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시사회 때 못보고 일반 시사회 때 봤는데, 관객들 대부분이 훌쩍이더라. 기자 시사회 때는 분위기가 어땠나?
그때도 괜찮았다. 기자 분들이 평소보다 마음을 많이 열어 주신 것 같다. 일단 영화 자체를 좋게 봐 주신 것 같아 고맙고, 신인감독님 작품답지 않게 나와서 같이 작업한 사람으로서 뿌듯하다.
아까 매니저 분하고 얘기 해 보니까, 유미를 연기하기 위해 촬영 들어가기 두 달 전부터 계속 우울한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고 하더라.
유미는 어릴 때 의붓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기억 때문에 마음 속 문을 닫고 사는 인물이다. 누구도 쉽게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을 표현해야 하니까 고민이 많이 됐고, 극중 유미처럼 힘들었다. 감정선을 유지하기 위해 촬영 중에도 거의 말을 안 했다.
얼마 전에도, 성폭력이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켰다. 민감한 문제라 다가가는데 고충이 좀 더 있었을 것 같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그 사람이 돼 보지 않은 이상 그 아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거니까.
맞다. 그 사람이 되지 않은 한 전부를 다 이해할 수 없을 거다. 그래도 최대한 유미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성(性)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성의 성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버자이너 모놀로그‘(5살 꼬마부터 75세 할머니까지 아홉 명의 여성이 솔직하게 털어놓는 여성의 성에 관한 이야기)의 대본을 구해서 봤고, 연극배우 서주희 선생님을 찾아 가 대본 연습도 받았다. 촬영 들어가기 2, 3개월 전부터 연극 안의 대사들을 암기하며 연극 속 인물들의 경험을 내 기억에 집어넣었다. 워낙 디테일하게 묘사가 된 연극이라 읽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정말 성추행을 당한 것 같고, 성폭행을 당한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또 그런 기억들로 인해서 성에 대한 추잡하고 더러운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 한동안 누군가의 약간의 스치는 터치도 싫을 정도였다. 또 정신병원에서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심리상태나 행동들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했고, 유미가 의붓아버지로 인해 임신을 했을 거라는 상상도 해 봤다. 그러니까 낙태의 경험이 있다고도 설정했다.
상당히 구체적인 설정이다.
유미가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분노를 이해하려 한 거다. 여자에게 낙태라는 건 지울 수 없는 상처지 않은가.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당해 온 유미가 ‘왜’, ‘그 날’, ‘아빠를’ ‘죽였어야 했는지’에 대한 타탕한 이유와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미에게 자신을 완전히 던져서 산 것 같다.
사실, ‘연기를 이렇게 자학까지 해가며 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우울하고, 힘들고, 모든 게 비관적으로 되다보니 말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연기에 대한) 노하우가 많지 않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영화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거짓인 게 티가 날 것 같았다.
다른 분들 인터뷰를 보면 다들 당신을 악바리라고 하던데, 그게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함께 출연했던 연기자들이 워낙 연기를 잘 하는 대배우들 이었기 때문에 경험이나 노하우나 모든 면에서 그런 준비를 안 하고는 대적할 수가 없었다. 치밀하고, 디테일한 준비로 작품에 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빗장을 걸어 잠궜던 유미가 확실한 변화를 보이는 건, 같은 방 죄수자인 나문옥(나문희)에게 뺨을 맞는 장면 이후다.
맞다. 정확히 그 지점이다.
사실 처음에는 이걸 어떻게 찍나 고민했는데, 촬영 때는 내 앞에 인물이 나문희가 아니라 정말 나문옥으로 보여서 감정 몰입이 저절로 됐다. 그 뺨 맞는 장면에서는 NG도 안 냈다. 아마 영화 속 나문옥은 유미를 정말 때리고 싶었을 것 같다. 사형수인 노인에게 “어차피 뒤질 운명”이라고 젊은 것이 와서 ‘악다구니’를 하고 가니 얼마나 화가 났겠나. 게다가 뺨을 맞은 유미가 확 째려보기까지 했으니, 내가 나문옥이었어도 정말 가만히 안 놔뒀을 것 같다. 뺨 맞은 후 유미가 “죄송하다”고 사과할 때, 나문옥이 “많이 힘들지, 나도 많이 힘들다. 그런데 어쩌겠냐, 우리 열심히 잘 살아 보자”라고 얘기를 하시는데, 그냥 가슴에 뭔가가 확 왔다. 나보다 더 붉은 명찰을 달고 죽는 날을 기다리는 나문옥에게 참 죄송하다는 생각도 들고, 안타깝다는 마음도 들고, 유미에 대한 서글픈 생각도 들고, 여러 가지 오만가지 생각이 사진처럼 스쳐가면서 울음이 터졌다. 묘한 경험이었다.
반면, 엄마에게 마음을 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면회 온 엄마를 외면하다가 4-5년이 지나서야 받아들이는데, 엄마에 대한 일련의 감정들을 어떻게 가져가나 하나 고민이 있었을 거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유미는 차츰차츰 변했다. 노래를 통해. 동료들과의 관계를 통해. 물론 성폭력에 대한 상처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다고 봤다. 아픔에는 색깔과 그 색깔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죽을 것 같은 ‘빨간 피’색이지만, 그 아픔이 ‘푸른색’으로 변하고, ‘아이보리’ 색으로 옅어지다가 나중에는 ‘회색빛’으로 없어지는 날이 온다. 4년 뒤인 유미는 ‘아이보리와 회색빛’ 사이 정도이지 않을까 싶었다.
몇 년 만에 엄마에게 건네는 첫 마디가 “어디가!”였다.
엄마에게 어느 정도 문은 열었지만, 먼저 다가가기에는 망설임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면회 온 엄마를 돌려보내며, 엄마의 뒷모습을 매번 봐 왔는데, 어느 순간 보니 엄마의 머리색도 회색빛으로 변해 있는 걸 발견한 거다. 하얗게 샌 엄마의 머리를 본 순간 울컥해서 “어디가!”라는 대사가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대사였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느낌이랄까. 4년을 잘 압축할 수 있는 대사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또 애절하게 부른 것도 아니고, 가볍게 ‘툭’. 그게 나에게는 마지막 후크였다. 어떻게 보면 엄마를 용서하는 그 한 장면을 위해 유미는 달려 온 거다. 그래서 그 장면이 잘못 되면 모든 게 다 깨져버린다고 생각했다. 그 때 유미가 부르는 소리에 뒤 돌아보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굉장히 슬펐다. 얼굴에 가득한 주름살도 그렇고, 나 때문에 죽어가는 듯한 생기 잃은 모습 때문에 말이다. (한숨)
지금 그 때의 감정으로 돌아 간 것 같다. 눈이 약간 촉촉하게 젖었다.
나도 실제로는 그렇게 착한 딸은 아니지만 그 때는 정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서 슬펐다.
<하모니>의 강대규 감독님이 <해운대> 조감독 출신이다. <해운대>에서의 예원씨는 굉장히 밝은 캐릭터였는데, 그런 당신에게 유미같은 캐릭터를 맡긴 걸 보면 대중이 모르는 뭔가를 발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게 참 감사하다. 내가 뭘 보여준 게 없거든. 감독님이 이 작품을 준비하시는 것도 몰랐고. 그런데 감독님이 <해운대> 촬영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내가 강예원씨를 <하모니>에 데리고 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너무 놀랐다. 나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 줄 기회를 주신 분 같아서 정말 고맙다.
그런 건 없었나? 새로운 모습이긴 하지만 워낙 강한 캐릭터라서 걱정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강한 캐릭터에 대한 부담보다는 이걸 과연 내가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나한테 분명히 이런 면이 있기는 한데, 어떻게 이걸 뽑아서 소화해 내느냐가 나에게는 관건이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예쁘게 봐 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많이 했다. 감독님 같은 경우엔 “어떻게 생각하냐”고 자주 물어보는 스타일이다. 배우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웃음)
여자들이 주축이 된 영화다. 제목처럼 여배우들 간의 ‘하모니’가 정말 중요했을 텐데, 팀웍은 어땠나?
너무 좋았다. 신기한 게 누구하나 비슷한 사람이 없었다. 체형부터 시작해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달란트나 개성이 다 제각각 이었다.(웃음) 그래서 배우들끼리 죄수복 입고 앉아서 “우리 참 캐스팅 가지각색이야”라고 말하며 웃기도 많이 했다. 합숙을 하며 항상 같이 움직였는데, 트러블이라는 게 전혀 없었다. 선생님이 계셨고, 선배님들이 알아서 잘 해 주신 덕분이다.
재소자 역이라 메이크업을 안 한 모습도 있고, 의상도 죄수복이 대부분이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생각도 들었을 텐데.
아, 되게 우울했다.(웃음) 교도관으로 나오는 공나영(이다혜)이 제일 부러웠다. 공나영은 화장이라도 하잖나. 매일 핑크색 립스틱을 하고 나타나는데 너무 새로운 거다. 그에 비해 나는 매일 상처입고, 피 터지고, 절규하고 거기에다가 다크서클까지.(웃음) 매일 죄수복을 후줄근하게 입고 앉아 있으려니 나영이 되게 부러웠다.
가까이에서 본 나문희 선생님과 김윤진 선배님은 어땠나?
세월이 지나 그 분들의 나이가 되면, 나도 저렇게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저렇게 연기 할 수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런 배우들과 함께 작업 했다는 것 자체가 가문의 영광이다. 또 <해운대>도 그렇고, 내로라하는 배우들과 두 작품 연달아 함께 했다는 것 자체가 뿌듯하다. 바로 코앞에서 선배님들을 보고 배운 게 많다.
<해운대>때 설경구, 김인권씨와 매우 가깝게 지냈다고 들었다. 지금도 연락은 자주 하나? <하모니>를 보고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인권 오빠는 촬영 때문에 시사회 때 못 왔고, 경구 오빠는 보러 왔다. 경구 오빠가 끝나고 “잘 했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되게 무뚝뚝한 분이 툭 한마디 하시는데, 그게 어찌나 눈물 나게 고마운지.(웃음) 뭔가 되게 잘못들은 것 같고, “이 분이 왜 이러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말 할 분이 아니거든. 그래서 “정말? 정말?” 이러면서 되물었더니, “잘 했다”고,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말씀을 해 주시더라. 누가 나에게 “기대가 된다”고 하니까, 더 많은 에너지를 생기고, 더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번가의 기적>이 연기자로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던 당신이 다시 일어 설 수 있도록 해 준 작품이라면, <해운대>는 더 높이 날도록 날개를 달아 준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하모니>는 어떤 작품으로 의미가 있을까.
나의 새로운 면을 보여 준 게 의미가 크지 않나 싶다. 좀 더 많은 감독님이나 관객들이 나를 봤을 때, “저 안에는 또 뭐가 있을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기회를 얻은 것 같다. 앞으로 뻔한 연기보다 이런 색깔, 저런 색깔 많이 보여드리고 싶은 게 꿈이다. 나는 하얀색이다. 그 하얀색 위를 많은 감독님들이 다양한 색으로 칠해줬으면 좋겠고, 그러한 다양한 색을 모두 받아 들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여자 교도소의 풍경이 굉장히 세밀하게 그려졌다. 밤에 잠옷 입고 자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 면에서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였다. 연기하는 연기자들 역시 놀랐을 것 같은데.
실제로 그랬다. 우리도 되게 신기했다. 이런 핀은 되고, 저런 핀은 안 되고. 이런 고무줄은 되고, 저런 건 안 되고. 다 룰이 정해져 있다. 예를 들어 아기들이 하는 플라스틱 핀은 허용되지만, 뾰족하거나 유리 같은 재질은 사용 할 수 없다.
연출자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 같지만, 사전조사를 꼼꼼히 했나보다.
감독님과 PD님이 실제와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려고 많이 노력을 하셨다. 또 실제 교도소에 가서 촬영을 했는데, 사실 처음에는 약간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까 재소자 분들 깔깔깔깔 웃는 소리, 삼삼오오 모여서 어울리는 모습에 놀랐다. “와~ 저 안에 사회가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뭐랄까. 여학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내가 윤진언니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던 씬에서 “아아아아아~♪” 이렇게 노래를 하니까, 밖에서 재소자들이 막 따라 부르는 게 아닌가. 그런 거 보면서 참 짠했다. 이 사람들이 사회로 다시 나왔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재단이 만들어져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도 했다. 재소자에 대한 편견이 많이 없어졌다.
그런 얘기 많이 듣는다. 그런데, 음악 감독님도 고민을 많이 하셨다. 4년 뒤, 뭔가가 조금 더 발전 된 모습을 영화적으로 표현 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특히 유미의 경우 가녀리면서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어울리는 친구라 그걸 영화적으로 살리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3개월 전부터 레슨 받았는데, 다른 목소리가 입혀져 아쉽긴 했지만 영화를 위한 거니까 충분히 이해했다.
아, 원래는 본인의 진짜 목소리가 영화에 나오기로 하고 촬영을 들어간 건가?
그랬다. 그래서 촬영 할 때는 직접 노래도 불렀고, 녹음도 내 목소리로 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데, 감독님 입장에서는 음악에 욕심이 나셨을 거다. 전문가가 봤을 때랑, 일반 관객이 봤을 때랑 다르니까. 또 내 보이스 컬러가 유미와 달리 두꺼웠거든.
개인적으로 정말 아쉬웠겠다. 또 성악과 출신 아닌가.
아쉽지. 만일 내 목소리가 그대로 사용됐으면 영화에서 ‘원 플러스 원’ 먹고 들어가는 게 아닌가.(웃음) 그래서 속상하기도 했는데, 누구를 탓하기보다 나를 가장 원망했다. “아~ 왜 이렇게 목소리를 못 낼까. 나도 저런 목소리를 내면 정말 좋았을 텐데”하면서.(웃음)
유미는 소프라노인데, 예원씨는 성악할 때 파트가 뭐였나?
나도 소프라노였는데, 오페라 <라보엠>에 나오는 여주인공 미미와 같은 목소리의 소프라노였다. 같은 소프라노도 다 보이스 컬러가 다르다. 소프라노 홍혜경씨 같은 보이스가 있고. 소프라노 조수미씨, 신영옥씨 같은 보이스가 또 따로 있다. 다 다르다. 그런데 사실 내 목소리가 성악가들 중에서 제일 먹히는 목소리다.(웃음) 비련의 여주인공에 어울리는 안정적인 목소리라서.(웃음)
만약 계속 성악을 했다면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었을지 생각해 본 적 있나.
아마 지금 이태리나 독일 오스트리아를 넘나들며 오페라 가수를 하고 있었을 거다. 내 친구들 대부분이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내가 어렸을 때, 성악 쪽으로 되게 타고났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한양대 들어 갈 때도 최고의 교수님 제자로 들어갔고, 중학교 때는 조수미 선생님께서 사사도 해 주셨다.
조수미 선생님에게? 와. 신동이라는 소리도 들었겠다.
조금 들었다.(웃음) 조수미 선생님께서도 “너는 얼굴도 예쁘고 하니까 잘 될거야”라고 해 주셨다. 그런데 너무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했기 때문인지 음악에 대한 꿈보다 연기에 대한 열망이 더 컸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싶었다.
반대는 없었나? 그렇게 신동 소리도 듣고 자랐는데, 연기를 하겠다고 했으니.
엄마가 살짝 “왜 굳이 그걸 하려고 하니?”라고 얘기 한 적이 있는데, 우리 집은 자식들을 잘 믿어준다. 네가 원하는 거니까, 네가 책임져서 해라. 대신 시작하면 뿌리를 뽑으라고 하셨다. 이제야 내가 좋은 작품을 통해 조금씩 이름을 알리는데, 부모님이 되게 뿌듯해 하신다. 부모님에게 오랫동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또 내가 오랫동안 무직으로 있어서 돈을 못 벌었다. (웃음) 그런데 배우랍시고, 매일 뭔가를 배우러 다니며 나에게 투자했으니 돈이 안 들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부모님들이 많이 서포트 해 주셨는데, 너무 감사하다. 이젠 정말 효도해 드리고 싶다.
부모님도 기다려 준 것도 대단하지만, 본인도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린 셈인데, 그게 쉬운 게 아니다.
긍정적인 편이다. 안 좋은 기억들은 빨리 비우고, “그래도 할 수 있어”라고 스스로 다독인다. 그래서 후배들이나 지금도 기회를 얻지 못하는 배우들에게 감히 ‘정말 꿈이 배우라면’, ‘내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감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사람이 언제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사람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거든. 그러니 포기 안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자 분들 중에 “통쾌하지 않냐?”고 물어 보시는 분들이 있더라. “여태까지 캐스팅 안 해 줬던 감독들이나 무시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통쾌하지 않냐!”고. 그러면서 “앞으로 더 통쾌하게 살라”고 말 해 주신다.(웃음)
엄청. 수많은 오디션에서 떨어졌었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통쾌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말씀들을 해 주시니,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제균 감독님과 인연이 깊다. <1번가의 기적>과 <해운대>를 함께했고, <하모니>의 경우 윤제균 감독님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라고 들었다.
인연인 동시에 은인이다. 기회를 얻는 다는 건 그리고 배우가 큰 영화에서 좋은 역할을 연기 할 수 있다는 건, 되게 감사한 일이다. 그것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 보다 더 힘든 일 같다. 공부는 열심히 밤새서 하면 점수가 오르고 보상이 온다. 그런데 배우들은 안 그렇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떤 누군가가 나의 가능성을 봐 주지 않으면 힘들다. 특히 아무것도 검증 된 게 없는 이의 가능성을 눈여겨 봐 주는 사람은 더더욱 많지 않은데, 윤제균 감독님은 나의 가능성을 봐 주시고 믿어주셨다. 어떤 사람이 말하더라. 누군가가 알아 봐 줘야, 그 다음에 두 세명이 봐 주고, 그러면서 계속 많아지는 거라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사람들은 참 검증이 되고, 인지도가 높아야만 관심을 갖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슬펐다. ‘내가 만약 감독이나 제작자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상상을 해 봤는데, 기회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하는 배우들에게 한번쯤 손을 내 밀어 주고, 대차게 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제균 감독님이 뿌듯해 하시겠다. 믿어 준 것에 대한 보답을 하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다행이다.
연기에 있어서 승부욕이 엄청 강해 보이는데, 평상시에서 어떤가?
일상생활에서는 승부욕에 관심이 별로 없다. 욕심도 그렇고. 왜 그런 거 있잖나. 누가 뭘 샀으니, 나도 사야 할 것 같고, 저 여자가 저런 가방을 메고 다니니, 나도 메야 할 것 같고, 그런 건 없다. 또 내가 조금 둔한 면도 있다. 지금까지 내게 가장 목말랐던 건 연기다. 당장의 옷이나 가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연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더 중요했다. 아직은 그것 밖에 안 보이는 것 같다.
올해로 서른하나다. 서른하나라는 나이는 대해서 어떻게 느끼나.
낮에 만났던 어떤 기자님이 내가 <1번가의 기적> 인터뷰 할 때, 녹음했던 걸 다시 듣고 다 써서 오셨다. 2시간 50분짜리를.
헉! 3년 전, 녹음할 걸 아직도 가지고 계셨다고?(웃음)
(고개 끄덕이며 웃음) 그때 내가 근성이 너무 세고, 승부욕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느꼈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번에 나에게 많이 배웠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뭐가요?” 라고 했더니, “예원씨가 3년 전에 인터뷰하며 했던 이야기들이 지금 그대로 다 이루어 졌다”며 “한 수 배웠다”고 말해 주셨다.(좌중폭소)
아, 미안한데 살짝 무섭다. (좌중 폭소)
한편으로는 무섭지.(웃음) 녹음 했던 걸 가져 온 걸 보고 나도 순간적으로 깜짝 놀랐다. 그런데 정말 너무 고마웠다. 3년 전, 그 때를 돌아보게 해 주셨으니 말이다. 아무튼 지금도 그 때랑 마음가짐은 변한 게 없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살고 있다고 믿는다. 데뷔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마음으로 살고 싶다. 내년, 내 후년, 인터뷰들을 비교 분석 하면서.(좌중 폭소)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했고, 대신 예전에 ‘무비스트’에서 예원씨가 인터뷰 했던 기사를 열심히 정독하고 오긴 했다.(웃음)
사실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되게 행복한 배우라는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데 못하는 배우들도 얼마나 많겠나. 나도 그랬었거든. <1번가의 기적> 할 때, 더 많은 기자들과 인터뷰를 해서 더 많이 알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때의 마음을 계속 기억할 거다. 까먹으면 안 된다. 망각하는 순간, 건방져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오페라의 유령>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거기에 나오는 팬텀의 절규하는 아리아와, 사랑곡인 ‘Think of me’가 나오면 어떨까 싶다. 두 개가 상당히 상반적인데 두 음이 절묘하게 조화를 잘 이룬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인생도 한 면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부분도 있고, 저런 부분도 있어서 드라마틱했으면 좋겠다.
<해운대>에서 희미(강예원)가 형식(이민기)에게 말한 “당신은 오후 3시 같은 남자” 대사가 유명하다. 혹시 실생활에서 ‘오후 3시 같은 남자’를 만나 본 적이 있나.
나는 오후 3시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내가 원하는 쪽으로 따라와 주는 남자가 좋다. 어떻게 보면 되게 매력 없는 남잔데, 내가 나쁜 남자를 안 좋아한다. 기가 세고, 휘두르려고 하는 남자보다 나에게 맞춰주는 남자가 좋다. 그래서 실제로도 민기씨가 연기한 오후 3시 같았던 형식이 캐릭터가 마음에 든다. 어리버리하면서도 귀엽고.
그렇다면 반대로 누군가에게 ‘오후 3시 같은 사람’이 돼 본 적은 있는지.
내 경우에는 오후 3시 같은 여자보다, 좀 더 남자를 좋은 길로 이끌어 주는 현명한 와이프가 되고 싶다.
와이프? 결혼 생각이 있나보다.
그럼! 나는 좋은 사람 만나면 바로 할 거다. 아기를 너무 좋아하거든. 또 나이 들면 외롭지 않나. 외로운 건 싫다. 내 아기들을 보고 싶고, 그 아기들이 커서 내 손자들을 낳는 것을 보고 싶고~
표정은 벌써 자식, 손자 다 본 사람 얼굴이다.(웃음)
(웃음) 그냥 평범한 가정에서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한 세기를 살고 싶다. 유미처럼 자해 같은 건, 정말 하고 싶지 않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평범하게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런 삶을 살고 싶기 때문에 일부러 결혼을 늦게 한다거나, 아기를 늦게 가진다거나 하는 건 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어렵다고 하기는 하더라.
남자의 어디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나?
착해야 한다. 그리고 성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가정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
예전에 설경구 선배님이 “아기 같고, 흡수가 빠른 것이 너의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라고 얘기해 주셨다. 그래서 그걸 잃고 싶지 않다. 테크닉이 뛰어난 배우도 좋지만, 순수하고, 때가 덜 타서 뭔가를 흡수할 부분이 많은 배우도 참 좋은 것 같다.
아까 본인은 하얀색이라고 했던 거랑 같은 맥락인 것 같다. 감독님들이 풍경화도 그려 넣어보고 싶고. 수채화도 그려 넣어 보고 싶은, 즉 뭔가를 칠해 넣어 보고 싶은 배우가 되는 거.
맞다. 정말 그러고 싶다. 감독님들이 나를 ‘색칠 하고 싶은 도화지’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정말 좋겠다.
2010년 1월 29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1월 29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