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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놈놈>의 논란에 부치는 중간평가!
2008년 7월 24일 목요일 | 박부식 영화평론가 이메일


<놈놈놈>에 대해 억지비판을 늘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지만 어느 인터뷰에서처럼 감독이 내러티브의 결함에 대한 비판을 그냥 무시하겠다는 식의 발언은 상당히 안타깝다.

왜냐하면 내러티브에 대한 문제제기는 비단 일부 평론가들에 의해서뿐만이 아니라 상당수 관객에 의해서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스토리의 비어있음이 스타일 혹은 시각적 쾌감이 상쇄할 뿐만 아니라 '포스트모던'하다고 까지 평가하는 분들도 있기도 하다. 일리가 있는 평가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평가야 말로 여러가지 자가당착적인 요소를 띠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는 이런 식의 시각적 현란함과 스펙터클의 쾌락이 내러티브의 결핍을 상쇄시킬 뿐만 아니라 의도적이며 따라서 '포스트모던'한 새로운 영화라고 평가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가끔 '포스트모던'을 시각적 충동에 의한 스펙터클의 감각적 경험과 혼동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지극히 '나르시시스트적' 감성을 이론적 레떼르로 때워보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 논란이 매우 의미있는 담론의 장을 열어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래서 <놈놈놈>이라는 영화의 평가 그 자체와는 별도로 이 영화가 의미있는 '대화'를 열어줄 수 있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찬탄 혹은 비난 식의 글보다는 조금 다른 시각의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이하 몇가지의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보고자 한다.

영화에서 내러티브의 불완전함은 의도적으로 비워내거나 그것이 다른 시각적 메타포들로 인해 상징화되고 풍부화될 때 상쇄되거나 오히려 더욱 풍성해질 수 있는 것인데 내러티브의 전개를 시각화하거나 상징화할 수 있는 미장센이 이 '결핍'들을 메워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락영화의 내러티브가 단순한 것 같지만 실제로 분석을 해나가다보면 이 내러티브가 품고 있거나 사방팔방으로 열려질 담론의 꼭지가 상당수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디아나 존스>의 경우 '고고학'이라는 고루해보이는 학문의 이력 아래 인간의 이성이 닿지 않는 '불가지한' 신성 혹은 초자연적 요소들을 통해 흥미를 끌고 있다. 나는 시리즈 중에서 특히 성배를 찾으러 가는 과정에서 존스가 처하게 되는 화두같은 물음에 답하는 장면들을 영화의 백미로 기억하고 있는데 다들 기억하듯이 무조건적인 믿음을 통해 불구덩이의 칼날들을 피하고 절벽 위에서 한 발 더 내딛는 장면들은 그래서 더운 기억에 남는다.

이는 단지 보물을 찾으러가는 하나의 단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성 너머에 존재하는 신성이라는 것에 대한 접근이 매우 상징화된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스타워즈>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로 거대한 우주에까지 인간지평의 한계를 넓히고 선악의 대립구조를 가족신화 안에 배치하였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영화의 플롯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구로사와의 영화는 거의 모든 작품들이 세익스피어 모티브로 분석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갈등과 비극적 운명에 대한 오마주로 구성되어 있다. 최근의 유행하고 있는 <맨>시리즈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주 단순한 선악구조로 보이지만 서브플롯과의 상관관계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이 매우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관객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맨' 시리즈의 원동력은 이런데 있다.

그런데 감독은 '평론가들은 왜 감독이 만들어낸 것에 집중하지 않고 '내러티브'에 대한 비판만을 하는가'라고 묻고 있는데 여기에서 매우 실망하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영화에서 감독이 제시한 것만을 보라는 건 매우 전체주의적 발상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첫번째로 영화를 만나게 되는 관객의 한 사람인 '평론가나 기자'들은 '첫 눈'을 밟는 심정'으로 영화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뒤에 올 사람들에게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놈놈놈이 불러일으키는 논란 아닌 논란을 피할 필요는 전혀 없다. 칭찬 일색의 예술영화가 흥행에 참패하는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이 대중영화는 언제나 '논란' 속에서 시대를 대표하는 '담론'으로서 기능해왔기 때문이다.

놈놈놈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어쩌면 아무런 저항없이 칭찬 일색의 단순한 과정을 통해 단지 흥행작으로서 마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천만관객 이상을 동원한 영화들은 그야말로 논란 속에서 활발한 '담론'을 생산하도록 추동하는 '논란'촉발제였기 때문이다. '동성애'담론에 대한 일정정도의 고정관념을 해체한 <왕의 남자>나 '분단이데올로기'가 단지 이데올로기일 뿐이라는 점과 그 한계를 명백히 했던 <실미도>, 한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심대한 질문을 '미국과의 굴종적 관계'라는 관점에서 담아 보냈던 <괴물> 등 모두가 한국 사회가 익히 제기했던 질문들을 극대화시켜낸 영화들이었기 때문이다. <놈놈놈>이 질문을 두려워 한다면 결코 심리적 한계선인 천만관객을 돌파하지 못할 것이다. 혹시 CJ가 천만관객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 말이다.

장광설이 길었다. 다시 <놈놈놈>의 내러티브 문제로 돌아가보자. '세놈'이 펼치는 스펙터클과 만주의 광활함이 스토리의 '결핍'을 넘어 영화의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는가에 대한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 최근의 '포스트모던' 담론에 의하면 스타일 그 자체는 이야기의 내용과의 분리를 넘어 일체화된 것이며 오히려 '스타일 그 자체가 이야기'라는 새로운 아포리아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놈놈놈'은 전형적으로 포스트모던한 새로운 담론의 위대한 영화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것이 정녕 새로운 '영화'인가에 대한 평가는 좀 더 정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 어쩌면 감독 혹은 제작진의 경우 오락영화에 무슨 그다지도 많은 '의미부여'가 많은가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면 위의 헐리우드 영화의 단순해보이지만 '신화와도 같은 내러티브' 플롯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평론가나 기자'라는 직업이 원래 이런 일을 하는 집단이라는 점을 이해해주면 고맙겠다. 호쾌한 액션이 불러일으키는 '스펙터클'의 짜릿한 쾌감은 분명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음은 분명해보인다. <무사>에서 비롯되기 시작한 광활한 공간에 대한 욕망과 그 공간에서 펼쳐지는 '스펙터클'은 점점 한국영화에서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말이 쓰러지고 총탄이 빗발치는 장쾌한 추격씬이 펼쳐지며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평원 위의 액션씬은 분명 '헐리우드' 키드로 자라난 한국의 감독들에게 매우 유혹적인 상상일 것이다. 만주라는 잃어버린 상상의 공간에 펼쳐지는 한국적 액션의 새로운 면모를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있는 도약일 수 있다. 그런데 여기 <쇠사슬을 끊어라!>가 정전처럼 여겨지는 한국영화의 만주웨스턴이 어디에서 기원했으면 한국영화사에서 어떻게 자리매김되는지를 안다면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평가해볼 여지가 생긴다.

그것은 이 국적불명의 영화들이 한국영화의 정점에서 선보였던 수많은 장르적 퓨전 혹은 아류작 남발의 와중에서 만들어진 영화라는 점이다. 만주웨스턴이라고 불리는 <쇠사슬을 끊어라!>를 정점으로 한국영화에서 수없이 많이 만들어졌던 홍콩무협영화 아류의 영화들 그리고 무협장르의 비틀림으로서의 '만주물'들이 점차 사라져버렸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얼마나 많은 홍콩무협물과 아류작들 그리고 장르퓨전물들이 만들어졌는지는 영화사에서 그 목록들만 들춰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숫제 홍콩영화사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분량의 무협물들이 만들어졌던 역사가 있다. 그런 점에서 왜 갑자기 이런 무협물들과 퓨전장르극들이 사라져버렸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보아 70년말로 접어들면서 유신독재체제의 억압은 더 이상의 '영화적 욕망'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시대적 비극을 반영하는 멜로물이 대세를 이루며 80년대의 에로사극시대로 넘어갔다는 것이 대체적 평가이다.

'쇠사슬을 끊어라'가 한국영화에서 만주웨스턴의 정전이며 그에 따라 '놈놈놈'이 그 전통을 잇고 있다는 평가는 그런 점에서 단절적이기도 하고 연속적이기도 하다. 애초에 그런 고유의 전통이란 오직 홍콩무협 혹은 장르퓨전의 한 갈래로서 존재했다는 점에서 그런 이중적 측면이 발견된다 하겠다. 특히 <쇠사슬을 끊어라>의 경우 세명의 남자가 벌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비교적 뚜렷한 공통점을 <놈놈놈>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이 영화가 갖고 있었던 '역사적 상상력'과 '영화적 욕망'을 단지 스펙터클로서만 편취할 것이 아니라 현재적 의미에서 새로이 부활시켜낼 수 없었는가라는 아쉬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더군다나 좀 더 명백히 하자면 이 스펙터클들이 다른 글에서 밝혔듯이 지독한 '데자뷔'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플롯이 성긴 내러티브에 어딘가 본듯한 장면들이 반복되는 영화라면 도대체 이 영화를 제대로 평가해 줄 수 있는 대목은 어디란 말인가? 스탭들과 제작진들의 지난한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서구웨스턴에 대한 오마주가 아닌 '흉내내기'라면 그에 들인 공이 너무 허무해지지 않는가 말이다. 더욱이 <놈놈놈>의 시사 직후 느꼈던 소회는 이명세의 <형사> 혹은 <M>을 보고 난 후 느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매우 시각적으로 훌륭한 스펙터클과 비주얼적 쾌감을 스크린 위에 수놓았지만 도무지 심장 아래 1센티미티도 쾌락이 전이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사>가 제시한 퓨전사극의 무국적성이 새로운 이미지의 ‘과잉’ 속에서 전혀 녹아들지 않고 도드라지는 이상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모두들 극찬과 찬사를 퍼부어대는 속에서 이상하게 찜찜한 느낌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해 본 결과 제작한 측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것은 <형사> 때의 느낌과 흡사한 감각이었다. 이것은 무국적의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도드라지는 ‘낯선 대상’들과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낯선 대상'들은 이종적으로 결합된 풍경들의 스펙터클과 이야기 전개에서 나타나는 공간들이었고 사라져버린 것은 그것들을 매개할 개연성과 모험과도 같은 두근거림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역사적 상상력'의 심원한 저수지들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내러티브들이 가닿을 어떤 '신화와도 같은 이야기'를 기대했으나 나는 결국 그다지 설득력도 없는 허무한 '170억짜리 맥거핀'만을 목도했다.

그에 반해 <님은 먼곳에>의 경우에는 반대로 매우 전통적 방식의 플롯을 통해 캐릭터를 복속시키는 어쩌면 매우 보수적인 스타일의 영화이다. 스스로 보수적이라기보다는 진보에 가까운 영화적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놈놈놈>의 이종배합보다는 정공법의 영화가 더 마음에 드는 건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아마 그것은 한국영화에서 ‘말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아우라 그러니까 역사적 상상력이 작용하는 공간에 대한 협소한 이해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한국인에게 만주라는 공간은 역사교과서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매우 추상적인 공간이기 쉽다.

그 공간을 배우들의 캐릭터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려면 매우 섬세한 세공술이 필요할 것이다. 말하자면 캐릭터의 일상이 짙게 배어있는 그런 삶의 토대가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만주’를 달리는 기차의 액션은 호쾌했으되 플롯의 시작으로서 ‘지도의 가치’는 그다지 크게 않았고 게다가 만주를 누비는 마적단의 ‘폼’은 트렌디한 펑크족 스타일을 닮았다. 정우성의 모습은 어느 기자의 표현처럼 ‘간지 잘잘~’이지만 그 역시 아우라를 풍기기보다는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데자뷔 현상만 일으켰다. 그가 멋지다는 의견에는 토를 달고 싶지 않지만 그저 멋지기만 하다는데에도 이견은 그다지 없어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스펙터클을 감싸는 아우라가 어디에서도 뒷받침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것은 무국적의 역사적 배경 아래에서 도드라지는 ‘낯선 대상’들과 익숙하고 낯익은 세계라는 ‘생활세계’의 사라짐으로 인한 아쉬움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동시에 낯설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에 반해 <님은 먼곳에>의 경우에는 반대로 매우 전통적 방식의 플롯을 통해 캐릭터를 복속시키는 어쩌면 매우 보수적인 스타일의 영화이며 <놈놈놈>의 이종배합보다 <님은 먼곳에>가 더 마음에 드는 건 아마도 영화에 대한 배경을 알고 있는가 아닌가라는 점이 될 것 같다.

아마 그것은 한국영화에서 전통 혹은 역사라는 ‘말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아우라 그러니까 <님은 먼곳에>의 경우 베트남전이라는 우리가 익히 아는 역사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상상력이 영화를 친숙하게 받아들이도록 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에 <놈놈놈>의 낯섬은 식민시기를 거치면서 만주라는 공간 자체가 한국인의 인식지도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 한국사회의 구조적 억압(식민치하를 거치면서 만주라는 공간은 인식지도에서 사라졌다)역사적 망각에 의해 만들어진 효과일 것이다. <놈놈놈>에서 본 것이 데자뷔 현상만 일으킨 이유이다.

* 무비스트와 네오이마주는 기사를 교류하는 제휴매체로 이 글은 양 매체에 실렸음을 알려드립니다.

2008년 7월 24일 목요일 | 글_박부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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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가 제시한 퓨전사극의 무국적성이 새로운 이미지의 ‘과잉’ 속에서 전혀 녹아들지 않고 도드라지는 이상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이상한 경험이란 것도 글쓴이의 주관적 경험 아닐까...   
2008-07-2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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