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을 가지고 다니신다고 들었어요.
네.(웃음) 그런데 어쩌죠. 제가 명함을 몇 장 밖에 못 챙겨왔어요. 어제 인터뷰한 기자 분들에게 드리다보니 지금 다 떨어졌지 뭐예요. 제가 다음에 뵈면 꼭 드릴게요.
배우가 기자들에게 명함을 돌리는 건,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에요. 대부분의 배우들은 매니저를 통해서 언론과 연락하잖아요. 본인 PR에 능하신 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소속사 대표님이 명함을 파 줬어요. (옆에 있던 매니저가 제이원엔터테인먼트 소속사 배우 모두가 명함이 있다고 알려준다.) 명함 돌릴 일이 많지 않아서 지갑에 몇 장만 가지고 다니는데, 인터뷰를 하다보니 금방 떨어지네요.
명함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연가시>에서 맡으신 캐릭터 이름이 경순(그녀는 영화에서 주인공 재혁의 아내이자, 살인기생충 연가시의 감염자로 분했다.)이에요. 박정우 감독님과 함께 한 <쏜다>때도 경순이었죠?
어, 어떻게 아셨네요. 그걸 질문하신 분은 아무도 없었는데.
다시 경순이라는 이름을 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저는 도리어 감독님께 물었어요. “경순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이 여인은 누구셔요?”(웃음) 실제로 계신 분이래요. 자세한 얘기는 안 해 주시는데, 사연이 있는 분 같고요. 그리고 감독님이 약간 촌스럽고 구수한 걸 좋아하세요.
문정희씨가 이제까지 맡았던 인물들을 찾아보니 구수한 이름이 참 많이 보이더군요. 명희, 영희, 미연이, 순정이, 순임이, 지숙이… 하하.
네. 촌스러워요. 그래도 경순 두 번은 너무 심하지 않아요? 하하하.
많은 배우들이 그러더라고요. 처음 연기 시작할 때 ‘엑스트라 1’ 같은 이름 없는 캐릭터를 맡다가 처음 이름이 있는 배역을 받으면 기분이 남다르다고요. 문정희씨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나요?
그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운 좋게도 처음부터 명희나 영희 이런 캐릭터로 시작했어요.
박정우 감독님과는 <바람의 전설> <쏜다>이 이어 세 작품 째예요. 어떤 감독님을 만나느냐에 따라 현장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거고. 어떤 가요? 같은 감독님이 다른 장르를 연출할 때도 다른 게 느껴지던가요?
<바람의 전설>은 춤 영화였기 때문에 코믹요소가 되게 많았어요. 과장된 부분도 있었고요. <쏜다>도 액션영화이긴 했지만 코믹했죠. 박정우 감독님이 유머가 있으시고 웃음코드를 잘 쓰세요. 그런 코드들이 곳곳에 묻어나는 게 저는 참 좋고요. 그런데 이번 <연가시>에는 코믹요소가 거의 없어요. 의아해서 여쭤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갑자기 재난을 당하고 한꺼번에 죽는 영화다. 또 굉장히 빠른 스피드로 이어지는 영화이기 때문에, 거기에 웃음 코드를 잘못 넣으면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어서 의도적으로 뺐다”고 하시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게 사실이에요. 웃음이 조금 있었으면 했거든요. 왜, 사람 사는 게 그렇잖아요. 슬픔이 있으면 웃음도 있는 게 삶이니까. 촬영장 분위기는 거의 비슷했어요. 제가 보기에 현장 분위기는 장르의 문제라기보다 감독님 성향의 차이인 것 같아요. 박정우 감독님은 굉장히 빨리 찍는 스타일이세요. 계산도 철저하시고요. 저는 <연가시>는 조금 오래 걸릴 줄 알았거든요. 감염자도 많고, 증상 때문에 CG도 들어가야 하니까요. 그런데 어찌나 계산을 척척 하시는지. 그리고 감독님이 원체 스태프나 배우가 고생하는 걸 보기 힘들어하세요.
네. 그러다보니 현장에서 막 소리도 지르시는데, 저는 그 이유를 이제 아는 거예요. 다른 분들은 왜 감독님이 소리치고 그러실까 하겠지만, 빨리 찍어서 고생 덜 시키려는 의도라는 걸 저는 아는 거죠.
그래서 고생은 조금 덜 한 것 같나요?
아니요.(웃음) 고생은 했죠. 감독님이 “너는 (고생을) 해도 돼!” 라면서 힘든 씬을 주셨거든요. 저와는 세 작품을 함께하다 보니, 믿고 던져주는 그런 관계가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참.(웃음)
그래도 같은 감독님이 계속 불러주는 건 배우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죠.
그럼요. 고맙죠. 촬영 들어간다는 전화를 받고 “축하해요!” 이랬는데, “뭐, 축하해! 너도 해야지!” 이러시는 거예요. 그때 약간 뭉클하더라고요. 저에겐 오빠 같은 분이세요. 저에 대한 의리와 애정이 여러모로 느껴져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정희씨도 의리를 중요시 여기지 않나요? 예전 <연애시대> 관련 인터뷰 할 때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 때 “남자들은 애교 이전에 의리를 강조했을 때 넘어온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오, 맞아요! 오래 전에 그런 말을 했었어요. 저는 의리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어디선가 리서치 한 걸 봤는데요,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 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할 때 헤어짐을 생각한대요. 남자는 어떤 일을 지적했는데 그게 고쳐지지 않았을 때 헤어짐을 생각하고요. “그걸 고쳤으면 좋겠어” 했을 때 정말 고쳐져야 다음 단계로 간다는 거예요. 이렇듯, 남녀의 성향은 기본적으로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제가 결혼을 해 보니까 그게 더욱 크게 다가오고요. 그래서 후배들이나 결혼 안 사람들에게 얘기하죠. 그게 아니라고. 사랑은 상대에게 뭔가를 충족시켜 준 다음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지 무조건 바라면 안 된다고요. 그러니까 의리! 그게 먼저 충족 돼야 하는 거예요. 아, <연가시> 얘기 하다가 우리 너무 멀리 왔나요?(웃음)
아니요. 영화 인터뷰라고 영화 애기만 하는 건, 저도 질색해서요.(웃음) 그래도 잠시 <연가시>로 돌아가 보죠. <연가시>에 대한 평을 찾아보니 대체적으로 흡입력이 뛰어나다는 말이 많아요. 반대로 감정이 과다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보셨어요?
보는 눈은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출연 배우이긴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 느낀 점은 전체적인 빠르다, 였어요. 생각보다 재미있기도 했고요. 사실 제가 기대를 크게 못했어요. 제작여건이 좋지 못했다는 걸 너무 잘 알았기에 반신반의 걱정하는 마음으로 갔었거든요. 그런데 나쁘지 않은 거예요. 영화 보고 나서 ‘오!’ 명민(재혁 역) 오빠랑도 눈빛으로 ‘오!’(웃음) 오빠도 기대이상 이었나 봐요. “괜찮지, 괜찮지?” “네. 괜찮은데요?” 그랬죠. 물론 디테일 적으로 아쉬운 건 있어요. 엔딩도 처음 생각했던 거랑 다르고요. 제작 여건이 좋았다면, 더 잘 나왔을 텐데 싶었죠.
저는 그 씬이 임팩트 있게 다가가리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물을 저렇게까지 들이킬 수 있을까 생각하긴 했는데, 감독님이 그냥 고생하는 씬이라 여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가장 큰 문제는 날씨였어요. 영하 20도의 날씨에서 촬영했는데, 앞에 100명 넘는 보조 출연자분들이 계시지, 스태프들 있지, 감독님 계시지. 하... NG 안 내고 최단시간에 빨리 찍어내는 게 관건이었죠. 나 하나 잘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복병이 많더라고요. 일단 물통이 너무 무거웠어요. 들긴 들었는데 입에 겨냥이 안 되는 거예요.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어요. NG를 내면 물 닦아내고 옷 말리는 데에만 시간이 오리 걸리니까요. 추워서 덜덜 떨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해 내야겠다, 이를 악 물었던 것 같아요.
‘연가시’는 사람의 뇌를 조종하는 변종 기생충이에요. 연가시에 감염된 사람은 본인의 의지를 잃죠. 조금 다름 맥락에서 당신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나요? 본인의 의지와 달리 행동하게 되는 일들 말이에요.
저는 슛 하면 그런 것 같아요. 감독님이 “슛!” 했을 때, 제가 계산한 거랑 다르게 연기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이번 영화가 특히 그랬어요. 발작의 수위를 어디까지 조절해야 하는지, 가늠이 잘 안 됐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초반부터 발작의 강도가 너무 세면 뒤에 감당하기 힘들지 않을까요?”그랬더니, “그렇지 않다. 이건 발작했다가 잠잠했다가 또 발작하는 거기 때문에 초반에는 충격적인 네 모습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솔깃)그래요? 그럼 해 볼게요.” 그렇게 된 거예요. 그런데 명민 선배님은 제가 감독님과 나눈 대화를 잘 모르셨나 봐요. 제가 처음 발작을 일으키는 씬이 설거지통에 있는 물을 보고 그 속으로 들어가 발작을 일으키는 거잖아요. 제가 막 소리 지르면서 설거지통으로 달려드니까 명민 선배가 깜짝 놀라시더라고요.(웃음)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고. 선배님이 “성깔 있대” 그러셨죠.(웃음)
몰입 무섭게 하기로 정평 난 김명민씨에게 그런 얘기를 들으시다니! 김명민씨에게도 좋은 경험이었겠는데요? 역지사지의 경험이었을 거 아니에요.(웃음)
하하하. 그러게요. 감염자라는 특수성 때문에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식욕 같은 건 잘 참으세요? 의지로 식욕을 누르지 못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 욕구는 크게 없는 것 같아요. 힘든 게 있다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저는 가만히 있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그래서 쉬는 날에도 집에 있지 않고 일단은 나가요. 나가서 걷고 뛰죠. 마침 집 앞이 남산이라서 커피 들고 나가서 책도 읽고 그래요. 가만히 있으면 괜히 무력해지고, 우울해지는 것 같아요.
경순은 ‘밀당’ 따윈 모르는 여자예요. 결혼 4년차 문정희는 어떤가요? 최근에 나온 뉴스를 보니까 많은 부부들이 결혼 후에도 ‘밀당’을 한다고 하던데.
그럼요. ‘밀당’이 자연스럽게 되죠. 왜 어르신들이 ‘칼로 물 베기’ 이런 얘기하시잖아요. ‘칼로 물 베기’도 ‘밀당’이에요. 그런데 저는 차라리 싸우는 걸 추천해요. 서로의 자존감까지 할퀴는 건 안 되지만 ‘너나 나나 똑같구나’, ‘우리는 고귀한 존재는 아니야’ 이런 걸로 싸우는 건 괜찮은 것 같아요. ‘별거 아닌 너와 나지만 함께 잘 해 보자’ 이런 게 있어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저희는 절대 싸우지 않아요” 이런 건 조금 인간미 없지 않나요? 차라리 속을 솔직히 드러내는 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화라는 감정도 저는 좋은 감정이라고 생각하고요.
솔직하긴 한데, 그렇게 감정적인 스타일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이성적인 면이 강해요. 배우라는 직업을 살면서 감정을 많이 쏟잖아요. 그러다보니 굳이 일상에서까지 그렇게 감정적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 또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과 살고 있기 때문에 감정에 쉽게 휘둘리면 좋을 게 없을 것 같고요.
감정적이지 않은 분과 살고 계시군요. 감정적인 남자는 조금 피곤한데, 다행이라는 생각이…(웃음)
그죠? 감정적인 남자는 싫어요.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남자 배우들이 멋지긴 한데, 함께 살라고 하면 꺼려질 것 같아요. 감정을 다루는 직업이라 굉장히 감성적이잖아요. 예민하고. 저 같은 사람과 살라고요? 아우~ 싫을 것 같아요.(웃음) 그렇다고 배우 분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에요. 정말 멋지고 좋은 직업이지만... 제가 함께 살기에는 좀…(웃음)
소속사 후배 배우들에게 멘토로서 노하우를 전수한다고 들었어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연극원 1기로서 후배들을 자주 만나는 걸로 알고 있고요. 혹시 문정희씨 미래 플랜 속에 교단에 서서 후배들을 양성하는 것도 있나요?
아니요~! 저는 그냥 배우이고 싶어요. 제가 누군가를 가르쳐야지, 얘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소속사 친구들도 그렇고 후배들도 그렇고, 그들에게 테크닉 적인 걸 조언하진 않아요. 그건 현장마다 다르기 때문에 답이 없는 거거든요. 또 짬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느는 거고요. 저는 오히려 이성에 호소하는 편이에요. 배우 생활을 하면 많이들 흔들리거든요. 배우라는 게 몇 퍼센트밖에 성공하지 못하는 분야인지라, 많은 이들이 그 몇 프로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하죠. 그러다 좌절도 하고 실망도 하고. 저는 상심해 있는 이들에게 지금 하는 고생을 가치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얘기 해줘요.
삶의 멘토인 거네요.
네. 위로인 거예요. 어려움은 반드시 긍정화가 되니까 잘 참으라고. 역경도 굉장히 중요한 거라고 위로를 건네죠. 저 역시 그런 시절을 거쳐 왔으니까요.
한예종 연극과 1기로서 그에 대한 자부심도 있으시죠?
있긴 한데, 자랑하긴 창피하네요.(웃음) 1기이다보니, 학교 졸업했을 때 아무도 없었어요. 정말 혈혈단신이었죠. “중앙대 모여라”, “어디 대 모여라” 이러는데 저는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주눅이 들어서 몇 년을 지냈고요. 텃새 같은 것도 굉장히 심했거든요. 화장실에서 엄청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졸업 후 극단 ‘학전’에 입단하셨는데, 거기에서도 많이 울었나요?
그럼요. 아직도 생생해요. 그때가 24살이었을 거예요. 뮤지컬 <의형제> 여주인공을 맡았는데, 20대 초반부터 60대 엄마까지를 연기해야 했어요. 그때 황정민씨가 아들로 나왔는데, 그때도 많이 울었어요. 어찌나 못되게 구시는지.(일동폭소) 사실 제가 부족한 게 많았어요. 갓 졸업해서 뭘 알았겠어요. 초반에는 조금 자신만만했던 것 같아요. 당당하게 오디션을 봤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거죠. 여자 1,500명이 지원한 오디션에 3차까지 가서 붙었으니까요. 최종 두 명 중에 한 명. 그 때 뽑힌 게, 저랑 배해선.
네. 둘이 캐스팅 됐는데, 저희 둘 다 아는 게 거의 없었어요. 나름 주인공이니까 제 딴에는 대접을 받으려 했나 봐요. ‘그래도 주인공인데, 오빠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겠지’ 이랬는데,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매일 나가서 걸레질 하고, 컵 씻고, 오빠들 옷 다 챙겨드리고 그래야 했죠.(웃음) 그거 제대로 못하면 이제 혼나는 거예요. 연기가 조금만 틀려도 난리가 났고요.
많은 극단이 그렇지만, 학전은 선후배 위계질서가 엄격하잖아요.
그러니까요. 그걸 몰랐던 거예요, 제가. 한예종이라는 곳이 그런 것들에 대해서 와 닿게 알려준 게 없다보니, 적응 시간이 더 필요했어요. 일단 선배가 없었잖아요. “야, 너 이렇게 해!” 이런 얘기를 해 준 사람이 없다 보니, 그런 것들에 더욱 취약했던 것 같아요.
4년을 선배 없이 편히 다니다가 갑자기 선배를 모셔야 했으니, 시행착오가 있었겠어요.
네. 콧대도 있었죠.(웃음) 그래도 학교가 너무 고마운 게, 연기자로서의 베이스를 잘 가르쳐줬어요. 연기 테크닉 적인 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인문학적인 어떤 정보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제게 가르쳐 줬죠. 또 제가 이 시대를 살면서 어떤 배우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도록 모티브가 돼 준 곳도 학교예요. 그러다보니 그런 학교에 대한 프라이드가 지금도 있어요.
선배들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네요. 그런 점에서 후배들을 보면 마음이 더 가지 않을까 싶어요.
짠하죠. 열심히 하는 걸 보면 고맙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그래서일까요. (이)선균씨, (오)만석씨, (윤)희석씨가 제 동기인데, 열심히 하고 잘 되는 그들이 선배 같고 멋지고 자랑스럽고 그래요.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이선균씨, 윤희석씨와 만나기도 했죠?
네. 그런데 선균씨랑은 만나는 씬이 없어서 아쉬웠어요. 예전에 뮤지컬 <그리스> <로키호러쇼> 같은 뮤지컬을 계속 같이 했었거든요. <그리스>때는 엄청났어요. 제가 2003년 초연 멤버였는데 그때 이선균씨, 오만석씨, 윤희석씨 모두 다 있었어요. 박희순씨, 홍록기씨, 강지환씨, 엄기준씨도 있었고요.
오~ 초호화 캐스팅!
네. 그 작품을 그 멤버로 다시 할 수 있을까... 이젠 어렵지 않나 싶어요.
그때 <그리스>를 관람한 관객은 무슨 행운이에요~ 부럽다!
그때 너무 재미있었어요. 저는 100번도 넘게 봤어요. 제가 출연할 때도 재미있었지만, 다른 캐스트가 하는걸 보는 것도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언제 그런 얘기를 했어요. “우리 다시 모여서 <그리스> 해보자”, 그랬더니 다들 “나이 들어서 되겠어?” 이러더라고요.(웃음)
그러게요. 기회가 되면 다시 해보고 싶어요. 그런데 노래를 끊어서 큰일 났어요. 노래도 안 하다 보면 정체가 되잖아요. 만석씨는 언제 어디를 가든 노래를 불렀어요. 그때만 해도 노래를 이렇게 잘 하게 될지 몰랐다니까요.(일동 폭소) 저 처음 만났을 때는 피아노도 못 쳤어요. 피아노 코드도 몰라서 “이게 뭐지?” 그랬는데, 지금은 피아노도 잘 치고 작곡도 하고 글도 쓰고. 대단해요, 그 분은 아주!
학창시절에 이선균씨 오만석씨 중 어느 분이 노래를 잘 했나요.
만석씨가 잘 했어요. 선균씨는 가요를 세련되게 불렀던 거고. 저는 언제나 화음을 넣었죠. 그런데 윤희석씨가 노래는 가장 잘 했어요. 노래를 정말 잘 하는 친구였는데, 지금은 뭐.(웃음) 확실히 방향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고교 졸업 후 판소리를 배웠다고 들어요. 살사댄스도 추셨고요. 흥미로 배운 건가요, 아니면 미래를 위한 투자였나요?
후자가 가까워요. 판소리는 제 목소리를 트레이닝 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제 목소리가 낮고 살짝 허스키가 있잖아요. 판소리를 하면 발성이나 여러 가지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던 거죠. 제가 또 우리나라 노래를 좋아했어요. 왜 9번 채널에서 했던 <국악마당>이라고 아세요? 이상하게 그게 그렇게 좋은 거예요. “오~” 이런 가곡 말고, 민요로 만든 가곡이 있는데 그 가사들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가사를 썼을까, 되게 멋있다’ 이러면서 들었죠.
당신을 처음 본 건 드라마 <연애시대>때였는데, 목소리 때문에 인상에 남았어요. 약간 저음이고 신뢰감이 있는 게, 아나운서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제 목소리가 특이하긴 한가 봐요.
뭐랄까. 이전 여배우들에게 없는 목소리랄까. 그래서 반가웠어요. 스스로도 목소리가 좋다고 생각하시죠?
저는 이게 콤플렉스였어요. 조금 조숙한 목소리잖아요. 어릴 때 선생님이 국어책 읽기를 시켜주시곤 했는데, 저는 그게 싫은 거예요. 조숙하다는 얘기를 듣는 게 싫었던 거죠. 우리 엄마 영향도 커요. 엄마가 “여자 목소리가 너무 낮은 거 아니니?” 그러셨거든요.(웃음) 그래서 말도 잘 하지 않고 그랬어요.
의외인걸요. 오디션에서 목소리를 지적 받은 적도 있나요?
오디션에서는 없었어요. 제가 노래 부를 때는 또 하이 톤이 돼요. 허스키도 없어지고요.
<달콤한 나의 도시>의 남유희는 당신이 연기한 캐릭터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에요. 유희는 잘 나가던 일을 그만두고 늦은 나이에 뮤지컬에 도전하죠. 당신에게도 아직 도전하고 싶은 뭔가가 있나요?
저는 운 좋게도 대학에 들어가서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확신을 얻었어요. 그 전까지는 연기자가 될 줄 상상도 못했는데 말이에요. 연기를 해 본 경험이 없어서, 제가 한예종에 들어가리라 예상한 사람도 아무도 없었죠. 저희 부모님도 콧방귀를 끼셨고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일단 한예종이 생긴다는 정보를 들었어요. 또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의미심장하게 “내가 옆에서 보니까, 너는 일반 대학 갈 애는 아닌 것 같아” 그러지 뭐예요.
어떤 모습을 봤길래 친구가 당신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요.
제가 시연은 잘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 친구에게 모든 걸 직접화법으로 애기했어요. 그대로 흉내 내기요.(웃음) 그게 연기라는 생각은 안했는데, 그 친구 눈에는 인상 깊었나 봐요. 저에게 기회를 줘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했는데, 제가 생각해도 일반 대학은 아니라는 결론이 났어요. 그렇다고 제가 가지고 있는 조건이 배우 쪽도 아니었고. 그래도 친구말대로 나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줘 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학교에 들어갔는데, 가서 느꼈죠. 끼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내면에 있는 것들을 충분히 발현시킬 수 있는 것도 배우’라는 걸요. 희망을 가지게 되면서 이쪽 길을 쭉 걸었던 것 같아요.
<달콤한 나의 도시>는 서른 한 살의 삶과 사랑을 그린 드라마예요. 출연 당시 당신의 실제 나이도 서른 초반이었죠.
네. 그래서 더 공감이 갔어요. 저랑 비슷한 면이 많아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제가 쿨하지는 않지만 더 쿨한 남유희의 모습이 너무 좋아요. 지금도 (드라마에 친구로 등장했던)최강희는 저에게 원수예요. 여전히 원수! 메시지로 대화할 때 “어이, 원수!” 이러죠.(웃음) 이번 영화 홍보차 (최강희가 DJ로 있는)라디오도 나가는데, 남유희와 원수의 만남이에요.
당신에겐 ‘어떤 배우가 되고 싶느냐’보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이 더 맞을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을 잘 사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이런 인터뷰도 지금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인터뷰든, 연기든, 현실에 있는 일이든, 지금 여기를 잘 살면 되게 좋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면 정말 성인일 것 같아요. 제가 성인이 되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러면 더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2012년 7월 9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2년 7월 9일 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