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다. 어느덧 독서, 낙엽, 고독, 그리고 남자의 계절인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다. 아침과 저녁으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과 함께 극장가 역시 가을영화들이 하나둘씩 밀려오고 있다. 시끌벅적한 블록버스터와 공포영화들의 자리를 잔잔하고 조용한 멜로와 가족영화들이 채워 가고 있는 것. 환절기 감기보다 먼저 관객들의 눈과 귀를 자극해줄 가을 극장가의 변화, 올해는 과연 어떤 영화들이 주인공일까?

가을이라고 눈물 질질 짜는 신파 영화나 웬만해서는 이해하기 힘든 예술영화들로만 가득할까 걱정한다면, 절대 안심해도 되겠다. 이번 9월에는 스릴러부터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극장가를 채울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9월에 개봉하는 영화 중 유독 닮은꼴을 한 두 영화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모녀의 이야기를 다룬 두 편의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와 <애자>다. 사연은 다르지만 감동과 사랑만큼은 그대로 빼닮은 두 편의 영화. 그래서 이참에 한 번 살펴봤다. 남편과 아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모녀들만의 알콩달콩한 사연들을!


신나는 춤과 노래보다 멋진 내 삶의 활력소! <맘마미아!>

모녀가 주인공인 영화에는 반드시 눈물샘 짜내고, 환자가 등장한다는 편견은 버려라. 유쾌한 웃음과 발랄한 음악으로 기분 UP 시켜주는 영화도 있다. 바로 제목부터 경쾌한 <맘마미아!>다. 영화 <맘마미아>는 결혼을 앞둔 딸 소피가 우연히 엄마인 도나의 일기장을 읽고, 자신의 아빠일지 모르는 세 남자를 결혼식에 초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을 그린 영화다. 일찌감치 뮤지컬로 더 잘 알려진 영화답게 가수 ‘아바’의 노래로 이루어진 경쾌한 음악들과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볼거리들로 풍성한 작품.

누가 그랬던가? 엄마를 보면 딸을 알 수 있다고. 하지만 <맘마미아>의 엄마와 딸은 아니다. 왕년의 스타로 아직도 마음만은 청춘인 엄마 도나와 달리 이제 곧 결혼을 앞둔 소피는 고민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속 깊은 딸이다. 그런 두 모녀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넘치는 자신감과 열정이다. 자기 자신은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에도 누구보다 솔직하고, 열정적인 그녀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상 닮은꼴 모녀다. 자신의 삶에 있어서는 그 어떤 이들에게도 구애받지 않는 도나와 소피이지만, 유독 서로에게만은 약한 모습을 보인다.

한번 뿐인 딸의 결혼식을 통해 단 한 명의 사랑을 찾게 된 발랄한 엄마 도나, 엄마의 사랑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의지를 발견하고 모험을 떠나게 되는 당찬 딸 소피. 이 둘은 서로에게 있어 그 어떤 누구보다 멋지게 힘이 되어 준 삶의 활력소가 아닐까!

허브향처럼 은은하고, 맑게 풍겨오는 모녀의 사랑 <허브>

상은이는 이제 갓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주민등록증도 생기고, 몸도, 얼굴도 예쁘게 컸지만 아직 마음만은 일곱 살인 상은이. 엄마와 단 둘이 살아가며, 동화 속 많은 공주들이 친구인 상은이는 정신지체 3급이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영화 <허브>는 영원히 일곱 살의 지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순수한 딸과 엄마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내년이면 실제로 한 아이의 엄마가 될 배우 강혜정의 장애우 연기와 연기 참 잘하는 배우 배종옥의 열연이 돋보인 <허브>는 제목만큼이나 은은하고, 맑은 모녀의 이야기다.

“엄마는 계모야. 동화책을 보면 계모들한테는 항상 나처럼 예쁘고, 착한 딸이 있잖아. 그러니까 엄마는 계모야.” 누가 ‘바보’라고 놀리면 깨물어 버리라고 가르치고, 괜한 노래방 내기를 해서는 지게 만들고, 항상 자전거를 배우라며 잔소리 하는 엄마 현숙이 바로 상은의 하나뿐인 엄마다. 항상 동화같이 살아가는 상은의 세상을 지켜주고픈 엄마 현숙, 그런 엄마가 이제 상은에게 마지막 이별을 이야기한다. 상은이는 아직 사랑이 무엇인지, 또 이별이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데.

모두에게 이별은 존재한다. 부모와 자식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랑하는 자식을 두고 떠나는 부모의 아픔만큼 큰 것이 있을까? 더욱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별을 준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딸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엄마의 마음처럼 말이다. 그래서일까 <허브>는 이렇게 말한다.

언제나 내게 힘이 되는 수호천사! <마이 시스터즈 키퍼>

내 이름은 ‘사라’입니다. 나에겐 두 딸이 있습니다. 백혈병에 걸려 아파하는 큰 딸 ‘케이트’와 그런 언니를 위해 맞춤형 아기로 태어난 작은 딸 ‘안나’입니다. 저는 두 딸을 모두 사랑합니다. 하지만 큰 딸을 지키기 위해 작은 딸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는 인간적 권리와 진정한 사랑에 대한 질문을 통해 가슴 뭉클한 가족애를 들려준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이 원작으로, 오랜만에 섬세한 감정연기로 돌아 온 카메론 디아즈의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

여느 영화들과 달리 <마이 시스터즈 키퍼> 속 모녀이야기는 조금 특별하다. 백혈병에 걸린 큰 딸을 위해 맞춤형 아기로 작은 딸을 가진 엄마, 그리고 그런 작은 딸과 함께 법정에 서게 되는 엄마의 모습이 바로 <마이 시스터즈 키퍼>의 모녀다. 큰 딸의 생명과 작은 딸의 권리 앞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하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곁에서 지켜봐야 하는 두 딸, 그리고 가족들의 마음을 영화는 각자의 목소리로써 다섯 가지 시선으로 이야기한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또 특별한 이야기임에도 그 속에서 근본적으로 느껴지는 모녀들의 진정한 사랑만큼은 사람들의 굳은 가슴을 열기에 충분하다.

때로는 가족 간의 사랑이 서로에게 아픔을 주기도 한다.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고 싶고, 미소를 지켜주기 싶기에 우리는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에게 또 다른 아픔을 주기도 한다. 딸들과 영원히 함께 하고픈 엄마의 마음과 그런 엄마를 향한 두 딸의 사랑이 담긴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 속

웬수라서 더 아끼고, 사랑합니다. <애자>

다른 집 딸들처럼 착실하게 공부해서 시집이나 잘 가길 바랐더니, 서른이 다되도록 시집도 안가고 속만 썩여대는 29세 노처녀 애자. 다른 집 엄마들처럼 살갑게 대해주지도 않으면서, 매일 잔소리만 늘어놓고 아들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는 59세 아줌마 영희. 얼핏 봐도 상극이기만 한 이들이 모녀지간 이란다. 여전히 교복이 잘 어울리는 최강 동안 최강희와 오랜만에 연기로 복귀한 중견배우 김영애의 닮은꼴 모녀 이야기, 바로 영화 <애자>다.

깡다구는 남자보다 더 세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방지축에, 겉모습까지 선머슴 뺨치는 애자에게도 무서운 존재가 단 한명 있다. 가출한 딸 잡는 게 특기요,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사람 속 긁는 게 취미인 엄마 영희가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서로 안 봐도 그리 섭섭하지는 않을 것 같던 두 모녀에게도 이별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영화 <애자>를 보면 얼마 전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해운대>의 두 모자지간이 떠오른다. 구수한 사투리가 일품이었던 만식과 동춘 모자가 그들이다. 영화 <애자> 또한 걸쭉한 부산 사투리로 시종일관 웃겨주다 막판에 한번 찡긋하게 해주는 게, 영락없이 그들의 모녀버전이라고 할만하다.

때로는 독한 말들로 상처 한 번 제대로 주는 엄마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딸이지만 함께 있기에 소중한 게 바로 ‘모녀’라는 이름의 존재다. 누구보다 두려운 앙숙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친구로 돌변하는 엄마와 딸의 모습은 평범한 우리네 모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예측불허의 로맨틱 라이벌 모녀! <하트 브레이커스>

요즘 대세인 나쁜 남자만큼이나 나쁜 여자들이 떴다. 그것도 둘씩이나! 평범하고 착한 모녀 이야기가 식상한 사람들에게 아주 특별하게 다가올 모녀가 있다. 바로 화끈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하트 브레이커스>의 ‘모녀 꽃뱀’들이다. 작업한 남자들 뒤통수치는 게 유일한 특기인 두 모녀, 시고니 위버와 제니퍼 러브 휴이트의 만남만으로도 꽤나 구미가 당겨지지 않는가.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두시길, 모녀지간의 감동과 사랑보다는 몸개그와 웃음만이 유일한 무기라는 것.

애당초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먼 수상한 엄마 ‘맥스’와 그녀 못지않게 예사롭지 않은 딸 ‘페이지’는 이른바 모녀 꽃뱀이다. 갑부들만 상대로 단물을 쏙 뽑아먹는 두 모녀의 작업 성공률은 단연 100%. 그런데 딸 페이지의 독립선언과 함께 둘은 동업자에서 졸지에 같은 업계의 라이벌이 되어 버렸다. 모전녀전에, 피는 못 속인다고 한 남자를 두고 갖가지 방법으로 유혹하는 엄마와 딸의 모습은 가관이 따로 없다. 미국 물정 모르는 러시아 여인으로 변신한 맥스와 섹시한 가정부로 변신한 페이지의 대결, 그야말로 영화 <하트 브레이커스>의 모녀는 여느 영화들 속 모녀와는 확실히, 엄연히, 분명하게 다르다.

한 남자를 두고 엄마와 딸이 경쟁을 펼친다고? 무슨 막장 드라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 평범하지 않게 사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이유야 어찌되었건 영화 속 맥스와 페이지 모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시고니 위버와 제니퍼 러브 휴이트라면 충분히 가능함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