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에서는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헤매는 남자였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아내와 이혼 하려고 애쓰는 인물이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웃음)그런가?
부부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보니 <아침마당>에 나올 법한 질문을 많이 받았겠다. 예를 들어 “실제 부부생활은 어떤가?”같은 거.
그런 질문도 있었고, 영화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그럼 나 또한 <아침마당> 스타일의 질문을 해보겠다. 영화는 부부 관계, 더 나아가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부부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대화다.
영화처럼?
대화가 중요하지. 영화 들어가기 전에 케이블 TV에서 방영했던 부부클리닉 프로그램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봤는데, 계속 보게 되더라. 감독님하고 (임)수정이한테도 권했을 정도니까 완전 빠진 거지. 이 프로그램에서 이혼 위기에 놓인 부부들이 나와 자신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이혼사유는 각기 다르지만 원인은 똑같다. 다들 외로웠던 거다. 소통의 문제라고나 할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니까 불만이 쌓이고 싸움이 되는 거다. 극중 두현(이선균)과 정인(임수정)의 관계도 과장되고 코믹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둘 다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카사노바 성기(류승룡)는 <미워도 다시 한 번>의 부부관계를 개선해 주는 중재자처럼 두현과 정인을 위해 내려온 천사 같은 인물이다.
천사? 부부사이를 훼방 놓는 악마가 아니고.
(웃음)천사지.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성기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두현과 정인의 관계를 치유해주는 인물이다. 시나리오로 봤을 때랑 촬영할 때는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언론시사회 때 완성된 영화를 보고 ‘성기는 천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 할리우드 영화를 보면 천사가 나타나서 연인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잖나. 성기는 두현에게 아내를 더욱더 사랑하게 만들고, 정인에게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그게 바로 극중 성기의 역할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을 보고 든 생각은 부부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중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당사자들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지만 서로의 숨겨뒀던 이야기를 끄집어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좀 더 수월하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애청해서인지 성기가 중재자 같은 느낌이 든 것 같다.
<미워도 다시 한 번>의 애청자로서 사람들은 왜 이혼을 한다고 생각하나?
단순히 다툼 때문에 이혼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단절 때문에 하는 거지. 뭔가 소통이 안 되니까 서로 회피하게 되고, 결국 싸움조차도 안하는 사이가 되어 버리는 거다. 서로에 대한 관심이나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되고, 결국 이혼 도장을 찍는 거지. 얘기하다보니 한국 이혼에 대한 주제를 갖고 ‘100분 토론’을 하는 것 같다.(웃음)
그럼 ‘100분 토론’은 이쯤에서 마무리 지어볼까.(웃음)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자. <내 아내의 모든 것>은 현실과 동떨어진 분위기가 극을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관객들이 영화에 공감을 얻는 건 두현의 현실적인 모습때문이다.
두현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 사람 중 두현이 그나마 현실적인 인물 아닌가. 시나리오를 보고 개성 강한 정인과 성기를 현실적으로 보이게 하려면 두현이 극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고 파악했다. 그래서 정인과는 실제 부부처럼 일상적인 연기를 하고, 성기와는 굉장히 코믹하고 만화적인 연기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연기를 하다 보니 일상적인 연기가 잘 안됐다. 고민이 됐다. 그 순간 ‘과장되고 코믹함이 주를 이루지만, 진심을 담은 연기를 보여주면 두현의 실질적인 고민들이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 상황은 웃기고 코믹하지만, 최대한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영화를 보면 두현은 정인과 이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이혼하자는 말은 꺼내지 않는다. 정인을 미워하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어서인가?
사랑보다는 정인에게 되도록 상처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편집됐지만 정인은 아이를 갖지 못한다. 그 아픔을 알고 있는 두현은 정인에게 최대한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상처받을까봐 이혼 얘기도 직접 하지 못하고, 성기의 도움을 빌려 이혼하려고 하는 거다.
어찌 보면 두현은 정인보다 상처를 덜 받으려는 사람이다.
정말 비겁하지. 자기 혼자 현실을 도피하려고. 한국 남자들이 좀 비겁하잖나. 아마 이 영화를 보는 남자들은 두현의 이런 모습에 공감할거다.
그 장면을 연기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 전에 성기와 정인의 관계를 질투하는 두현이 대관람차 안에서 성기와 싸우는 장면이었거든. 질투의 감정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정인과 춤을 추는데, 갑자기 일어로 얘기하면서 눈물 흘리는 그녀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모르겠더라. 또 이어지는 베드신은 어떤 감정으로 찍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감독님을 믿고 갔는데, 결과적으로 잘 나와서 다행이다. 수정이도 예쁘게 나오고.
임수정씨 만큼 이선균씨도 멋있게 나왔다.
정말 그때 묘한 리액션으로 간신히 넘어간 거다. 관객들이 몰라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두현과 성기의 싸움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영화를 보는 내내 류승룡씨와의 액션 합을 어떻게 맞췄을지 궁금했다.
사전에 협의한 건 없다. 대관람차 싸움 장면은 승룡이 형과의 첫 촬영이었는데, 워낙 대관람차가 좁다보니까 카메라를 설치하고 둘만 들어가서 촬영한 거다. 막상 들어갔는데 뭔가 보여줘야 하고, 분량은 채워야 하니까 둘 다 열심히 움직였지. 말싸움 하다가 손가락 꺾고, 넥타이를 조르는 등 액션 합이 의외로 잘 맞더라. 당시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라서 걱정을 많이 했거든. 예상외로 호흡이 잘 맞아서 7~8분 정도 분량이 나왔다. 감독님이 편집 때문에 애 좀 먹었을 거다.
웃느라 NG는 않았나?
일단 코믹하고 오버했지만 서로 진심을 다해 연기했다. 웃기려고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NG는 없었다. 배우들만 느낄 수 있는 쾌감일 수도 있는데, 즉흥적인 주고받음이 너무 재미있었다. 마치 탁구에서 랠리를 이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차 본네트에서 싸움 하는 장면에서 성기가 두현에게 뽀뽀하는 설정도 원래는 없었다. 즉흥적으로 나온 거지.
얘기를 들어보니 바닷가에서 조우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 웃고 떠들 상황이 아니었다고.
그날 승룡이 형 장모님이 상을 당했거든. 나도 영화 크랭크인 전에 어머니 상을 당해서 형의 아픔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형이 마음을 추스르고 연기에 임해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영화에서 그 장면은 굉장히 코믹한데, 실제 촬영장은 너무나 엄숙했다. 형을 도울 수 있는 일은 NG를 내지 않는 것이라 생각해서 집중을 많이 했다.
캐릭터 상으로 돋보이는 건 정인과 성기다. 연기 하면서 성기 역을 해보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
인터뷰 때 다른 기자분들이 왜 성기 같은 카사노바 역할은 안하냐고 묻더라.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볼 때 어떤 캐릭터가 독특하고 관객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지 안다. 하지만 영화를 캐릭터만 보고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 배우는 시나리오에 맞게 간택되는 입장인데, 독특한 캐릭터를 맡으려고 마냥 기다릴 수 없지 않나. 시나리오를 선택할 때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있지만 내가 과연 할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한다. 남들보다 튀고 싶다고 해서 무리한 역할을 맡고, 이상한 애드리브로 상대 배우의 호흡을 무너뜨리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나도 죽고, 극중 인물도 죽고, 상대 배우에게도 좋지 않고, 영화 자체로도 마이너스다.
인터뷰 마다 왜 다른 인물을 받쳐주는 역할만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문뜩 내가 뭘 잘못하고 있나라는 고민이 들더라. 극중 내 연기가 다른 캐릭터들을 잘 받쳐준다고 했는데, 다른 배우들을 돋보이게 하려고 희생한 게 아니라 내 역할에 충실히 한 것뿐이다. <화차>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호는 의문에 감춰진 선영(김민희)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한 안내자 역할이다. 그냥 그 장면에 맞게 연기한 거다. 다른 인물들처럼 분명 문호도 매력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받고 “사랑하는 사람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문호가 나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더라. <화차>는 문호라는 인물에게 빠지기도 했지만 특정 장면이 더 끌렸다.
어떤 장면이?
예를 들어 약혼녀를 찾아 헤매다가 용산역에서 그녀와 마주하는 장면을 들 수 있다. 그 때 문호는 어떤 감정을 느낄까 정말 궁금했다.
민규동 감독과 인연이 깊은 건 아내 전혜진씨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부터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키친>까지 카메오와 조연으로 꾸준히 출연해왔다.
아! 그건 몰랐네.(웃음)
부부끼리 바통 터치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영화 작업하기 전 민규동 감독과 친분이 있을 법도 한데.
민규동 감독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아내가 감독님과 작업을 했던 건 알았었는데, 아내를 통해서 감독님을 만난 적은 없었다. 정식으로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지.
결혼하고 나서, 유부남 역할을 많이 맡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연기적 확장으로 볼 수 있는데.
아직도 멀었다. 장르에 국한 되지 않고 새로운 역할을 해봐야지. 다양한 시나리오만 받으면 되는데.(웃음)
연기적 확장에 큰 장애물은 로맨틱 가이라는 이미지다.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로맨틱 가이 이미지를 고수하려고 하지도 부정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냥 나한테 주어진 이미지를 잘 운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로맨틱 가이라는 말은 드라마를 통해 얻은 수식어인데,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거의 로맨틱 판타지가 있는 인물이잖나. <커피프린스 1호점>의 최한성이나 <파스타>의 최현욱은 다른 인물이지만 로맨스의 행태는 비슷하다. 다행이 출연한 두 드라마가 시청률이 잘 나왔고, 그 이미지가 겹겹이 쌓이다보니 이미지가 굳혀진 것 같다. 로맨틱한 이미지를 한 번에 180도 바꿀 수는 없으니까, 조금씩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할 것 같다.
뭐 그런 건 아니고, 하다보니까. 이런 건 있다. 영화나 드라마 모두 공통되는 건데, 전작에서 조금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역할을 했다면 그 다음 작품은 심각한 역할을 하는 편이다. 나름대로 강약을 주는 거지. <체포왕>을 하고 <화차>를 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찍고 나서 홍상수 감독의 신작에 출연한 거군.
(웃음)기회가 돼서 한 거다.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니까.
얘기를 들어보니 <옥희의 영화>보다 정말 힘들게 찍었다고.
처음에는 감독님이 14회 차에 찍자고 하셨는데, 10회차 만에 끝내더라고. <옥희의 영화> 때는 아침에 대본을 주더라도 여유롭게 찍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 쫓기듯이 촬영에 임했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는 아침에 대본이 나오니까 그날 날씨에 따라 대본의 느낌이 다르다. 이번 촬영 때는 3일 정도 비가 왔는데, 감독님 영화 중에 이렇게 비 장면이 많은 작품은 없을 거다. 그래서인지 영화에 슬픈 기운이 있다.
완성된 영화는 봤나?
아직 영화를 못 봤는데, 본 스텝들에 의하면 독특한 영화가 나올 것 같다고 하더라. 전작들 보다 더 다양한 분야를 집어내는 통찰력도 보이고. 아마 희한한 영화가 나올 것 같다.
홍상수 감독과의 작업은 늘 새로움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일 것 같다.
일단 감독님과 작업하면 독특하고 재미있다. 그래서 이전 영화들과 다른 신선함을 얻을 수 있는 거지. 이번 작품도 그럴 거라 생각해서 뛰어들었는데, 너무 빡빡한 스케줄 때문에 그걸 누릴 기회가 없었다.(웃음) 이번 영화에 (정)은채랑 같이 출연하는데, 은채는 감독님과 처음 작업하는데도 여유 있게 잘 하더라. 대사도 빨리 외우고.
아까 매니저가 이선균씨도 대사를 빨리 외우는 편이라고 말하던데.
빨리 외우기는 하는데, 대신 빨리 까먹는다. 그래서 홍상수 감독님 영화를 물어보면 내용 자체가 기억이 안나.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아! 이런 내용이었구나”라고 내가 놀랜다.(웃음)
홍상수 감독 영화만큼 새로움을 얻어온 통로가 단막극이다. 여러 인터뷰 매체에서도 단막극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이야기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황우슬혜씨와 함께 나왔던 <조금 야한 우리 연애>를 재미있게 봤었다.
그 작품은 <파스타> 끝나고 바로 찍었다. 감독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당시 KBS 단막극이 시즌제로 부활하는 시기였는데, 내가 대단한 배우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 작품에 참여했던 거다. 단막극의 필요성을 감독이나 작가, 배우들은 알고 있다. 광고가 붙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지된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고, 나 또한 단막극을 통해 성정한 배우였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 <파스타>의 인기 덕을 좀 보기 위해 나를 캐스팅 한 거지. 아마 제작진은 높은 시청률을 원했을 거다. 뭐 그 시기에 맞는 도움을 준거니까. 타이밍은 잘 맞았던 것 같다.
다음에는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로 복귀한다고 들었다.
<골든타임>이라고 MBC 월화드라마 <빛과 그림자> 후속작이다. <파스타>의 권석장 감독님 작품으로 의학드라마다.
드라마는 <파스타> 이후 2년 만이다.
올해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야지 했는데, 때마침 기회가 와서 하게 됐다. 대본을 보기 전에 감독님과 만났었다. 그 때 감독님이 러브콜을 주셨지. 의학드라마라고 해서 살짝 망설이기는 했다. <하얀거탑>때 너무 힘들어서 하얀 가운 입는 건 안 하려고 했거든.(웃음) 대본을 보니까 인물이나 내용이 너무 좋아서 하게 됐다.
영화보다 드라마가 더 힘들지 않나?
말도 마라. 살인적인 스케줄은 둘째 치고, 즉각적인 반응 때문에 많이 예민해진다. 드라마가 잘 되면 좋지만, 시청률이 바닥 치면 신경이 더 쓰이고. 이번 작품은 의학드라마라서 더 힘들 거다. 준비도 많이 해야 한다. 외주가 아니라 MBC에서 직접 준비하는 드라마라서 제작에 어려움이 더 클 것 같다. 파업 때문에 순탄치 않을 테지만 진심을 다해서 노력해야지.
이번에는 어떤 인물인가? 최현욱처럼 ‘버럭’ 캐릭터는 아닐 테고.
최현욱과는 사뭇 다른 캐릭터다. 이번 인물은 한방병원에서 일하는 의대생인데 소명의식 없고, 의학지식은 미드로 배우는 말 그대로 한량이다. 그러다 선배 부탁으로 시골 병원에 대타로 갔다가 응급환자를 살리지 못하게 된다. 그 충격으로 사람을 살리고 싶은 의사가 되기 위해 종합병원 외가 응급 센터 인턴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얀거탑>의 최도영과도 다른 인물이다. 직급도 다르고.
이번 드라마 잘 될 것 같다. <하얀거탑>이나 <파스타>나 하얀 가운 입었던 드라마는 시청률이 높았잖나.
그런가. 그래도 하얀 가운 입는 건 싫은데.(웃음)
2012년 5월 15일 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2년 5월 15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