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완득이>이가 6분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흥행 욕심나겠다.
(옆에 있던 영화 자료집 속 김윤석과 유아인을 가리키며)나야 이 사람들 보다는 흥행 부담이 덜 되지. (웃음) 그래도 영화가 잘되면 좋겠다. 영화에 대한 책임감은 항상 느낀다.
Q. 완득이네 ‘앞집 아저씨’ 대사 중 반 이상이 욕이었던 것 같다. “씨불놈아”를 극 내내 씨불거리더라. (웃음)
(웃음) ‘욕 연기’라는 게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그야말로 욕을 얻어먹게 되는, 손해 보는 연기다. 특히 우리 작품 안에서는 욕이 굉장히 맛깔나야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어떻게 풀어낼지 고민을 많이 했다. “씨불놈아”는 원작에도 있는 말이고.
Q. 원작(김려령 작가의 동명소설)을 읽은 건가?
응, 작가님이 책을 주더라. 작가가 책을 주는 데 안볼 순 없지 않나.
Q. (웃음) 그렇지. 원래 책은 잘 읽나? 요샌 뭐 읽었나?
천명관 작가의 ‘고래’ 읽어봤나. 읽고 그런 생각했다. ‘이야, 이거 마르케스 인데!’ 예전에 가브리엘 마르케스의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뭐랄까, 마치 뇌에서 박하가 뿌려지는 느낌이었다. 정말 거침없이 시원하게 쓰더라.
Q. 그렇다면 읽은 것 중에 ‘아, 이거 영화화 하면 좋겠다’ 할 만한 작품이 있었나?
공유가 영화화를 제안했다는 <도가니> 같은 경우를 말하는 건가? <도가니>는 공유가 제안해서 가능했던 거다. (웃음)
Q.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도가니>는 봤나? 요새 연일 화제다.
아니, 무서워서 아직 못 봤다. 보고 너무 화가 나면 어쩌나 싶어서…. 얘기만 들어도 울컥 화가 나더라. 실제 우리 사회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는 게 너무 싫다. 지옥이다, 지옥. 영화를 보지 않고 이야기만 들었는데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영화를 보면 어떨지 겁이 난다.
그리고 대중의 힘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되더라도 영화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은 반드시 느낀다.
Q. <완득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영화적인 힘을 가진 작품일 수도 있겠다.
<완득이>는 따뜻한 이야기다. 내가 바라는 건, 사람들이 우리 영화를 보고 가슴 한편에 따뜻한 ‘모닥불’을 하나씩 가져갔으면 하는 거다. 영화를 보고나서 함께 본 사람들이 그 날 저녁, 함께 저녁을 먹거나 막걸리를 함께 마시면서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 자기들이 왜 기분 좋은지도 모르면서 기분이 좋은 거 말이다. 우리 영화를 본 사람들이 기분 좋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게 작은 바람이다. 또 다른 면에서는 동네에서 욕하는 아저씨를 좀 다르게 봐줬으면 좋겠다. 하하하하하.
Q. 그렇지, 매력적인 아저씨들도 많으니까. (웃음) 어쨌든 원빈과 더불어 ‘아저씨’ 대열에 합류(‘앞집 아저씨’ 역)한 걸 축하한다.
오우 마이 갓! 하하하하.
Q. 캐릭터의 이름도 없이 그냥 ‘앞집 아저씨’로만 등장했는데 서운하진 않았나?
아니, 내 이름은 김상호다. (당당) 이름이 있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에 이름이 없다고, 그 점이 서운하진 않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중요한 건 캐릭터의 존재감이다. 캐릭터가, 또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얼마나, 어떤 존재감을 지니는가가 중요한 거다. 예전에 극단 무대에서 활동할 때 어떤 기획자가 나를 보고 그런 얘길 했다더라. “김상호 저 사람은 뭘 해도 ‘진짜’ 같이 한다”고…. 최고의 칭찬이었다.
Q. ‘앞집 아저씨’를 연기 할 때 어떤 점에 가장 신경을 썼나?
욕을 어떻게 내뱉을지 가장 많이 고민했다. 처음에도 얘기했듯이 ‘앞집 아저씨’는 욕이 대사의 반 이상인 캐릭터다. 따라서 관객이 그 인물을 받아들일 때 욕에 대한 이물감이 생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욕이 적당히 구수하게 들리고 작품 안에서 장치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거부감이 생기거든. 그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했다.
Q. 그런데 ‘앞집 아저씨’의 직업이 마지막에 밝혀지더라. 그의 유별난 히스테리의 이유가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건 감독님과 (김)윤석이 형님의 아이디어였다. 캐릭터를 빛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캐릭터의 모든 요소를 밝히고 시작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감추거나 뒤늦게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완득이네 앞집 아저씨의 경우는 후자다. 뒤늦게 직업 같은 것들이 밝혀지면서 사랑스러움이 전달되지 않나.
윤석이 형은 원래 좋아하는 형이다. <타짜>때부터 친분도 있었고…. <완득이>도 윤석이 형을 통한 우정출연인 셈이다. 윤석이 형이 <완득이> 시나리오를 주면서 “재밌으면 해라” 하더라고.
Q. 올해 유독 많은 작품을 한 것 같다. 영화, 드라마 할 것 없이 당장 떠오르는 것만 몇 편이다. 겹치기 촬영이 불가피했을 것 같은데, 서로 다른 캐릭터를 오가기 힘들진 않았나?
작품이 완벽하게 서 있는 상태에서 연기를 하는 거라 가능했다. 그리고 난 그냥 하나를 하고 나면 싹 잊어버린다.
Q. 배우들 중에는 한 작품을 마치면 그 작품 혹은 캐릭터의 여운에 취해 한동안 못 헤어 나오는 경우도 많던데, 그런 타입은 아닌가 보다.
음, 나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즐거운 인생>의 ‘혁수’ 역을 하고난 후 한동안 못 헤어 나왔다. ‘혁수’가 기러기 아빠였는데…, 난 아직도 걔(혁수)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작품을 할 때도 그랬지만, (그 같은 아빠의 인생이) 서러워서 눈물이 나더라.
Q. <즐거운 인생>이 아저씨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인 만큼, 그때 음악과 친해졌겠다.
당시 극 중 드러머 역할이어서 드럼을 배웠었다. 음악이란 게, 꼭 마약 같더라. 다음에 다시 기회가 생긴다면, 기타나 베이스 역을 맡고 싶다.
Q. 김상호가 출연하면 으레 극의 활력소 또는 친근하고 재밌는 캐릭터이겠거니, 하는 선입견이 든다. 많이들 그럴 거다. 어떻게 생각하나?
난 좋다. 선입견이 있다는 걸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전에 어디선가에서 봤던 이야기인데, 어느 일화에는 스승과 제자의 대사 중에 “선입견을 갖고 하는 게 가장 빠르다”는 말도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다는 건, 내가 발 딛을 땅덩어리가 생겼다는 것이기도 하다. 긍정적으로 해석 할 수 있는 말인 거지. 또 선입견이 생기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Q. 그래서인지 출연작 면면을 보면 코미디 혹은 휴머니즘이 강조된 드라마가 많다.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뭔가?
나한테 들어오는 게 그렇게 들어온다. 휴머니즘, 코미디 위주로. 그런데 난 밥을 가리지 않는다. 안 가리는데, 호러는 싫더라. 피 튀기고 여자들 소리 지르고 이런 건 좀, 어휴. (웃음)
<모비딕> 촬영 때 그런 식으로 연기를 했던 것 같다. ‘내’가 보는 또 다른 ‘나’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하나의 김상호가 연기를 하는 또 다른 김상호를 보고 있는 거지. (겸연쩍은 듯) 그런 게 있어야 한다더라. 어떤 연기 책을 보니까.
Q. 영화가 흥행을 못해서 아쉽겠다.
<모비딕> 같은 음모론 영화가 사랑을 더 많이 받았다면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폭제가 됐을 거다. 그 점이 가장 아쉽다.
Q. 2009년엔 <전우치>의 ‘신부’였다. 그전엔 <타짜>(박무석 역)를 찍기도 했고. 영화 데뷔작은 <범죄의 재구성>(휘발류 역)이었다. 최동훈 감독에게 사랑받는 배우 같다.
최동훈 감독님은 나를 상업영화에 데뷔시켜준 사람이다. 처음 감독님이 <범죄의 재구성>에 나를 캐스팅 했을 땐 모든 사람이 반대를 했었다. TV나 스크린에서 못 보던 사람이니까. 게다가 <범죄의 재구성>은 최 감독님의 데뷔작이기도 했다. 자연스레 감독의 입김이 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감독님이 나를 고집했다더라.
Q. 슬슬 또 같이 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러게. 안 그래도 감독님이 지금 작업하는 <도둑들>에 불러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말이다. (웃음)
Q. 3년 전 <즐거운 인생>으로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 수상 당시 “내 아내에게 감사합니다”라고 했던 거 기억나나? 좋은 가장일 것 같다.
그거 속은 거다. (웃음) 나한테는 마누라가 제일 고마운 사람이다. 내 아내는 서울로 상경해서 2년 동안 나를 먹여 살린 사람이다. 아내가 당시 사서였는데, 당시 나를 만나서 교제를 하다가 어느 날 (일이) 힘들다고 그러더라. 그 때 내가 “힘들면 그만두세요. 세상은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거”라고 했다. 그 때 나는 이른바 사회생활이란 걸 하고 있지 않을 때였다.
Q. 지금 다시 같은 상황이 재현된다면, 아내에게 같은 말을 하겠나?
지금은 아니다. (웃음)
Q. 무명시절이 꽤 있었던 걸로 안다. 생활고도 겪었고. 그 시기는 어떻게 견뎌냈나?
<반짝반짝 빛나는>에서 부부로 함께 출연했던 이아현 씨가 전에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가 어딘지 알아요?”하고. 어딘지 아나?
아프리카다. (물질적으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나라 말이다. 그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살아서 행복지수가 높다더라. 그 말을 듣고 예전 나의 대학로 시절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극단에서 활동할 때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 1번 출구를 나가기만 해도 굉장히 행복했다. 대학로 거리를 걷기만 해도 좋은 거다. 그땐 다들 같이 먹고 살고 해서 밥도 안 굶었다.
Q. 다른 걱정 없이, 그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던 그 시절이 견뎌야 했던 시절이 아니라,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얘기네.
응. 그때 내 목표는 다른 게 아니었다. 월세 대신 전세로 살고 싶다는 거 하나였다. 지금? 전세다. 하하하.
Q. 경주 출신인 걸로 아는데, 이맘때 참 예쁘겠다. 경주 사투리의 특징은 뭔가?
뭘 물어본다고 할 때, 지역마다 다 다르다. 가령 안동 지역에서는 “~했니껴?” 이러고, 부산에선 “~했나?” 이런다. 그리고 경주에선 “~했능교?”로 간다. 들은 건데, 이렇게 ‘~교’자로 끝나는 게 왕들이 썼던 말투라고 하더라. 하하. 나 경순왕 48대 손 맞다. (웃음)
Q. 고향은 경주고, 연기의 고향은 연극무대다. 극단 청우 출신으로, 연극 <종로고양이>(1994년)로 데뷔했다. 기본기도 그때 다져놓은 것 같고. 다시 무대에 오를 계획은 없나?
(연극) 무대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이런 얘기는 할 때마다 늘 조심스럽다.
Q. 지금처럼, 극단 출신 배우들 대부분은 당시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그건 그들에게 폐가 될까봐 그러는 건가?
음, 그게 진짜 힘 빠지는 일이거든. 내 동료 배우들과 선배님들이 열심히, 또 힘들게 무대에 서고 있다. 그들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게 싫다.
예전에 뭔지 모르는 채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두었었는데, 그 후에 아이폰을 개통하자 10분 만에 멘션이 떴다는 알림 4개가 오더라. 깜짝 놀랐다. ‘아니, 다들 어떻게 알고?’ 이런 심정이었다.
Q. 온라인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건가?
그렇다기보다는, 면(面) 대 면(面)이 아닌데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있다. 무엇보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일이 나도 모르는 새 벌어지는 게 싫다. 오해받기 싫은 거다.
Q. 아무래도 공인들은 오해받을 일이 종종 생겨 괴롭겠다. 그럼 오프라인으로 가보자. 운동은 좋아하나?
운동 좋아한다. 난 등산이나 자전거 타는 거, 혹은 수영하는 걸 즐긴다. 그런데 이게 다 유산소 운동이다. 하하하. 근육운동은 못하겠더라. (웃음)
Q. (웃음) 산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등산은 자주하는 편인가?
응, 산을 좋아한다. 산 탈 때 무척 치열하게 타는 스타일이다.
Q. 산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다더라.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도 없다! (웃음)
Q. (웃음) 김상호가 배우를 안했으면 뭘 했을까?
글쎄…. (옆에 있던 사진기자가 “산적!”이라고 하자 본인은 부정, 주변에선 동조) 어쨌든 분명히 남의 밑에서 일하진 않았을 것 같다. 아, 그런 거 하지 않았을까. 벽지 초등학교 소사(小使) 같은 거. 하하하.
지금 수사드라마 <특수사건전담반 TEN>을 찍고 있다. 11월 18일 OCN에서 첫 방영을 한다. 드라마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아주 잘 짜인 이야기란 생각을 먼저 했다. 또 ‘한국판 CSI’ 같다는 느낌도 받았고. 미국 TV시리즈 <CSI>의 포인트가 얼음 같은 분석이라면, <특수사건전담반 TEN>은 좀 더 한국적인 분석에 치중한 수사드라마다. 짜임새가 대단하다.
Q. 마무리는 <완득이>로 해야겠지? 못 다한 영화 이야기가 있나?
<완득이> 속 모든 인물군상이 우리 피부 같다. 다들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닌가. 다 평범하고 흔한 캐릭터라 관객들이 받아들이는 데도 이물감이 없을 거다. 또 그들을, 영화를 받아들인 따뜻함이 크고 오래오래 갈 거라고 기대한다.
Q. 영화를 어떤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나.
<완득이>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가 끝나면 아마 다들 입이 찢어질 거다. (기분) 좋아서. 하하. 우리 영화에 대한 큰 바람이 있다면, 그냥 이거다. 요새 환절기 아닌가. 찬바람이 불 때 문득문득 생각나는 영화, 또 문득문득 생각나는 (‘앞집 아저씨’) 캐릭터가 됐으면 하는 거다. <완득이>를 보고, 사람들이 세상 보는 눈이 따뜻해 졌으면 좋겠다.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 글_유다연 기자(무비스트)
2011년 10월 18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