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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나를 깨우는 과정. <식객:김치전쟁> 김정은
2010년 2월 2일 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식객:김치전쟁>이 시사회 바로 전까지 편집에 힘을 쏟았다고 들었어요.
11월에 촬영이 끝났어야 했는데, 12월에 보충 촬영이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후반 작업이 길어졌죠.

완성된 작품을 보고 어땠나요? 본인이 생각했던 그림과 결과로 나온 그림이 비슷하던가요?
‘내가 생각했던 게, 이렇게 나왔구나’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말씀 드렸듯 보충 촬영이 있었고, 후반 작업이 길었던 영화라, 보면서 ‘아, 그때 그게 빠졌구나’, ‘어머! 그건 잘랐구나!’, ‘헉! 저건 또 저렇게 넣었구나!’ 이러면서 봤어요. 마지막까지 많은 얘기를 나누며 찍은 작품이라 그런지, 배우보다 만들어 간 사람의 입장으로 영화를 봤던 것 같아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에서는 10킬로를 찌우려고 음식을 일부러 많이 먹었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진수성찬 앞에서 참느라 고생했겠어요.
촬영장에 먹을거리가 많기는 했어요. 밤샘 촬영이 많아서 간식거리가 끊이지 않고 나오기도 했고요. 그런데 영화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시종일관 되게 말라있었어요. 당시 예민해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원래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죠. 특히 영화 마지막 고사 지낼 때, 제 부어 있는 모습 보셨죠? (웃음) 원래 그게 저희 엔딩이 아니고, 보충해서 새로 들어 간 엔딩이에요. 원래 버전은 장은(김정은)의 엄마 수향(이보희)이 죽은 후, 산사에서 성찬(진구)과 제가 대화를 하는 장면이 끝이었어요. 그런데 “<식객:김치전쟁>은 기획영화”라고 얘기하시는 분들이 “왜 우리가 이렇게 어둡게 끝내야 할까?”라고 주장을 하셨어요. 생각해 보니, 모든 사람들이 상중에 검은 옷을 입고 엔딩을 맞는 것 보다, 뭔가 희망이 있는 게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바뀐 건데, 기자님은 바뀐 엔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새로운 엔딩으로 인해 영화 전체적으로 느낌이 확 달라진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웃지 않던 장은이 처음으로 활짝 웃었던 게 아마, 그 보충 장면에서였죠?
하하하. 맞아요. 솔직히 얘기하면, 마지막 장면에서 그건 김정은이었던 거야~ 배장은이 아니고.(웃음) 보충 촬영 했던 12월에는 솔직히 제가 무방비 상태였어요. 장은의 모습이 많이 없어진 다음에 촬영을 한 거라, 전반부와 달리 장은의 액션이 과해요. 그 장면에서 가장 반응이 큰 게, 아마 저였을 걸요?(웃음) 다른 배우들의 애드리브를 보고 있자니 너무 웃기는 거예요. 나름 자제한다고 하긴 했는데, 너무 웃고 말았죠.

초반에 참았던 웃음의 한을 거기서 푼 것 같네요.(웃음)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성찬과 요릿집 ‘춘양각’에서 사이좋게 요리 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그것도 새로 추가된 건가요?
아, 거기에도 또 영화에 담아내지 못한 엄청난 엔딩이 있었어요. (웃음) 그러니까 엄마인 수향이 죽기 전에 마지막 손님을 대접하는 스토리가 따로 있었어요. 마지막 손님은 영화에는 한 번도 언급 안 된 새로운 인물인데, 수향이 “40년을 기다린 분이다”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죠. 수향이 기다린 그 분이 장은의 아버지인가 아닌가하는 암시도 있었는데, 결국 편집에서는 잘렸네요. 사실 이것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엔딩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너무 길다보니, 결국 다 끄집어낸 거죠.
마지막까지 의견 개진이 많았던 영화였군요.
그런데 그게 모두 잘 되고자 한 거잖아요? 사실 촬영 중간에는 고통스러웠어요. ‘이런 고민들은 프리프로덕션 때, 다 하고 들어갔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랬는데, 대충하다 말거나, 자기주장만 하다 끝내려는 게 아니라, 서로 잘 되고자 하는 마음에 이러는구나를 느끼면서 이해하게 됐죠. 누가 “여기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하면, “오케이,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이런 식으로 더 좋은 방향을 찾아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 영화를 10년 정도 했으니 대중성보다 작품 내적인 욕심이 많은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또 대중적인 코드를 놓치면 안 되는 게 맞기도 하죠. 그런 부분에서 서로 타협을 되게 잘 한 작품인 것 같아요. 스스로 대견스러운 게, “이게 또 바뀌었어?”, “나 못해!” 이런 게 아니라, “(특유의 코믹한 목소리로) 아~ 좋습니다~ 이게 왜 바뀌었을까요~ 이유가 뭘까요~”하면서 잘 견딘 것 같아요.(웃음) 지나고 나니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장은은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 인물이에요. <우생순>에서 정은씨가 연기한 혜경도 자존심이 강한 인물이었지만, 그 친구는 그래도 동료의 보약을 몰래 훔쳐 먹을 줄도 아는 다소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줬었죠. 그에 비해 장은은 처음부터 끝까지 냉철함을 버리지 않아요. 감정을 분출하기보다 삭이는 쪽의 연기였는데, 연기자 입장에서는 이런 캐릭터가 연기 할 때 더 괴로웠을 것 같아요.
일단 빈틈 전문 역할을 담당해 왔던 저로서는 ‘빈틈이 한 개도 없는 인물’을 연기한다는 게 너무 매혹적이었어요. 반면 “이걸 과연 믿어줄까?”라는 걱정도 됐고, “저거 가짜같아!” 이러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도 많았죠. 그래서 그런 부분에서 감독님과 대화를 참 많이 했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합의를 본 건, 일단 ‘인간 장은’은 성찬이나 다른 인물들과 있을 때는 속내를 잘 안 보이고, 끝까지 잘난 척을 하는 걸로 가자였어요. 겉은 차갑고 냉정해 보이지만 내면은 콤플렉스와 분노 때문에 항상 부글부글 끓는 인물로요. 반면 일본에서의 장은, 즉 ‘천재 셰프로서의 장은’은 일부러 빈틈없는 척 하거나, 생각 많은 척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요리를 사랑하는 여자로 가보자라고 했어요. 이 여자에게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나름의 노력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고, 제가 지금 연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장은에게도 요리가 전부인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에 대한 열정을 분출하고 즐기고 싶은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냉철한 반면 눈물은 굉장히 많은 여자였어요. 10년 만에 만난 엄마 앞에서 운 것을 시작으로, 과거 회상씬에서도 울고, 마지막 요리 대회에서도 성찬의 말을 듣고 또 눈물을 보였죠.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우는 씬 촬영 때의 당신 상황이 궁금했어요. 뭐랄까? 배장은만 우는 게 아니라 김정은도 함께 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게 첫 테이크였어요. 손으로 얼굴을 전부 다 가리고 울었는데, 사실 우는 연기를 하면서 그러면 재미가 없잖아요. ‘나, 울어요’를 알리기 위해 고개도 살짝 들어주고, 눈물도 보이고 이래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오고 말았어요. 그 장면을 찍기 전에 ‘장은이는 과연 어떤 마음일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는데, 결론은 그거였어요. 성찬이 알려주는 진실을 장은이가 결코 모르고 있지 않았다는 거. 알고는 있는데,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그걸 드러내지 않고 있었을 뿐이죠. 혹시, 그런 적 없으세요? 꾹 참고 있는데, 옆에서 “(측은하게) 어유~ 그랬어?”라고 타이르면 더 터지게 되는 그런 경험이요. 저는 그런 적이 많거든요. 눈물을 보이기 싫어 가만히 있는데, 그걸 누가 조금이라도 토닥이면 왈칵하고 눈물이 나와요. 장은이도 그랬던 것 같아요. 가만히 놔 둬 줬으면 좋겠는데, 성찬이 그걸 건드리니까 무너진 거죠. 그래서 성찬의 얘기를 듣고, 막 타지게 된 거예요. 그때 연기하면서 제가 얼굴을 너무 가려서 NG가 나는 게 아닌가 했어요. 마음에서는 ‘손을 좀 떼서 얼굴을 보여줘’라고 하는데, 손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오히려 가장 장은이 다운 울음이었던 것 같아요. 남에게 결코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여자! 그런 장은의 모습과 잘 어울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 역시 그것 또한 장은이답게 무너진 거라고 생각 했어요.

이번 영화에서는 얼굴 클로즈업이 유독 많았던 것 같아요. 얼마 전 윤여정씨가 <무릎팍 도사>에 나와 “클로즈업이 싫다”고 했을 정도로 여배우에게 클로즈업은 부담이기도 하죠. 물론 감정을 좀 더 세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요. 화면 가득 클로즈업 된 본인 모습을 보는 게 어떻던가요?
“얼굴 왜 저래~” 라는 생각밖에 안 했던 것 같아요.(웃음) 계속 못 보겠더라고요. 솔직히 시사회 날 영화를 봐야 하는데, “(소곤거리며) 어떻게, 어떻게! 저거 왜 저래?”이러고, “왜 저렇게 가깝게 잡은 거야”, “조명 반사판은 왜 또, 안 한 거야!” 막 이러면서 봤다니까요?(좌중폭소). 시사회 때 장은이는 이미 저를 떠나 있었던 거죠. 그래서 계속 “어떻게, 어떻게!” 이랬어요.(웃음)

요리 연습을 상당히 많이 한 것 같았습니다. 무를 보지 않고도 능숙하게 써시던데요?
3개월 정도 연습을 했는데 무 써는 게 기본이었어요. 왜, 쿵푸 수련생도 고수를 찾아가서 무술을 연마 받을 때, 물구나무서기나, 나무 매달리기 이런 것부터 하지, 처음부터 칼 휘두르기를 배우지는 않잖아요. 그것처럼 저도 요리 수업 들어가기 전에는 일단 무 5통씩을 채 썰고 시작해야 했어요. 처음에 무 썰 때는 손이 막 까져서 파스 붙이고 그랬는데, 나중에 원리를 알고 나니까 쉽더라고요.

원래 감치는 담글 줄 알았나요?
아니요, 전혀요.

이번에 많이 배웠겠네요.
그럼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기자님은 김치 담글 줄 아세요?

네? 흐흠… 저도 못 담그는……(웃음)
김치 담그는 거 그다지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왜~ 김치찌개, 된장찌개 이런 건 쉽게 끓이는데, 김치는 못 담그나 했더니, 자꾸 볼 기회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김치찌개 같은 건, 누가 끓이면 어깨너머나 옆에서 볼 기회가 많잖아요. 어려운 게 있다면, 맛을 제대로 내는 건데, 김치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게 되게 중요한 음식 같아요. 그러니까 융통성이 필요한 요리라고 해야 할까요? 이게 세월에서 오는, 발효 음식이잖아요. 그러니까 배추를 고르는 것에서부터 중요해요. 배추도 여름배추, 겨울배추 다 다르거든요. 여름배추는 조그맣고 물이 별로 없는 반면, 겨울 배추는 커요. 그러니 아무래도 시간상으로 겨울배추가 절이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죠. 또 소금을 어떤 식으로 어떻게 절이느냐가 관건인데, 너무 짜게 절여졌으면 속에서 간을 잘 맞춰 줘야 해요.

네. 여러분은 지금 김정은씨로부터, 김치 담그는 법을 글로 배우고 계십니다.(웃음)
하하하. 김치라는 게 참 재미있는 요리 같아요. 집집마다 각각의 고유한 김치들이 있는 것도 그렇고요. 저희 집은 민물 새우를 넣는데, 제가 얼마 전 김장할 때, 엄마한테 “계피를 좀 넣지 그래?” 했더니, 발끈하시면서 “나가라, 당장!” 이러시더라고요.(웃음) 왜 우리 영화에서는 (몸이 찬 사람에게 좋은) 계피가 굉장히 중요한 재료잖아요. 엄마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는. 그런데 엄마는 영화를 안 보셨을 때니까 몰랐던 거죠.(웃음) 너무 핀잔을 주시니까 나중에는 제가 “(대차게) 나도 몸이 차다구!” 이러면서 열변을 토했지 뭐예요.(웃음)
최고의 소금인 자염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장면도 나오는데, 상업영화에서 자염을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상세히 소개 된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조금 아쉬웠어요.

어떤 점이요?
저는 그런 에피소드들도 드라마틱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실, 그 안에 정말 드라마가 있었거든요. ‘소.금.남.과.의.드.라.마’가!(소금남: 장은이 자염을 만들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남자) 소금남이 처음부터 저를 관대하게 대하지 않잖아요. 나중에 장은이의 정성에 감복해서 “그래 도와 준다”해서 같이 하게 된 건데, 영화를 자세히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제가 처음 자염 작업할 땐 장갑을 안 끼고 있었어요. 그런데 후에 장은에게 마음을 연 소금남이 장갑을 ‘툭’ 던져 주고 가서 끼게 된 거죠.(웃음) 그런 식으로 둘이 묵묵히 작업을 해 나가는 드라마들이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그게 모두 몽타주 씬으로 대체됐어요. 그래서 그건 조금 불만이에요. 다큐멘터리가 아닌 이상 몽타주가 아닌, 드라마로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감독님이라고 왜 그러고 싶지 않았겠어요. 보여 줄 건 너무 많고, 한계는 있고. 또 이게 ‘기획 영화다’, ‘코미디는 왜 없냐’ 하는 시선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죠.

영화를 보니, 속편이라기보다 ‘스핀오프’ 같은 느낌이 강했어요. 장은이도 허영만 화백의 원작 ‘식객’에는 없는 인물이고요.
네. 완전히 다른 영화죠. 성찬만 빼고는 다 새로 만들어진 캐릭터에요.

그렇게 봤을 때, 진구씨 같은 경우 과거 성찬이들(김강우, 김래원)과의 비교가 부담인 동시에 부딪혀 보고 싶은 매력점이라면, 장은의 경우 레퍼런스가 전혀 없다는 게 단점이자 장점이었을 것 같네요.
저는 처음에 ‘이거 잘 잡았는걸!’ 이랬어요. ‘여성 VS 남성’이라는 설정에서 길을 잘 잡았다고 느낀 거죠. 만약 ‘남성 VS 남성’의 구조였다면, 혹은 제가 그 남자의 멜로에 들어가는 인물이었다면, 연기 할 이유를 못 느꼈을 것 같아요. ‘성찬이가 도저히 넘을 수 없고, 대적하기 힘든 강력한 상대가 있는데, 그게 바로 여자’ 라는 게 정말 매혹이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비교대상이 없어서 고민도 했지만,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에 재미도 있었죠. 그리고 감독님도 저도 이번 작품이 전편보다 인기를 더 끌든 못 끌든, 중요한 건 디테일이고, 깊이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전편보다 확장하는 건 좋은데, 그만큼의 깊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촬영을 한 거죠.

크게 상처를 받은 사람이 취하는 행동은 크게 두 가지인 것 같아요. 기억에서 그 아픔을 삭제하려 하거나, 그 안으로 아예 들어가거나. 아픔의 기억을 지닌 '춘양각'을 없애려 하는 장은은 전자 쪽이죠. 그렇다면 김정은은 어떤 쪽인가요?
저는 뛰어드는 쪽이에요. “그래, 안 좋은 일은 잊고, 눈물을 닦고 새로 시작하는 거야”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감정이 우울하거나 안 좋거나 할 땐, 차라리 밑바닥까지 간 다음에 다시 치고 올라오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일단 “바닥을 칠 수 있을 때까지, 치고, 치고, 치면서 어디까지 떨어지나 한번 가 보자”라고 가죠. 슬픈 음악을 듣든, 술을 마시든, 뭘 하든, 그걸 끝내야 홀가분한 기분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제가 장은이보다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지 않나 싶네요.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거군요.
네. 제가 밝은 이미지를 많이 보여 와서, 의외라고 생각하실 분도 계실 것 같은데, 제 성향은 그래요.

개인적으로 <사랑니>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지금에 와서 정은씨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영화인만큼, 당시 뭔가 이끌렸던 부분이 있었을 것 같아요. 특히나 그 때가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끝내고 굉장히 인기를 얻던 시기였잖아요. <파리의 연인> 이미지를 계속 업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죠. 과연 어떤 심경이었을지 궁금하네요.
그 때 <파리의 연인>을 끝내고, “내가 이제 뭘 해야 하나?”라는 고민이 밀려왔어요. 당시 아이돌마냥 어디 나가기만 해도 환호 받고, 뜯기고, 드라마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는 막 쌓여가고, 정말 난리가 아니었죠. 그런데 저는 그게 좋다기보다 오히려 “이제 과연 배우로서 뭘 보여 줄 수 있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갑자기 그 때 정은씨가 가졌던 심정이 영화 속 장은이와 어느 부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우생순>의 혜경이 2인자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지닌 인물이었다면, 장은은 1인자로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있는 인물이잖아요.
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러네요. 그리고 사실, 당시 그게 처음 겪는 인기였다면 안 그랬을 수도 있는데, 저는 그 기분을 이미 <가문의 영광>으로 경험 했기에 인기 뒤에 찾아오는 허무함에 대해 경계를 했던 것 같아요. 2002년에 <가문의 영광>이 너무 잘 돼서, 여기저기서 저에 대해 ‘발견!’이라고 하면서 관심을 가져줬었죠. 그 때는 그게 너무 행복했는데, 곧 인기라는 게 거품이란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래, 이런 대박 누가 경험해 보겠어? 감사하게 여기고, 내 인생에서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자’라고 생각하며 지냈죠. 그러다가 만난 게 <파리의 여인>인데, 아직도 기억나는 게 촬영 들어가기 전에 꼭 팔 벌려 뛰기를 다섯 번씩 하고 들어갔어요. 워낙 밝고 에니지 넘치는 인물이니까 그 기분을 살리고 싶었거든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작품인데, 그렇게까지 잘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그래서 끝나고 나니까, 에너지는 다 썼고, “나 이제 다 보여준 것 같은데, 할 게 없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본질적인 고민으로 들어간 거였군요.
네. 그리고 사실 세상에 그렇게 밝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어두운 면도 있고, 강한 면도 있고, 반대로 약한 면도 있는 게 인간이잖아요. 그러니 이런 마음도 표현하고, 저런 것도 꺼내 보여주고 해야 하는데, 저는 너무 밝은 것만 부각되니까, 그것에서 오는 고민들이 잔뜩 있었어요. 갈 길이 잃은 거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몰랐어요. 그 때 제 손을 잡아 준 게 바로 <사랑니>예요. <사랑니> 찍을 때, “제발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촬영장으로 와”, “그냥 눈뜨고 세수 하고만 와!” 이런 분위기여서 저는 하라는 대로만 했죠. “이래도 될까요?”이러면서.(웃음)

최근 필모그래피를 보면 대중의 선입견을 전복하려고 한다는 느낌도 살짝 들어요. 본인이 처음에 가지고 있는 코믹한 이미지와 ‘거리두기’를 한다고 할까요?
글쎄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것 같고요. 그냥 그 순간, 자연인 김정은이 가지고 있는 기분대로 선택하는 게, 편하다는 걸 요즘 와서 느껴요. 옛날에는 내 기분을 떠나서 ‘이건 안 될 것 같고, 저건 내가 사랑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골랐어요. 그런데 이번 작품의 경우,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그 때의 기분에 충실하게 선택했던 것 같아요. 깔깔 웃고 싶지도 않았고요, 또 내가 웃고 싶지 않은데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건 거짓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선택했는데, 그런 기분에서 출발한 게, 가장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라는 걸 알게 됐어요. ‘솔직하게 고르면 삶이 이렇게 편한데, 내가 이제까지 왜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그랬을까?’를 느꼈죠.
왜 위의 질문을 했냐면, 김정은씨 인터뷰를 한다고 하니까, 로맨틱 코미디를 굉장히 좋아하는 한 친구가. 아, 참고로 남잔데요, 그 친구가 “김정은이 한국의 제니퍼 에니스톤이 될 줄 알았는데!”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친구 같은 경우에는 당신이 그 분야에서 계속 커가기를 바랬는데, 새로운 모습으로 나가는 게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런 사람도 있어요! “왜 (로맨틱 코미디) 안 해?”라고 하는.

저도 그 부분에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게, 정은씨가 예전에 보여 준 코믹 연기들이 나쁜 평을 받은 게 아니었잖아요. 오히려 그 분야에서 상당한 인정을 받았죠. 그러니, 지금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가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당신이 기존의 장점을 완전히 접고 다른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하며 아쉬워하는 팬들도 생기는 것 같아요.
아아아~ 그 의욕은 아직도 활활 불타올라요. 재미있는 씬을 봤을 때, 너무 하고 싶기도 하고요. 절대! 안 하겠다는 게 아니에요. 하지만 확실히 이런 건 있어요. 기존에 했던 코믹 연기와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게 말이에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요. 이런 고민들을 하고, 외로운 시간들을 보내고 난 후에 만나는 코미디는 또 뭔가 달라져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그게 도대체 뭘까’ 고민 하고 있는 중이에요. 그러니 친구 분께 꼭 전해주세요. 절대 코믹 연기를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라고. 대신, 좀 더 발전적인 모습으로 찾아가고 싶다고 말이에요.(웃음)

(웃음) 그 친구와 대화하면서 또 느낀 건데, 이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왜, 우리나라는 로맨틱 코미디에 대한 인식이 미국만큼 호의적이진 않잖아요. 그러다보니, 그 층도 얇고요.
그렇죠. 그리고 일단은 하고 싶어도 없어요. 특히 요즘은 더욱더. <아바타>가 터지든 말든, 어떤 장르가 인기를 끌든 말든, 로맨틱 코미디도 꾸준히 나오고 해야 계속 사랑받고 할 텐데, 어느 순간 로맨틱 코미디가 사라졌어요. 한국영화는 유행을 너무 많이 타죠. 다양성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의 이런 고통의 시간들이 언젠가 분명히 피가 되고 살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도 지금의 시간을 보낸 후에, 내 나이에 맞는 귀여운 역할을 하게 되면, 조금 더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 부분에서는 당신이 이미 한 차례 업그레이드 됐다고 보는데, <우생순>을 보고 그렇게 느꼈어요. 거기서 굉장히 진중한 캐릭터를 맡았지만, 망가지는 부분이 몇 군데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 망가지는 부분에서 개인기에 기댔던 예전과 달리, 타이밍을 절묘하게 노린 좀 더 진화 된 코미디를 보여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아, 감사합니다. <우생순>은 캐스팅이 참 잘 된 영화였어요. 문소리씨, 김지영씨가 진짜 웃겨요. 술도 잘 마시고.(웃음) 너무 좋고, 끈끈한 사람들인데, 당시 제가 우아한 척 하고 앉아 있으면, 이 아줌마들이 “너는 왜 그 모양이야?”라고 비난하곤 했죠.(웃음) 요즘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서 기사를 살펴보는데, ‘김정은 연기가 안정되고 어쩌고’하는 말이 한 줄 이라도 나오면 죽을 것처럼 좋은 거예요. 지난 5년을 보상받은 기분이랄까. 그러니까 이런 것 같아요. ‘하나만 잘하고, 다른 건 못해요’와 ‘다 할 수 있는데, 이걸 하는 것뿐이에요’랑은 엄청 다른 의미잖아요. 항상 그런 콤플렉스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나 밖에 못 하는 애’라는 시선에 대한 서러운 고민들이요. <사랑니>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건 많은 관객들과 만나지 못해서 아쉬움이 있었고, <우생순>은 또 너무 많은 군상이 나와서 티가 안 났고.(웃음) 그래서 이번 영화를 보고 누군가가 “어, 눈빛이 달라진 게 느껴져”라고 생각해 주면 너무 기쁠 것 같아요.
예전에 인터뷰한 걸 보니까 ‘팜므파탈’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혹시 본인이 뽑는 최고의 팜므파탈 캐릭터가 있나요?
<해피엔드>의 전도연 선배가 떠오르고요, 엄정화 언니가 <인사동 스캔들>에서 연기한 팜므파탈 캐릭터도 참 좋았어요. 저는 그런 여자들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불친절한 여자들에게 말이에요. 그래서 <라 피아니스트(la pianiste)>에 나오는 이자벨 위페르 같이 마르고 예민해 보이는 게 로망이에요. 그런데 지금 살 쪄서 죽겠어요. (웃음)

(웃음) 음악프로 <김정은의 초콜릿> 진행이 벌써 2년이나 됐어요. 배우로서 자신의 이름을 건 음악프로를 한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죠. 당신에게 <초콜릿>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초콜릿>은 위로를 주는 존재 같아요. 내 정신이 건강해지게끔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인 거죠. 저는 여배우들이 어떤 감정을 쏟고 나서, 그걸 제대로 치유 받지 못하면 엄청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전도연 선배가 <밀양>에서 “너무 괴로웠다”고 말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게 너무 이해가 가는 거예요. 저 고통을 어디에서 치유 받을 수 있을까 싶어지더라고요. 우리나라가 할리우드처럼 정신과 상담을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지금 상황에서 가장 기댈 수 있는 게 가족이겠죠. 전도연 선배 같은 경우엔 아기일 수 있겠고요. 이런 식으로 가까이에서 정신적인 힘이 되는 가족이나 친구나 혹은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봐요. 사랑이든, 정신과 상담이든, 뭐든. 저도 얼마 전에 그걸 느꼈는데, 제가 계속 “고통스러웠어요!” 라고 얘기하고 다녔잖아요. 그때 제가 치유 받을 수 있었던 아주 고마운 존재는 <초콜릿>이었어요.

<식객:김치전쟁>은 음식 이전에,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훗날,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딸이 되고 싶은지 궁금하네요.
저는 제가 되게 효녀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촬영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상처 줬던 부분이 많았구나’를 깨닫고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자식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마음이 있다고 하던데,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리고 되게 궁금한 건, ‘내 입보다 남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게, 더 배가 부르다’라는 게 어떤 감정인지 알고 싶어요. 저는 배가 고플 때, 남의 입에 밥이 들어가는 걸 보고 제 배가 부른 적이 없거든요.(웃음) 그런데 엄마들은 그렇다고 하잖아요. 자기가 굶어도 자식이 먹는 걸 보면 배가 부르다고. 그게 어떤 감정인지 궁금해서 엄마가 돼 보고 싶기는 해요.

마지막으로 <식객:김치전쟁>을 김치에 비유하자면?
겨울이고 하니까, 독에서 오랫동안 묵혔다가 꺼낸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가 떠오르네요. 그리고 저는 청각적인 소리가 식감을 크게 자극할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보는 것과 맛보는 것 외에 청각적인 소리도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는 고춧가루를 버무린 김치보다, 맑으면서도 깊은 맛을 내는, 무를 ‘아삭아삭’ 씹어 먹을 수 있는 김치가 우리 영화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네요.

2010년 2월 2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2월 2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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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lisy
재미있을까요?   
2010-02-15 17:39
kwyok11
cgv에선 막내린 식객   
2010-02-12 15:25
mvgirl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더 어울리는 듯한 느낌은 왜일까...   
2010-02-09 21:26
gt0110
식객2 잘 봤습니다...^^   
2010-02-07 02:08
norea23

김정은씨 너무 좋아요~~   
2010-02-06 00:35
pretto
잘봤습니다 ^^   
2010-02-05 22:43
hyosinkim
식객 기대   
2010-02-05 21:53
scallove2
잘봣습니당   
2010-02-0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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