우는 정치체제에서의 억압이나 중압감보단 군대라는 조직 자체가 갖고 있는 극단적 상황의 폭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게 항시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상황이 되면 그런 폭력성이 어떻게 나오는가라는,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 상처를 입게 되는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니까. 이 정도까지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겠다고 할 수 있는 선은 바로 인간으로서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이 아닐까.

<GP506>을 반군대적 영화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알 포인트> 당시에도 그런 시선이 없진 않았었고.
경계를 좀 해야지. 단순하게나마 그런 반군대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진 않거든. 아까도 말했듯이 시스템이나 조직자체가 갖고 있는 한계나 문제점을 계속 건드리고 싶어서니까. 물론 내 영화에 대해서 반감을 갖고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100%까진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일리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신도 군대를 추억할 때가 있을 거다. 군대 제대한 모든 남자가 종종 그렇듯이.
난 아카시아가 필 때면 군대시절이 그리워진다. 우리 내무반이 아카시아 나무가 가득 찬 골짜기에 있었는데 평소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는 일요일 아침에 문을 열면 아카시아 꽃 향기가 내무반에 꽉 차거든. 그래서 담요 같은 걸 밖에 널어놓고 누워서 책도 보고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런 게 정말 행복했었다. 그 느낌이나, 그 시절들이. 그래서 그 시절만 되면 군대로 가서 그 경험만 잠깐하고 다시 빠져 나왔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곤 한다.

아무래도 그런 경험들이 영화가 지닌 연민을 부여하게 만든 게 아닐까.
아마도 그럴 거다. 나도 그런 연민에 대한 것들을 더욱 표현해보고 싶었고, 병사들의 그런 모습들을 관객들이 이해해줬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순수하게 장르적인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을까?
안 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딱히 떠오르는 게 없을 뿐이지. 막연하게 첩보 드라마를 차기작으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대신 내가 생각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거지. 그것만 된다면 영화가 됐건, TV에서 하는 시리즈가 됐건, 가리지 않고 할 생각은 있다.

그렇다면 요즘 가장 큰 관심사는 뭔가?
영화적으로는 방금 말했던 첩보이야기고, 그 다음의 관심사는 황석영 선생님이 포탈사이트에 연재 중인 ‘개밥바리기 별’, 그리고 셰플 베다라고 하는 칠레 작가의 소설, 그리고 지금 내가 들고 다니는 (가방에서 '김학철 평전'을 꺼내면서) 김학철 선생의 작품에도 관심이 있다. 이 분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고 싶다.

전기적인 것에 대한 관심일까.
이분에 대한 일생이 굉장히 존경스럽다. 기회가 된다면 이분의 얘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2008년 4월 16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2008년 4월 16일 수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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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k209
왜 군대 이야기에 집착하시나요....   
2008-04-1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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