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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달큰한 취향(醉香) <페스티발> 오달수
페스티발 |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푸른색 계열의 와이셔츠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 인터뷰 한 걸 보면 푸른색을 많이 입으셨던데, 오늘도 푸른색이에요.
네. 푸른색이나 감색 계통을 많이 입어요. 밝은 옷을 안 입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저는 칙칙한 색이 더 잘 어울립니다.

요즘 한창 <조선 명탐정> 촬영 중이라 들었어요. 그것 말고도 개봉예정인 영화가 두 편(<헤드> <푸른소금>) 더 있던데, 언제 다 찍었나 싶을 정도로 빠르십니다.
<푸른소금>은 우정출연 개념이고, <헤드>는 더미로 뜬 제 머리만 나옵니다.(웃음) 지금 촬영 중인 <조선명탐정>은 힘들 게 찍고 있어요. 시대극이다보니 전봇대나 현대식 건물들을 피해 다녀야 하거든요. (병맥주 뚜껑을 따며)아, 죄송합니다. 저만 술 마셔서.

괜찮아요. 술 좋아하시죠? 촬영 때도 동료들과 술을 자주 드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날의 피로는 그 날 풀어야죠. 그런데 오늘은 비도 오고, 출출해서. 하하하.

(웃음)<페스티발>은 어떻게 보셨나요? 섹시를 내세운 코미디라 걱정도 됐을 법한데요.
저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세 커플이 파트별로 찍으니까, 배우들끼리 만날 일이 거의 없었어요. 다른 팀들이 어떻게 나왔나 궁금했죠. 감독님께서 재미있게 잘 찍으셨더라고요.

특별히 궁금했던 커플이 누구인가요?
심혜진, 성동일 선배 커플이요. 특히 두 분 아지트(SM 행각을 벌이는 곳)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궁금했는데, 와~ 죽이던데요?(웃음)

광록은 태껸을 하고 서예를 즐기는 바른 생활 사나이지만, 레이스 바람으로 동네를 돌아다니는 독특한 성적 취향도 지녔습니다. 평범과 비범 사이를 오가야 하셨을 텐데, 시나리오 받았을 때 어땠습니까.
처음에는 “참 임팩트 있겠다” 싶었고, 그 다음에는 조금 슬픈 기분이 들었어요. 그곳에 나온 인물들을 마치 반사회적인 인물인 냥, 변태인 냥 손가락질 당하는데, 그렇지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 누구보다 욕망에 솔직한 사람들일 뿐인 거죠.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현실이 짠하더라고요.

시나리오에서 느낀 슬픔이 원하는 만큼 영화에 표출된 것 같나요? 완성된 영화를 보니, 전체적으로 웃음에 방점을 찍은 영화였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무겁지 않고 ‘툭’ 잘 던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페스티발>이 헤비한 메시지의 영화잖아요. 그런 무거운 주제를 어렵지 않게, 유쾌하게, 때론 귀엽게 접근하는 자세가 참 마음에 들더군요.
처음부터 광록 역으로 출연 제의를 받으신 건가요? 개인적으로 성동일씨가 연기한 ‘마조히스트’ 기봉을 연기하셨어도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기봉은 성동일 선배 아니면 안 됩니다. 찍으면서 성동일 선배 아니면 힘들겠구나 싶었죠.(웃음) 시나리오는 <방자전> 찍을 때 받았는데, 대본을 읽는 순간부터 저는 광록이라는 인물에게 끌리더라고요. 참, 매력 있었습니다.

<방자전>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광록은 성에 너무나도 솔직한 <방자전>의 마노인과 대치되는 인물입니다. 마노인이라면, 광록에게 뭐라고 조언을 해 줬을까요?
(웃음)마노인인이라면 “소심하게 그러지 마라”고 조언을 해 줬겠죠? 하지만 결국 광록 스스로가 답을 찾았을 것 같아요. 광록은 와이프에게 선물할 속옷을 사러 갔다가, 우연히 본인 안의 다른 취향을 발견하는 인물입니다. “이게, 뭐지?” 의아해 하죠. 그걸 발견한 게, 행운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건지 끊임없이 자문하는 인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지 않았을까요.

그 답이 뭘까요?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부드러운 감촉! 광록이라는 인물은 붓글씨도 쓰고 나름 섬세한 인물이에요. 그러다보니 단순하게 부드러운 감촉에 빠진 게 아닌가 싶어요. 아니면 시각적으로 붉은색에 끌린 것일 수도 있고요. 여자가 되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니라고 봤습니다. 영화에서도 광록의 비밀을 알게 된 와이프가 묻잖아요. “여자가 되고 싶고, 그런 건 아니지?” 그 물음에 “그런 건 아니다”라고 하죠.

그때 아니라고 말한 광록의 말은 100% 진실이었을까요?
저는 진실이라고 봐요. 스스로도 여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연기를 했고요.

<페스티발>은 각기 다른 취향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광록이라는 인물의 독특한 취향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달수씨 스스로도 광록을 이해하기 위한 계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시나리오에 이런 지문이 있어요. ‘아파트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머리가 살짝 흩날린다’ 그 때 광록이 밖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껴요. 결국 속옷 바람으로 나가서 공원을 달리는데, 광록에게는 처음 있는 일입니다. 세상 속에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게 말이죠.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런 결심을 했을까. 그 때 광록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천하장사 마돈나> 동구(류덕환)의 미래 모습이 광록이 아닐까 싶더군요. 동구가 스스로 원하는 바를 못 이뤘으면 광록처럼 숨어있지 않았을까 싶던데, 광록의 미래는 어떨 것 같나요?
그러고 보니, 정말 동구와 비슷하네요. 미래에는 와이프랑 똑같은 잠옷을 입고 자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와이프에게 속옷 선물을 해 줬을 것도 같고요.

이해영 감독님이 “여성 속옷과 함께 카메라 앞에 선 오달수의 자태는, 폭발적으로 웃긴 동시에 아련하게 아름답고, 심지어 요정과도 같다”고 말씀 하셨던데, 동의하시나요?
(웃음)지금은 배가 조금 나와서 그렇지만 20대 때에는 우리 누나들도 부러워하는 몸매였습니다. 허리가 28이었거든요.

형제가 어떻게 되나요?
2남 2녀예요. 큰 형님이 있고, 누나 두 명.
여자 형제들, 특히 누나가 있는 남자들은, 그 영향을 많이 받던데요.
맞아요. 제가 보기보다는 섬세한데, 그게 누나들 틈에서 자란 영향 같아요.(웃음) 작은 누나가 큰 누나를 “언니, 언니” 하고 부르니까, 저도 큰 누나를 “언니”라고 불렀어요. 또 큰 누나가 작은 누나를 이름으로 부르니까, 저도 작은 누나는 이름으로 불렀죠. 이렇게 호칭에서도 영향을 받는데, 두 누나 틈에서 얼마나 많은 학습이 됐겠습니까. 물론 지금은 그런 걸 다 떨쳤다고 생각하지만요!(웃음)

촬영 현장은 어땠나요? 민망한 신도 많았을 텐데요.
저도 저지만, 심혜진, 성동일 선배가 더 곤혹이었을 거예요. 그분들도 결코 민망하지 않은 의상이 아니거든요. 또 저는 대부분이 실내씬이라, 우리 스태프들끼리만 이해하고 넘어가면 됐는데, 두 분은 대 낮에 길에서 찍는 씬들이 많아서 고생을 했죠.

극중에 입은 붉은색 란제리는 어떻게 선택한 건가요? 입어 본 소감은?
괜찮던데? 잘 어울리더라고요.(웃음) 란제리는 의상 피팅 할 때 정말 많이 입었어요.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심지어 퀵으로 배달해 가며 갈아입었죠. 언제 그런 걸 입어보겠습니까.

광록은 레이스 달린 속옷을 좋아하던데, 그냥 물어보고 싶었어요. 오달수씨 개인의 취향은?
으하하하. 실크 질감? 그게 참 부드럽고 좋더라고요. 부럽습니다, 여성분들.(웃음)

독특한 성적 취향만 없었다면, 이제껏 오달수씨가 맡은 인물 중 가장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여성 속옷을 입으니까, 어떤 영화 못지않게 센 캐릭터가 된 거지, 그게 없었으면 조금 심심한 인물이죠. 여성 속옷을 입지 않았다면 연기 할 때, 답답했을 겁니다.

그러고 보면, 전작 <해결사>에서 그나마 평범한 성격의 캐릭터를 보여 주셨어요.
그 때는 일부러 누르면서 연기를 했어요. 감독님은 전혀 누르는 연기를 원하지 않았는데, 제가 요구를 했습니다. 카리스마를 보여주려고 했는데, 보였는지는 모르겠네요.(웃음)

왜 그런 주장을 했나요. 그 시점에서 뭔가 다른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 한 건가요?
범죄영화고 액션도 많은데, 웃겨버리면 영화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웃길 수는 있죠. 그런데 상황 자체가 대놓고 웃겨서는 안 됐었기 때문에, 인물도 그 상황에 맞게 자연스럽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달수씨는 인연을 중요시 여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찬욱 감독님 작품에는 <여섯 개의 시선> 이후 <쓰리 몬스터>를 제외한 모든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송강호씨와는 <푸른 소금>으로 6번째 호흡을 맞췄죠. 연극 이해제 연출님과는 의형제를 맺을 정도로 막역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저는 그런 겁니다! 사람이 염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마웠던 사람, 같이 작업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소중한 마음을 가져야지 혼자 잘났다고 하면, 염치가 없는 거거든요. 인연을 중요시 여긴다기보다는, 적어도 염치는 가지고 살자고 다짐하는 게 큰 것 같아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이제까지 염치를 가지고 살아 왔다고 느끼나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섭섭해 하는 사람도 있겠죠, 분명히?(웃음)

<음란서생>을 함께 한 한석규씨가 “오달수는 많이 듣는 대신 적게 말하고, 말하는 대신 행동하는 배우”라고 했습니다. 사실 대중이 생각하는 오달수씨의 이미지는 코믹스러워요. 그런데 동료들 말에 의하면 당신은 진중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오늘 직접 만나보니, 저도 그렇게 느껴지고요.
연기는 액션도 중요하지만 받아주는 리액션, 그게 백미죠, 백미! 거기에서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서, 이 사람들의 관계가 명확해 지기도 하고, 활력도 붙죠. 리액션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 딱히 내 세울 건 아니에요.

반대로, 본인의 액션에 리액션을 잘 해주는 배우를 꼽아 줄 수 있나요?
많죠. 저는 좋은 배우들을 참 많이 만났는데, 그건 복인 것 같아요, 복! 감독 복도 있는데, 특히 박찬욱 감독님은 제 인생에서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에요. 영화를 잘 모르는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도 시켜주고, 설명도 해주고, 가끔은 어떻게 이것도 모르냐며 타박도 주셨죠.(웃음) 박 감독님을 빼놓고 제 영화 인생은 얘기 할 수 없어요.

연극으로 연기를 시작하셨어요. 1990년대에 시작해서 서른 중반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영화에 입문하셨는데, 밖에서 바라봤던 영화계와 실제로 경험한 영화계엔 차이가 있던가요?
연극만 할 때는 영화에 대해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 보니까, 연기자는 역시 그냥 연기자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기를 하는 연기자에게 무대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여건은 많이 다르지 않나요. 그것 때문에 영화 쪽으로 가려는 연극배우도 많고요.
물론, 영화가 생활고는 덜어주겠죠.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연극을 잊어버리고 영화로 가는 건 아니라고 봐요. 영화 하는 건 좋지만 연극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거죠. 앞으로 영화 쪽으로 가시는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갔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에요.

반대로 영화 쪽에서 잘 된 후, 다시 연극으로 돌아 온 배우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유명세를 이용해서 연극을 한다는 시선 말이죠.
그런 삐딱한 시선은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그냥, 내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봅니다. 그런 건 무시해 버리면 돼요, 무시!(웃음)

(웃음) 그런 면에서 <방자전> <해결사>에서 함께 한, 송새벽씨가 반갑겠습니다. 송새벽씨도 연극 무대 출신이시죠. 한창 함께 거론도 많이 되시던데요.
새벽이는 총명해요. 영화를 오래 안 했는데도, 자기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친구죠. 연극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 영화는 영화대로 잘 하고 있으니까, 앞으로 잘 될 겁니다.

한 때, 우스갯소리로 ‘충무로 영화는 오달수 나오는 영화와 나오지 않는 영화로 나뉜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한동안 뜸하셨고, 올해 다시 활발하게 활동 하시는 것 같아요.
올해 다시 많이 했죠. 다작을 하다 보면 ‘이게 득이 될까, 실이 될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고민은 안 할 수가 없죠. 그런데 결론은, 꾸준하게 관객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는 거예요. 다행히 지금까지 제가 출연한 영화중에 작품적으로 떨어지는 건, 한 편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그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런 좋은 작품들이 자꾸 보이니, 안 할 수가 없는 거죠.
듣다보니, 기본적인 질문을 안 할 수 없는데, 시나리오 볼 때 뭘 우선순위로 두나요?
감독을 가장 먼저 봅니다. 신인감독이라도 주변에 물어보면 알 수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원신연 감독의 <구타유발자들>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가 너무 좋기도 했지만, 이전에 봤던 그 감독의 단편 <빵과 우유>가 크게 작용했어요. 그 때 “아, 이 감독은 내가 믿고 가도 되겠다” 싶었거든요. 그 다음으로 고려하는 게 시나리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어떤 감독의 작품이라는 걸 듣고 읽는 거랑, 그냥 읽는 거랑은 믿음에서 차이가 나요.

감독, 시나리오도 중요하지만, 본인이 어떤 캐릭터를 맡는가도 중요할 텐데요.
그렇긴 합니다만, 감독 좋고, 시나리오도 좋은데 제 역할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안 하겠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출연 작품이 많은 만큼, 촬영시기가 겹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최대한 겹치지 않으려고 해요. 한 작품 할 때는 거기에만 집중하려고 하고요. 그래도 겹치게 될 때에는 운영의 묘를 부려야죠. 서로 피해 안 되게끔.

노하우가 있으시군요. 2006년도에는 어떠셨는지 궁금하네요. 그 해에 무려 9편에나 출연하셨죠.
그 해에 차를 새로 뽑았는데, 어느 날 매니저가 말하더라고요. “선배님!” “왜?” “저희 차 뽑은지 한 달 됐거든요?” “그래?” “그런데 저희 몇 킬로 달렸는지 아십니까?” “몇 킬로 달렸는데~?” “한 달 만에 만 킬로 달렸습니다” 제가 운전을 안 해서 잘 몰랐는데, 한 달에 만 킬로면 장난 아니게 많은 거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혹사시킨 거죠. 그런데도 그때는 좋았던 것 같아요. 작품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너무 감사했죠.

현장 자체를 즐기시는 것 같은데, 연기를 직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걸로 먹고 사니까, 직업이라고 봐야죠.

놀이라는 생각도 들 것 같은데요. 너무 좋아하시니까.
즐길 수는 있겠죠. 음…, 그건 이렇게 말씀 드려볼게요. 먹고 사는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연기를 할까 말까 고민하는 배우들이 많아요. 그런 배우들에게 저는 오히려 이렇게 얘기 해 줍니다. “너, 연기를 취미로 한다고 생각해 봐! 연기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모든 걸 다 바쳐야 하는 걸로 보니까 결국은 못하는 거잖아. 취미라고 생각하면, 너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이렇게요. 반면 저는 이제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합니다.

직업으로 생각하신다는 건, 연기를 하는 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기라는 의미가 포함 된 건가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질까봐 연기를 머뭇거리는 배우들과 달리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 고민을 안 한다는 겁니다. “연기를 안 하면 어떻게 먹고살까”하는, 연기에 대한 딜레마가 없다는 거죠. 그냥 하는 거예요, 이젠. 취미로 생각하든, 직업으로 생각하든, 생계수단으로 생각하든, 그냥 하는 거죠. 이젠,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언제 그런 생각이 드셨나요?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텐데요.
지금 물어보시니까, 문득?(웃음) 연기를 한다는 거… 참, 자부심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겁니다. 내가 타인을 웃길 수 있고 울릴 수 있다는 건, 어마어마한 행복이거든요. 그래서 연기를 한다는 건, 참 대단한 일 같아요.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그것에 대한 딜레마가 있으면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경지에 오른 느낌이 드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오는데 엄청난 시행착오가 있었겠죠?
그렇죠. 저도 인간인데. 연극을 해서 먹고 살 수 있을까, 혹시 굶어 죽거나 자살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해 봤죠.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하자. 인생 뭐 있나. 그런 생각에 1997년도에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와서, 대학로로 간 거죠.

섬세하신데, 어디서 그런 강단은 또.(웃음)
그게, 할 게 없으면 그렇게 돼요. 연기 말고는 할 게 없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말이죠.(웃음) 강단이라고 생각해 주시니까 고맙네요.

극단 ‘신기루 만화경’의 대표이기도 합니다. 대표로서 식솔들을 책임진다는 게 부담스럽진 않나요? 영화 찍느라 바쁘기도 하실 텐데요.
대표이긴 하지만 단원들이 함께 이끄는 거지, 혼자서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그냥 단원을 대표 하는 것일 뿐이죠. 많은 걸 바라지는 않는데, 이 극단이 우리 세대에는 없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은 있어요. 이 식구들이 공중 분해되면 안 됩니다.

극단을 창단한 2000년도는 영화를 하기 전이었어요. 그 때는 연극만 하셨는데, 이렇게 영화 현장을 누비게 되실지 예상 하셨나요.
상상도 못했죠. 그 때가 한창 외로울 때였어요. 그래서 놀이터 개념으로 극단을 만든 거죠. 함께, 놀아보자는 의미로요. 초창기 멤버도 그렇고, 저희 극단에 한 번 들어오면 잘 안 나가요. 같이 놀 수 있으니까 좋잖아요. 다 외로운 사람들인 거죠. 입단 시험이요? 보죠. 꽤 까다로워요. 누가 들어오겠다고 하면, 운영위원회 네 명이 인터뷰를 해서 가부를 결정하죠. 그 사람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는지를 가장 중점적으로 봐요. 연기 테크닉이야 하다 보면, 느는 거니까.

영화인 오달수와 연극인 오달수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연기자는 그냥 연기자다! 크게 차이는 못 느낍니다. 물론 자잘한 기술적인 차이야 있겠지만, 그런 것들을 빼면 같아요. 아, 술 한 병 더 마셔도 되겠죠?(웃음)

그럼요. 초반에 출연한 영화에서 악역을 많이 하셨는데, 그 느낌이 조금씩 다릅니다. <올드보이>에서는 비열했고, <달콤한 인생>에서는 처량했고, <음란서생>에서는 수상하면서 코믹했죠. 감독의 디렉션만으로 탄생할 수 있는 디테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맡은 악역 중에서는, 그 자체로 악인은 없었어요. 다 이유가 있었고, 어떤 악인은 연민까지 불러일으켰죠. 예를 들어 <달콤한 인생>의 명구(러시아말로 떠들어대던 무기 밀매상)같은 경우는 너무 불쌍하잖아요. 그렇게 고생하는 악인이라니. 교과서에 나오는 얘긴데, ‘악한의 전형성’이란 게 있어요. 악하면 악할수록 연민 혹은 웃음이 스며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렇게 연기하려고 하는 편입니다.

이 역은 정말 몰입해서 연기했다 싶은 캐릭터가 있으신가요?
배우는 기본적으로 두 분류로 나뉘는 것 같아요. 캐릭터와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연기하는 배우와, 완전히 몰입하는 배우로요. 저는 전자에 더 가깝죠. 경계까지는 아닌데, 아직까지는 인물에 완전히 빠져서 하는 연기는 해 보지 않았어요. 제 나름대로의 연기술이랄까?

왜, 캐릭터와 거리를 두는 연기술을 선호하시나요?
처음 연기를 배울 때, 그렇게 배웠거든요.(웃음) 그런데 이제는 한번 쯤 해 보고 싶어요.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캐릭터를 위해 6개월 동안 휠체어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도 푹 빠지는 연기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올해로 연기 인생 20년이신데, 중간에 연기 외의 분야로 외도를 해 본적은 없나요?
대구에 있을 때, 딱 1년 해 봤어요. 먹고 산다고 주유소에서 일했습니다. 카운터 주임으로요.(웃음) 그 때, 참 갑~갑~했죠. 연기를 하던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으려니 죽겠더라고요. 결국 1년 하다가 때려치우고, “다시 연기 하자” 싶어 서울로 상경한 겁니다.

서울에 와서 가장 먼저 한 게 뭔가요?
방 구하러 다녔죠.(웃음) 당시 극단 생활은 안 하고, 프리랜서로 활동했어요. 결국 제가 극단을 만들게 됐지만요.

극단대표 자리가 종신제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어떻게 아셨어요?(웃음) 죽을 때 까지 하라, 이거죠.(웃음) 어느 날 단원들이 “정관을 만들자”고 하더라고요. 명색이 극단인데, 정관이 있어야 한다고요. “알았다. 그러면 너희들끼리 만들어 와 봐라”했는데 가져 온 걸 보니, ‘대표! 대표는 종신제로 한다!’가 딱 있더라고요.(웃음)

이젠 외도는 힘들겠습니다.(웃음) <페스티발>은 욕망에 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지금 오달수씨의 욕망이 가장 크게 향하는 게 뭔가요?
연기 잘 하는 거죠!

아, 제가 단서를 안 달았나요? 연기 잘 하는 건, 빼고요.(웃음)
그럼, 애 잘 키우는 거?(웃음) 좋은 아빠가 돼야죠.

지금은 어떤 아빠인 것 같나요.
애가 12살인데, 아빠를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웃음)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미친 존재감, 조연 배우’로 통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중심에 서고 싶은 욕망도 없지 않을 것 같은데요.
왜,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어떤 역할이든지 제가 크게 느끼면 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런데 이런 건 한번쯤 해 보고 싶어요. 액션을 겸비한!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그런 역할을요. 그런 역은 시간이 더 지나면 제가 하기 힘들 것 같거든요. 그나마 이렇게 혈기가 있을 때. 아, ‘왕성’까지는 아니라도, 아직 ‘혈기’는 있지 않습니까.(웃음) 혈기라도 있을 때, 한번 해 줘야 하는데. 인터뷰도 끝났으니, 이제 기자님도 술 한 잔 하셔야죠?

(웃음) 지금 약간 취기가 올라오신 것 같은데요?
저요? 약간 알딸딸하네요~ 으하하하.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11월 19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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