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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익어가는 싱싱한 미소 <똥파리> 김꽃비
2009년 4월 24일 금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혹시 누구 닮았단 얘기 들어본 적 없나요?
몇 명 있어요. 제가 누구 닮았다고 생각하세요?

촬영하는 거 보면서 누굴 닮았다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났어요.
누구요?

조디 포스터.
예? 정말요?

이목구비가 닮은 거 같아요. 특히 눈이 닮았네요.
우와, 처음 들었어요! (웃음)

다른 인터뷰 기사에서 보니까 1살 때부터 연기를 했다는 말이 있더군요.
1개월이에요. 1개월. (웃음) 제 생일이 11월 24일이라서 딱 생후 1개월이 크리스마스 이브였거든요. 그때 교회에서 연극을 했는데 제가 아기 예수를 하고 어머니께서 마리아를 맡으셨죠. 이건 그냥 재미로 하는 얘기고 실제로 연기를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 연극을 시작하면서였어요.

그 나이면 반쯤은 호기심으로 연기를 시작한 게 아닐까 싶은데요. 연기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시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웃음) 아까 주장이 강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제가 고집도 있고 주장이 강했어요. 초등학교 5~6학년 즈음에 벌써, ‘나는 연예인 말고 순수연극만 하는 배우가 될 거다’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 (웃음) 사실 그때는 어려서 영화도 많이 못 봤죠. 제가 처음으로 본 영화는 <여고괴담>이에요.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아무튼 영화를 늦게 접하게 됐죠. 어렸을 때 비디오 가게에서 <바이오맨>같은 거나 빌려본 적은 있지만 영화라고 할만한 건 <여고괴담>이 처음이었죠. 그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게 됐고 점점 연극과 영화의 격차가 좁아지더니 지금은 반대가 된 거 같아요.
연기를 하게 된 걸 후회한 적은 없었나요?
제가 어린이연극 교실을 다니면서 어린이 뮤지컬을 공연하기도 했는데 ‘까뽀니노’라는 프랑스 극단과 같이 세계 연극제에 나간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다닐 수가 없었죠. 그리고 중학교는 초등학교보다 학업량이 많아서 은근히 바쁘더라고요. 그렇게 연기를 못하다 보니까 자연히 관심도 없어졌어요. 그렇게 중학교 3년 동안, 연기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연극을 잊고 살았죠. 그러다 고등학교에 갔는데 연극부에서 반마다 돌아다니면서 동아리 홍보를 하는 거에요. 그때 제가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연극이 갑자기 머리로 들어왔죠. 그래서 연극부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거기서 오디션 대본을 보는데 너무 반갑더라고요.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바로 이 느낌이야. 내가 왜 이걸 잊고 있었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연극반 활동을 하게 됐고 이를 계기로 다시 연기를 하게 됐죠.

영화에 출연하게 된 경위가 궁금해지는군요.
연극부 선배가 다니던 극단에 따라다니면서 연기학원도 등록하게 됐어요. 그런데 학원에서 영화 찍을 때 엑스트라 같은 거 보내기도 하잖아요. 저는 처음 <두사부일체>에 나가게 됐는데 학원에서 애들을 다 모아서 보냈었죠. 선생님들이 학교에서 쫓겨나고 닫힌 교문 안에서 학생들이 항의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 장면 리허설을 하는데 저는 뭔지 잘 모르지만 진짜 열심히 했어요. 완전 몰입해서 우리 선생님 들여보내주라고 막 울었거든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모니터를 보시다가 오셔서 아까 거기서 울던 애 누구냐고 하셔서 저라고 했더니 이리 와서 잘 보이는 데서 연기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학생들을 인솔했던 분께서 저를 눈 여겨 보시곤 바로 다음에 <질투는 나의 힘> 오디션을 보라고 추천해주셨고 영화에 나오게 됐어요. 그런데 운이 좋았는데 그 역할이 짧지만 인상적인 역할이라 덕분에 인터뷰도 하고 그랬었죠. 그 이후로 그 역할 보시고 찾아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덕분에 잘된 거 같아요.

노력하는 만큼 뭔가 얻어진다는 걸 느꼈을 거 같은데요.
솔직히 그 때는 잘 몰랐던 거 같아요! (웃음)
저는 <똥파리>를 일반시사를 통해서 일반관객과 함께 봤습니다. 관객들의 몰입도가 높은 느낌이더군요. 다같이 깔깔대다가 이윽고 탄식하는 모습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서울극장에서 일반시사 때 상영 중간에 살짝 들어가봤어요. 그런데 정말 반응이 크더라고요. 마치 방청객 반응 같았죠. 9백석이 거의 꽉 찼었는데 그 많은 관객이 동시에 한번에 반응하는 느낌이 웅장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그 반응을 느끼는 게, 뭐랄까, 짜릿했어요. 물론 시사회라서 반응이 더 좋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좋았어요.

영화가 끝나고 나서 무대인사가 이뤄질 때 열광적인 분위기가 더 놀랍더군요.
영화가 좋았으니까 열렬히 환호해주신 거겠죠? (웃음) 마지막 일반시사가 있었던 날 영화 끝나고 무대 인사하러 들어갔는데 반응이 너무 좋은 거에요.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대부분 남아서 열렬히 환호해주시는데 정말 이렇게 반응이 열광적으로 좋을지 몰랐거든요. 유명한 스타배우가 나오면 그 배우가 보고 싶어서 늦어도 남잖아요. 저흰 그런 것도 아닌데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 보면 그게 오로지 영화의 힘이란 의미 같아서 좋았어요.

<똥파리>는 센 영화입니다. 욕도 많이 나오고 폭력의 수위도 센 편이죠.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감상은 어땠나요?
욕이 많긴 하지만 욕이 많이 나오는 영화는 사실 <똥파리>이전에도 많았잖아요. 물론 <똥파리>가 다른 영화들보다도 수위가 세게 느껴지는 것 같긴 해요. 정말 욕을 리얼하게 하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거 같고요. 일반적으로 조폭이나 삼류 인생을 다루는 영화에서 욕이 많이 등장하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다른 영화보다 <똥파리>는 좀 더 생생한 느낌을 주는 영화 같았어요. 배우들이 그만큼 리얼하게 연기를 하기도 하고. 마치 다큐멘터리 같다고 하는 분도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자신의 대사에서도 욕이 종종 포함되는데 어땠나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심한 욕은 하지 않잖아요. 막상 기껏 해야 미친 새끼 이런 정도? (웃음)
상당히 잘 웃는 편이에요. 연희와 전혀 다른 사람 같습니다.
그렇진 않아요. ‘가시나무새’라는 노래에서 ‘내 속엔 내가 너무나 많아’라는 가사처럼 사실 다들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사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은 여기서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진짜 편한 친구 만나면 남자 목소리처럼 들릴 정도로 무덤덤하게 얘기할 때도 있죠. 좋아하는 사람 앞에 가면 여성스러워지기도 하고, 화나면 막 때려부수기도 하고, 때때로 감성적으로 멜랑꼴리할 때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거 같아요. 기자님도 지금 이렇게 저랑 인터뷰 자리에서 만났기 때문에 예의 바르게 말씀하시지만 친구 만나면 욕도 할 수 있잖아요. 남자들은 원래 욕을 잘 하기도 하니까. 특히 학창시절 친구들 만나면 욕 잘하잖아요. (웃음) 슬프면 남자들도 울고, 화날 땐 막 벽도 치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한테도 그런 다양한 면이 있죠. 연희가 저와 전혀 다른 캐릭터는 아닐지도 몰라요. 고집이 센 편이기도 하고

고집이 세다고요?
은근히 고집이 있어요. (웃음)

연희는 안에 쌓인 응어리가 많은 사람이죠.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면 심리적으로 영향을 받게 되는 측면도 있었을 텐데요.
아무래도 영향을 받죠. 다만 그게 오래가는 건 아니에요. 집안 촬영할 때 일주일 정도 몰아서 집안 장면을 다 찍었는데 그땐 매일 계속 울었죠. 매일 같이 우는 장면이 나와서 그런 상태로 계속 지내긴 했어요. 연희가 힘들어하는 경우는 집안에서 아빠나 동생이랑 싸울 때잖아요. 밖에서는 그런 과정이 몇 번 없어요. 밖에서 상훈을 만날 땐 편하게 막 대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야외에서는 힘든 건 없었죠.

동생과 싸우는 씬에서 머리도 맞고 그러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변태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맞을 때 일종의 시원함이 있거든요. 세게 맞는 것도 아니고요. 감정을 받는데 도움이 돼요. 가짜로 맞으면 화가 안 나지만 진짜로 맞으면 열 받잖아요. (웃음)

진짜 감정적인 연기였군요. (웃음)
뭔가 후련하다고 할까요? 막 소리지르잖아요. 쏟아버리면 시원해요. 물론 감정적으론 힘들죠. 그 감정에 치닫는 게 힘들지만 그래도 뭔가 막 쏟아버리면 시원한 면도 있거든요.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고 할까. 예를 들면 아빠가 칼 들고 위협할 때 진짜 미쳐버리는 줄 알았거든요.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도 쉬었어요. 그러고 나면 한동안 진정이 안 돼서 끝나고도 계속 울게 돼요. 애기들 우는 것처럼 어깨를 들썩거릴 정도로. 그래도 뭔가 뱉어내고 나면 좀 시원해요. 울고 나면 시원하잖아요. 에너지를 풀어내니까 졸리기도 하고. 평소에 제가 화를 내거나 싸울 일도 없고, 그래서 소리 지를 일이 없어서 영화를 통해 대신 그런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할까. 평소에 제가 갖지 못했던 걸 영화를 통해서 풀었다고 할까요.

감독님이 전세까지 빼서 제작비를 마련했다는 일화처럼 환경적인 열악함을 감안해야 했을 겁니다. 그런 환경에서 비롯되는 어려움을 느낀 건 없었나요?
현장의 어려움은 별다른 영향을 못 미친 거 같아요. 현장이 어렵다는 건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겠지만 감독님이 그 영향력을 배우들에게 가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셨거든요. 감독님께서는 배우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어요. 다른 스태프들이 섭섭해할 정도로, 아마 진짜 서운해했던 스태프도 있었을 거에요. 본인이 배우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생리를 잘 알아서 어떻게 해야지 이 배우들이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지를 잘 아는 거 같더라고요. 배우들은 감성적인 정서가 중요한 만큼 현장에서 뭐하나 신경 쓰다가 집중력이 어그러지면 연기가 잘 안될 때도 있잖아요. 그래서 감독님이 최대한 배우들이 예민해지거나 다른데 신경 쓸 필요 없게 많이 보호해주셔서 배우들은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지 않은 거 같아요. 그저 자기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감독님께서 누구보다 잘 해주시니까.

감독님의 디렉션도 거의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느껴지던가요?
감독님과 처음에 만났을 때 6시간 동안 수다를 떨었어요. 그때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하면서 그것과 관련된 얘기도 했던 거 같아요. 감독님과 제가 생각이 일치하는 걸 느꼈죠. 디렉션을 많이 주면 오히려 그 안에 갇히는 경우가 많아요. 어차피 대본을 보면 그 상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잖아요. 상황을 아는 만큼 거기서 많이 벗어나진 않을 테고, 각자 생각하고 이해한 게 있으니까 알아서 잘 할 거라는 감독님의 믿음이 있었어요. 감독님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양익준 감독님은 디렉션을 별로 안 좋아하시는 스타일이었던 거에요. 저도 디렉션이 많으면 그걸 약간 불편해하는 편이긴 해요. 예를 들면, 창문을 열고 밖을 바라보는데 약간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바라봐, 이런 식은 좀 그렇잖아요. (웃음) 그대로 해야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니까. 자연스러운 정서와 감정 속에서 나올 수 있는 상상력을 오히려 막는 거죠.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감독님께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셨던 게 배우에게 나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럼 보다 자유롭고 진심이 묻어나는 연기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너무 많은 걸 정해주면 아무래도 배우들이 가진 좋은 능력을 막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오히려 자유롭고 편하게 두면 더 잘 할 수 있는 배우도 어떻게 해야 된다는 생각에 신경 쓰다가 집중을 잃을 수도 있거든요. <똥파리>를 보신 분들이 작은 역할조차도 연기가 좋다고 하시는 건 감독님의 그런 연출 방식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처음 상훈을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거기서도 남자 목소리 나오잖아요. ‘야!’ (웃음)
만약 그런 상황을 현실에서 직접 맞닥뜨린다면 그럴만한 용기가 날까요?
저도 좀 깡다구가 있어요. (웃음)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여자애들은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해본 경험이 보통 한번씩은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한번도 그런 경험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평소에 그런 얘기 듣게 될 때마다 만약 누가 저한테 그러면 가만히 안 둘 거라고 생각했어요. 손목을 비틀어 버릴 거라고. (웃음) 그런데 어느 날 친구와 사람이 많은 신도림역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가 움찔하는 거에요. 이상해서 왜 그러냐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지나가면서 엉덩이를 만졌대요. 순간 열이 받는 거에요. 차라리 저한테 그랬으면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제 친구한테 그랬다니까 더 열 받는 거 있죠. 그래서 “아저씨!” 불렀어요. 아니다. “야!” 그랬나. 맞아요. 진짜 연희처럼 그렇게 불렀어요. 진짜 열 받아서. (웃음)

마치 상훈을 부르듯이. (웃음)
그런데 아저씨가 가다가 들었는지 갑자기 쓱 멈추더니 돌아보는 거에요. 분명 우리가 불렀다는 걸 아는 거 같은데 우리를 안 보고 그냥 돌아서서 우리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우리 쪽으로 오는 거에요. 분명히 우리가 불렀다는 걸 알았을 거에요. 왜냐면 우리가 그 아저씨를 쳐다보면서 서있었거든요. 신도림에 사람들이 많아도 다 걸어 다니고 있는데 우리만 서서 쳐다보고 있으니까 알 거 아니에요. 게다가 자기가 엉덩이를 만졌으니까 당연히 알 테고. 그런데 진짜 그 아저씨 표정이 정신이 하나 나간 사람 같았어요. 이거는 설명을 잘 못하겠는데 마치 싸이코패스 같다고 할까. 이상한 느낌이었어요. 표정도 없고. 게다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양복 마이에 손을 넣고 오는 거에요. 소름 끼치고 섬뜩하더라고요. 그래서 어쩌지, 하는데 우리 옆을 지나가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우리한테 돌아올 거 같았어요. 그래서 다시 뒤돌아 올 까봐 친구랑 도망갔죠. (웃음) 주머니 안에 칼이라도 있을 거 같더라고요. 신도림역에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서도 찌르고 도망가버리면 못 잡을 수도 있잖아요. 그랬다가는 뉴스에 나오는 거죠. 사람이 많은 곳에서 누가 찔려 죽었는데도 아무도 몰랐다, 비정한 현대사회. 이런 식으로. (웃음)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군요. (웃음)
아무튼 무서웠어요. 그때 이후로 사람들한테 함부로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연희는 형인이와 함께 상훈을 약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욕을 날리며 주먹질을 하는 사람에게 욕을 날리며 맞선다는 건 남자도 쉬운 일이 아닌데 연희는 그렇게 상훈에게 대항하죠. 연희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자신의 현실이 그처럼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고요. 그런 내면을 이해하는 게 중요했을 거 같은데요.
연희는 동생에게 ‘빤스까지 쫙쫙 찢어버릴라’ 같은 욕까지 듣고, 아빠가 그렇게 난리를 치는데도 참아내잖아요. 물론 연희도 그게 힘들겠죠. 동생한테 그렇게 심한 욕을 들었을 때 어떻게 그렇게 참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연희는 그런 것들에 이미 적응이 된 거 같아요. 익숙해진 거죠. 항상 그래왔으니까. 상훈의 폭력이 연희한텐 처음이 아닌 거죠. 지금까지 숱하게 별 지랄을 다 보고 살았으니 그런 건 이미 익숙하게 배긴 거죠. 물론 화는 나겠죠. 화는 나지만 그걸 일일이 반응할 정도가 아니란 거에요. 그러니까 웬만한 강한 사람을 만나도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거 같아요. ‘이미 별일을 다 겪어왔으니까 죽일 테면 죽여봐라. 어차피 난 사는 게 힘든 애다.’ 이런 것일 수도 있고. 집에서 항상 폭력적인 공격을 당하다 보니까 상훈이 별로 무섭지 않았을 거 같아요.

<똥파리>에서 등장하는 가족의 모습은 하나같이 끔찍합니다. 더 안쓰러운 건 그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비춰지는 모든 이들이 하나같이 피해자라는 거겠죠. 아무래도 그런 극단적인 경험을 겪진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과정도 있었을 텐데요.
아무래도 저에겐 상상에 가깝죠. 저희 집에서 폭력을 겪어본 적은 없어서 상상이 필요했어요. 도움을 받기 위해서 우선 감독님과 많은 얘기를 했고요. 감독님이 연희를 위해 모티브로 잡기 위해 인터뷰했던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 이야기도 많이 들었죠. <긴급구조 SOS>같은 프로도 많이 봤어요.

어쩌면 평소에 자신이 겪어보지 못했던 만큼 생소한 풍경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이번 기회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넓어지는 계기가 된 측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 사실 그렇죠. <긴급구조 SOS>같은 프로를 보면서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아무래도 <똥파리>를 하면서 그런 이야기들에 더 많은 관심이 생기기도 하고, 많이 찾아보게 됐어요. 감독님이나 다른 사람들로부터 직접 주변에서 있었던 이야기도 많이 듣다 보니까 생각보다 그런 가정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혹시 동생 있나요?
남동생이 있어요.

평소에 동생과의 사이는 어떤가요?
동생이랑 되게 친해요. 다만 어렸을 때 싸우지 않았던 형제나 남매 없잖아요. 초등학교 때는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그런데 어릴 때 싸우는 게 더 무서운 거 같아요. 제 무릎에 막 연필심 박힌 적도 있고. (웃음)

과격했군요. (웃음)
그런데 다른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다 한번씩 연필심이나 샤프심 박히고 그랬던데. (웃음) 그런데 지금 와서 저도 생각해보면 조금 무섭게 느껴져요. 제 동생이 진짜 착한데 그때 제 동생이 저한테 분명 그랬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상상이 안 가죠. 어렸을 때는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더 과격한 거 같기도 하고, 지금으로선 상상이 안돼요. 내 동생 같은 애가 연필심을 나한테 박았다고? 이젠 이런 생각이 들 정도지만 분명히 그땐 그렇게 싸웠거든요.

양익준 감독님은 <똥파리>에서 가장 많이 상대하는 배우이기도 했습니다. 영화에서는 상당히 무시무시한 인간이지만 실제론 상당히 인간적인 사람 같더군요.
꺄하하하, 막 이러시고. (웃음)

양익준 감독님과 호흡을 맞추는 건 어땠나요? 연기하는 모습과 평소 모습이 극단적으로 달라진다는 것도 옆에서 보는 입장에선 묘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혹시 연기적으로 짓눌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나요?
밀리지 말아야겠다거나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연희로서 그 사람을 만났을 뿐이죠. 제가 감독님에게 놀란 부분은 다른 데 있어요. 처음에 만나서 6시간 수다 떨었다고 했잖아요. 그때 얘기하시면서 담배도 피우고 그러셨는데 저는 담배연기를 싫어해요. 원래 안 피우는 사람들은 담배 연기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이 담배를 피는데 (고개를 뒤로 돌리고) 이렇게 내뿜는 거에요. 담배 피우는 사람 중에 예의 있는 사람들은 보통 옆으로 뿜거든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사람들은 제가 앞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내뿜죠. 난 정말 연기가 너무 싫고, 견디기 힘든데. 그런데 감독님은 고개를 돌리고 뿜는 거에요. 진짜 작은 부분이지만 오히려 그런 세심한 부분이 크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 되게 좋은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되게 감동받았어요.
상대를 배려해주는 법을 아는군요.
그리고 감독님 또 어떤 점이 있느냐면 ‘미안’이란 말이 반사적으로 나와요. 예를 들면 같이 앉아있을 때 다리를 조금 건드릴 수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반사적으로 ‘미안’이란 말이 나와요. 지나가다가 종종 어깨를 부딪히면 상황이 애매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못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데 감독님은 반사적으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에요. 반사적으로 나온다는 건 몸에 배어있다는 의미잖아요. 이 정도는 사과하지 않아도 될 거 같은 상황인데도 그냥 반사적으로 하는 거죠. 이런 것도 상대에 대한 배려죠.

양익준 감독님이 자신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서 말씀해주신 적이 있나요?
감독님께서 예전에 <KBS독립영화관> 진행을 맡으셨는데 거기서 제가 출연했던 <이슬 후>라는 단편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었어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 받았던 작품인데 거기서 제가 되게 좋았대요. 그래서 그 때부터 제 팬 됐다고 그러시던데요. (웃음)

연희는 집안에서 살림을 도맡죠. 무대인사 때 카페홍보까지 하는 거 보니까 마치 살림꾼이 따로 없더군요.
음, 감독님 표현을 빌리면 오지랖이 넓어서 그렇다고. (웃음)

친구들 사이에서 주도하는 입장인가요? 아니면 따라가는 입장인가요?
주도하는 걸 좋아해요. 한번 내가 여기서 주도해야겠다 싶으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어디서나 항상 주도할 순 없잖아요. 여기는 제가 주도할 데가 아니다 싶은 느낌이 들 땐 아예 빠져있어요. 제가 좀 적극적으로 해야겠다 싶으면 완전히 적극적으로 하는 스타일이고, 아니면 아예 방관하고 빠져버리는 스타일이죠.

“왜 남에게 보여주지 못할 영화를 만드는 거지?” <삼거리 극장>에서 했던 대사였죠. <삼거리 극장>은 많은 관객을 만나기 힘든 영화였습니다. 다행히도 이번에 <똥파리>는 전국 50개가 넘는 상영관에서 개봉된다고 하네요. 배우 입장에서 자신의 영화가 많은 관객을 만날 수 없을 땐 아쉬움이 클 거 같아요.
그렇죠. 아쉽죠. 특히 제가 해서 그렇다는 점도 있겠지만 <삼거리극장>도 그렇고, <똥파리>도 그렇고, 저는 두 영화가 다 너무 좋거든요. <삼거리극장>은 시나리오 처음 받았을 때부터 완전히 영화와 사랑에 빠졌었어요. 결과물도 너무 재미있었고 좋았는데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죠. 제가 나왔다는 이유는 그냥 저 혼자 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정말 좋은 영화라서 아쉬운 거죠.
2009년 4월 24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2009년 4월 24일 금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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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eyoko
'한 번에 멀리 뛰기보단 서서히 한 걸음씩 발자국을 늘려나간다.' 처럼
초심을 잃지 않으셨으면합니다.   
2009-04-25 02:55
ooyyrr1004
앞으로 더 좋은 모습 많이 보여주시기를 바라며...   
2009-04-2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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