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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연기 어땠나요? <시> 윤정희
| 2010년 5월 14일 금요일 | 김한규 기자 이메일

예전과는 다르게 인터넷 매체가 많이 생겼다. 무비스트도 인터넷 매체인데, 컴퓨터와는 친한가?
인터넷 물어보지 마라.(웃음) 노트북을 선물로 받았는데 집안에서는 애물단지다.(웃음) 그래도 서울에 사는 동생 덕에 인터넷을 조금씩 접하고 있다. 이제는 정말 인터넷 없이는 못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한국에서 살려면 꼭 필요하다. 근데도 우리 부부는 그냥 산다.(웃음)

언론시사를 통해 영화를 처음 봤나?
아니다. 언론시사 때 본 것까지 합하면 세 번째다.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내 연기 어땠나?

(갑작스런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물론 좋았다.(웃음) 12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했는데,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시>를 통해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섰다. 그동안 많은 시나리오와 러브콜을 받았는데,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려고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김호선 감독의 <만무방> 이후 <시>를 선택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바쁘게 활동할 때는 이런 제작보고회나 언론시사회 같은 게 없었다. 솔직히 옛날에는 모든 배우가 다작을 했기 때문에 이런 행사가 열렸어도 참석하지 못했을 거다.(웃음) 정말 이번에 새로운 경험을 했다.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이 정말 새로웠겠다.
항상 영화 속에 산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막상 카메라 앞에서 섰더니 기분이 새롭고 너무 들떴다. 좋은 시나리오에 좋은 감독을 믿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스탭들, 연기자들 너무 호흡도 잘 맞고 열심히 해줘서 시간이 지날수록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편안하게 연기했다.

영화를 보면서 윤정희 선생님의 연기도 좋았지만 같이 호흡을 맞춘 배우들의 사실감 있는 연기가 인상 깊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너무 놀랬다. 어떻게 그 속에 산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더라. 강노인으로 나왔던 김희라 씨는 정말 연기를 잘했다. 실제 거동이 불편한 데, 그것이 배우로서 약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그것을 장점으로 만든 배우다. 손자로 나왔던 이다윗이나 안내상 씨를 비롯해 단역 배우들까지 연기를 너무 실감나게 잘했다.

극중 미자는 이름부터 똑같다. 인터뷰를 해보니 캐릭터 또한 공통점이 많아 보인다. 그 만큼 자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줘야 하는 부담이 컷을 것 같다.
부담을 안 가졌다고 말할 순 없지만, 오히려 연기하기는 편안했다. 어제 시사회에 친구들이 왔었는데, 영화를 보고 어쩜 저렇게 실제 모습과 똑같냐고 얘기했다.(웃음) 그 말을 듣고 남편과 함께 한참을 웃었다. 정말 영화 속 미자하고 비슷한 점이 많다. 꽃을 봐도 너무 아름답고, 구름속에 흐르는 달을 보면서도 너무 행복하다. 어느날 피곤해서 자고 있는데, 남편이 깨웠다. 달이 정말 크다면서 달 보라고.(웃음) 그 정도로 달을 좋아한다. 게다가 엉뚱하게 말하는 편인데, 우리 딸이 그걸 수첩에 다 적어놓고 친구들에게 보여줬던 일도 있었다.(웃음) 근데 4차원이라는 말이 좋은 말인가?
(정말 한참을 생각했다)아! 평범하지 않고 조금 특별한 생각을 갖고 있어서 때로는 엉뚱한 말로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가! 그래도 상식에 벗어나는 말을 하지 않았는데, 남들이 다 그러더라.(웃음) 남편은 4차원도 아니고 5차원이라고 한다. 뭐 좋은 말로 들으면 되니까. 4차원, 5차원 다 좋다.(웃음)

듣고 보니 정말 미자가 윤정희고 윤정희가 미자인 것 같았다. 예전 영화에서는 자신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면 이번 영화의 미자를 통해 뭔가 묵혀놓았던 체증을 푼 듯 시원함을 느꼈을 것 같다.
그래 보였나?(웃음) 아마도 예전 영화보다는 실제 나를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꾸미지 않아도 되니까 시원함도 있었지만 먼저 편안함을 느꼈다.

이창동 감독과의 호흡이 좋다고 했지만 영화 촬영 전과 후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았나?
아니다. 전적으로 감독을 믿었다. 아무리 훌륭한 감독이라도 인간성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 본 순간 정말 예의가 발랐다. 촬영하면서 문소리, 전도연이 촬영장에 찾아와서 이창동 감독 영화를 하면서 겪었던 고생담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건 좋은 작품을 위해 노력하는 감독의 투철한 직업의식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보통사람처럼 그렇게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별다른 의견차이는 없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어떻게 미자의 감정을 표현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많았다.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이 나이는 어리지만 촬영 내내 친구같이 친하게 같이 작업했다.(웃음)

제작보고회 때 이창동 감독이 계단 올라갈 때 손도 잡아 주고, 포토타임때도 같이 포즈 취하는 모습이 정말 친해 보였다.
우리 사이 좋다.(웃음)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다.

한국의 유명한 감독들과 같이 작업한 걸로 알고 있다. 이창동 감독 스타일은 이전 감독들과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
신상옥 감독님하고는 <내시>를 같이 작업했었는데, 당시 정말 신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껏 연기를 하게끔 해주었다. 미스 윤, 걱정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하면서 정말 자유로운 방식으로 촬영했다. 김수용 감독님도 배우를 풀어놓는 스타일이다. 근데 유현목 감독님은 달랐다. <분례기>를 출연했는데, 디테일하게 연기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마음에 들 때까지 열 번이고, 스무번이고 계속해서 테이크를 갔다. 굳이 나누자면 테이크를 많이 가는 편인 이창동 감독도 유현목 감독님과 스타일과 비슷하다. 하지만 <시>를 촬영할 때 딱 한번 서른 번 정도 테이크를 간 것 이외에는 대체적으로 길게 가지 않았다. 극중 시 강좌에서 내 생애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을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첫 테이크에 O.K 사인이 났다. 이번에 같이 작업하면서 알게 됐지만 자신의 작품을 끝까지 책임지면서 끌고 나가는 모습이 참 좋았다. 그러니까 좋은 작품이 나올 수 밖에 없겠더라. (웃음)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다 봤다고 알고 있다. 배우가 아닌 관객의 입장으로서 어떤 점이 매력적인가?
이창동 감독은 관객에게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모든 영화가 관객을 위해 만드는 거지만 단순히 오락적인 면만 전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보고 난 후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준다. 감독의 영화를 빼놓지 않고 다 봤다. 특히 이번 영화를 보면서 중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펜이 아니고 카메라를 통해 만들어지는 중편소설 말이다. 우연히 이탈리아 감독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가 인터뷰하는 것을 TV로 본적이 있다. 그 인터뷰에서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그는 영상을 통한 문학 작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도 마찬가지다. 영상을 통해 문학 작품을 연거푸 쓰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제목처럼 시를 중요한 소재로 삼았던 이번 영화가 가장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영화에서 극중 강노인과 베드신이 있다.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라 놀라움이 컸다.
처음에 시나리오상에는 더 강도가 셌다. 감독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베드신의 강도를 낮췄다. 억만금을 줘도 옷을 안 벗는다. 몸이 재산인데 그걸 어떻게 보여주나.(웃음) 그래서 옷을 어느 정도 벗는 것도 디테일하게 의견을 조율했고, 결과적으로 카메라를 등지고 촬영했다. 근데 영화를 본 남편이 허리선까지 나왔으면 좋잖아 하고 말하더라.(웃음)

베드신과 더불어 노래방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원래 노래방을 싫어한다.(웃음) 지금까지 딱 2번 갔다. 우연히 친구들과 여행간 그 숙소에 노래방 기기가 있었는데, 그 때 시나리오를 접한 후라서 극중 부르는 ‘와인글라스’라는 노래를 열심히 불렀다. 이 장면을 연기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건 미자의 과거다. ‘와인글라스에 젖은 립스틱…’이란 노랫말이 그녀의 화려했지만 쓸쓸했던 과거를 말해주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꾸준히 연습을 하면서 잘 부르려고 노력했다. 어느날 몰래 노래 연습을 하려고 연출부 막내에게 부탁해 노래방을 갔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이창동 감독도 오고 배우들도 오고 해서 같이 노래를 부르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웃음) 근데 노래를 잘 부르던가?

너무 잘 불렀다. 마이크 잡는 손부터 다르더라.
(웃음)그건 이창동 감독이 가르쳐줬다. 노래를 부르니 흥이 나서 춤도 출까 했는데, 그건 막더라.(웃음)

극중 배드민턴 장면이 있는데, 영화의 마지막 부분의 미자의 묘한 감정을 표현하는 소재로나온다. 오랜 시간 동안 촬영했다고 들었는데,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배드민턴 연습하는데 한참 걸렸다.(웃음) 근데 중요한 건 단순히 배드민턴을 잘 치면 안되는 거였다. 영화 속 미자는 선수처럼 너무 잘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못해서도 안됐다. 영화에서는 평범하게 치는 것 같지만 그 안에 많은 노력이 들어갔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보니까 계속되는 촬영에 힘들어 할까봐 스탭들이 마사지를 해주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근데 정말 힘들지는 않았다. 그냥 파스 붙일 정도였다.(웃음) 그래도 노심초사 나를 배려해줬던 스탭들이 고맙고 보고싶다.

극중 미자의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손자와 씨름하면서 ‘왜 그랬어’하는 대사를 하는데, 어찌 보면 감정적으로 표현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영화에서 자기의 감정으로 쏟아내는 장면은 이 장면하고 샤워하면서 우는 장면이다. 미자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지 않고 삭히는 여자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불을 덮어쓴 손자와 씨름하는 장면에서 ‘왜 그랬어’하는 대사가 참 마음에 든다.

제작보고회 때 얘기가 나왔지만 이창동 감독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겠다고 했을 때 남편인 백건우 씨가 더 좋아했다고 들었다.
남편이 음악을 하지만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 영화광이다. 줄리어드 음대 다닐 때도 영화 많이 보러 갔고, 지금도 연주 끝나면 영화를 꼭 한편씩 본다. 매번 예술성 짙은 영화를 볼 때도 있지만 단순히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도 좋아한다. 특히 이소룡 영화를 자주본다.
이소룡 영화! 정말 의외다.
나도 놀랐다. 원래 그런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남편 따라 계속 보다 보니까 감정 연기도 탁월하고 액션도 잘하고 이소룡의 숨겨진 매력을 찾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도 시가 참 많이 나온다. 혹시 이 중에서 마음에 드는 시가 있나?
시가 다 좋았지만 마음에 들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촬영하면서 연기에 집중하다 보니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미자가 완성하는 ‘아네스의 노래’는 이창동 감독이 직접 쓴 시다. 중요한 의미가 담긴 시이기 때문에 외운거지, 한 구절씩 음미하면서 읊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를 좋아한다. 예전 프랑스에 살 때 부인과 함께 오시면 같이 식사하고 담소도 나누고 하던 사이다. 자주는 아니지만 시낭송을 즐기는 편인데, 기회가 닿아서 미당 선생의 시를 낭송한 테이프도 만든 적이 있다.

5월 13일이 <시>가 개봉한다. 공교롭게도 같이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한 <하녀>와 같이 개봉한다. 왠지 모르게 라이벌 의식도 있을 것 같다.
그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두 영화 모두 흥행했으면 좋겠다. <하녀>처럼 에로틱 서스펜스를 좋아하는 관객층이 따로 있고, <시>처럼 서정적인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층이 있다고 본다. <시>를 찍으면서 감정이 복받쳐 오르면 눈물도 흘리곤 했다. 관객들도 그 느낌을 전달하고 싶다.

지금까지 연기를 해오면서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어렸을 적 성당에 가서 신부님에게 영화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더니 네가 모범이 되는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부모님도 항상 큰 딸로서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지금도 그 말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다들 스타라고 말하지만 한 번도 스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카메라 앞에서만 윤정희지, 스튜디오에서 나오면 손미자일 뿐이다. 초심을 잊지 않고 모범이 되는 배우로 오래도록 연기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시>를 만날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시>를 보고 꿈을 가졌으면 좋겠다. 예전 젊은이들은 영화를 통해 꿈을 꿨다. 지금은 그들도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었지만, 이 작품을 보고 잊었던 꿈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또한 오늘날 젊은이들도 같이 보면서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 2시간 동안 편하게 문학작품을 영상으로 본다고 생각하며 이 작품을 만났으면 좋겠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정말 전설적인 여배우 보다는 좋은 말씀을 들려주는 선생님처럼 느껴진다.
선생님이 아니라 친구가 되고 싶다. 혹시 나이가?

81년생. 올해 나이로 서른이다.
내가 44년 생이니까…… 울랄라!(웃음) 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니까!

2010년 5월 14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0년 5월 14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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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rtry
기대됨   
2010-05-14 23:27
ooyyrr1004
나이는 숫자일뿐이라는 열정이 돋보이네요   
2010-05-14 21:45
loop1434
기대되네요   
2010-05-14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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