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이런 인터뷰를 많이 했었나.
김준석 감독(이하, 김) 1년에 두세 번 정도? 우리는 아무도 안 찾다가 작품 생기면 간혹 한다.(웃음)
프로필을 보고 작업한 영화 음악을 들어 봤더니 정말 다양하더라. 가수가 자기 음악스타일 대로 곡 만들어 앨범을 내는 것도 아니고, 매번 영화 장르에 맞춰 스타일을 바꾸려면 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최용락 감독(이하, 최) 장르가 바뀌어서 오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별로 없다. 근데 서로 다른 장르의 영화가 시기상 겹칠 때는 조금 스트레스를 받는다.
김 장르가 달라서 힘들기보다는, 아까 가수의 예를 든 것처럼 내 이름 걸고만 나가는 음반이면 원하는 음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물론 자본의 제약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근데 영화음악이라는 것은 각기 다른 성격을 가진 영화감독들과 작업을 한다. 어떤 감독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베스트를 이끌어 내고, 또 여기 적응되어 있다가 너무 다른 성향의 감독과 또 다시 베스트를 이끌어 내야하는, 서로 맞춰가는 과정이 힘든 거다. 이런 것 말고 장르 때문에 힘든 건 개인적 취향 때문에. 예를 들면 나는 완전 고어 영화는 눈 뜨고 못 본다.(웃음) 그런 거 몇 개 빼고는 영화 스타일에 맞춰서 할 수 있는 것 같다.
감독님들과의 호흡을 얘기 했는데, 호흡을 맞추는데 있어 힘든 점은 어떤 게 있나. 듣기로는 음악작업을 하다가도 서로 너무 안 맞으면 중간에 작업을 튼다고도 들었다.
김 초반에 너무 안 맞아서 간혹 그만 둔적이 있기도 하다. 근데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아무리 지지고 볶고 해도 서로 맞추며 하게 된다.
주로 어떤 것 때문에 그러나.
최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이 처음에 생각했던 음악을 초지일관 고수하는 경우는 없고 거의가 작업하면서 원하는 부분이 바뀐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감독들의 의견에 맞춘다. 어차피 영화 전체를 끌고 가는 것은 감독이고, 영화의 책임도 감독에게 있으니까. 그래서 맞추는 건데, 그런 과정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 사실 감독들이 몇 년을 고민을 하고 시나리오 쓴 거를, 우리는 나중에 영화가 들어가게 되면 그때부터 얘기를 시작하게 되니까 따라가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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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 같다. 이야기 속의 감정과 호흡을 이해하려면
김 감독은 아주 많은 부분을 미리 생각해 놓은 상태고, 우리는 그때부터 이해해 가는 거니까. 이제까지 살아온 인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떤 추상적인 단어 하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서로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 원하는 걸 최대한 맞춰 가려면 시간이 필요한 거고, 우리는 그걸 따라가려고 최선을 다 하는 거다. 예를 들면 <추격자>가 그랬던 거 같다.
어떤 면에서?
김 처음에 우리는 장르영화의 컨셉으로 작업을 했었다. 근데 감독님이 그때부터 자기 얘기를 해 주더라. 예를 들면 ‘이건 대한민국의 한 여자를 못 지킨 대한민국 수컷들이 반성하라는 뜻에서 만든 영화다.’ 이런 식으로. 그래서 다큐적인 느낌, 어떤 날 것 같은 느낌의 음악을 해 달라는 얘기를 했다. 그래서 초반에 만들었던 음악을 다 바꿨다.
그럼 <추격자>를 같이 했던 이유는 뭐였나.
김 같이 했던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웃음), <추격자>가 컨텍이 되고 나서 처음에 생각난 게 최용락 감독이었다. 같이 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소에도 후배지만 내가 제일 존경하는 음악감독이기도 하니까.(음악) 근데 처음에는 그런 제안을 했을 때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까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더 좋아하더라. 혼자서 하는 거 보다 둘이 하면 더 좋지 않겠냐 하면서. 그래서 시작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잘한 선택 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다가 트러블은 없었나. 개인마다 포커스를 맞추는 부분에서 좀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최 이건 각 개인의 음악세계를 펼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영화 음악으로서 가야할 분명한 부분으로 가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맞는 음악을 생산해 내면 되는 거고, 그런 부분에 있어 김준석 음악 감독과 서로 상호 보안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모니터를 하면서 의견을 공유하고 그런 것들을 통한 결과물이 최종적으로 나홍진 감독에게 넘어간 거다.
그럼 보통 한 곡을 같이 만드나. 아니면 내가 한 곡, 상대가 한 곡 그런 식으로?
김 요건 니가 맡아, 이건 내가 할게. 그런 개념이라기보다는, 일단 영화를 보고서 우리가 어떻게 음악을 연출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실제로 <추격자>에서 곡은 최용락 감독이 훨씬 많이 썼고, 초반과 마지막에 날 것 같은 느낌의 음악은 내가 하는 것 보다 최용락 감독이 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을 했다. 물론 최용락 감독도 거기에 욕심을 가졌고. 그래서 서로 경쟁하는 것 없이 같이 상의 하고, 또 최용락 감독이 진행하다 내가 받아서 진행한 곡도 있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서로가 가는 거니까 그 안에서 ‘내가 더 썼네.’(웃음) 그런 건 없었다. 처음부터 우리가 원해서 같이 했던 거니까.
나홍진 감독이 날 것 같은 음악을 원했다고 했는데, 지금 감독님들의 말을 들으면서 영화를 생각하니 표현을 정말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김 음악가와 영화감독의 대화는 굉장히 추상적인 대화다. ‘몽환적이면서도 그 안에 희망이 담겨 있고 뭐가 어쩌고, 저쩌고’로 해주세요.(웃음) 이러니까. 그걸 이해하는데 고민을 많이 한다.
최 연출자가 말하는 날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날 것 같다는 느낌이 서로 딱 맞아야 하는데, 그걸 음악으로 구현해서 서로 ‘이거다.’ 이렇게 생각되기 까지가 시간이 많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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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영화감독들이 어느 단계에서 의뢰를 하나. 시나리오 단계부터인가?
최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 우리가 어느 단계에서 조인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함께 하게 되면 크랭크인하기 전부터 음악을 들려 달라고 요구를 하기도 하고, 촬영이 끝나고 같이 하게 됐다 그러면, 편집 본을 보고 음악을 만들게 되는 경우도 있다.
김 전자가 우선은 기본이다. 시나리오 단계 때부터. 옛날에는 다 찍은 다음에 음악감독 찾으면 되겠지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근데 처음부터 상의 할게 되게 많고, 그래야 우리도 감독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는 촬영 다 끝나고 와서 3주 만에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집에 잘 못 들어간다면서, 그때는 아예 집에 못 들어갔겠다.(웃음)
김 정말 전쟁이다.(웃음) 아주 긴급하고 위급한 상황이 생긴 경우 그런 일이 가끔 있기도 하다.
그동안 각자 여러 작품을 했는데 호흡이 잘 맞았던 감독으로 기억되는 사람은 누가 있나.
김 <마을금고 연쇄 습격 사건>의 박상준 감독 같은 경우가 굉장히 호흡이 좋았던 거 같다.
최 호흡이 잘 맞았다 그런 거 보다 감성적으로 코드가 맞는 사람이라고 느꼈던 분이 김태용 감독님이다. <가족의 탄생>을 함께 했다.
감독님이랑 호흡이 잘 맞았다는 게 내가 어떤 장면을 상상하고 느꼈던 것과 감독님의 느낌이 서로 잘 맞았다는 걸 말하는 건가.
최 내가 이 장면이 너무 좋은데 감독님도 이 장면을 너무 좋아하고. 하나의 영화 안에서 그 장면과 음악에 대해 같은 생각이 드는 거다. 이게 공동 작업이기 때문에 겉으로는 서로 좋다, 좋다 하지만, 속으로는 아쉬운 부분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다. 근데 그런 거 없이 서로 같음이 됐을 때 ‘아~! 이 맛에 하는 거지’ 그런 생각이 든다. 공동작업의 메리트 같다.
김 <마을금고 연쇄 습격 사건>이나, 지금 하고 있는 <과속 스캔들> 같은 경우 일을 정말 즐겁게 했다. 서로 존중해 주면서. 어떤 장면의 음악에 대해서 막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음악이 나올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서로 웃으면서 분위기 좋게 일을 한 거다.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이렇게, 저렇게 해볼까요.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봤던 거 같다.
그럼 시나리오를 보고 음악을 구상할 때 제일 포커스를 맞추는 건 무엇인가. 감독의 생각과 자신이 느낀 생각을 좁혀나가기 위해서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 되는 것들.
최 정해져 있는 건 없고 작품의 성격마다 혹은 연출자의 성격 마다 좀 틀리다. 나의 경우는 시나리오를 읽고 몇 개의 키워드를 만들려고 한다. 예를 들어 <순정만화> 같은 경우에 영화 초반, 중반 까지는 알콩달콩하고 설레는 연애감정을 따라가야 했다. 그래서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고 ‘나를 찾고 있나요?’ 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 감정을 구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작업을 했다. 물론 이건 감정이 명확한 경우에 해당하는 거다. 시나리오를 봤는데 ‘이걸 어디다 맞춰야 하는지... 모르겠다...’(웃음) 이런 경우는 감독과 의견을 교환하고 감독이 주는 디렉션을 따라 갈 때도 있다.
<순정만화>에서 두 배우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았다. 시원한 바람 같기도 하고 정말 순정을 품은 로맨스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 그리고 전체적으로 애니메이션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렇게 컨셉을 잡은 이유가 있었나.
최 일단은 원작 자체가 만화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이야기 자체가 판타지 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 생각을 감독님과 상의 했는데 결국은 그 방향으로 결정이 됐다.
최 엔딩 곡으로 쓰려고 했던 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이승환의 곡으로 최종적인 선택을 했다. 원래는 부드럽게 남자가 고백하는 느낌으로 곡 작업을 했었는데, 그렇게 하면 따뜻한 느낌은 있지만 엔딩이 처지는 느낌이 들더라. 이 영화는 관객들이 기분 좋게 보고 유쾌한 기분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싶어서 이승환의 곡으로 결정을 한 거다.
<과속 스캔들>의 경우 처음에 차태현이 등장하는 장면의 음악이 복고풍 스윙 재즈의 느낌이 들더라. 영화의 시작을 그렇게 연 이유가 있었나.
김 영화의 시작이기도 하고, 옛날에 잘 나갔던 애가 아직도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아주 깔끔 떨며 살고 있는데, 이런 캐릭터의 남자가 아침을 여는 모닝콜 음악으로 어떤 마초적인 음악이었으면 좋겠다고 감독님이 그랬다. 정말 편하게 사는 애, 결혼 이런 것도 관심 없고 자유롭게 사는 남자를 표현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노래로 갈까도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영화에 나오는 음악으로 선택을 하게 된 거다.
리메이크 된 곡들이 많았다.
김 영화의 설정상 어쩔 수 없었다. 시골에서 살 던 여자애가 노래에 대한 욕심이 있어도 자기가 만든 곡을 가지고 오지는 않았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초반에 두 번 콘테스트 때는 기존에 있는 곡으로 가자 그랬다. 감독님이 처음에 생각했던 건 심수봉의 곡이었는데, 나는 그게 되게 어려웠다. 그 멜로디로 요즘 취향에 맞는 곡을 만들어 내기가. 그리고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좀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않을까 해서 감독님에게 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의 음악으로 바꿨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두 번째 음악은 아예 처음부터 모자이크의 ‘자유시대’로 가겠다고 했다.
처음 곡이?
김 ‘아마도 그건’이다. 근데 이곡은 감독님과 어떤 음악으로 할까 그러다가 차태현 씨가 아이디어를 낸 거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곡이기도 했는데, 영화에서는 원곡 느낌과 완전 다르게 재해석을 해서 가겠다고 했다. 세 번째 곡은 그 때 당시에는 어떤 곡으로 갈지 몰랐지만, 처음에는 목소리가 강조되다가 뒷부분에 가서 코러스가 터지는 걸로 감독님이 아예 설정을 해줬다. 그리고 네 번째로 가족들과 함께 하는 곡은 아예 대본에 쓰여 있었다. 그건 들어보니 괜찮아서 그대로 하기로 했다.
영화에서 차태현의 앨범에 있던 곡은?
김 영화에서 차태현이 부른, 자신의 망한 앨범에 수록 됐다고 말한 그 곡은 완전 새롭게 만든 곡이다. 다른 모든 곡들은 기존의 노래를 그냥 가져다 썼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 거의 전체를 다 새롭게 바꾸려고 노력했다.
음악을 만들 때 영화의 흥행적인 면도 생각하나.
김 생각 한다. 영화는 굉장히 많은 자본이 들어와서 만들어 지는 건데 단순히 예술만을 한다고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생각한다. 남의 돈 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한국 영화가 사는 길이 결국 우리가 사는 길이지 않은가.(웃음) 음악을 만들 때 작품성도 따져야 하지만 흥행성도 생각을 해야 한다. 만약에 1, 2억 가지고 만드는 완전 작가주의 영화 같으면,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감독과 둘이서 이상한 악기 가져다 이것저것 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근데 상업 영화라면 어쩔 수 없이 그런 것들은 따라가 줘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대중적인 코드를 맞춰가면서 조율을 하는 거고.
최 수도 없다. 전체도 몇 번 씩 보고 부분을 나눠서도 계속 보니까.
처음에 음악 없는 편집 본만 보고, 나중에 자기가 만든 음악을 넣은 완성 본을 보면 기분이 어떻던가.
최 갑갑~할 때도 있고, 아~! 또 내가 실수 했구나 이럴 때도 있고.(웃음) 근데 진짜 기분 좋을 때는 내 음악이 있어서 저 장면이 살았구나 그런 거 느낄 때다. 단순히 음악만 들었을 때는 ‘이게 뭐야?’ 그럴 수 있지만.
맞다. 사실 <추격자>도 영화 OST만 사서 듣기에는...(웃음)
김 그게 사실은 다 계산 된 거다. 음악에 더해서 인물의 숨소리나 화면의 분위기 등 그런 것들이 다 합쳐진 게 음악이라고 봐야 된다. 그래서 음악만 딱 떨어 뜨려놓고 봤을 때는 별로 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음악이 그 장면을 살리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긴 음악 없는 <과속스캔들>은 생각해서 뭐하며, <순정만화>에서 자전거 타는 장면에 음악이 없었으면 자전거 바퀴 소리 밖에는 안 들렸을 거다.(웃음)
<순정만화>와 <과속 스캔들>을 비교해 보면, <순정만화>의 음악은 인물들의 감정에 소소한 부분을 채워주고, <과속 스캔들>의 경우는 음악이 영화의 전면에 드러난다. 그런 부분에 있어 음악을 만드는 포커스가 다를 거 같다
김 영화를 하다 보면 음악의 역할이 연기나 영화의 톤에 딱 맞아야 되는 경우가 있다. <추격자>의 경우도 감독님은 음악이 절대 나서지 않고 들릴 듯 말듯, 배우들의 연기를 약간 서포트 해주는 느낌으로만 가달라고 했다. 괜히 음악이 나서서 영화를 끌어가지 말아 달라고. 사실은 이런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근데 <과속 스캔들> 같은 경우나 <기다리다 미쳐> 같은 영화는 음악이 해줘야 하는 역할이 단순히 여기서 그치면 안 되는 영화였다. 그래서 음악이 배우들의 감정보다 더 먼저 나오기도 하고 음악이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음악이 숨어 있느냐, 음악이 튀어 나와서 영상과 관객과의 거리를 더 가깝게 만드느냐, 아니면 쿨하게 거리를 두느냐. 음악의 역할이 작품마다 다 다르다.
음악이 전면에 드러나는 영화들이 작업하면서 더 힘든가.
김 오히려 그런 게 더 쉬운 거 같다. <순정만화> 같이 선을 안 넘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적정선을 맞춰야 하는 건 어렵다. 사실 <추격자>도 작업하기 진짜 어려운 영화였다.
<추격자>는 작업하는데 얼마나 걸렸나.
최 작업 자체가 오래 걸렸다. 촬영하는 동안에도 계속 고민했고. 근데 개봉이 당겨지면서 마지막 일정이 정말 타이트 했다.
대부분 영화들의 음악 작업시간이 굉장히 타이트한 거 같다.
김 이건 한국영화 제도의 문제점이다. 어떤 감독님이 하신 말씀 중에 굉장히 공감 했던 말이 ‘지금 한국영화 때깔 죽인다. 근데 왜 이렇게 사운드 신경 안 쓰냐.’였다. 사실 십 몇 년 전만해도 음악은 어떤 도구일 뿐이었다. 감독들조차도 드라마에 음악 집어넣듯이 약간의 서포트를 해 주는 것으로만 인식을 했으니까.
사실 그때는 한국 영화중에 OST 사고 싶은 영화가 별로 없었다.
김 내가 봤을 때는 이동준 선배나 조성우 음악 감독님이 나오면서 그런 게 좀 바뀐 거 같다. 이동준 선배의 <은행나무침대>나 조성우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거 나오면서부터. 근데 문제는 옛날 시스템이 그대로 오고 있다는 거다. 촬영은 6,7개월 해 놓고 나머지는 옛날과 다른 것이 없다. 영상이랑 편집은 무지하게 신경 쓰면서 음악 할 시간은 별로 주지 않는다.
그래도 이만큼 영화 음악이 발전 하는 걸 보면 음악감독님들의 역량이 많이 높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 사실 외국에서 열심히 공부한 친구들이 여기 환경에 맞추려면 많이 힘들 거다. 그리고 우리가 외국 나가면 적응 안 될 거다.
뭐야~ 얘들은 왜 이렇게 놀아.(웃음)
김 ‘뭐야~ 얘들은 무슨 한 작품 하는데 5개월 동안이나 하라 그래~’(웃음) 그럴 지도 모른다. 최종적인 영상을 어느 정도 본 후에 감독과 음악을 들어보고 생각을 맞춰서 가야한다. 근데 대체적으로 그러지 못하니까 힘든 거다. 왜냐하면 영상은 너무 좋고 공들인 게 보이는데 음악은 포기하면서 가는 게 느껴지니까. 그런 게 사실 괴로운 부분이다.
그래서 그런가. <시네마 천국>이나 <미션>을 보면 음악 없는 그 영화는 생각할 수 없다. <미션>에 나오는 오보에 연주는 그냥 악기 소리가 아니라 구원의 소리지 않은가. 근데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그 음악이 없으면 이 영화가 없지’ 그런 건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조금씩 늘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최 그건 개인적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 그걸 시스템의 탓으로 돌리면 좀 그렇다.(웃음) 인프라의 문제도 있을 수 있고, 개개인으로 따지면 음악적으로 아주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아직까지 한국 영화와 같이 발전을 못하는 부분이 좀 있는 것 같다. 또 한국영화 자체가 발전하는 단계여서 영화 음악에 대한 시스템이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김 덧붙여 얘기하면 이건 좀 아쉬움인데, 대한민국의 문화가 굉장히 작다. 그때그때 유행에 따라 변하고 사라지고. 근데 이웃나라만 해도 정말 이상한 음악 하는 애들도 골수팬들이 있어서 따라다니고, 그 애들이 음악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
김 일본만 해도 굉장히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고, 유럽도 다양한 나라가 모여서 다양한 문화를 교류하고 거기서 새로움이 탄생 되는데, 한국은 그런 면에 있어서 굉장히 폐쇄적인 것 같다. 새로운 시도를 꺼려하게 되면 결국은 평이해 질 수 밖에 없는 거다. 예를 들어 단편 영화 하면서는 쌩 난리를 치면서 별거를 다 해본다. 근데 그런 건 상업영화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적응을 못하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계만 조금 색다르게 바꿔도 적응을 못한다.
요즘에 한국 영화가 굉장히 어렵다. 제작편수도 많이 줄고. 그런 것들이 영화음악을 하는 이들에게도 타격을 줄 것 같다
최 시나리오 단계에서 하기로 한 작품들이 있는데 지금도 못 들어간 영화들이 많이 있다. 그래도 1, 2년 전에는 크랭크인 한다 그러면 이 작품은 하는 작품이구나 그랬는데, 요즘에는 50%정도 찍었는데도 엎어지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확실히 피부로 와 닿는다. 영화계가 어렵다는 게.
음악을 하기로 했어도 영화가 안 들어가면 금액적인 부분에서 소용없는 거 아닌가.
최 그렇다. 영화가 들어가야 계약을 하는 거니까.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정말 안타깝고 속상해 진다. 이쯤에서 분위기를 좀 바꿔야겠다.(웃음) 감독님 개인에 대한 질문이다. 제일 처음에 음악 시작했던 이유는 뭔가.
최 나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다. 군대를 다녀와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취직을 해볼까하고 한 학기 정도 공부를 해봤는데 안 되겠더라. 공부가 너무 재미없어서.(웃음) 그래서 군대 가기 전에 밴드를 하기도 했고, 어릴 적 꿈이기도 해서 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근데 음악을 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되는데 세 가지 정도가 나왔다. 홍대에서 인디 밴드처럼 친구들과 밴드를 계속한다. 아니면 가요 작곡. 그도 아니면 영화 음악. 그 정도였는데 나는 m&f 라는 곳을 알고 있었고, 여기서 영화음악을 하면 나중에 음악을 하면서 월급을 받을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했다. 재미있을 것 같기도 했고.
정말 심플한 생각이다. 그러면 하구 많은 장르 중에 영화 음악을 시작했던 이유가 월급 때문인가.(웃음) 내 음악을 하는 것과 영화 음악이라는 공동 작업을 하는 건 좀 다르지 않나.
최 그 당시에 시작할 때는 정확한 차이를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영화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 하니까 재밌겠다 정도. 지금도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 밖에서 이쪽을 바라보면 영화음악이라는 게 근사해 보이는 부분이 있지 않나. 직업적인 타이틀 자체가. 그런 부분들도 사실은 있었다.
밖에서 보던 것만큼 근사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김준석 감독님의 경우는?
김 나는 영화음악을 정말 우연하게 시작한 거다. 사실 처음에 영화 음악을 할 생각은 없었다. 왜냐하면 96, 97년 그때만 해도 영화 음악이라는 건 별로 인지도도 없고, 당시 음악을 하는 사람들 중에 영화 음악에 욕심을 내는 사람은 거의 드물었다. 근데 조성우 음악 감독님이 자기와 같이 영화 음악을 하자고 그러더라. 내 능력이나 그런 기타의 것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래서 ‘3일만 고민해 볼게요.’ 그랬다. 그리고 내가 하려는 건 영화음악이 아니라 음악인데 영화음악을 했다가 한 번 빠져 볼까 이런 마음도 가졌다.(웃음)
시작은 되게 불순한 마음이었다.(웃음)
김 영화를 좋아해도 성룡 나오는 영화 좋아하고 헐리웃 대작 이런 거 좋아했다. 영화를 깊게 볼 줄도 몰랐고. 그러다 <8월의 크리스마스> 막내로 시작했다. 처음에 음악 없는 편집 본을 봤는데 이건 뭔가 싶었다. 지루하고 이상하고. 근데 음악 하나가 들어가니까 서서히 뭔가가 살아나는 느낌이 들더라. 그런 걸 보니까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유일하게 한 곡을 편곡해서 시사회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데, 그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심장이 뛰어 가지고 못 버티겠더라.
뭐 잘못 됐다고 할까 봐?
김 그 장면에서 사람들이 웃지나 않을 까, 욕을 하지나 않을 까 싶어서. 그 장면이 나오는데 숨이 막히더라. 그때부터 관객들의 눈치를 봤다. 근데 다행히 넘어가더라.(웃음)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 나가도 나는 안 나갔다. 마지막쯤에 도움 준분들 나오기 전에나 나오는 내 이름 보려고. 그때 정말 눈물 난다. 그리고 가끔 이름 틀리게 나오면 진짜 더 눈물 난다.(웃음) 그거 보고 나서 영화음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 전까지 영화 음악가나 영화를 잘 몰랐던 터라 정말 어렵게 영화 테이프 구해다가 일 끝나고 집에 가서 영화 보고 나만의 리뷰 쓰고, 영화 음악이 어땠는지 감상 쓰고 맨 날 그랬다. 그때부터 내 인생의 목표를 영화음악이라고 정한 것 같다.
자신이 했던 작품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뭔가.
최 나는 아직까지 없다.
김 그건 누구나 다 똑같을 거 같다.
다 부족한 게 조금씩 보여서?
최 불만족스럽고 아쉬운 것도 많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가 한 두 개쯤 ‘이 작품은 진짜 괜찮았어.’ 생각 들면 좋지 않을 까 싶다. 그런 거 바라보면서 계속 가는 거다.
김 개인적으로 정말 열심히 해서, ‘이 장면은 정말 나름대로 내 능력 이상을 한 거 같다’ 그런 경우가 있지만, 또 그 안에서 완전히 ‘그 장면만 보면 괴로워요. 내가 영화 망쳐 놨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말로 10점 만점에 10점이란 건 없는 거 같다.(웃음) 어떤 거는 4점도 안 되는 것도 있고.
그런 영화는 다시 보기도 싫고 그런가.
김 그렇다. 선배들이 그러더라. 처음 했던 영화, 정말 마음에 안드는 영화가 꼭 가족들 다 모인 명절에 한다고. 그리고 ‘야~! 니 이름 봤다.’ 그러면서 꼭 연락 온다고.(웃음) 지금 한참 잘 나가고 잘 만든 영화는 안보고 꼭 TV에서 시간남아서본 영화를 보고 전화를 한다더라. 근데 정말 그런 거 같다. 내가 정말 열중해서 한 영화는 관객 30만도 안 들고, 오히려 너무 시간도 없었고, 다신 안 보고 싶은 영화는 다들 봤다고 연락이 온다.
그럼 좋아하는 영화음악은 뭐가 있나
김 영화 보다는 <매그놀리아>, <이터널 선샤인>의 ‘존 브라이언’ 음악감독을 좋아한다. 이 사람은 테러 하고 싶을 만큼 정말 잘한다.(웃음) 감성을 건드리고 음악을 통해서 영화의 색을 바꾸는 능력이 정말 대단한 거 같다.
최 올해 본 것 중에는 <멋진 하루>가 좋았다. 영화 음악이 좋게 들리려면 우선 영화가 좋아야 하는데, 영화도 좋고 음악도 좋아서 눈과 귀가 즐거웠던 거 같다. 그리고 <다크 나이트>도 너무 좋았다. 그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헐리우드와의 갭이 정말 크다는 걸 느꼈다.
일단은 그쪽은 자본이 되지 않나.
김 그리고 과정의 중요성을 너무나 잘 안다. 영화 찍기 전에 리딩도 살벌하고 콘티도 애니메이션 화해서 6주 동안만 딱 찍고. 우리나라도 콘티는 다 나오지만 실제로 콘티대로 현장에서 가는 영화는 하나도 없다. 또 우리나라는 아직 시스템이 확고히 분리가 안 되어 있지만, 그 쪽은 그런 것들이 정말 전문가 수준으로 세분화 되어 있다. 물론 애초에 영화를 시작하게 된 시점에서의 시간상의 차이가 많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근데 어찌 되었건 가장 큰 차이는 자본의 문제이지 않을 까 싶다.
음악감독을 오래 하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모두 다 했는데 작업하면서 차이점을 좀 느끼지 않을까 싶다.
최 영화가 드라마에 비해서 그나마 제약이 좀 덜한 편이다. 드라마는 무조건 틀어지는 거라 대상이 광범히 하기 때문에 제약이 확고하다. 드라마 음악스럽지 않으면 낯설어 하니까. 아직까지 우리나라 드라마에는 색깔이 분명하고 정체성이 드러나는 음악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영화는 만들어 놓고 볼 사람 보러 오세요. 이런 개념이고, 드라마는 대상이 무작위다. 채널 이것저것 돌리다가 그냥 ‘어~! 이거 봐야지’ 이렇게 보니까. 그러다 보니 음악이 뭔가 고민할 거리를 주면 안 된다. 영화의 경우에는 생각의 여지를 주거나 여운을 주거나 이런 것들을 계산 하지만, TV는 그 장면에 맞는 음악이 딱 들어가서 그 씬 끝나면 딱 빠져 주고 그래야 한다.
최 쉽게 쉽게 가줘야지, 고개가 갸우뚱 하면 안 된다. 슬픈 때는 슬프고 기쁠 때는 기쁘고. 웃기면 웃기고. 타이밍이 정말 중요하다.
들었을 때 딱 꽂혀야 돼. 이 기준인가.
최 그렇다. 긴가민가가 되면 안 된다.
김 그리고 또 다른 차이가, 영화음악의 경우는 음악감독이 음악에 있어서 모든 걸 책임지고 가야 한다. 주변에서 아무리 난리를 쳐도 영화감독과 얘기를 나누면서 끝까지 가면 되는 거다. 근데 드라마의 경우는 다르다. 제작자나 투자자들에게는 다른 걸 다 떠나서, 거기 나오는 가요곡이 무엇이냐가 제일 중요하다.
컬러링이나 벨소리 등등, 반응이 즉각적이고 수익이 되니까.
김 그래서 간혹 장면에 음악이 안 어울려도 넣게 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 음악감독이라는 타이틀은 같지만 영화에서와 드라마에서가 좀 다르겠다.
김 정말 많이 다르다. 영화에서 음악에 관한 한 어떤 곡을 쓸지는 거의 다 내가 결정한다. 물론 완전 최종적인 건 감독과 상의를 하지만. 근데 드라마는 여러 명의 작곡가들이 있고, 써야 하는 곡이 정해져 있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많이 다른 것 같다.
김준석 감독님의 경우 <쌍화점>의 음악을 맡으셨는데 곧 개봉을 한다. 영화가 시대극이어서 아무래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을 거 같다.
김 <쌍화점>의 배경이 고려 시대인데, 나는 국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다. 감독님도 그 부분에 대해 걱정을 하시기에 그 분야의 전문가를 모셔 와서 작업을 했다. <쌍화점>에는 노래가 두 곡이 나오는데 ‘쌍화점’과 ‘가시리’라는 고려가요다. 실제로 두 개다 조선 시대 때 정리 된 악보가 존재는 한다. 근데 멜로디가 매우 어렵다. 그걸 녹음해서 감독님께 들려 드렸더니 ‘어렵다. 곡을 새로 쓰자’ 그러셔서, ‘쌍화점’은 국악 전문하시는 분께 왕과 홍림의 감정으로 써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가시리’는 홍림과 왕후의 감정을 연결하기 위해서 내가 썼다. 근데 감독님이 ‘쌍화점’을 더 좋아하시더라.(웃음)
음악에서 제일 주안점을 둔 건 무엇인가.
김 세 사람의 사랑, 질투, 혼돈, 그런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사랑과 비극, 한, 이런 게 제일 컸다. 왕후는 자기 나라를 떠나 속국에 와서 한 남자의 아내로 사는데 그것조차도 비굴하다. 시종일과 그 사람들의 사랑과 질투, 비극을 어떻게 이끌어 갈 것 인가에 대해 주안점을 뒀다.
최용락 감독님은 지금 어떤 작품의 음악을 준비하고 있나.
최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하고 있다. 이것도 시대극이다.
준비하고 있는 것들이 부디 어려움 없이 잘 마무리 됐으면 좋겠다. 음악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들어 보니 순간 순간 정말 응급 상황이 많은 것 같다.(웃음)
최 우리도 부디 그러길 바란다.
김 집에도 좀 편안히 들어갔으면 좋겠고.(웃음)
2008년 12월 26일 금요일 | 글_김선영 기자(무비스트)
2008년 12월 26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