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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내 애인은 지금 뭐할까? <사랑> 곽경택 감독
2007년 9월 20일 목요일 | 서대원 기자 이메일


서대원(이하 ‘서’) 기자시사 후 언론의 반응은 좀 살펴보셨나
곽경택 감독(이하 ‘곽’) 겁도 나고 해서 뭐 구체적으로 보지는 못했다.

겁?
<태풍> 때 예상치 못하게 워낙 많이 두들겨 많아가지고.(웃음) 그러니까 내가 왜 이리 많이 맞아야 되는지조차 헷갈릴 만큼 힘들었던 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상당히 걱정이 되긴 하더라! 더군다나 한 번도 안 다뤄봤던 장르이고 또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빤한 얘기고. 그래서 그 어떤 새로움보다는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감정을 어떻게 진하게 표현 하냐가 가장 중요했다. 때문에 연기자를 제대로 안 봐주면 이 영화는 끝이다. 그게 정말이지 마음에 걸렸는데 다행히 많은 분들이 점수를 후하게 줘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보다 연출보다 배우들의 연기 쪽에 힘을 실어주며 호평을 해줘 다행이다. 한 70점 받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그 정도는 해낸 거 같다.

만족하신다는 말씀
만족보다는 안심이 됐다 볼 수 있다.

그래도 가장 걱정스러운 건 역시 관객일 거다.
근데 워낙 요즘은 언론자체가 관객들을 선동하는 경향이 있어서 매체의 반응을 쉽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물론, 영화를 본 관객의 입장이 제일 궁금하고 중요한 건 사실이다.

혹 기자시사 후 급하게 수정 들어간 부분이 있나
오늘 하나 지시한 게 있다.
주인공과 제작진 이름이 소개되는 크레딧을 맨 마지막 장면 인호가 **하는 장면에 겹쳐 화면에 올리려 했는데 영화의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사람 이름이 나오니까 정보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어 그 맥이 끊긴다는 말이 적잖이 나왔다. 개봉 후 관객이 볼 영화에서는 그 부분이 다르게 처리돼 있을 거다.

닭살스런 질문이지만 일단, 곽경택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웃음) 그... 이게... 참... 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랑이란 거! 그러니까 절대적인 사랑이란 판타지인 거 같다. 판타지를 경험하고 싶은 것이 곧 사랑이 아닌가 싶다.

사랑에 대한 그 생각을 고스란히 <사랑> 이 영화에 담아냈다고 봐도 되나
당연하다. 내가 쓰고 내가 만들고 찍었는데 안 그럴 수 있겠나

감독이 말했듯 영화제목이 너무 빤하고 단순하다. 주변에서 많이들 말렸을 텐데.
그런 소리 많이 들었다. 오죽했으면 공동제작한 태원하고 100만원 상금 걸고 제목 공모전까지 열었겠나! 그럼에도 특별히 와 닿는 게 없어서 고민 고민하다 그냥 이 제목으로 여기까지 온 거다.

그렇지만 그게 또 당신의 성향 아닌가. 간결하고 단순한 제목 <친구> <챔피언> <똥개> <태풍> 죄다 그렇다.
제목이 없이는 글 작업을 못하는 편이라 일단 제목을 정하고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한 스타일이 어쩌다 보니 우연찮게 이런 결과를 낳은 듯하다. 부러 그렇게 가려고 의도하지는 않는다. 이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처음에는 <사랑>이 아닌 <사랑해!>였다. 근데 마지막 ‘해’자를 어떤 억양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잖나? 경상도 식이랑 서울식의 차이가 크듯 말이다. 여하간, 내가 의도한 대로 사람들이 안 읽어주더라! 그러다 우연히 작업하는 도중에 ‘해’ 글자가 떨어져 나가고 ‘사랑’만 남았는데 그 느낌이 좋은 거다. 그래서 그냥 <사랑>으로!

영화 또한 제목처럼 투박하고 우직하고 단순하다.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너무도 원형적인 불멸의 로맨스다. 복고풍의 감성이고 어떻게 보면 너무나 촌스럽고.
촌스러운 거 맞다.

처음부터 작심하고 그렇게 의도한 건가?
의도에 앞서 내 자체가 그렇다. 내 자신이 촌스럽고 그에 대한 정서를 가지고 있다. 아까 말했듯이 내가 쓰고 찍고 했으니 그러한 정서가 영화에 많이 반영된 거라 볼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음... 세련된 사랑도 있겠지만 글쎄다. 사랑이라는 거 자체가 촌스러운 거 같다. 사람이 누군가를 좋아해서 어떤 감정에 빠질 때는 원시적인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나? 감동받으면 너무나 기쁘고, 슬플 땐 한 없이 슬프고, 뭔가 답답하면 터지고 미칠 거 같고. 결국,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가 인간 본성이 갖고 있는 원형적 그 무엇이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서 <잉글리쉬 페이션트> 같이 우아하면서도 스케일 있는 멋진 멜로이야기도 있지만 내가 처음 하는 사랑이야기니까 투박하고 촌스러워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하자! 그런 마음으로 이 영화를 연출했다.

여하간 요즘 젊음 이들의 감성과 어울리지 않는 건 사실이다. 이에 대한 고민이 분명 있었을 텐데.
그래서 죄다 튕겼지 뭐!

뭔 말인가
투자사들한테 다 뺀지 먹었다는 말이다. 이 영화의 스토리와 정서에 동의를 못하겠다는 거지. 근데 다행히도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가 아무리 촌스러운 이야기라도 진정성이 있으면 그건 통한다며 파트너를 자처했다. 너무도 값진 친구를 만난 거다.

근데 그 진정성이 영화적으로 잘 와 닿지 않았다. 감독의 진심이 느껴지고 주진모의 캐릭터가 심적으로 와 닿긴 했지만 워낙이 영화가 빤하고 과장되게 흐르다보니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봤으면 그게 맞는 거다.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거 같다. 저마다의 취향이 다르듯 <사랑>을 좋게 보는 분들도 있을 테고, 안 좋게 바라보는 관객도 있을 거라 본다. 그렇지만 보다 많은 분들이 이 영화의 정서에 공감할 거라 생각한다.

여기자들은 감독이 말한 대로 대부분 좋게 봤더라!
그 얘기 나도 들었는데 그게 참 희한하다. 우리가 이전에 모니터 시사할 땐 남자 분들이 이 영화를 좋아했고 지금까지도 가장 걱정스러운 게 남자보다는 여자관객들인데 지금은 반대의 경우니 솔직히 난감하다. 잘 하면 양쪽 다 통하는 거고, 아니면 한쪽도 통하지 않을 수 있고.(웃음)

감독의 성향이 많이 묻어나 있긴 하지만 <사랑>이 대중영화이니만큼 나름 타협한 지점도 있을 거다.
이 작품을 하면서 후반에 모니터를 집중적으로 했는데 나도 기겁 할 정도로 다른 반응이 많이 나왔다. 타협이라 말하기에는 좀 그렇고 내 스스로 설득을 당해서 고친 부분은 있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아니다 라고 한 장면만큼은 다르게 편집도 해보면서 수정을 했다.

어떤 장면이었나
인호(주진모)가 미주(박시연)를 우연찮게 다시 만난 후 펼쳐지는 장면인데 내 생각엔 그런 순간이 당도하면 서로가 복잡한 심정이 될 거 같다. 그래서 이들의 그러한 심정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여러 설정을 가했는데 사족이라는 지적이 있어 어쩔 수 없이 뺀 신들이 몇 개 있다.

그나저나 사내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뤄왔는데 갑자기 웬 사랑 타령인가?(웃음)
일단, 좋은 원안을 봐서 그렇고 그 다음에는 주변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니까 시나리오 작가로서 연출자로서 해보고 싶은 여러 이야기가 있지 않나? 그 중에서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이전에 해보지 못했던 장르고 세심하게 감정 플레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무척이나 어렵고 만만치 않을 거라 생각해 주저주저 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내 의중을 알고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분들이 있어 어렵사리 시작하게 됐다.

<친구>와 마찬가지로 <사랑> 또한 감독의 자전적 측면과 친구들의 사연이 꽤나 녹아나 있다 들었다. 가만 보면 <챔피언>도 그렇고 <닥터 K> <태풍>도 죄다 사적 체험으로부터 출발한다.
어떤 이야기를 선택해 영화화하는 건 작가의 자유라 본다. 물론, 내가 겪었고 들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 중 영화화되지 않은 소재를 취하려고는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지나가다 눈 감고 아무나 잡은 후 그 사람을 10시간 취재하면 영화 한편이 나올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누구나 자신만의 흔적과 사연이 삶에 자리하고 있다 본다. 재밌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러한 이야기는 해줄 필요가 있고, 나에게는 잘 맞지 않나 싶다.

사랑이야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고 했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셨을 거라 본다. 말씀드렸듯 사내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뤄왔고 멜로는 처음이니까. 결국 어느 지점에서 가장 힘들었다는 말인지.
이게 남녀의 사랑이야기보니 어쩔 수 없이 인호 미주 두 캐릭터의 감정교류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둘이 함께 하는 장면의 촬영만 들어가면 딴 생각이 전혀 안 날 만큼 긴장하고 힘들어했다.

이 영화의 배경을 부산으로 선택한 이유는 예전에도 그랬지만 당신이 몸으로 부딪히고 살아온 부산토박이기에 여러 모로 익숙하고 또 영화적 밀도를 높이는 데 상승작용을 일으킬 것이라 예상했기 때문인가
정확한 지적이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다른 거 없다.

고로, 자연스럽게 <친구>가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욕이라고 생각하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나올 수 있고, 들을 거라 생각했다. 사투리도 그렇고 정서도 비슷하니까! 또 <친구> 외에도 두 영화가 언급될 수도 있다 봤다.

어떤 영환가? <달콤한 인생>
맞다. 이야기 자체가 빤하고 원형적 사랑이라 <로미오와 줄리엣> 코드와 유사하다는 거랑 보스의 여자와 비극적 사랑 관계라는 설정 때문에 <달콤한 인생> 정도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여하간, 이 세 영화가 어떠한 식으로 거론돼도 그에 대해서 나로서는 솔직히 할 말이 없다.

<친구> <똥개> <사랑> 등 당신의 영화의 공통점 중 하나가 지역성이 잘 녹아나 있다는 거다. 단순히 공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정서와 문화 정치가 영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분명 이러한 로컬한 정서를 띤 영화가 필요함은 당연하다. 앞으로도 이런 영화를 계속 기대해도 되겠는가
물론이다.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찍어나갈 계획이다.

근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친구>이후 <챔피언>이 잘 안 됐을 때 <똥개>를 찍었고, <태풍>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후에는 <사랑>을 들고 왔다. 욕심만큼 영화가 안 된 후에는 지역성을 띤 영화를 연출하는 그러니까 어떤 순환처럼 느껴진다.
(웃음) 내가 직접 작품을 연출하고 일종의 기획까지 하지만 인연이라 말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는 거 같다. 사람도 그렇지 않나? 내가 저 여자를 좋아 하는데 서로 인연이 맞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힘들지 않나?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주변 여건이 안 돼 어쩔 수가 없는 반면 그냥 이야기 거리로 옆에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그게 확 터져 착착 달라붙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례를 보자면 작품은 인연으로 하지 않나 싶다.

주진모의 캐스팅도 어떤 인연이 닿지 않았나 본다. 듣자하니 장동건 집에 놀러갔다가 <사랑> 시나리오를 읽고 주인공을 자처했다고 하던데
동건이 통해서 연락을 받았고 그런 다음 주진모를 만났다.

뭐라 하든가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그러니까 나를 보고 있는 표정자체가 마치 “저 이거 못하면 큰일 난다” 뭐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 열의를 보니 나로서는 이 친구가 딱!이구나 싶었고.

장동건에겐 친한 사이다보니 시나리오 함 보라고 그냥 준 건지 아니면 혹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건넨 건지
그건 아니다. 그 당시 동건이는 이미 <사막전사>라는 합작영화에 캐스팅이 돼 있는 상태였다. 작품이 하도 여기저기서 퇴짜를 맞다 보니까 엎을 때 엎더라도 내가 아는 영화 동지들한테 한번 보여주고 확인이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건네 준 거다. “이 이야기가 정말이지 진부함밖에 없냐! 넌 어떻게 생각하냐! 이거 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 니가 한번 봐줘라!” 그걸 묻고 싶었다.

돌아온 답은
“형! 절대 진부 안 하고 재밌으니까 일단 밀어붙이세요. 난 굉장히 좋아요” 그러면서 진모를 추천하더라! “내가 괜히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밥 먹다 옆에 시나리오 놔뒀는데 진모가 그걸 읽기 시작하더니 나중에 진모 녀석이 막 우는 거예요. 형 진모 <미녀는 괴로워>에서도 잘 됐고 또 걔가 목소리가 좋잖아요” 이렇게 말하는 거다. 그래서 “니가 캐스팅 디렉터냐!” 이렇게 물었다.(웃음)

주진모도 주진모지만 김민준 캐릭터 또한 인상적이었다. 작심하고 김민준의 기존 이미지를 바꿔버려야겠다 벼른 건가 아니면 본인의 의지였나
서로의 의지가 시너지 효과를 낸 거다. 김민준을 생각하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다. 촬영 들어가기 전이었는데 갑자기 조수가 와서 “감독님 김민준씨 아시죠?” “어 알지!” “그 친구가 카메오도 상관없고 아무 역할이나 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냐고 그러는데요.” 그 순간 치권 캐릭터가 팍 스쳤다.

어떻게 스쳤나
내가 알기로 민준씨가 부산사람이다. 또 유도를 했기 때문에 골격이 장대한 걸로 알고 있다. 반면에 진모는 얼굴이 작다. 그러니까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장면 중에 치권이가 인호의 얼굴을 확 잡는 장면이 있는데 그 큰 손에 인호 얼굴이 들어갈 거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그러면 오늘 저녁에 스케줄 잡아라!” 하고 굉장히 늦게 10시 넘어 만나 얘기했다. “내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고 말해줘 일단 고맙다.” 그런 다음에 이런 역할을 주고 싶고 그 이유는 뭔지 말해주고 대신 고생은 각오해야 될 거라고.

그랬더니
당연 콜했다. 진모가. 그리고 내가 <친구>때 동건이 이야기를 했다. 장동건이 유오성보다 비중이 작은 역할이라 여러 가지 부담이 있었는데 대신 내가 그때 약속했던 게 “절대로 영화 속에 묻히는 인물로는 안 만든다. 분명히 본인 캐릭터를 살리겠다” 다짐을 했다고. 그때랑 똑같이 내가 민준씨한테 약속을 할테니 날 믿어 달라! 그렇게 말했다.

결과적으로 그 약속을 지킨 거 같다.
더 봐야지 뭐! 여하간 미술쪽은 물론이고 비주얼에 관련된 스태프한테 김민준을 최대한 양아치로 만들어라 지시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치권이 탄생한 거다. 물론, 본인의 의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스스로 이뤄낸 거다.

이전에 ‘좋은 연기를 담고 있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라고 말한 적 있다. 때문에 장동건 유오성 정우성 주진모 등이 분했던 멋진 캐릭터가 나올 수 있었다 본다. 그런 감독의 단단한 소신만큼 남자주인공을 캐스팅하는 데 있어 나름의 원칙이 있을 텐데.
열의! 아까 말했듯 열의 하나면 된다. 그게 있어야 내 말이 먹히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다. 열의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흥행을 위해서 꼬셔봐야 나올 게 없다.

남자 배우의 또 다른 면모를 끄집어내는 데 탁월한 만큼 숱한 남자 배우들이 당신과 일을 하고 싶어할 거 같은데 어떤가
(웃음) 글쎄다. 그렇다면 좋겠지만 나로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근데 묘하게 이런 게 있다. 나하고 작업했던 배우들의 연령대를 보면 공통적으로 뭔가 변화가 필요한 시기들이다. 동건이 같은 경우도 수려한 외모로 각광받다가 30대 초 나이에 이르러 연기자로서 뭔가 변화기 필요한 시점이었고 그 다음에 우성씨도 마찬가지고, 태풍의 정재도 그러한 지점에 서 있었다. 이번에 진모도 다를 바 없다. 가만 보면 지금 말한 친구들도 그렇고 내가 30대 초반의 남자 배우를 좋아한다. 왜 그러냐면 그때가 얼굴에 젖살이 다 빠지는 시기다. 비로소 남자 얼굴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거다.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얼굴 상태가 가장 좋을 때다.

하지만 여자 캐릭터인 박시연의 경우는 주진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면적이고 생기가 없었다.
마지막 편집 때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엔딩 장면이다. 시나리오도 그렇고 애초 의도했던 엔딩은 지금과 다르다. 미주의 비중이 컸다는 얘기다. 근데, 여러 번 모니터링을 해봤는데도 당최 감정 이입이 안 되는 거다. 왜 그럴까 고민하다보니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 이야기의 전체적 흐름이 인호를 따라오다 마지막에 미주로 향하게 되니 감정적으로 뭔가 충돌되는 느낌이 있는 거다. 그래서 시연이한테 얘기했다. “시연아 내가 아무리 봐도 잘못 판단한 거 같다. 그러니 찍어놓은 분량 가지고 다르게 편집을 하겠다.” 시연이야 원래 그런 애니까. 나한테 “영화가 잘 되는 게 우선이니까 감독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요.” 그러더라! 그래서 인호의 시점으로 영화가 끝까지 간 거다. 그것 때문에 미주의 캐릭터가 다소 죽은 건 있는데 그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여성을 묘사하는 데 있어 부족함이 있음은 나 역시도 잘 안다. 그렇지만 미주로 분했던 시연이의 연기에 대해서 말하자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자부한다.

배우들의 연기를 디렉션 하는데 있어 스파르타식이라 들었다.
(웃음) 왜 그렇게 말이 나오지는 모르겠다.

그럼 아닌가
아니다. 난 많은 문제들을 대화로 푸는 편이다.

긍정적인 차원에서 나온 말 같은데
물론 그럴 거다.(웃음) 어쨌든, 난 스파르타식이 아니라 진짜로 아테네식이다.

감독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 있을 테고, 아쉬운 점이 그득한 장면도 있을 게다.
내 스스로 가장 만족해하는 신은 인호와 미주의 교도소 면회 장면이다. 무엇보다 두 연기자의 호흡이 너무나 이상적이었다. 내 머릿속의 그림 그대로 고스란히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장면 비해서 대화도 억지스럽지 않고 보기에도 가장 편한 신이다.

아쉬운 장면은
교도소를 출소한 후 인호가 자갈치 공장에서 일하는 신인 거 같다. 삶의 쳇바퀴에 끼어 굴러 갈 수밖에 없는 인호의 비루한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는데 촬영 여건상 욕심대로 안 됐다. 그게 좀 속상하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장면은 인호가 악질 건달 치권이를 추적하는 급박한 와중에도 택시비 걱정하는 모습. 그리고 돈을 더 달라며 채근하는 부하의 귀싸대기를 때리는 치권이의 비열한 폭력성이 드러나는 장면. 이 두 신이 좋았다. 사소한 거 같지만 두 인물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캐릭터를 구축함에 있어 작지만 큰 역할을 했다 본다.
그렇게 봐줬다면 고맙다. 저러한 소소한 장치를 누군가 기억해줄 때 정말 행복하다.

<똥개>가 너무도 좋았던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그 구닥다리 같고 하찮고 별 볼 일없는 무언가에 대한 진정어린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곽경택 감독 영화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일단 그렇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웃음) 또 집단과 개인을 설명함에 있어 세련되고 거대한 장치만 있는 게 아니니까. 불현듯 미국에서 공부하던 생각이 나는데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인간적인 갈등의 종류가 다양하다. 그들의 영화는 그러한 맥락을 잘 이용하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다인종 국가다보니 <대부>를 봐도 그들이 쓰는 말투는 보통 백인들이 쓰는 말투랑 다르다. 흑인 영화를 보면 또 다르고.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또 남부지방 사투리가 진하게 나온다. 대사 하나 억양 하나가지고 많은 것을 표현하고 드러낼 줄 안다. 우리나라 역시 다양한 액센트를 가진 말들이 존재한다. 서울말, 전라도, 강원도 사투리 등 다 저마다 맛이 있다. 스크린을 통해 다양하게 살려보고 싶다.

감독의 그러한 촌스럽고 복고적인 정서 때문인지 <똥개>를 봐도 시대적 배경은 분명 2000년도인데 전혀 그 느낌이 없다. 쌍팔년도의 남루함이 흘러 다닌다. <사랑>도 초반을 지나면 현 시대인데 그걸 당최 알 길이 없다. 인호가 차를 타고 코엑스 건물 앞을 지나가는 장면이 유일한 단서라고나 할까.
(웃음)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가는 거라면 모를까 굳이 억지로 자! 이제부터는 요즘 이야기에요. 라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사랑>은 멜로를 다루지만 감독의 전작들과 다르지 않다.
물론이다.

<태풍> 이후 1년 반 이상이 지났다. 그간 이 작품에만 매달려 있지는 않았을 텐데.
거의 2년 만이다. 시나리오를 4개 썼다. 처음에는 무라카미 류 원작의 <반도야 나가라>를 한.일공동제작으로 진출할 욕심이었다. 한 1년 정도 매달리다 조금 더 현실의 상황이 무르익기를 기다라는 게 났겠다 싶어 뒤로 미뤄놓은 상태다. 한반도와 독도문제로 당시 분위기가 썩 좋지 않았다. 그런 후 시나리오를 세 개 더 썼는데 중간에 엎어진 것도 있고. 그러다보니 너무 힘들더라! 더 이상 쉬고 싶지 않고 시간 까먹는 게 너무도 싫은 거다. 결국, 빨리 전쟁터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스태프와 상의를 거쳐 <사랑>에 이르게 된 거다.

<태풍>이후 <카인과 아벨>이라는 20부작 미니시리즈 TV 드라마를 제작할 계획도 있었다.
아! 그건 다른 회사로 넘겼다. 회사가 자금 사정이 썩 여의치가 않았다. 괜히 좋은 작품 우리가 끌어안고 있다 엎어지느니 좀 더 넉넉한 회사에 넘기는 게 낫다 판단해 이관시켰다.

기대만큼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태풍>으로 적잖이 힘들었을텐데.
영화든 뭐든 오래 기억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잘 까먹는다. 여하간, <태풍>은 영화 찍으면서 죽어도 할 수 없지! 라는 심정으로 임했던 작품이다. 소위 말해서 30대 후반의 청년기를 벗어나기 전 내가 갖고 있던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을 수 있는 영화였다. 때문에 경제적으로 심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그렇게 후회만은 남지 않는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이런 말들을 자주한다. 곽경택 감독은 블록버스터보다는 사람 냄새 나는 영화를 찍는 게 훨씬 낫다.
그럼 작은 영화만 찍어야겠네!(웃음)

동의할 수 없다?
동의 못한다.(웃음)

향후에도 그럼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를 연출하실 계획
물론이다. <태풍>과 같은 영화를 경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 큰 영화를 하지 않으면 노하우를 묻히는 거다. 그리고 규모가 큰 영화들이 몇 편씩 나와 줘야 업계가 산다. 영화산업을 지탱해 나갈 수 있는 노하우를 제공하고 주변 환경을 조성해준다. 미국이 블록버스터급 영화에 우호적이고 절대적 지지를 해주는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관객이 <사랑>을 본 후 어떤 마음으로 극장 밖을 나섰으면 좋겠나
음.....<억수탕> 때는 야한 생각을 안 하고 나왔으며 좋겠다는 거였고.

방은희씨가 나왔던 <억수탕> 비디오로 봤었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배경이 목욕탕이라는 이유로 지저분한 생각을 안 했으면 했고, <닥터 K> 때는 한 인간의 연민을 헤아려줬으면 했고, <친구> 같은 경우는 지금은 연락이 안 되는 친구를 이 영화를 통해 만났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 다음 <챔피언>은 원래 취지가 그랬지만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 그야말로 개발도상국 중에는 우위에 있는 상황까지 오기까지 헝그리 정신으로 살았던 선배들을 한번만 기억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똥개>는 곰살궂게 표현되지 않는 부자지정을 한번쯤 느껴봤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싶었고, 뭐 <태풍>은 너무너무 마이너리티지만 우리 탈북자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만날 욕만 먹지만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어떤 군인들에 대한 존경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드디어 <사랑> 차례다.
이번에는 딴 거 없다. <친구>때랑 비슷하다. 인호와 미주의 사랑을 보고 옛날에 만났던 걔는 요즘에 뭐할까 하는 생각! 그 생각만 해주면 땡큐다. (웃음)

이른 질문이지만 혹 <사랑>이후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차기작이 있는지 모르겠다.
시원한 코미디를 해보고 싶다. 요즘 코미디와는 좀 다르게! 그러니까 보통 코미디영화를 보면 주로 그렇지 않나? 웃기다가 마지막에 눈물 찔끔하게 감동을 주는. 그런 거 말고 한번 보고 나면 하루 종일 방글방글 웃을 수 있는 코미디. 뭐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어떤 영화를 꿈꾸고 만들고 싶으신가?
한국에서 영화를 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한테 어필해 보고 싶다.
예를 들어 많은 분들이 미국의 어떤 영화 프랑스의 어떤 영화를 마스터피스로 생각하면서 이야기할 때가 많잖나. 한국영화도 충분히 그러한 반열에 올라 전 세계적으로 회자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좀 더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 동네 사람들의 삶을 스크린에 담아 전혀 다른 동네 사람들한테 보여줘서 서로가 많은 걸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일인 거 같다. 그러면 싸울 일이 있어도 서로가 좀 참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지금 말한 내 영화로 인해 사람들의 영혼이 밝아질 수 있다면 제일 행복할 거다.

곽경택 감독의 사랑은 어땠나? 인호처럼 순애보적 아니면 경상도 사내들처럼 무뚝뚝함 그 자체?
굉장히 단순무식하면서도 교활했다.(웃음)

보기와는 다르시다.
그러니까 단순무식하게 접근했다가 조금 사태가 안 좋다 싶으면 내가 차이기 전에 먼저 차고, 아니면 내가 차이는 게 차라리 덜 괴롭겠다 싶으면 내가 차이는 쪽으로 가고. 뭐 그랬다.

혹 기회가 생긴다면 앞으로도...
글쎄, 앞으로는 모르겠다. 근데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일이 있을까?(웃음)

2007년 9월 20일 목요일 | 글_서대원 기자(무비스트)
2007년 9월 20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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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op1434
이번엔   
2007-09-20 22:29
theone777
무릎팍 도사에 빚이 많아 주진모 대신 출연했다는 ㅋㅋㅋ   
2007-09-20 16:32
ruqdmsaksu
앞으로도 좋은 영화 만들어주세요 ^^   
2007-09-20 16:31
ldk209
별로 호감가지 않는 감독....   
2007-09-20 16:09
shelby8318
후후!!   
2007-09-2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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