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벽에 부딪히면서 조금씩 발전해간다 <부산> 고창석
부산 | 2009년 10월 19일 월요일 | 김도형 기자 이메일

최근 많은 작품에서 얼굴을 보이는 것 같다. 많이 바쁘겠다.
이제 뭐 바쁜 건 거의 끝났다. 10월 한 달은 <부산> 홍보만 하면 되고, 11월부터 새로운 영화를 준비할 계획이다. 저번 주까지가 좀 바빴다. 22일에 <의형제>가 크랭크업했고, 27일쯤에 드라마 <드림>도 마지막 촬영이었다. 홀가분하게 추석도 맞이했다.

계속 연극이나 영화만 하다가 드라마에 출연했다. 경험해보니 어떻던가?
많이 다른 것 같지는 않은데 처음에 적응하기는 좀 힘들었다. 영화에 비해 워낙 속도감이 있으니까. 게다가 미니시리즈라서 더 그랬다. 쪽대본이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는, 좋게 말하면 순발력이 필요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배우가 성의 없어진다고 해야 하나?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니 그런 경향이 있다.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재미도 있다. 그래도 영화를 먼저 시작해서 그런지 체질적으로는 영화에 더 맞는 것 같다.

비중의 경중은 있지만, 나오면 일단 인상에 남는다. 항상 범상치 않은 캐릭터를 맡았다.
그런 역이 재미있다. 사실 연기를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가 그런 거다. 평소에 하지 못하던 일들을 하는 것. 그래서 독특한 역할이 재미있다. 대신 인물의 단면만 부각되기 때문에 여러 부분을 보여주지 못하는 건 아쉽다. 그렇다고 모든 공연에서 그런 독특한 역할만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주연급일 때는 순간의 재미보다는 전체를 이끌어가는 호흡이 중요하고, 감초 역할은 튀는 개성이나 아이디어가 잘 보여야 되고 그러니까.

많은 캐릭터를 했지만 <영화는 영화다>의 봉감독 캐릭터는 맞춤 캐릭터였다.
현장에서 배우가 의자에 앉는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영화는 영화다>에서는 뭐 대놓고 앉았으니까.(웃음) 그 뒤로 다른 현장에서도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가 분위기 이상하면 아, 죄송합니다하고 다시 일어나고.(웃음)

<영화는 영화다> 봉감독은 지금까지의 연기 생활에서 의미가 큰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작품 운이 좋은 편이다.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오디션을 보고 처음 찍은 작품이 <친절한 금자씨>였고, 그 뒤로도 계속 좋은 감독님을 만났다. 단역으로 나와도 봉준호 감독, 최양일 감독과 함께 했고, <바르게 살자>를 통해 장진 사단 라희찬 감독과 <영화는 영화다>로 김기덕 사단의 장훈 감독과 작업했다. 최근 <이태원 살인사건>으로 홍기선 감독과도 작업했다. 할 때마다 다들 재미있어 했다. <부산>도 그런 기운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부산>에서는 밑바닥 양아치 캐릭터다. 하지만 전형적이지 않고 좀 복합적인 면이 있는 캐릭터다.
완전 생양아치다. 그냥 양아치라는 말이 갖고 있는 가벼움, 비열함 그런거 있잖나? 영호형님(김영호)이 맡은 태석이라는 캐릭터는 이름도 강하고 카리스마가 있는 캐릭터라 가벼움, 비열함 이런 단어랑은 안 어울린다. 그 단어는 나한테 맞는 단어다.(웃음) 크게 어려움은 없었다. 강수라는 캐릭터가 본래 나랑 비슷한 부분이 있냐고 묻기도 하는데, 뭐 내가 그 정도 쓰레기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나온 인생을 생각해보면 비슷한 부분도 있다.(웃음)

캐릭터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고생 많이 했을 것 같다. 게다가 첫 주연작인데.
촬영이 힘들었다기보다 촬영 전이 더 힘들었다. 첫 주연이라는 부담감이 컸다. 감독이야 날 선택해준 사람이지만, 같이 작업하는 스탭이나 영호형님은 나를 잘 몰라서 우려를 많이 했다더라. 초반에 그런 분위기를 느껴서 개인적으로도 부담이 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첫 촬영 10분 만에 다리를 다쳐서 촬영이 쫑났다.(웃음) 허벅지 햄스트링 부상이었는데,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다고 계속 그랬더니 감독이 그러더라. “형 됐어요 그냥.”(웃음)

촬영까지 지연시키고, 부담이 배가 됐겠다.
촬영은 다음날 바로 들어갔다. 뛰는 장면만 일주일 뒤로 연기했다. 다행스러운건 촬영을 하면서는 스탭들도 그렇고 영호형님도 그렇고 다들 나를 좋아해줬다. 찍으면서 마음의 짐을 많이 덜었다. 몸이 힘들어도 첫날 워낙 큰 사고를 쳐서 웬만큼 힘든 건 힘들다고 말도 못했다.(웃음)

기존에 출연한 작품을 좀 봤다면 그렇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보긴 했어도 주로 단역 조연이었고, 희로애락을 극적으로 표현한 캐릭터도 없었으니까. 근데 강수는 그런 인물이다. 겉으론 양아치지만 많이 아파해야 되고 또 가슴으로 많이 울어야 하는 인물이라 좀 달랐다. <영화는 영화다>의 봉감독은 나름의 진정성이 있는 재미있는 인물이었지만 폭발력을 가질 필요는 없는데, 강수는 감정적으로 폭발이 필요한 인물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걱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개성 강한 캐릭터를 주로 해서 그런 이미지에 대한 부담이 있을 것도 같다.
그런 생각은 안 한다. 오히려 공연을 할 때 쉽게 할 수 있겠다 싶은 역할은 잘 안 한다. 이거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나 숙제가 많은 역할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왜냐면 그런 벽을 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니까. 한 번이라도 더 보고,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벽에 부딪힐 때 좋은 역할이나 작품이 나온다. 부담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압박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
평탄하고 무난한 건 싫다?
그게 더 어려운 거다. 어렵고 독특한 역할을 택하는 첫째 이유는 재미가 없어서고, 둘째는 어렵기 때문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그런 역할도 하게 되겠지.

아직도 연기에 대한 열정이나 열의가 활활 타오르는 게 느껴진다.
98학번이니까.(웃음) 아직 사회 나온지 얼마 안 돼서 열정이 넘치지.(웃음) 정재영, 황정민, 김수로, 안재욱 선배, 개그맨 신동엽 등 동갑 배우들이 무지 많다. 비록 나이는 동갑이지만 그 사람들은 영화 짬밥이 더 오래됐다. 거기서 나오는 어떤 특별함이 분명히 있다. 그렇게 본다면 난 나이 많은 신인일 뿐이다.(웃음) 실수를 하더라도 그건 내가 아직 미흡해서지 진정한 실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걸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연기자로서 분량이나 비중에 대한 욕심도 클 텐데 스트레스는 없나?
분량에 대한 스트레스는 없다.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아까도 말했지만 분량이 많다는 것은 순간순간의 재치보다 전체를 이끌어가는 힘이 필요한 거고, 분량이 적을 때는 순발력이나 개성이 필요한 거니까. 분량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예전에 한두 번 있긴 했다. 서울에서 공연하다가 여수까지 가서 촬영했는데 손 하나 찍고 수고했다고 하더라. 그때는 좀 속상했다. 조금 더 찍어주지.(웃음) 근데 또 빨리 잊어버리는 편이다.

성격이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것 같다.(웃음)
그래야지. 아니면 뭐 어떻게 하겠나?(웃음) 98학번이잖아? 나이 30살에 학교 들어가서 어린 선배들한테 “안녕하십니까 98학번 고창석입니다”하면서 목청 높여 인사하고 다녔는데 뭘.(웃음)

어려서부터 연기자가 될 생각이었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연기자가 되기 위한 노력이 있었나?
아니다. 우리 집안에는 이런 사람이 전혀 없었고, 나 역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89학번으로 부산에서 대학 생활을 하다가 탈춤을 추는 동아리에 들어갔던 것이 이렇게 이어진 것 같다. 그러다가 94년에 학교를 그만두고 극단에 들어가서 4년 동안 극단 생활을 했다. 어차피 계속 할 거면 늦었더라도 서울예대 연극과에 들어가자 싶어서 서울로 올라왔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
부산에서 4년 동안 극단생활을 할 때는 서울로 가서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나?
그때 부산에 있던 극단은 노래패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래서 근거지는 부산에 있어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공연을 했다. 그래서 부산에 있어도 지방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다. 다만 노래가 중심이어서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처음에 서울로 왔을 때도 엄청난 포부를 갖고 온 게 아니라 그냥 서울예대가 명동에 있고 하니 일하면서 학교 다니기 좋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서울예대 출신의 배우가 그렇게 많은 지도 몰랐다. 학교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대학로 극단으로 옮겼고 그러면서 서울 생활이 시작된 거다.

서울예대에 합격하면서 결혼에도 골인했다고 들었다.
시험을 집사람하고 같이 봤고 같이 붙었다. 학교를 같이 다니다가 2학년 올라가면서 결혼했다. 캠퍼스 커플이 아니라 캠퍼스 부부가 된 거지.

학교를 다니면서 결혼을 했다? 현실적인 문제도 많았을 것 같은데.
사실 27살 때까지 연애를 해본 적이 없다.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스스로의 생각도 있었고, 당시 극단의 선배들도 그런 기풍이 있었다. 28살에 집사람과 처음으로 연애를 했다. 결혼에는 큰 걱정이 없었다. 원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온 인생이라. 가끔 후배들한테도 그런 얘기를 한다. 연극하는 후배들이 5,6년 연애 잘 하다가 결혼할 시점이 되면 대부분 많이 헤어진다. 왜 그러냐고 하면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를 말한다. 그럼 그런 얘기를 해준다. 난 뭐가 있어서 결혼했냐고.(웃음) 결혼이란 건 좋으면 무조건 해야 한다. 돈은 다음 문제지.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스타일인가 보다.
그건 기질의 차이이기도 하다. 난 심지어 29살에 신입생이기도 했잖나. 낙천적이라 그런 데서 데미지를 많이 안 받는 편이다. 그래서 옆에 사람들이 좀 고생하기도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웃음)

그건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성과를 계속 내고 있으니까 가능한 일 아닌가?
어떤 분이 무명생활이 길어서 힘들지 않았냐고 묻더라. 근데 나는 사실 무명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우리 동네선 잘 나갔단 말이지.(웃음) 연극배우가 유명하면 뭐 얼마나 유명하겠나? 영화배우에 대한 상대적인 박탈감은 있을 거다. 아까처럼 여수까지 가서 손 하나 찍고 뭐 그럴 때는 좀 그렇지.(웃음) 이런게 무명의 설움이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것도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아서 처음 찍은 영화가 <친절한 금자씨>였고, 그 뒤로 좀 쉽게 알려진 면도 있다. 그 뒤로 오디션 보면 <친절한 금자씨>에 나왔던 사람이냐고 알아봐주곤 했으니까. 그렇다고 다 잘 된건 아니다. 붙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2년 정도 시간을 보냈고, 3년째 되던 해에 <바르게 살자>로 첫 조연을 했다. 그리고 <영화는 영화다>를 찍고 그런 식으로 4년을 보냈다.
<친절한 금자씨>로 시작했으니 다른 사람들에겐 박찬욱 감독이 인정한 연기력이라는 인식도 있었겠다.
박찬욱 감독 앞에서 오디션을 볼 때 내가 최민식 선배 대사로 오디션을 봤다. 누구냐 넌?(웃음) 붙고 나서 현장에서 촬영을 하는데 이게 어색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전부 영화를 하고 있는데 나 혼자 연극을 하고 있더라. 박찬욱 감독이 저 자식 어쩔꺼냐고.(웃음) 그때 김부선 선배가 연기한다 생각 말고 그냥 평소 하던 대로 하라고 했다. 사투리가 나오면 그냥 사투리로 연기하라고. 그래서 현장에서 사투리 대사로 바뀌었다. 두 번째 찍은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 근데 거기서도 봉준호 감독이 저 자식은 또 뭐야? 그러더라.(웃음) 근데 봉준호 감독 연기 잘 하더라. 몇 번이나 시범을 보였는데 난 그렇게 못 했지.(웃음) 불과 그게 4년 전이었다.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대학로에서 10년 연기하면서 살아남은 배우가 연기를 못하면 얼마나 못하고, 연기를 잘 하면 또 얼마나 잘 하겠나? 역할이 크던 작던 작품을 할 때마다 맞아 떨어지는 시점이 있더라. 잘 되면 내께 되지만 안 되는건 악다구니를 부려도 안되는게 이 바닥이다. 아무리 배우를 하고 싶어도 약간의 소양도 없으면 못 하는 거니까. 난 운 좋게 그런 소양이 좀 있었고, 좌절할 때마다 기회들도 주어졌던 것 같다. 게다가 난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 때문에 조급할 이유도 없었다. 애들 보면 30살 되면서 힘들어하더라. 30살인데 아직 이러고 있네 하면서. 그럼 내가 말 해준다. 이 자식들아 난 30살에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98학번 고창석입니다. 이거 하고 다녔다.(웃음) 처음 오디션 볼 때도 35, 36살이었으니까 어차피 늦은 거였지.

영화 출연하느라 연극은 못 했는데, 욕심은 안 생기나?
작년까진 지방공연도 다니고 해외공연도 다니고 그랬는데 최근엔 못했다. <영화는 영화다>부터 지금까지 계속 영화 일이 많았다. 근데 이제는 한숨 돌려야 하는 시점인 것 같다. 이제는 게으름을 좀 피워야 될 타이밍이다. 방바닥 뒹굴뒹굴하는 시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생각도 하고 에너지도 얻을 시간. 그 뒤로 작품을 하면 더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빠진 건 <부산> 이후라 촬영 당시에는 별다른 고민 없이 집중할 수 있었다. 중간에 4일 정도 드라마 <친구>를 찍긴 했는데 그게 또 환기가 되더라. <부산>에서 강수는 만날 맞는데 <친구>에서는 혼자 17대1로 싸우면서 다 때려주니 스트레스가 확 풀리더라.(웃음)

배우들은 일부러라도 시간을 만들어 비우고 채우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분명히 필요하다. 나는 몇 년 동안 배우가 밟아야 할 단계를 밟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보이는 것만 하는거 아니냐고 걱정 하더라. 나도 그런 생각이 좀 있고. 근데 추석 지나면서 좀 홀가분해졌다. 이제 <부산>을 위해 뛰어다닐 거고 11월에는 <맨발의 꿈>이라는 영화도 촬영을 시작할 거다. 김태균 감독 영화로 2달 동안 동티모르 가서 찍을 예정이다. 재미있을 것 같다. 그 전에 <부산>에 대한 평가도 기대하고 있다. 좋던 나쁘던 냉정한 평가를 들어야 다음 작품에도 홀가분하게 임할 테니까.(웃음)

그럼 당분간 무대에서 보기는 힘들겠네?
내년 상반기까지는 일정 때문에 힘들 것 같다. 그래도 내년 하반기 정도엔 뮤지컬이 됐던 극단 공연이 됐던 웬만하면 무대에 설 생각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1년에 한 작품씩 해왔는데, 작년과 올해는 못 했으니까. 근데 어중간한 타이밍에 무대로 돌아오면 영화에서 잘 안돼서 돌아온다 뭐 이런 소리 들을까봐 신경이 쓰이긴 한다. 늘 하고 있던 일인데 마치 무대로 도망가는 듯한 이미지가 생길까봐. 그래서 더 빨리 공연하고 싶다.
2009년 10월 19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2009년 10월 19일 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20 )
again0224
잘 읽었습니다   
2010-03-23 01:00
kisemo
잘봤습니다~   
2010-03-14 12:55
youha73
잘 읽었습니다   
2010-02-27 20:40
loop1434
멋지네요   
2010-02-24 11:31
ldk209
의형제... 짧게 나오지만 강렬   
2010-02-04 22:52
h6e2k
잘읽엇어여~   
2010-01-31 03:27
pretto
좋은 연기 기대하겠습니다! ^^   
2010-01-27 09:58
ninetwob
잘보고갑니다   
2010-01-21 14:56
1 | 2 | 3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다음으로 다음으로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