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 블리스(엘렌 페이지)는 극성스러운 엄마(마샤 게이 하든)에 못 이겨 마음에도 없는 미인대회를 전전한다. 몸을 꽉 끼는 드레스가 숨 막히는 블리스는 어느 날, 친구와 롤러 더비 대회를 구경하게 되고, 트랙 위를 자유롭게 활보하는 선수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결국 나이와 신분을 숨기고 롤러 더비의 만년 꼴지팀 ‘헐 스카우트’에 들어간 블리스는 엄마의 눈을 피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타고난 기량을 발휘하며 순식간에 롤러 더비 최고 인기 스타로 급부상하고, 멋진 보컬 남자친구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탄탄대로를 걷는 그녀의 행보는 거짓말들이 하나둘 씩 들통 나면서 위기에 봉착한다.
많이 익숙한 줄거리다. 보수적인 부모에게 억눌려있던 소녀가 자신의 꿈을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슈팅 라이크 베컴> 같은 성장 영화가 연상되고, 오합지졸 선수들이 승승장구해 간다는 것에서 <워터 보이즈>나 <국가대표>류의 스포츠 영화가 떠오르며, 엄마와 딸의 관계 회복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애자>와 같은 모녀영화가 겹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기시감이 <위핏>을 평가 절하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그쳤다면 그저 ‘잘 만들어진 영화의 조합물’ 정도에 불과했을 테지만, <위핏>은 앞선 영화들의 단순한 리플레이를 넘어 그만의 독창적인 질서를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예컨대, 미인대회 입상이 보다 나은 삶을 보장해 주는 길이라 믿는 엄마와 거칠지만 자유가 있는 화려한 도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서고 싶은 딸의 갈등은 1차적으로 드러나는 모녀간의 갈등을 뛰어넘어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대립으로 깊이 침투한다. 롤러 더비 최고의 인기스타로 급부상하는 주인공 블리스와 블리스로 인해 그 인기를 빼앗기는 상대팀 리더 메이븐(줄리엣 루이스)과의 관계 역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이분법적 편 가르기와 거리를 둠으로써 그만의 차별성을 획득한다.
엄마가 머물고자 하는 안전한 전원의 삶과 딸이 나아가고자 하는 도시의 삶, 그 어는 것에 대해서도 특별히 두둔하거나, 미화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 역시 이 영화의 건강함이다. 영화는 다만, 엄마가 속한 세계가 안전하긴 하지만 무미건조할 수도 있음을 블리스를 통해 드러내고, 딸이 그토록 염원하는 화려한 도시의 삶이 오히려 더 고독한 곳일 수 있음을 롤러 더비의 팀원인 미혼모 메기를 통해 암시할 뿐이다.
<주노>로 일찍이 연기력을 인정받은 엘렌 페이지와 블리스의 엄마 마샤 게이 하든의 안정적인 연기가 극을 풍부하게 하고, 조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가 <위핏>의 짜임새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든다. 여기에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 온 줄리엣 루이스와의 재회가 반갑고, 엘런 페이지와 사랑에 빠지는 역할로 등장하는 실제 꽃미남 가수 랜던 피그와의 만남이 꽤나 즐겁다. 혹독한 훈련을 받은 배우들의 롤러 더비 장면들도 유쾌한 볼거리를 안기는데, 롤더 더비의 경기 장면들이 마침 벤쿠버 동계 올림픽에서 고군분투 중인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의 모습과도 맞물리니, 이와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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