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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기 가득한 펀치의 소유자 <남자사용설명서> 이시영
2013년 2월 6일 수요일 | 김한규 기자 이메일


(이 인터뷰는 언론시사회 이전에 진행됐습니다.)

처세술책을 종종 읽는 편인가?
사서 보지는 않는다. 그런 책이 과연 실생활에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책 보다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럼 가전제품 설명서는 읽나?
그건 읽어본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거니까 꼼꼼히 살핀다.

<남자사용설명서>에 나오는 영상 교본은 처세술책과 가전제품 설명서 중 어느 쪽에 가깝나?
음...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처세술책이라고나 할까.(웃음)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사용설명서’ 영상 교본에는 연애나 사회생활을 할 때 쓸 수 있는 현실적인 팁들이 가득하다.

그 중 가장 공감이 갔던 건 팁은 뭔가?
‘남자가 여자보다 선물 받는 걸 좋아 한다’는 팁.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시나리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연애를 해본 여자들이라면 남자가 선물 받는 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너무 당연한 거라 잊고 지내는 사실 중 하나다.

그 사실을 여자들이 잊고 지내는 건 영화나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남자와 여자들의 고정된 이미지 때문일 수도 있다.
하긴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여자가 남자보다 수동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니까. 드라마 대본을 보면 “이거 여자친구한테 선물 받은 거야”라는 대사 보다 “이거 남자친구한테 선물 받은 거야”라는 대사가 더 많다. 여자들이 받는 걸 당연시하는 작품이 많다보니 이게 마치 정해진 룰처럼 돼 버린 거다. 나 또한 남자와 여자에 대한 고정관념에 쌓여있었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남자도 여자와 마찬가지로 섬세하고, 상처받는다는 걸 알게 됐다. 새로운 사실에 눈을 뜬 거지.
혹시 실생활에서 팁을 써본 일이 있나?
교본 중에 ‘남자들도 칭찬해주면 좋아한다’라는 팁이 있다. 상대 배역이었던 (오)정세 오빠한테 써 봤다. 다 되는 건 아니더라.(웃음)

제목이 <남자사용설명서>라 여자 관객들이 좋아할 것 같다.
오히려 남자관객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

어떤 이유에서?
내가 여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만약 <여자사용설명서>라는 영화가 나온다면 찾아서 볼 거다. 영화를 보면서 교본에서 알려준 방법과 내 연애 방법이 비슷한가를 체크할 것 같다. 남자들도 마찬가지겠지. 남자들도 호기심을 넘어 자신의 연애 방법을 체크하기 위해 관심을 갖지 않을까 생각된다.

얘기를 들어보니 블라인드 시사회로 이 영화를 본 당신 소속사 대표가 박장대소하며 이야기에 공감했다고 하더라. 이유가 다 있었군.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쓸 때 여자를 많이 만나본 남자들을 대상으로 ‘여자가 이런 행동이나 말을 했을 때 좋았다’는 주제로 조사를 했다고 하더라. 아무래도 남자들이 공감을 느낄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대표님이 즐겁게 영화를 관람한 건 다 정세 오빠 덕분이다.

너무 겸손하다.
정세 오빠에 비해 내 연기는 아직 멀었다. 난 아직 내 연기만 한다. 정세 오빠는 상대 배우의 연기를 받아주면서 자신의 연기도 살린다. 내공이 대단하거지. <커플즈> 때는 친분이 두텁지 않아서 몰랐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알게 됐다. 정세 오빠는 무서운 사람이다.

무서운 사람과 연기를 하면서 배운 것도 있겠다.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나보다 상대방의 연기를 잘 받아줘야 영화가 산다. 그래야 상대배우와도 호흡이 좋고, 나 또한 도움을 받는다. 정세 오빠는 행동으로 이런 노하우를 나에게 전수해줬다. 그러고 보면 오빠는 굉장히 세심한 사람이다.
또 한 번 호흡을 맞출 기회가 온다면?
그런 불상사가.(웃음) 만약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다면 배려하는 연기를 해야겠지. 사실 이번 영화에서 오빠에게 진 빚이 많다. 오빠한테 영화와 연기에 대한 스트레스를 다 풀었거든. 아마 촬영하면서 정세 오빠도 많이 힘들었을 거다. 첫 주연이라니 부담이 컸을 테니까.

제작보고회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른데? 그 때는 서로 단점을 지적하지 않았나.
정말 좋은 선배라 장난을 많이 친다. 그래서 오해를 많이 한다. 제작보고회 때 서로 단점을 지적하면서 장난쳤더니 주변 사람들이 정말 사이가 안 좋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아차!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조심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 오빠를 만나니까 또 장난치게 되더라.

영화에서 오정세씨가 맡은 역할이 한류스타 이승재다. 촬영스틸만 봐도 우리가 알고 있는 한류스타 비주얼과는 다른데, 그만큼 코미디의 강도가 셀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한류스타 캐릭터는 외모적으로는 최고지만 발연기를 한다든지 아니면 외모적으로 매력이 없지만 연기는 잘한다던지 하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이승재는 키도 작고, 깔창 끼고, 얼굴도 비호감인데, 심지어 발연기까지. 이 웃긴 캐릭터를 정세 오빠가 너무 잘 살렸다.

<남자사용설명서>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CG가 전체 분량의 50%를 차지한다고 들었다. 매우 독특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CG 장면은 영화의 중요한 소재인 ‘남자사용설명서’ 영상 교본에 주로 쓰였다. 그걸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많은 분량의 CG를 사용했다. 배우가 안 나오고 CG가 나오는 장면은 있어도 배우가 나오고 CG가 안 나오는 장면은 거의 없다. 그 정도로 CG에 공을 들인 영화다.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신선하게 봐줬으면 한다.

CG 장면이 많아서 연기할 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찍고 나서 고민이 더 많아졌다. CG 장면이 많아서 시간이 갈수록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 걱정됐다. 다행히 감독님이 잘 이끌어준 덕분에 무사히 영화가 완성된 것 같다.

촬영하면서 감독과 의견조율을 많이 했겠다.
감독님이 질려 할 정도로 질문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걱정스러웠다. 매사에 너무 긍정적이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라 영화의 큰 틀이 휘청거릴까 두려웠거든. 하지만 감독님의 뚝심에 걱정스러움을 접었다.
뚝심?
원래 시나리오에는 보나(이시영) 아버지가 죽는 설정이 있었다. CF 조감독으로 현장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도중에 아버지에게 연락이 온다. 바쁜 나머지 전화를 못 받았는데, 그게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였던 거다. 보나는 죽은 아버지를 위해 성공하겠다고 마음먹고 성장한다. 처음에는 이런 설정이었다. 투자·제작사가 자극을 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보나 아버지가 죽는 이야기를 삽입하자고 의견을 내놓은 거다. 일반적으로 첫 장편을 연출하는 감독이라면 투자·제작사의 이야기를 수렴한다. 하지만 감독님은 달랐다. 그 의견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부모의 이야기는 불필요하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 부모의 이야기가 된다고 말이다. 그 문제로 투자·제작사 측과 팽팽히 맞섰다. 결국 감독님의 승. 감독님은 보나가 아버지의 죽음을 알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 자체를 찍지 않았다. 찍으면 쓸 수 도 있으니까. 여지를 안 준거지. 그런 부분에서 뚝심이 보였고, 이후 감독님을 전적으로 믿게 됐다.

인터뷰를 보니 <홍길동의 후예> 촬영 때 정용기 감독이 “시영아! 1부터 10까지 연기가 있다면, 넌 늘 10을 해”라고 했다더라. 연기의 힘을 빼라는 감독의 조언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어땠나? 힘을 뺀 연기를 한 건 같나?
이번 연기도 힘이 좀 들어간 것 같다. 힘을 빼고 연기하고 싶은데, 참 쉽지가 않다. 연기자로서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내공이 부족하다보니, 촉박한 시간 안에 연기를 해야 하는 드라마의 경우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면 영화는 드라마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노력을 한다면 완성도 높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는 반대인 것 같다. 드라마는 시청자들과 정이 쌓인다. 연기를 못해도 시청자들이 적응해나간다. 평균 16부작이기 때문에 한 회를 못해도 다음 회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연기를 못해도 그 단점이 감춰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부자의 탄생>의 태희나, <난폭한 로맨스>의 은재는 오버 연기를 오히려 매력으로 봐 준 시청자들 덕분에 사랑을 받은 캐릭터다. 반대로 영화는 러닝타임 2시간짜리 한 편이다. 캐릭터를 잘 못 잡으면 끝이다. 촬영 도중, 캐릭터를 다르게 잡을 수 있는 드라마와 같은 여지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보다 영화가 더 부담이 된다. 영화는 정말 무서운 작업이다.

코믹한 캐릭터 위주로 연기를 했는데, 이 부분도 부담이 될 것 같다.
부태희를 연기할 때 드라마 흐름에 맞춰서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 독특한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오버하거나 과장된 연기를 하면 그만이었다. 이후 계속해서 독특한 캐릭터가 많이 들어왔고, 그런 역할을 맡아서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그런 캐릭터를 계속 고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안다. 개인적으로 잘하고 싶은 연기는 로맨틱 코미디다.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잔잔한 코미디를 전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 그런 작품을 만나면 내 연기력이 들통날거다. 욕심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났을 때 멋진 연기를 하기 위해서라도 힘을 빼는 연기를 부단히 연습해야 한다.
배우가 진검승부를 펼치는 곳은 촬영장이다. 이시영에게는 또 하나의 진검승부장이 있다. 바로 링이다. 배우와 복서를 겸하는 게 어려울 것 같은데 어떻게 균형을 맞춰나가고 있나.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게 욕심인 걸 안다. 하지만 둘 중 어느 하나를 포기 하고 싶지는 않다. 갈수록 어렵겠지만 균형을 잘 맞춰나가도록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링 위에서 상대 선수와 겨룰 때 어떤 생각이 드나?
그냥 무섭다.

무섭다고?
링 위에 올라가는 게 무섭고 두렵다.

근데 왜 올라가나?
그러니까.(웃음) 다른 선수들도 다 똑같다. 다들 무서워하고 떨린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링 위에 올라가는 건 고난과 역경을 일부러라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 때문인가?
부딪히기보다는 도망가는 편이다. 예전엔 좋지 않은 일이 터지면 핑계거리부터 찾았다. 누군가 “연기를 왜 그렇게 했어?”라고 다그치면 “아니 내가 그렇게 연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상황과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우연히 드라마 촬영 때문에 권투를 시작했는데, 이런 성격을 자연스럽게 고치게 됐다. 링 위에서는 도망갈 때가 없거든. 변명할 기회를 찾다가 상대편의 펀치에 넉 다운 된다. 정면으로 맞설 수밖에.

링은 이시영에게 와일드한 힐링 장소네.
좋게 말하면 그렇지. 연기를 할 때도 도움이 된다.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럽게 연기를 할 때가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할 때가 있다. 연기에 자신 없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카메라가 두렵다. 두려우니까 자신감도 결여되고, 자꾸 뒷걸음질 친다. 권투하면서 그런 게 많이 없어졌다. 용기도 생기고, 생각도 달라졌다.

이제야 왜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지 알겠다.
나는 좋다. 하지만 소속사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매니저에게 얘기를 들어보니 집, 회사, 체육관. 딱 정해진 동선으로만 이동해서 편하다고 하더라.
하긴 요즘은 이 세 곳 밖에 안 다니니.(웃음)

혹시 올림픽 메달을 따면 권투를 그만할 건가?
물론 메달 따면 좋지. 하지만 권투는 계속 할 것 같다. 메달 따는 것 보다 링 위에 오르는 게 좋다. 링에 내려올 때 경기를 무사히 치른 것에 대한 감사, 무서웠지만 용기내서 경기를 끝냈다는 성취감 등이 느껴진다. 권투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이다.

차기작이 <이야기>라는 스릴러 영화다. 그동안의 행보를 봤을 때 이제껏 맡았던 캐릭터에서 탈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야기>는 나에게 의미 있는 작품이다.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어서 출연하게 된 영화다. 제작사 대표님과 감독님을 찾아가서 영화에 참여해보고 싶다고 직접 말했다. 평소에 이런 역할을 해보고 싶은 갈망이 있었거든. 촬영 내내 열심히 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배우로 인정받고 싶다. 두렵긴 해도 이제 물러서지 않을 거다.

2013년 2월 6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3년 2월 6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4 )
joynwe
권투해도 매력적이고 배우로서도 매력 여전하네요.   
2013-02-21 13:20
taehee3725
복서의 용감한으로 영화를 재압한다면 당신은 또 다른 승리를 맛 보게 될것입니다. 복서의 초심의 맘으로 영화에 임하셨다면 대박은 따논 당상! 노력한 만큼 그 댓가가 온다는 걸 이시영씨 당신은 알것입니다. 열심히 찍으셨다면 그 댓가는 분명 따라올 꺼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시영씨! 당신의 두 주먹은 아름답습니다.   
2013-02-19 04:49
shoneylee
이시영씨, 너무 멋져요~   
2013-02-12 16:29
khg1322
남자사용설명서 제목만큼이나 영화내용이 상당히 독특하네요
복서에서 다시 여배우로 돌아온 이시영씨의 첫주연 영화 기대됩니다 ^^   
2013-02-10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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