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은 영화제에 고가의 의상을 착용하고 나온 것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아무도 질문 안 해주실 것 같아서 150만원 의상의 진실을 먼저 말하겠다”고 입을 연 김기덕 감독은 “지금 입은 옷의 상의는 150만 원짜리, 바지는 60만 원짜리다. <이야기쇼 두드림> 녹화를 가려는데 입을 만한 옷이 없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인사동에 내려 무작정 한 옷가게에 들어갔다. 시간이 30분밖에 없어서 급하게 골랐는데, 고르고 나서 보니 가격이 150만원인 걸 알았다. 큰일 났다 싶었지만 녹화시간이 코앞이라 그냥 사서 나왔다. 하지만 이 옷으로 베니스영화제 폐막식에도 섰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입은 승복을 1년 내내 입었는데, 이 옷도 앞으로 열리는 모든 영화제에 입고 나갈 생각이다. 그런 사정이니, (너무 비판하지 말고)이해해 주길 바란다”며 여유 있는 모습으로 논란을 정면 돌파했다.
다음은 김기덕 감독과 오고간 말과 말이다.
Q. 한국에 베니스국제영화제 첫 대상을 안겼다.
김기덕: 이건 한국영화계에 준 상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부터 한국의 좋은 영화들이 국제무대에 소개되면서 쌓인 성과와 한국영화를 찾아준 관객들이 있었기에 이런 기회가 내게 주어진 것 같다.
Q. 한국 관객들에게도 한마디 한다면.
김기덕: 수상을 가장 기쁘게 축하해주는 분들은 소리 없이 저를 지지해준 영화 관객들이다. 외국에 나가면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가 “당신 영화는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고 유럽이나 미국, 러시아에서만 인기가 있는데 기분이 어떠냐”다. 그럴 때마다 “아니다, 한국에서도 유럽이나 미국만큼 내 영화를 지지하고 아껴주는 팬들이 있다”고 답한다. 진심으로 한국 팬들에게 감사하다.
Q. 황금사자 트로피를 받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누군가?
김기덕: 청계천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구리박스를 들고 다니던 15살의 ‘나’다.
Q. <피에타>에는 개인적 경험이 반영 돼 있나?
김기덕: 이전에 <피에타>가 극단적 자본주의에 대한 영화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건 이 영화의 시작이다. 이 안에는 가족, 복수, 믿음 등 다양한 주제들이 깔려 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 가족이 돈 때문에 파괴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 같은 비극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피에타>를 만들었다.
Q. 영화제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김기덕: 영화 상영 후에 길거리를 못 다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피에타>가 황금사자다”라고 말해줬다. 이탈리아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 기자도 “산사태 같은 기립박수가 나왔다”고 전해줬다.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동시에 부담이 밀려왔다. 수상 하루 전날에는 ‘이렇게 올라갔다 추락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심리적으로 힘들었지만 겸허하게 기다렸더니 수상이 현실이 됐다.
Q.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와의 편지가 화제다. 어떤 관계인가.
김기덕: 공수부대와 해병대 관계라 보면 된다. 그분은 공수부대를, 나는 해병대를 나왔다. 잘 알려졌다시피 공수부대와 해병대는 치열한 경쟁관계다. 하지만 그 분과 나는 전혀 싸우고 싶지 않은 관계다. 내 인생에 배움을 주는 세 분이 있는데 이창동 감독님, 손석희 교수님, 문재인 후보님이다. 문 후보님이 수상 직후에 내게 축하 멘트를 주셔서, 나도 진심을 다해 답장을 했다. 하지만 내가 후보님처럼 훌륭한 삶을 살지 못했다. 그분의 캠프장까지 가면 내 건강하지 않은 삶 때문에 피해가 될 것 같아서 멀리서나마 마음으로 응원하려 한다.
Q. <더 마스터>의 황금사자상 수상 실패와 관련해서 미국 언론이 시기어린 기사를 냈다.
김기덕: 영화제에서는 수상 전 어떤 코멘트도 주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시상식 끝나고 열리는 파티에서 가장 먼저 거론된 게 여우주연상이었다. 조민수 씨가 여우주연상 받는 것에 모든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규정상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품에는 다른 상을 줄 수가 없어 불발에 그쳤다고 했다. 내게도 각본상을 주기로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고 했다. 외신에서 <더 마스터>가 규정 때문에 황금사자상을 놓쳤다고 하는데, 우리 역시 마찬가지인 셈이다. 수상작은 마지막 투표에서 결정이 내려진 것 같다.
김기덕: 영화는 시장이 없으면 안 된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해서 돌아오면 극장 관계자들이 상영 기회를 더 열어줄 거라고 생각했다. 관객들도 메이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돌아와 보니 상영관이 많지 않더라. 상영관도 상영관이지만 상영회차가 더 문제다. 스크린 수는 늘었는데 퐁당퐁당(교차상영) 식으로 상영되다 보니 관객과 만날 기회가 적다. 관객 점유율이 15% 미만인 어떤 영화는 기록 갱신을 위해 하루에 1000~1500회 정도 상영한다. 그에 반해 관객 점유율 45~50%인 <피에타>의 상영회수는 400~500회 정도다. 이런 현실이야말로 ‘도둑들’ 아닌가. 편법과 독점, 무수한 마케팅 등과 싸워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Q <피에타>는 전작들보다 대중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관객 친화적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있다.
김기덕: 외신 기자들도 <피에타>가 대중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그런 말을 듣다보니 ‘내가 정말 변한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작품도 아마 대중적인 영화가 될 것 같다. 오락영화라는 의미는 아니다. 재미있고 의미 있는 영화라는 뜻이다. 현재 <신의 선물> 촬영을 마쳤고 남북 이야기를 그린 <붉은 가족>이 곧 촬영에 들어간다. 12월에 나올 간첩 영화(<동창생>)와 경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웃음)
Q. 이번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 투자 받기가 수월해 질 것 같은가.
김기덕: 내 영화중에서 국내 자본으로 만들어진 건 <섬>이 유일하다. 그 외에는 모두 해외 투자를 통하거나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충당했다. 내 힘만은 아니다. 배우와 스태프들이 개런티 없이 함께해 줬다. 한 달 생활비가 없는 스태프들에게만 개런티를 줬다. <풍산개>는 10억 정도 수익이 나서 5억 수익을 스태프에게 나눠줬다. 나머지로 <피에타>와 차기작을 찍었다. <피에타>도 수익이 나면 스태프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돈으로 다음 영화를 만들 계획이다.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감독이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시나리오와 작가가 세상을 보는 눈이지 대기업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그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길 바란다. 그리고 <피에타>가 그런 시스템 정착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Q. 앞으로 등장할 ‘김기덕 키드’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기덕: 지금 영화 현장이나 서울예대나 중대 등 영화학과를 나온 출신들이 많다. 거기 출신이 아닌 사람들, 제도권이 아닌 곳에서 영화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기덕: 이 시간 이후로 <피에타>로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없을 거다. 한동안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인터뷰는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인터뷰를 10개 하는 것보다 영화 1편 만드는 게 더 쉬울 것 같다.(웃음) 이제 다시 0에서 시작해야 하는 게 지금 내가 해야 할 진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 <손석희의 시선집중>에는 예외로 출연할 것 같다. 수상을 하면 출연하겠다고 했었기 때문에 그 약속은 지켜야겠다. 그 외에는 어떤 인터뷰도, 방송 출연도 없을 것이다. 차기작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 달라.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