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개봉이다. 기분이 어떤가?
많이 긴장되지. 영화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아도 문제지만 반응이 너무 좋아도 긴장된다. 최대한 담담해지려고 애쓰는데, 일단 지금은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얼마 전에 하늘 씨랑도 얘기했지만 차라리 개봉해서 1주차가 빨리 지났으면 차라리 좋겠다. 뚜껑은 열어보지도 않았는데 분위기만 좋으니까 이게 오히려 힘들더라.
시험 뒤, 성적표 받기 직전의 기분이겠다.
차라리 빨리 봤으면 좋겠다.
세 번째 영화인데 앞의 두 영화와는 기분이 좀 다르지 않을까. 나름대로 이만큼 넉넉한 규모의 예산을 가지고 촬영에 임한 영화는 처음이지 않나.
아직 상업영화니, 저예산영화니, 그런 차이를 제대로 느껴본 것 같진 않다. 처음 했던 <방문자>는 말 그대로 연기의 ‘연’자도 몰랐을 때 그냥 무작정 했던 영화고, 두 번째인 <영화는 영화다>는 지섭 씨가 3년 만에 복귀하는 상업영화이긴 했지만 김기덕 감독님이 제작자로 나선 영화이기도 했다. 나도 드라마만 하다가 영화로 옮겨 타는 정식 작품이었기 때문에 일단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연기를 잘해야겠다. 내용 자체도 남자끼리 붙는 영화다 보니까 연기가 뒤지면 안 되겠다 싶더라.
드라마로 인지도를 쌓았던 만큼 영화는 일종의 도전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드라마에선 연기력 논란 같은 게 없었는데 영화에서 그런 게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캐릭터도 드라마와 완전히 상반된 캐릭터였기 때문에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촬영을 끝내고 나서 분에 넘치는 상도 많이 받았지만 그런 긴장감이 강했기 때문에 개운한 느낌이 없었다고 할까. 카메라 앞에서 떨었던 생각밖에 나지 않고, 상은 다 남들 때문에 받았던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느낌을 좀 덜어버릴 수 있는 뭔가를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그게 <7급 공무원>이 됐다.
아까 카메라 앞에서 긴장됐다고 했는데 작품을 거칠수록 그 역시 많이 경감돼 간다는 걸 느끼지 않나. 혹은 어떤 작품이 한 순간 그런 계기가 됐을 수도 있고.
어느 순간 한 작품 찍고 나니까 확 편해졌다고 할 수는 없다. 말 그대로 매번 여러 작품을 하게 되면서 경험적으로 조금씩 바뀌는 거 같다. 계속 한 작품 해나갈 때마다 전 작품보다는 나아지는 건 맞다.
그런 걸 느끼기엔 시간적으로나 많은 여건들이 너무 힘든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준비가 잘된 여유 있는 상태에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거라면 신인상 받을 때 눈물이라도 흘렸을 텐데, 오히려 반대로 연기를 하는 도중에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맞는 건지도 모르면서 조바심 내고 경직된 느낌이 강했다. 오히려 이제 <7급 공무원>으로 하고 싶은 걸 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오히려 지금 시원하다. 이제는 영화 카메라 앞에서 떨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냈기 때문에 지금이 오히려 좀 시원해진 거 같다.
이재준이 손바닥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동작이 재미있더라. 그 외에도 캐릭터의 소심함을 대변하는 작은 동작들이 많았는데 그런 디테일한 설정은 직접 생각해 낸 건가?
맞다. 내가 다 만들었다. 이번 영화에서 대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60%면, 현장 애드립이나 분위기 파악하는 게 거의 3~40% 됐을 정도로 연구를 많이 해갔다.
원래부터 캐릭터의 디테일을 많이 설정하는 편인가?
특유의 손동작을 비롯한 애드립은 드라마에서부터 조금씩 해왔다. 그게 대본을 받아서 연기하는 주연배우의 의무라고 내 나름대로 생각한다. 작가가 쓴 대본을 대사로 받아들여서 읽기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뭔가 조금이라도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서 나 스스로가 그런 작업을 즐긴다. 나를 거쳐간 대본에 새로운 디테일을 가미하는 걸 개인 자신만의 연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치 성룡 영화 끝에 나오는 NG장면이나 오우삼 영화에서 매번 나오는 비둘기처럼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을만한.
방금 성룡과 오우삼을 말했는데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액션 영화는 원래 좋아하지만 그보단 기존의 성룡이란 배우를 많이 좋아한다.
타격감이 느껴지는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가 보다.
아니, 그런 것과는 좀 다른 차원이다. 정말 어려서부터 성룡영화를 봤지만 단 한번도 재미없다고 느꼈던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성룡영화가 나에게 꿈과 희망이나 어떤 메시지를 줬다고 할 순 있는 부분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극장에서든 TV로든,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에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영화에 빠져서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드라마도 그렇고. 장르라던가 영화적 특성상 무언가 메시지를 담는 것도 좋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선택한 영화는 말 그대로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7급 공무원>도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영화라고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7급 공무원>이 말 그대로 편하게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서 찍었고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인 거 같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다.
일단 여러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두 번 정도 봤다. 제일 처음에 했던 기술시사에서 스태프들과 같이 한번 봤는데 이게 웃어야 하는 영화임에도 반응이 너무 없어서 그 당시에 완전히 충격을 먹었었다. 그런데 다음날 신림동에서 이벤트 시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신림동까지 모자를 뒤집어 쓰고 갔었다. 거기서 조금 안심이 되더라. 다시는 죽어도 기술시사엔 안 가야지. (웃음)
왜 그렇게 다들 무덤덤했을까.
다들 아는 내용이기도 하고. 배우가 처음 영화 보면 자기 연기부터 보듯이 조명은 조명보고, 분장은 분장보고, 그렇게 관점포인트가 다르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광경을 처음 봤으니까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당시엔 밤에 잠도 못 잤다. (웃음)
이런 코미디 영화를 봐주는 관객이 웃지 않는다면 배우입장에서는 당연히 긴장되겠다.
배우는 관객들에게 보여지기 위해 연기를 하는데 그에 대한 반응이 냉담하면 작업 자체가 무의미해지는 것이겠지.
드라마부터 영화까지 줄곧 주연을 맡아왔다. 나름대로 입지를 다지는데 성공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런데 주연이라면 작품 자체의 얼굴이니만큼 부담되는 부분도 없지 않을 거다. 그런 부담감에서 자유로운 편인가?
나는 엄청 심하다. 드라마 할 당시만 해도 시청률에 엄청 민감했거든. 아까 얘기했던 것과 좀 겹치는 부분이지만 말 그대로 사람들이 봐주라고 연기하는데 안 봐줘서 시청률이 낮으면 그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그렇게 되면 일차적으로 떠오르는 게, ‘내가 연기를 못해서 그러나’, 아니면 ‘내가 스타가 아니라서 인지도나 없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예전에 아침드라마 할 땐, 방송 나간 다음날 아침 6시, 7시부터 ‘TNS’사이트 들락날락 거리면서 시청률을 확인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게다가 난 드라마 같은 경우 매번 운 없게도 30%넘는 드라마들하고 계속 같이 붙었다. <황진이>, <쩐의전쟁>, <뉴하트>, 다 30%넘은 드라마거든. 우리 드라마가 상도 많이 받고 절대 나쁜 작품이 아니었는데 매번 빛을 못 봤다. 특히 미니시리즈 같은 경우는 거의 밤을 새고 고생해서 찍는데 반응이 없으면 미친다. 뭐라고 말로 하기엔 그런 게 너무 힘들지.
많이 안 좋지. 그런 상대적 박탈감으로 유독 힘들었지만 다행히도 <영화는 영화다>를 하면서 짐을 벗을 수 있었던 거 같다. 물론 <영화는 영화다> 하나뿐이라 이런 말이 우습긴 하지만 지금 <7급 공무원>반응이 좋다 보니까 그런 답답한 징크스를 한번 더 시원하게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바람이 큰 게 사실이다.
첫 영화가 신동일 감독의 <방문자>였다. 사실 국내에서 개봉이 불투명한 저예산 영화이기도 했고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없었나?
그 당시는 내가 뮤지컬을 끝낸 뒤 아침 드라마 같은 작품에서 조연이나 단역을 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뒤로 찾아주는 이도 없고, 일이 없더라. 오히려 조금 연기 맛을 보고 좀 더 해보고 싶어질 때부터 일이 끊기니까 그게 너무 힘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방문자>를 시작하게 됐을 당시에 연기에 대해서 고뇌했던 건 아니었다. 몇 개월 동안 일거리도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 그저 주인공 오디션이란 말에 혹해서 오디션을 보러 갔었다. 내용 자체도 ‘여호와의 증인’이란 종교적 소재를 다룬다니 이게 재미있다고 느꼈겠나. 사실 처음엔 대본 내용도 잘 모르고 영화에 대해서 정말 아무 것도 몰랐다. 그냥 단지 주인공이란 단어 하나 때문에 연기가 하고 싶었고, 카메라 앞에 서고 싶었지. 처음엔 그런 좋지 않은 의도로 시작했다. 하지만 작업을 하게 되면서 나중엔 좀 변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대본을 열심히 파면서 연기하게 됐고 덕분에 <방문자> 막바지에 있었던 <굳세어라 금순아> 오디션도 통과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나에겐 좋은 작품이었던 셈이다.
배우로서 연기 욕심이 앞선다는 건 부끄러운 일은 아닐 거다. 그런 욕심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자양분을 얻는 계기가 됐으니까 결과적으론 양화라고 봐야지. 그런데 최근 몇몇 인터뷰를 보니 배우 이전에 특이한 경력이 있다고 밝혔더라.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입사했고, 전공도 그래픽 분야던데, 연기를 생각한 계기는 뭔가?
아버지께서 영화를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되게 많이 봤다. 교인들이 일요일에 교회 나가는 것처럼 나는 당연히 일요일은 극장가는 날인지 알았다. 아버지께서 항상 동네에 있는 동시상영극장에 가셨는데 아들이 하나뿐이다 보니까 항상 데리고 가셨지.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화를 접했다. 사춘기 때는 멋있는 장면이나 여배우와의 키스 씬을 보면서 나도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곤 했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집안 분위기에 노출돼있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없어지지 않더라.
아버지께서 아들이 배우라는 사실을 좋아하시겠다.
많이 좋아하시고 뿌듯해하신다.
군대 있을 때 생각했다. 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봐야 나중에 나이를 먹고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 군대에서 인생설계를 하면서 확고하게 정리가 됐다. 서른이 되게 전까지 20대를 내 꿈에 투자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뮤지컬을 통해 데뷔했고, 드라마로 이름을 알렸다. 지금은 영화를 통해 인지도를 넓히는 중이다. 연기를 꿈꾸게 만든 계기가 영화였던 만큼 영화에 애착이 있을 것 같다.
뭐, 그런 건 없다. 그냥 중요한 건 배우, 연기였다. 지금 와서도 느끼는 건 드라마나 영화나 다양한 장르를 겪어보니까 작업환경이나 찍고 나서의 분위기만 다를 뿐이더라. 물론 영화 두 작품 해놓고 영화에 대해서 뭘 안다고 말할 수 있겠나. 단지 그냥 카메라 앞에 설 땐 마찬가지로 처음엔 항상 떨렸던 거 같다.
드라마와 영화는 제작 과정의 차이보다도 결과물의 감상 방식에 따른 차이가 두 매체의 차이를 두드러지게 만든다. 영화는 아무래도 스크린으로 보는 만큼 브라운관을 통해서 자기 얼굴을 인식하게 되는 드라마와 판이한 감상을 줄 것 같다.
처음엔 짜릿했지. 솔직히 이런 느낌을 알게 된 건 <방문자>때보단 <영화는 영화다>기술시사에서였다. 스크린을 보는 동시에 웅장한 사운드가 들리는데 정말 짜릿했다. TV브라운관을 통해서 내 연기를 볼 때는 다른 집에 있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어떻게 보는지 모른다. 그런데 극장에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웃음소리나 숨소리를 느끼면서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엄청난 매력인 거 같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대한 누군가의 반응을 살핀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일이 될 거 같다. 그런데 최근 인터뷰 기사에서 아나운서 양성 학원에 다닌다는 말을 했더라. 목소리에 대한 문제라도 느낀 건가?
드라마 할 때는 전혀 못 느꼈지만 <영화를 영화다>를 하고 나니까 발음이나 목소리 톤에 대한 지적이 조금씩 들렸다. 물론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려 한다. 하지만 내게 시간이 있을 때 그런 부분을 조금만 보완하면 오히려 그런 측면을 내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먼저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공부를 하게 됐다.
사람 목소리가 다 똑같을 순 없다. 물론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연기나 발음, 발성은 당연히 중요하지. 그런데 사람의 감정이 올라가다 보면 말 그대로 목소리가 갈라질 수도 있지 않나. 특히 연기를 표현함에 있어서 그런 부분이 자연스러움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모든 발음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게 연기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처음엔 목소리 기본톤이 하이톤이라서 내가 잘못된 건 줄 알고 무조건 고치려고 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 시청자나 관객들이 그 의사만 제대로 알 수만 있을 만큼 너무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연기할 수 있으면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발음이나 발성이 좋은 ‘FM(Field Manual)’연기자도 많겠지. 나는 내 연기가 ‘AM’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 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많은 종류의 배우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많은 분들께서 지적해주시는 게 있고 그걸 내가 고치거나 다듬을 수 있다면 다음 작품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겠지. 딱 그 정도까지만 생각하려고 한다.
일단 대화를 나눠보니 당신이 상당히 조심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당신이 연기한 캐릭터들은 때때로 과감하다. <7급 공무원>의 재준은 소심한 듯 고집이 세고, <영화는 영화다>의 수타는 건방지고 자존심이 세다. 드라마에서는 때때로 뺀질거리는 캐릭터를 보여주기도 했다. 연기를 통해서 가끔씩 자신도 모르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경우를 느낀 적은 없나?
그러니까 ‘나에게 이런 면이?’ 이런 거다. 덕분에 내게도 배우의 피가 흐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 같고. 물론 내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분이 쉽게 보이는 대본이 잘 읽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배우는 연기변신이 필요하니까 쉽지 않을 것 같은 생소한 캐릭터에 도전하기도 하는데 솔직히 그만큼 겁도 난다. ‘내가 과연 이걸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막상 하면 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 자신에게 놀라기도 하고, 그런 매력 때문에 이 일을 놓을 수 없게 되는 거 같다. 오히려 같은 것만 계속 하면 물리겠지. 매번 작품을 선택할 때 저번엔 이런 역할을 했으니까 이번엔 다른 느낌을 얻을 만한 캐릭터를 선택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겁도 나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거 같다.
<7급 공무원>은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서 배워야 되는 것도 많았을 거 같다. 펜싱을 하기도 하고, 말을 타기도 하고, 심지어 총 잡는 법이라도 익혀야 할 것 같고.
오히려 나는 다 배우지 않았다. 수지는 베테랑 요원이기 때문에 뭐든 잘해야 되니까 배우는 게 맞는데 재준은 뭐든 의욕만 앞서고 서툴러야 하니까 어설픈 그대로 보여주는 게 재준의 모습이라 생각해서 오히려 일부로 배우거나 연습하지 않았다. 단지 내가 그 촬영장에서 타게 될 말이나 오토바이는 일단 연기를 위해서 경험만 해보는 정도로 타기만 해봤지. 그래서 많은 분들이 불안하다고 연습 좀 해야 되지 않냐고 하긴 했다. 그런데 일단 처음에 한번 접해보면 내가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느껴지지 않나. 한번 해보니까 현장에서 어설픈 상태로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아서 일부로 배우지 않았다.
어떤 캐릭터라도 그 인물의 희로애락을 보여주기 위해 일부로 디테일한 작업을 하는 편이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에게 착한 부분이 1%라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까지 살리려고 노력하고 싶다.
캐릭터의 희로애락은 표현하려 애쓰는 만큼 본인의 희로애락도 잘 챙기는 편인가?
글쎄. 정작 나는 잘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마 그렇게 연기로나마 뭔가를 표현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7급 공무원>의 이재준은 자신의 애인에게조차 신분을 속이며 살아야 한다. 반대로 자신은 연예인으로서 신분을 노출하고 살아야 되는 처지다.
개의치 않으려고 많이 노력하는 편이다. 내가 예능 출연을 하고 싶지 않은 건 일단 연기자로서 자기가 맡은 바만 잘하면 되지, 그런 곳에서 사생활까지 말해가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을수록 인기가 올라가지만 너무 사소한 거 하나까지도 노출되고, 전혀 뜻하지 않은 구설수까지 생기니까. 어떤 분들은 그런 게 다 관심의 표현이라고 말씀하시고 그만큼 좋은 점도 있지만 그런 덕분에 힘든 부분도 많다. 내 위치가 조금씩 올라갈수록 자유롭던 활동범위가 예전보다 점점 좁아진다는 걸 느낀다. 그러면서 이젠 밖에 노출되는 것도 최대한 자제해야 되고, 뭔가를 많이 해보거나 즐겨야 할 시기에 집에 혼자 있는 내 자신을 보면서 내가 꿈을 위해서 한 걸음씩 다가서는 건 맞지만 이렇게 사는 게 내 삶이 맞긴 맞는 건지 스스로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연기를 그만 두지 않는 이상 스스로 극복해내야 할 수 밖에 없다.
말 그대로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으니까 조금이나마 더 좋은 점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어쩔 수 없는 직업 특성상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만큼 책임져야 할 부분들이 많이 늘었다는 건 감내해야 할 사실이니까 원치 않았다 해도 내가 하는 일을 위해선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이왕 오픈해야 되는 부분이라면 최대한 재미있게 즐겨보려고 노력하는 쪽으로 많이 바뀌는 거 같다.
일단 상대방의 대사톤이 어떤 스타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대본을 읽는 것부터 편하다. 그리고 리액션의 연기라고도 하듯이 상대방이 연기를 잘하면 내 부족한 부분까지 채워지고 내 연기에도 시너지 효과가 난다. 일단 김하늘 씨가 캐스팅됐다고 하길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일단 안심했다. ‘김하늘’하면 이미 연기적으로 인정받은 배우니까. 두 번째는, 연기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거니 처음엔 어색함이 있다. 그만큼 교감을 위해서 친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밥도 먹어야 되고, 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잘 안되면 연기할 때, 이 사람이 어떤 톤으로 준비해왔을까 궁금해도 물어보기조차 어렵게 된다. 그런데 하늘 씨와는 워낙 잘 아는 사이다 보니까 그런 과정을 몽땅 다 들어낼 수 있었다. 처음 만나자 마자, “내일 시간 돼? 대사 한번 맞춰보자.” 이런 말이 바로 나오는 거지. 그런 시간들이 축소되면서 조금 더 빨리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신과 김하늘 씨가 영화의 에이스라면 류승룡 씨와 장영남 씨는 조커와 같다. 조연배우들의 뒷받침이 그만큼 효과적이고, 안정적이었다.
류승룡 선배님과는 함께 붙어서 연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걸 느낄 수 있었다. 무전기로 대화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내 분량을 먼저 다 찍은 걸 선배님이 보고 거기에 맞춰서 연기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서로 연기를 맞춰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래서 본인이 준비해온 것들이 있더라도 그것들을 정해진 상황에 맞춰서 어쩔 수 없이 바꿔야 하는 경우도 많았을 텐데, 그럼에도 내 연기에 맞춰서 그 상황을 너무나 맛깔스럽게 살려주셨다.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씬에서 재미있는 톤이 이어진 건 다 선배들 덕분이었던 거 같다.
이재준은 상당히 고집이 센 캐릭터다. 상관에게 노트북 비밀번호도 절대 안 알려준다. (웃음) 그리고 <영화는 영화다>의 수타는 상당히 자존심이 센 캐릭터다. 재준과 수타는 그만큼 자기 욕심이 강한 캐릭터다. 당신도 어떤 욕심을 갖고 사는 사람인가?
욕심이라기 보단 목표를 위해 가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다. 쉽게 얘기해서 지금 내 위치는 주연배우를 맡고 있긴 하지만 톱스타도 아니고, 톱스타와 주연 사이에 있는 애매한 위치라고 생각한다. 연기나 스타성을 모두 지닌, 말 그대로 정상의 톱배우를 목표로 두고 있는 건 맞다. 이왕 연기자로 사는 거 당연히 정상에 서고 싶지. 정상을 판단하는 척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나는 아직 내가 생각하는 수준에 못 다다랐기 때문에 그만큼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있었지.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당시에 이미 계획이 있었는데, 서른 되기 전에 자리를 못 잡으면 연기를 그만 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대신 인생을 걸고 한번 해보는 것이니만큼 내 20대를 다 바쳐서 내 꿈을 펼쳐보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나니까 서른이란 나이는 가까이 오는데 돈 한 푼도 벌지 못하고, 친구들은 다 하나씩 자리잡아가는데 난 앞날에 빛이 없고, 정답을 가르쳐주거나 어떤 얘기도 해주는 사람 없이 모든 걸 다 혼자 해야 된다는 걸 느껴서 정말 힘들었다. 다행히도 스물 아홉에 했던 <굳세어라 금순아>가 잘돼서 연기를 계속 할 수 있게 됐지만 그 당시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를 앞두고 얼마나 많이 불안했겠나. 결과적으로 지금에 와서 잘 됐지만 중간에 정말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막상 서른이 되면 어떻게 할까 고민도 됐고. 20대를 다 바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막상 계획대로 버리고 가자니 20대가 아깝지 않을까 싶은 거지.
서른이 넘었는데도 아직 연기를 하고 있으니 일단 성공한 셈이다.
일단 그런 셈이지. 하지만 지금부터 또 잘해야 된다. 꿈을 갖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다들 그렇듯이.
스스로 긍정적인 편인가?
글쎄, 그건 모르겠는데. 그건 아닌 거 같다.
근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예전에 회사에 입사해서 쓰레기통을 비웠다는 일화가 등장하던데, 그런 걸 보면 조금 무모할 정도로 용감한 면이 있는 거 같다. 그런 면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볼 수 있지 않나.
단지 뭔가 해야 될 목적이 정해지면 거기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려고 조금 노력하는 편인 거 같다.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모르면 용감해진다. 회사 들어갈 때도 아무 것도 모르니까 제대로 내밀 학력도 없이 일단 날 써보라고 했던 거고, 심지어 뮤지컬 오디션 볼 때도 그랬다. 말 그대로 모르면 용감하다. 대신 또 하라면 절대 못하지. (웃음)
이제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으니까. (웃음) 사실 요즘은 연기를 전공하는 배우도 많은데 본인은 연기를 전공한 것도 아니었다.
연기학원도 다니긴 다녔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건 아무리 강의를 듣고 뭘 하는 것보단 현장에서 단역으로라도 대사 한마디 해보는 게 더 낫다는 거다. 이건 내가 나름대로 일궈낸 진리다.
지금까지 당신을 연기자로 키운 건 팔 할이 생활력이었나 보다. (웃음)
그러니까 못하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지. 일일드라마하던 당시에도 잘리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던 것처럼, 못하니까 열심히 해야 하는 것 같고, 모르면 용감한 거 같다. 만약에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거나 얼굴이 정말 꽃미남이라면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 그런데 내 생각엔 내가 뭔가 어정쩡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걸 다 완벽하게 메우기 위해서 더 열심히 하는 거고, 이런 성격이 장점으로 작용이 되는 거 같다.
2009년 4월 29일 수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2009년 4월 29일 수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