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스캔들>이 800만을 모았다. 신인 감독에 공포영화 전문 제작사가 제작한 코미디가 그렇게까지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나?
아무도 몰랐다. 감독보다 제작자로서 같이 하고 싶은 신인 감독들과 프로젝트 4개를 시작했다. 근데 그때 경제 위기가 와서 영화 투자도 위축되고 결국 <과속스캔들>만 제작에 들어갔다. 강형철 감독이 2년 반을 회사에서 견디면서 성실하게 시나리오를 썼는데, 이게 우리나라에는 맞지 않아 보였다. 당시 우리나라의 주류 코미디는 조폭이거나 <뜨거운 것이 좋아>와 같은 리얼 드라마 속에 웃음을 넣는 식이었으니까. <과속스캔들>은 너무 영화 같아서 오히려 해보자고 했다. 흥행도 잘 됐지만, 우리가 생각했던 기획이나 의도대로 잘 돼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감독할 때도 성공을 거뒀지만, 제작자로서 더 큰 성공을 거둔 셈인데?
우리나라는 영화가 너무 감독 위주인 경향이 있다. 완성도는 높아지지만,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에서 어긋나기도 한다. 나도 감독을 할 때, 내가 전부 다 하니까 질적으로 더 떨어지더라.(웃음) 영화를 못 만든다는 게 아니라, 더 잘할 수 있는데 해야 할 다른 일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연출만 하면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지겠다 싶었다. 그래서 토일렛 픽쳐스느 캐스팅이나 스탭 구성에서 짐을 좀 덜어준다. 연출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하니 완성도도 좋아지더라.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은 신인이고, 현장 경험도 없다. 스탭도 잘 모르고 연기자도 잘 모른다. 게다가 우리 회사는 공포 위주로 해왔기 때문에 코미디를 계속 해왔던 제작사랑은 다르다. 하지만 그런 게 장점이다. 다른 장르를 하면 눈이 좀 새로워지니까. 반대편에서 보면 원래 더 잘 보이는 법이다.
공포영화 제작사에서 휴먼 코미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외라는 반응도 있었겠다.
어떤 영화든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지는 부분이 많다. 쉽게 말해, 어떤 영화가 있는데 감독 붙이고 배우 붙여서 투자 받고 어쩌고 하거나 내년에 닥칠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한 걸음 앞서 나가는 것도 필요하다. 어차피 대중문화란 사회적인 현상이나 시류를 많이 따라 가니까. 개인적으로는 시류에 편승하는 것보다는 진정성을 더 믿는다. 인간을 깊게 다루고 뭐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이 영화가 줄 수 있는 웃음이 깨끗하고 정서적으로 좋은 것인가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90% 이상은 착하고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코미디, 착한 코미디가 좋다. 난 공포영화를 찍어도 대사에 욕이 없다. 15세 영화에도 쉽게 나오는 그런 흔한 비속어도 안 나온다. <과속스캔들>도 마찬가지다. 착한 영화라는 것은 아니고 그게 영화사나 영화를 같이 하는 사람들의 색깔인 것 같다.
<과속스캔들>은 제작자로서의 역량이나 마인드가 충실히 발휘된 경우인 것 같다.
우리나라 영화는 큰 영화 아니면 10억 이하의 작은 영화로 양극화된 경향이 있다. 그런데 <과속스캔들>는 적합한 시나리오로 효과적인 사이즈가 나왔다. 잘 맞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잘 돼서 부담스럽기도 했지.(웃음) 근데 또 그런 게 있다. <워낭소리>도 그렇고 <과속스캔들>도 그렇고, <해운대> <국가대표> 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관객은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감독이나 스타를 떠나서 영화를 보는 편이다. 잘 만들면 많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
한 3년 전에 <인생 리콜됩니다>라는 시나리오를 갖고 왔는데, 재미있었다. 전자 제품처럼 잘못된 인생을 전지전능한 하느님이 리콜 해주는 휴먼 드라마다. 그래서 만나서 같이 일하게 됐다. 난 조감독 생활을 10년 넘게 했는데, 요즘 현장은 다르다. 각 스탭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일을 잘 한다. 옛날에는 감독이 렌즈도 알아야 되고, 조명도 알아야 되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감독이 이것저것 알면 오히려 연출에 방해만 된다. 이야기만 잘 이끌어준다면 잘 될 것 같았다. 게다가 강형철 감독이 음악에도 탁월했고, 무척 성실했다. 찍기 전에 기존의 영화들을 재편집해서 80~100분 짜리 영화에 음악까지 넣어서 가져왔다. 이런 느낌이라면 좋겠다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거의 그대로 나왔다. 단, 필름을 너무 많이 쓴 게 속상했다.(웃음) 현장 진행을 잘 했는데, 테이크는 많이 가더라고.(웃음)
감독을 하던 사람이 제작자가 되면 자기도 모르게 간섭을 하게 될 것도 같은데.
무조건 참는다. 근데 요즘은 올 콘티를 하니까. 현장을 보면 감독이 경험이 없어서 나오는 작은 실수들은 있지만, 자기가 직접 쓴 시나리오를 연출하는 거라서 잘 한다. 흐름상 어떤 앵글이 좋은가, 감정적인 디테일은 어떤가 정도의 작은 차이는 있지만, 전체적으로 잘 하더라. 나는 몇 군데 상업적인 포인트 정도만 의논하는 수준이다. 감독과 제작자가 각자 역할을 하는 시스템이 돼서 짐을 덜어줘야지.
강형철 감독은 데뷔작이 너무 터져서 부담이 클 것도 같다.
그걸 없애주고 싶었다. <과속스캔들>은 우리 마음속엔 항상 250~300만 목표의 영화니까 그 정도로만 생각하자는 얘기를 자주 한다. 다음 작품이 설사 흥행이 안 되더라도 감독으로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많이 했다. 임권택 감독님도 100편 해도 신인 감독 같은 자세라는 말을 하는데, 요즘 감독은 3~4년에 한 편씩 하잖아? 그래도 전편보단 나은 작품을 해야 하는 거니까. 근데 강형철 감독은 쿨해. 심각하게 생각 안하니 그냥 제작비 좀 큰 영화나 하게 해달라더라.(웃음) 나 혼자 괜히 진지한 거지.(웃음)
강형철 감독의 차기작은 벌써 들어간 건가? 요구대로 제작비 더 투자해서?
지금 시나리오를 아주 잘 쓰고 있다. 근데 어디 가서 시나리오 얘기 하지 말라고 당부했는데.(웃음) 살짝만 말하면, <친구> 여자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친구>는 고등학교 싸움짱 이런 게 주요 소재인데, 여자들은 그때 뭐 했을까? 그렇다고 <친구>에 나온 여자 밴드 이야기는 아니다. 남자들과 다른 여자들의 우정과 현재 그걸 어떻게 찾아가느냐에 관한 이야기. 약간 여성 취향의 영화가 될 거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제작비나 운영에 대해 신경이 많이 쓰이겠다.
사실 나는 감독으로서 거품이 많다.(웃음) 흥행이나 상업적인 부분에서 나름 성공을 하니까 거품이 생긴 거지. 한 장르를 4편이나 했는데 왜 발전이 없냐고 스스로 생각해 봤다. 물론 <가위>도 합리화는 시킬 수는 있다. 당시 <가위>가 103만이 들었으니, 요즘 수치로는 거의 3~400만이지. <폰>도 스크린만 더 잡았으면 더 잘 됐을 거다. 근데 <분신사바> <아파트>는 또 안 그랬으니. 내가 거품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위안이 되는 거다. 더 잘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니까. 근데 제작을 해보니까 제작자 마인드가 생기긴 하더라. 이 정도면 됐어, 대세에 지장 없으면 적당히 가자, 하는 식. 감독이기도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그렇다. 그게 영화를 질적으로 떨어뜨린 이유가 됐다. 그래서 <과속스캔들> 같은 경우는 또 그런 생각 들까봐 내 인건비까지 다 제작비에 넣고 감독한테 모든 걸 일임했다. 내가 조감독할 때는 PD가 없어서 내가 그 역할을 하니까 상업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도전하는 열정이 없어지더라. 흥행을 떠나서 공포를 좋아하는 감독으로서, 영화에 드라마가 없다고 욕을 먹어도, 한 번 놀아 볼 수 있는 영화를 해보자고 페이크 다큐멘터리 <못>을 준비했었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 상업적인 영화를 해야 하니까.
하려면 <폰> 하기 전에 할 생각이다. 3,4월경엔 미국에 있을 테니 그 전에 소리 소문 없이 찍고 가려고. 12월에 경기도의 울창한 숲에 간 적이 있다. 도로 옆으로 5분 거리인데, 아버지 산소에 가는 길이다. 목적지를 정하고 가면 모르는데, 그냥 그 안에 있으면 엄청난 공포가 몰려온다. 주변이 다 똑같아서 고립됐다는 공포가 생긴다. <블레어 윗치>랑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는데, 그걸 좀 더 세게 가고 싶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죽으면 왜 숲에 묻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6.25 때도 양민 학살하면 저수지나 숲에다 버렸잖나? 그 숲이 원한을 갖고 있다면? 공간 자체가 갖고 있는 원한을 그려보고 싶었다. 내가 지방 촬영가도 모텔에서 잘 못 잔다. 악몽도 많이 꾸고.
그런 쪽으로 촉이 발달된 모양이다. 귀신을 봤다거나 먼저 느낀다거나.
옛날부터 그랬던 것 같다. 어느 장소에 가면 몸이 아프기도 한다. 동물적인 방어 본능이랄까? 기시감 같은 것도 많았다. 공포영화를 찍지만 내 영화보다 현장에서 더 재미있는 일이 많다. 파주 세트장에서는 밥 안 먹고 혼자 남아서 모니터 보면 뒤에서 뭔가가 느껴지기도 한다. 세트장 문이 혼자 열리는 소리도 들리고, 조명대 위에서 움직이는 형체도 보이고. 근데 그만하자고 하면 딱 멈춘다. 재미있다.(웃음)
지금 <폰> 리메이크의 진행 상황은 어떤가?
초고가 나왔고, 3월 달 쯤에 미국에 가서 시나리오를 마무리 할 예정이다. 내가 직접 쓰는 게 아니라 작가가 따로 있고 나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이제 감독으로 다시 돌아왔다. 준비 과정에서 미국 시스템이 좀 다르던가?
몇 년 왔다 갔다 해보니 미국에서 감독하는 게 좀 편하더라. 우리 회사가 표방하는 게 미국식 시스템이다. 그래야 감독이 연출에만 집중하니까. 캐스팅의 경우는 나한테 물어보긴 하지만 그쪽 캐스팅 디렉터들이 알아서 한다. 편집권에 대한 얘기도 있었는데, 편집권을 요구한 건 아니고, 개봉은 알아서 하더라도 디렉터스컷으로 만들 수 있게만 해달라고 했다.
할리우드 진출이지만, 시스템이나 작업 방식에서 할리우드에 맞춰 줄 수는 없다는 고집?
다른 감독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공포영화의 경우는 미국 애들이 잘 하긴 한다. 미국 영화사상 공포영화로 손해 본 적은 거의 없으니까. 미국 애들은 공포영화가 상업적으로 어떻게 돼야 하는지 아니까. 계속 상업적이란 단어를 쓴다고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선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이 언론에 알려지고 관심을 받는 부분이니까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할리우드가 대단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감독이나 배우가 할리우드를 꿈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비춰지는 데, 사실 할리우드에도 쓰레기 같은 영화 많다. 어떤 장르에 관해서는 우리나라 감독들이 더 잘 만들기도 한다. 단지 시장이 크지 않아서 영화가 산업으로 커지질 않아서 그렇다. 우리나라 영화가 칸에서도 인정받고 그러잖아? 이제 할 일은 누군가 해외로 진출해서 상업적으로 된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그래야 미국 투자자들도 같이 하고 싶어 할 테니까. 그런 차원이라면 리스크가 적은 공포영화가 가능성이 높다. 투자 대비 흥행이 최고거든. 내가 <폰>을 통해서 해보고 싶은 건, 한국 감독이 만들어도 <그루지>나 <링>처럼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고 흥행도 성공해서 인정받는 거다. 그래야 다른 장르로도 확산될 수 있다.
<폰> <분신사바> <아파트>가 다 팔렸다. 다 리메이크한다고 했지만 늦어졌다. 6년을 왔다 갔다 하면서 느끼건 공포영화로는 자신이 있다는 거다. <그루지> 같은 걸 보니 그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근데 <착신아리>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 옛날에 <트래픽> 제작한 회사에서 <폰> 리메이크를 계약하고 작업을 진행시키려고 했는데, 소니 픽쳐스에서 <착신아리>가 만들어진다고 해서 중단됐었다. 일본에서는 <폰> 개봉 이후에 <착신아리>가 제작돼서 그들 사이에서 <폰>을 따라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는데, 리메이크는 <착신아리>가 빨랐다. 근데 이번에는 <트와일라잇> <뉴문>을 했던 젊은 회사랑 계약을 했다. 일본 영화들 리메이크할 때 일본에서 로케이션 하면서 제작비도 아끼고 하니까 손해는 안 보겠다 싶어서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폰> 리메이크 역시 한국에서 많이 찍을 예정인가?
<주온>도 일본의 바로 그 장소에서 찍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옛날에 찍었던 그 장소에서 찍자고 했는데, 거기가 헐리고 빌라가 들어섰더라.(웃음) 그래서 양수리부터 다 뒤지고 인터네셔널 스쿨 보여주고 난리를 치고 있지. 일단 촬영은 한국에서 거의 100% 할 거다. 미국에 친구 찾아 가는 몇 장면만 빼고 전부 한국이다. 한국은 다국적 문화를 잘 담아내고 이국적인 공포를 담아내기 적당한 곳이다. 대신 조금 세게 가고 싶다. <엑소시스트>랑 비슷하다고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오마주로서 그 표현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
외국 배우들로만 캐스팅하나? 한국 배우 출연에 대한 얘기는 없나?
또 공명심 때문에 한국 배우 한 명 가자고 하긴 했지.(웃음)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완벽하게 할 수 있는 배우가 몇 안 되니까 그 중에서 봐야 한다. 감독이 그렇게 원하면 고민해 보겠다고 하더라. 그래도 한국에서 찍는데 코리안 아메리칸이 나와 줘야 리얼리티가 살지 않겠냐고 했다. 또 백인과 동양인의 대립을 잘 살려도 재미있을 것 같다. 원래 동양인이 눈 크게 뜨고 그러면 엄청 무섭다.(웃음) 외국 연기자들한테는 그런 맛이 없지.
리메이크 <폰>은 좀 다르게 연출할 건가? 아니면 전작과 거의 똑같이?
클래식 호러로 하고 싶다. 근 5~6년 동안 <쏘우> <호스텔> 같은 극악무도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니까 <파라노말 액티비티> 같은 영화가 크게 히트를 쳤다. 다시 오컬트나 심령으로 가려는 경향이 있다. 완전 클래식한 공포영화를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무겁지는 않게. 미국은 중간에 코미디 느낌도 들어가고 그런 걸 좋아하니까. 그쪽에서 그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쓸 거다. 또 원래 <폰>이 제작비 때문에 한계가 있었는데, 그런 한계를 뛰어넘을 생각이다. 또 그때랑 다른 게, 요즘은 휴대폰이 너무 진화했으니까. 동영상 파일을 보내거나 위치추적을 하거나 하는 식의 새로운 기능을 넣을 생각이다.
제작자에서 다시 본업인 감독으로 되돌아가니 흥분되겠다.
감독을 너무 하고 싶었다. 아까도 말 했듯이 내가 거품이 있는 감독이다 보니 한계가 좀 있었다. 시나리오를 쓰긴 했지만 글 작업에 더 몰입했어야 했다. 제작자로서 일을 하니 사람들을 대하면서 좋은 일, 나쁜 일 다양하게 겪게 된다. 그런 와중에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과속스캔들> 제작한 거지. 근데 이게 터져서 오히려 좀 부담스럽기도 하다. 투자와 제작, 연출이 각기 자기 맡은 역할에서 최선을 다 해야 좋은 영화가 나온다. 이번엔 감독 역할인 거다.
피터 잭슨의 경우에도 다른 나라에서 스튜디오 촬영하는 걸 위성으로 보고 오케이 내리고 하잖나. 저메키스도 그래. <캐스트 어웨이> 촬영하면서 동시에 <왓 라이즈 비니스> 찍을 정돈데.(웃음) 미국이니까 그 정도지만,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해야 된다고 본다. 나도 그렇지만 어느 감독이나 작품을 생각하는 건 다 똑같다. 어떨 때는 더 큰 것에 몰입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다. 근데 아직은 이런 얘길 하면 욕먹더라. 감독님 할 때는 안 그랬잖아요, 이런 소리 듣고.(웃음) 선배들은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얘기 싫어할 거다.
리메이크 <폰>은 그런 시스템에서 작업하게 되겠네?
<폰>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연 배우를 따라가니까 그 정도는 아닐 거다. 그때도 지원이(하지원)가 70% 이상 나왔다. 주연 배우를 따라가는 시스템이니 많은 분업은 좀 어렵겠지. 그래도 카 체이싱 장면 같은 경우는 제대로 할 생각이다. 과거에는 예산 때문에 잘 못 했다. 대신 그쪽 카 스턴트맨하고 액션 감독한테 맡길 거다. 내가 현장에 있어도 그 시퀀스는 전문가들이 해야 제대로 나올 테니까.
할리우드랑 우리나라는 공포영화 시장 자체도 다르고, 바라보는 시선도 다르다.
우리나라는 시장이 작아서 여름 시장을 겨냥한 공포영화가 몇 편 없다. 그러다보니 투자자들도 기획이나 시나리오가 완벽한 걸 원할 수밖에 없다. 근데 그게 힘들다. 자신 있게 밀어붙이는 게 필요하다.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가능하게 해야 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다. <해운대>에 쓰나미가 오는 CG를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하냐고들 했잖나? 근데 됐잖아? <해운대>는 빤한 장르고 내용도 빤한데 될까? 1,000만 가거든. 공포영화도 <폰>이 잘 되니까 미국에서 과감하게 할 수 있는 거다. 미국에서 공포영화는 매주 개봉할 정도다. 8월부터 2~3주 간격으로 계속 나온다. 미국 관객은 공포영화 보면서 놀라는 장면 나오면 하이파이브하면서 좋아하고 난리다. <스크림>때도 난리였지. 그런 식으로 즐긴다. 근데 우리나라 공포영화는 반전도 필요하고, 심리적인 요소도 있어야 되고 하는 식으로 규칙이 있다. 물론 그런 영화가 잘 만든 공포영화지만, 관객들에게 공포 그 자체의 즐거움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식으로 영화 보기 힘들잖나? 게다가 장르가 공폰데.
우리나라 공포에 발전이 더딘 이유도 영화적인 완성도에 너무 신경을 쓰기 때문이기도 하다. 난 워낙 리뷰가 안 좋은 감독이라 괜찮지만,(웃음) 의식하는 감독들도 많다. 심리적인 부분, 사회적인 부분, 관객의 요구 등을 다 수용해야 하니 힘들지. 그런 중요한 문제를 왜 공포영화로 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다른 장르에서 하는 게 더 좋지 않나? 보면 전부 끝에 반전이다. 드라마와 무관한 반전도 있다. 게다가 스릴러는 대부분 형사가 등장한다. 외국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업종이 형사인 줄 안다니까.(웃음) 그래도 옛날에는 깡패였으니 좀 나아진 건가?(웃음)
공포영화를 장르적인 특징을 살려 만들면 더 재미있을 텐데, 획일화되는 부분은 확실히 있다.
형사 대신 흥신소 이런 게 더 낫지 않나? 직업을 바꿔도 재미있을 텐데. <엔젤하트> 같은 거 보면 좋잖아? 그러려면 투자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오대양 사건 같은 거. 그건 사이비 종교는 아니고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 쪽 새마을 운동 비리 캐다가 밝혀진 건데, 180명이 집단 자살한 큰 사건이었다. 1999년에 사건 추적했던 그 기자는 어떻게 살까? 물론 사이비이긴 하지만 자기 펜 하나에 180명이 죽은 거다. 그렇게 출발해서 다른 사건이 다시 벌어진다, 뭐 이렇게 갈 수도 있는데 투자자들은 별로 안 좋아하니까.(웃음) 몇 년 전에 한 목사가 귀신 쫓는다고 사람 때려서 죽인 사건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종교에 너무 심취해서 이상한 사람한테 악마가 들었다고 때리고 했던 건데, 공포영화로 보면 그런 게 소재가 된다. <엑소시스트>가 그런 식이니까. 그런 걸 해보고 싶다. 공포영화다운 장르로. 우리나라에는 장르적인 공포영화보다는 평단을 의식하는 일이 많다. 실제로 <폰> 처음에 나왔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사운드가 너무 크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미국 녹음실에서 <식스센스>랑 비교했더니 <식스센스>가 더 컸다. 원래 미국 영화들이 사운드는 더 세다. 근데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그런 지적을 받았다. 공포영화가 잘 되려면 다양하게 도움을 줘야 한다. 그래야 용기내서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는데, 자꾸 위축되니까 힘들어지는 거다.
감독 이름을 빼고 무슨 단체 이름을 넣어볼까도 싶다. 지금 토일렛이 생각하는 건, 공포영화를 할 수 있는 다양한 유통 경로다. IPTV, 모바일 등 방법이 많으니까 10억 규모의 영화부터 3천, 5천만 원 정도의 영화들까지 생각하고 있다. 또 제작 방식도 다변화할 거다. 이번에 <못>을 DSLR의 동영상 기능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동안 내가 착각한 게 있는데, 감독이나 제작자는 영화를 만다는 것을 남과 비교하면 안 된다는 거다. 어떻게 찍느냐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컨텐츠와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서 소비시켜야 한다. 미국에는 철저한 흑인 영화 시장이 있는데 그게 어마어마하게 큰 규모다. 표현에서도 다양한 기법이나 장치가 있어서 만들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만드는 시대가 왔다. 공포영화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고 싶은 거다. 그래서 20대의 재기발랄한 인재가 필요하다. 휴대폰만 해도 UCC나 유투브 등 소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그런 쪽으로도 다양한 기획이 가능하다. 귀신이 나오는 집을 오로지 휴대폰 카메라에 의존해 촬영한다거나 꼭 극장 개봉이 아니더라도 다양하게 소개될 수 있는 시도들을 하고 싶다.
공포영화는 데뷔하는 방법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긴 하다. 기획 영화라는 뉘앙스가 강하기도 하고.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천대하는 장르인 것도 같다.
천대보다는 나를 비롯해 공포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평단을 너무 의식하는 경향도 있고, 또 너무 기획적인 마인드로만 만드는 것도 있다. 빨리빨리 시기 맞춰서 하다 보니 완성도가 떨어지고, 그게 운이 좋아서 성공하면 또 같은 방법을 반복하다가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공포영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토일렛 픽쳐스에 와야 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없더라.(웃음) 옛날에 어느 영화사랑 씨네21이 공포영화 시나리오만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 400개가 왔다. 근데 그다지 좋지 않았다. 요즘 <싸이코>를 다시 보고 있는데, 히치콕이랑 구스 반 산트랑 비교해 봐도 역시 히치콕이 재미있다. 그래서 우리가 준비하는 영화중에도 이런 스타일이 있다. 어떤 평범한 여자가 한 남자를 실수를 죽인다. 근데 죽일 수 있는 동기는 있다. 인터넷으로 완전 범죄를 공부해서 실천에 옮기기 위해 길을 떠난다. 그때 <싸이코>랑 같은 음악 나온다.(웃음) 펜션에 도착해서 시체를 토막 내는데 잘 되지 않아서 억지로 잘라서 야산에 묻으러 간다. 근데 진짜 연쇄살인범이 시체 3구를 토막 내서 묻고 있는 거야. 눈이 마주쳐서 도망가다가 잡혀서 같이 생활 아닌 생활이 시작되는 거지. 이런 게 공포거든. 살인범이 여자를 못 꼬시니까 여자가 대상자를 유도하고 살인자는 살인을 하고, 공범 아닌 공범인 되는 거지. 그런 와중에도 여자는 자신의 살인까지 연쇄살인범이 한 걸로 해서 살아남으려고 애쓰고, 뭐 그런 식이지. 이 영화엔 형사 안 나와.(웃음) 남들이 보면 안병기가 <싸이코> 카피했다고 하겠지만, 그걸 변주하고 변종시키면서 발전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이런 것들은 디지털로 할 수도 있다. 좀 과감한 시도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도 공포영화 전문 배급이나 상영관이 있으면 좋을텐데.
내가 영사기 갖고 다니면서 폐가에서 상영하고 그래야지.(웃음) 생각해보니 재미있겠는데?(웃음) 여름에 공동묘지나 폐가 옆에서 야외상영하고 그런 적은 있었잖아?
원래 공포영화는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활성화되는 장르인데.
공포영화가 갖고 있는 매력이나 제작의 장점이 많다. 극이 완벽하지 않아도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동네에 신기 들린 애가 있다, 뭐 이런 것도 많잖나? 교회 다니는 엄마랑 부딪히고 하는 걸 다큐멘터리처럼 따라만 가도 그게 공포영화가 되는 거다. 겨울에 흐린 날씨에 음악 음산하게 깔고 문소리 ‘끼이이이익’ 이런 거 깔아주면 효과 살거든.
그게 너무 정형화 되어 있어서 한계가 있더라. 4작품을 하니까 이런 게 있더라. 4작품을 짜깁기 편집해도 또 다른 한 편의 영화가 나온다.(웃음) 비슷한 배경에 배우들 리액션만 섞어도 영화 하나 나오거든.
안병기 감독의 영화를 보고 공포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들이 슬슬 영화인이 될 시기가 오고 있다.
근데 왜 안 오지?(웃음) 강형철 감독처럼 자기 색깔 있는 감독들 오면 믿고 같이 갈 텐데. 물론 <과속스캔들>은 좀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 색깔이 있는 감독들이랑 영화를 계속 했으면 좋겠다. 일본영화를 동경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는 하이틴 영화가 너무 없다. 옛날에 얄개 시리즈도 있었는데, 요즘은 그 또래 아이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볼 영화가 없다. <우뢰매> 같은 영화 재밌잖아? <구니스> 같은 것도 좋고. 초등학생들이 “니가 가라 하와이” 이런 대사 하는 거 정서적으로 잘못된 거다. 우린 <브레이킹 어웨이> 같은 영화 보고 자랐는데.
공포영화 외에 연출하고 싶은 영화가 하이틴 물인가?
멜로영화도 해야지. <언페이스풀> 같은 영화도 해보고 싶다. 에로영화가 포르노성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그런 영화들. 스릴러라는 장르가 폭이 좀 넓어졌으면 좋겠다. <치명적 유혹> 같은 영화도 있잖나. 그런 것들을 해보고 싶다. 내가 능력이 안 되니까 제작 쪽으로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일단은 <폰> 리메이크 잘 해 놓고, 소리 소문 없이 찍어보려고.(웃음) 또 공포를 한다면 만화책 중에서 <자부녀>라는 단권짜리가 있는데, 진짜 무섭다. 판권 사려고 했는데 안 팔더라.
2010년 2월 5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2010년 2월 5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