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나>에서 보여진 그녀의 미모는 아름다움이 시기와 질투를 넘어 ‘집단 린치’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1968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모니카 벨루치는 모델출신 여배우들이 겪는 시행착오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처럼 보였다. 1991년 <라 리파 La Riffa >에서 보여진 그녀의 연기는 배우라기보단 에로배우로 불려질 만큼 혹평을 면치 못했고 ‘몸’에만 초점을 맞춘 연출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 Dracula>까지 이어졌다. 키아누 리브스를 유혹하는 반라의 여자 드라큘라들 중 한 명으로 출연할 정도로 단역을 연연하던 그녀의 연기인생은 1996년 <라 빠르망 L'Appartement>을 계기로 바뀌게 된다.
질 마무니 감독의 연출력과 뱅상 카셀과의 연기 호흡은 모니카 벨루치를 주목 받게 만들었고 진정한 배우의 길로 입문하게 만든다. 2005년 할리우드 리메이크 작으로 제작될 만큼 <라 빠르망>의 인기가 은근히 이어지는 사이 이 욕심 많은 여배우는 청순하고 아름다운 역에만 매달리지 않고 좀더 성숙한 연기경험을 쌓아나간다.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녀의 활동영역은 할리우드로 옮겨가 <매트릭스>시리즈까지 이어졌는데, 1999년 개봉해 세계적으로 5억 2000만 달러를 벌어들인 <매트릭스 2>에서 네오를 유혹하는 ‘페르세포네’ 역은 모니카 벨루치가 아니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아찔한 매력을 보여준다.
...그녀의 독보적인 영화적 행보는 깡마르고 금발이거나 갈색의 탄력 넘치는 몸매로 구분되는 할리우드 여배우들 사이에서 함부로 할 수 없는 특유의 아우라를 형성했고, 배우이자 제작자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 멜 깁슨의 눈에 띄게 된다.
육감적인 그녀의 몸에서 섹시함과 타락의 쾌감을 찾고자 한 여느 감독과 달리 성녀의 모습을 발견한 멜 깁슨은 수많은 논란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그녀를 수세기 동안 논란의 중심이 되어온 ‘마리아 막달레나’로 재탄생 시켰다.
전세계 유대인들과 투자자들이 연대해 투자를 외면할 정도로 제작에 어려움을 겪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The Christ>속 벨루치는 돌에 맞아 처형당할 순간에 예수로부터 구원받은 후 온갖 고통을 다하는 그를 말없이 보필해야 하는 고난의 역할을 연기해야 했다.
사실 깊은 눈매와 도도한 턱선을 가진 프랑스 여배우가 성녀이자 창녀로 불리는 막달레나로 캐스팅됐을 때 관객들은 지금에야 말로 돌을 던질 준비를 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영화가 개봉된 뒤 스크린 속에 보여진 그녀의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과 고통을 전이시켰고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영화에서 이어진 인연은 현실도 영화처럼 변화시켰다. 개성 있는 연기자로 평가 받는 벵상 카셀과의 작업은 <당신이 원한다면 Come Mi Vuoi>을 필두로 <도베르만 Dobermann>,<늑대의 후예들 Le Pacte Des Loups>, <돌이킬 수 없는 Irreversible>까지 이어졌고, 둘은 결혼하기에 이른다.
2002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에 노미네이트 될 정도로 화제를 모은 <돌이킬 수 없는>의 경우 9분간의 사실적인 강간장면과 잔인한 복수가 담겨 있어 피해자로 나오는 벨루치와 그의 연인으로 분한 벵상 카셀의 실감나는 연기로 극단적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배우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다지는 영화제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2006년 칸 영화제에서 유럽 영화계의 여신으로 추앙 받으며 독보적인 자리매김을 한 모니카 벨루치를 심사위원으로 선정한 것. 지난 2003년에 이 영화제의 사회를 맡았던 경험을 살려 심사위원으로까지 오른 올 영화제는 배우이자 남편인 벵상 카셀이 바통을 이어받아 사회자로 초청되는 등 인생의 행복이 두 배로 밀려오는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할리우드 기대 작으로 테리 길리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히스 레져와 멧 데이먼이 주연을 맡은 영화 <그림 형제 - 마르바덴 숲의 전설 The Brothers Grimm>은 62회 베니스 영화제 경쟁 부문 상영 작이란 타이틀과는 별개로 모니카 벨루치가 영원히 죽지 않는 거울 여왕으로 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큰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미에 집착하는 동화 속 주인공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 그녀의 연기는 전작들에서 보여진 모진 운명에 내던져진 불운의 여인의 모습을 벗어난 신선한 변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 완성돼 프랑스 코미디의 진수로 불리며 영화 매니아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화제가 된 베르트랑 블리에 감독의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는 오직 벨루치만이 할 수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과감한 노출과 선정적인 장면이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사랑과 욕망, 돈에 대한 유쾌한 해법을 제시한다.
극중 다니엘라는 거부 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거물급 보스의 정부이자, 프랑수와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거리의 여자지만 차츰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자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랑’과 ‘섹스’를 조절해 나가는 영리한 인물이다. 대담하지만 천박하지 않고 과감하지만 성스러운 그녀의 매력을 염두하고 그녀만을 위해 철저하게 기획된 영화인 만큼 벨루치의 매력은 이 영화 한편에 모두 녹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외모와는 별개로 모니카 벨루치가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대체적으로 난해했다. 사소한 오해로 애인과 헤어진 무용가에서 로마 황제와 궁전 내기를 하는 클레오파트라로, 폭약전문가인 강도로 터프 하게 돌아왔다가도 예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처음 알리는 성녀로 변신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7년 개봉을 앞둔 <슛덤 업>에서는 부패한 정치가들과 암살 범들을 상대하는 액션 스릴러의 히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니 모니카 벨루치를 정의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무의식중에 그녀의 '연기'를 보기보다는 '외모'에 집중해 왔을지도 모른다. 치명적 아름다움. 가늠할 수 없으나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모니카 벨루치의 최대 매력이자 약점은 바로 거기 있었다. 오는 27일 개봉을 앞둔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에서는 결코 거래될수 없는 매력의 진수를 보여준다고 하니, 그 마력같은 아름다움이 두렵다면 모니카 벨루치를 대신할만한 여배우를 찾던가 아니면 영원히 침묵하고 그녀만을 사랑하시길.
2006년 7월 24일 월요일 | 글_이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