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남자의 사랑이 영화관을 뒤덮는다.
2008년 11월 17일 월요일 | 유지이 기자 이메일


남자 둘 이상이 함께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뜨거운 남성미와 우정의 상징인 시절이 있었다. 주인공의 직업은 보통 거친 일과 맞서고 총칼이 일상적인 것이기 쉬웠고, 영화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으레 마초적 매력과 폭력의 난무로 맺어졌다. 때로 두 남성이 서로 에로틱한 감정을 가진 영화가 있었지만 〈토탈 이클립스〉〈해피 투게더〉처럼 예술지향 영화인 경우가 흔했다.

주류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조류는 서서히 올라왔고 드디어 2008년 가을 한국 영화관에 완연히 자신들의 존재를 알렸다. 형사를 소재로 한 〈투캅스〉나 형사와 범죄자의 미묘한 관계를 다룬 〈사생결단〉 혹은 비슷한 관계를 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 〈강적〉〈투 가이즈〉같은 버디 영화는 이미 있었지만 마초의 색깔을 의도적으로 피한 영화가 올 가을처럼 많지는 않았다.

동인의 색깔이 주류를 물들이다
 한 쪽 극단을 차지하는 야오이
한 쪽 극단을 차지하는 야오이

여성을 주력 독자로 내세운 ‘순정’이 별개의 탄탄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던 만화계에는 오래전부터 남성 동성애가 주류의 하나였다. 많은 로맨스 소설이 그렇듯 평범한 여주인공 주변을 남성적 매력이 풍부한 남자주인공이 떠도는 구도였던 로맨스 순정만화는 점차 남자주인공의 수를 불려왔다. 장르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볼륨이 불어난 남자주인공들은 선이 얇고 마초적이기보다는 아름다운 남성상을 그리는 순정풍과 결합하며 우정 이상의 미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곤 했다. 미묘한 분위기 이상으로 남자주인공 사이의 관계를 발전시킨 것은 아마추어들이 기존 만화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각색을 펼치는 동인지들의 활약이었다. 제도권을 벗어난 동인지에서 기존 남자주인공은 미묘한 원작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위험한 사랑’을 시작했고, 프로급 실력을 지닌 동인지 작가가 주류 만화계로 들어오는 일도 있었다. 결국 일본은 거대한 규모의 동인지 시장과 로맨스 순정만화 시장을 바탕으로 극단적으로 장르화된 남자 동성물 ‘야오이’ 시장을 완성했다. 대개의 성공작은 많은 남자주인공 사이에 평범한 여자주인공이 둘러싸인 마일드한 로맨스 순정물과 극단적인 야오이 물 사이에서 미묘한 분위기를 설정한다.

동인문화와 야오이의 영향과는 동떨어진 구미권 역시 인종과 성별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고 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이해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현대 사회 분위기에서 동성애자가 양성화되기 시작한다. 절정은 양성적인 동성애자가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직업군이 패션과 같은 세련된 분야라는 점에서 폭발한다. 세련된 매너와 전문직을 갖춘 게이가 여성을 이해하고 가장 친한 친구로 있을 수 있는 〈섹스 앤 더 시티〉의 판타지나 쿨하고 아기자기한 게이의 삶을 그린 〈윌 앤 그레이스〉, 섹시하고 적극적인 레즈비언을 그린 〈The L Word〉의 성공은 그렇게해서 가능했고, 헐리웃 역시 20세기 중반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관대함으로 이를 소재로 가져왔다.

일본 순정만화의 한국 상륙

유장한 시대를 파란만장하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스케일 큰 한국 순정만화는 ‘순정’이라는 틀을 벗어던진지 꽤 되었다. 원작을 생각하면 무척 아깝게 각색한 〈비천무〉나 뮤지컬 〈불의 검〉, 한창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드라마 〈바람의 나라〉, 한국을 대표하는 온라인 게임으로 성장한 〈리니지〉까지 스케일 큰 작품의 원작이 어디에 적을 두고 있는지 찾아보면 자명하다. 덕분에 (순정만화의 반대 의미에서 ‘소년’만화의 경우와는 다르게) 일본풍 순정만화는 한국 순정만화와는 다른 스타일과 소재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고 팬층 역시 별개로 성장했다. 그 팬은 일본 순정만화와 헐리웃의 쿨한 게이물을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소프트하게 만들어 미묘하게 동성애 코드를 벗어나는 작품을 즐길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영화 〈왕의 남자〉의 대성공은 그런 경향이 주류로 올라올 준비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단적인 사례가 되었다.
 서양골동양과자점(2008)
서양골동양과자점(2008)

이런 시점에서 (야오이 수준까지 막가지는 않는) 소프트한 게이물 〈서양골동양과자점〉을 영화로 만들기로 한 제작자가 있다는 것쯤 ‘왜 이제서야’ 싶을 정도로 당연하다. 이미 국내에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인기만화인데다가 일본만화를 원작으로 한 두 작품 〈올드보이〉〈미녀는 괴로워〉의 대성공을 보고 있자면 흥행할 준비가 되어있는 작품이라고 느끼지 않았을까. 게다가 공개된 작품은 앞 선 두 작품 〈올드보이〉와 〈미녀는 괴로워〉보다 훨씬 원작을 그대로 가지고 와 각색했다. 제목이 된 서양 골동품 점을 개조한 고풍스러운 케익가게 역시 똑같고, 네 명의 꽃미남이 케익가게를 운영한다는 점도 같다. 심지어 원작의 포인트였던 남녀를 가리지 않고 애정의 늪에 빠트렸던 ‘마성의 게이’가 핵심 주인공으로 남아있는 점은 원작을 좋아했던 팬에게는 휘파람 불 소식일 듯.

다른 지점에서 출발해 여심을 잡으러 오다

흔히 누벨이마주의 기수로 기억하는 레오 까락스의 1986년 작품 〈소년 소녀를 만나다〉의 패러디일까. 깊은 울림을 지닌 레오 까락스의 영화와 비슷한 〈소년, 소년을 만나다〉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는 제목처럼 퀴어 영화를 목표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처절하고 묵직한 이야기로 삶을 풀어나간 이전의 퀴어 영화처럼 무거운 영화일 것이라고 짐작이 되지만 의외로, 공개한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는 청춘스타 김혜성과 ‘샤방’한 인상의 이현진을 주연으로 내세운다. 공개된 가벼운 포스터와 누나들의 연심을 자극하는 예고편까지 이전의 한국 퀴어 영화나 제목을 빌려온 레오 까락스의 작품의 무거움과는 거리가 있는 영화가 될 모양. 드디어 한국도 〈윌 앤 그레이스〉나 〈퀴어 애즈 포크〉같은 경쾌한 퀴어 영화를 가지게 되는걸까.
 <쌍화점(2008)>
<쌍화점(2008)>
 <소년,소년을 만나다(2008)>
<소년,소년을 만나다(2008)>

관능적인 묘사로 유명한 동명 여요를 제목으로 차용한 〈쌍화점〉은 전혀 다른 접근에서 출발한다. 여요를 제목으로 한 만큼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실존인물이었던 공민왕(주진모)과 총애하는 호위무사(조인성)를 필두로 심지호 등 미소년풍 배우들을 대거 포진해 동성애 코드로 시대극을 풀어가는 영화. 전작 〈비열한 거리〉에서 짝을 맞춘 유하 감독과 조인성의 콤비 플레이가 한국 20대 여성들의 이상향 조인성의 육체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동성애 영화 폭풍의 핵이다. 말쑥한 모습을 갖춘 메트로 섹슈얼이 케익을 들고 동네 골목에서, 앳된 모습으로 골목의 끝에서, 몇 세기 전으로 돌아가 칼을 들고 나타난다. 한국영화 스펙트럼의 또 다른 분화를 이들을 통해 만날 수 있다.

2008년 11월 17일 월요일 | 글_유지이 기자(무비스트)

20 )
ldk209
소위 야오이문화...   
2008-11-17 20:57
mvgirl
요즘 퀴어 영화가 참 많이 나오네요.. 좋은 작품들로 거부감이 점점 없어지는 듯...   
2008-11-17 20:51
smj4669
 기대가 되는 작품들 입니다!   
2008-11-17 20:15
shelby8318
〈윌 앤 그레이스〉재밌는 미드.   
2008-11-17 18:54
1 | 2 | 3

 

1 | 2 | 3 | 4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