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봤는데, 다른 멜로 영화와의 차별성이 눈에 띈다. 어떤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쓰게 됐는지 궁금하다.
아이비 호: 어느 날 감독이 8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멜로물을 한 번 써보라고 권했다. 홍콩에서 시도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방식이라는 점에 흥미를 가졌다. 이후 비 오는 날 부둣가에서 여자가 남자를 기다리는 장면부터 쓰기 시작하여 <친밀>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하지만 정작 감독은 1년여 동안 영화로 제작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직접 연출을 맡았다. 처음에는 간단할 것 같아서 시작했지만 생각만큼 쉬운 작업은 아니었고, 또한 저예산으로 영화를 찍다보니까 어려움이 많았다.
<친밀>이라는 제목이 특이하다. 영문제목으로는 'Claustrophobia'(폐소공포증) 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해서 이 제목을 정하게 되었는가?
아이비 호: (수첩에 일일이 쓰면서)원래 제목은 ‘花悲花 雨悲雨’ (밤에 서리가 내렸는데 꽃인 것 같기도 하고 서리인 것 같기도 하다.)였다. 백거이가 지은 고전시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는데, 영화 속 두 주인공의 묘한 사랑의 감정을 잘 표현한 문장이라서 제목으로 정했다. 그러나 제작사측에서 영화 제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해 <친밀>로 개봉했다. 영화에서 말하는 ‘친밀’은 엘리베이터나, 사무실의 좁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이지만 친밀하게 보이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럼 영화속 인물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제목이라 할 수 있겠다.
아이비 호: 맞다. 영화에 나오는 5명의 회사 직원들은 연인들처럼 낭만적인 친밀이 아니다. 단지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카풀로 출퇴근을 하는 일반적인 친밀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두 배우와 같이 작업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 영화에 특별히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비 호: 시나리오 작업할 때부터 임가흔씨를 염두 해 두고 썼다. 남자 배우를 물색하던 중 정이건씨의 선 굵은 인상이 캐릭터와 맞아 캐스팅 했다. 그러나 정작 영화를 찍을 때는 중년의 남자를 표현하기 위해 얼굴 살이 좀 쪄서 지금처럼 멋있는 모습은 아니었다.(웃음)
그럼 임가흔씨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미리 여배우로 선택한 건가?
아이비 호: <남인사십>이라는 영화에서 임가흔씨를 처음 만났다. 그때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인상에 남았었다. <남인사십>에서는 여자 아이 같은 캐릭터를 맡았는데 이미지 변신을 위한 좋은 기회일 것 같아서 제의를 했다. 흔쾌히 수락한 그녀는 시나리오를 읽고 부가적인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캐릭터를 이해했다. 말도 잘 통하고 연기도 잘 하는 배우이다.
두 배우 분들은 시나리오를 받고 첫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두 배우는 가위 바위 보를 하는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임가흔: 영화를 보면 관객이 놀랄만한 소재나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게 하는 장면들이 없다. 그러나 인물들이 역어나가는 소소한 관계들과 건조한 감정선에 매료당했다.
정이건: 지금까지 액션영화가 많아 이미지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다른 장르영화에 출연하고 싶었다. 마침 <친밀>의 시나리오를 받았고 매우 반가웠다. 또한 다른 멜로 영화와는 차별화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서 무척 흥미로웠다.
아이비 호: 정이건씨는 멜로 연기를 잘 했지만 역시 액션영화를 많이 찍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운전을 꽤 잘하더라.(웃음)
감독님 말대로 극중에서 음주 운전하는 장면이 가장 멋있어 보였다. 내리막길에서 커브 돌때 <친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강한 액션을 보여준 것 같다.(웃음)
아이비 호: 나도 음주운전 하는 그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웃음)
정이건: 절대 술은 안 먹고 했다.(웃음)
영화 속에서 시간이 거꾸로 흘러가는데, 의도가 무엇이었나?
아이비 호: 매번 여타 멜로 영화와의 차별성을 두기 위해 고민한다. 그러므로 <친밀>에서는 ‘아! 내가 그 행동만 안했으면 이런 일이 안 일어났을 텐데….’ 하는 사람들의 후회를 소재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을 택했다. 또한 영화 속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위해 촬영순서도 순차적으로 찍고 싶었다. 하지만 16일이라는 촉박한 촬영기간으로 한 번에 몰아서 찍었기 때문에 지금도 배우들과 스탭들에게 미안하다.
이번 영화로 4번째 작업이라 들었다. 서로에 대해 잘 알 것 같은데, 각자가 생각하는 상대 배우의 장점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임가흔: 4번째 호흡을 맞추다 보니까 서로 말 안 해도 잘 통하는 사이가 되었다. 차 안에서 많은 장면들이 이루어졌는데 각자 인물에 대한 감정선까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간의 연기에 영향을 주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극중에서의 미묘한 관계를 잘 그려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비 호: 아까 음주 운전 장면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음주 단속에 걸릴까봐 서로 자리를 바꾸는 행동과 이후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 장면 등은 두 배우가 알아서 연기한 것이다. 지금 봐도 마음에 드는 진솔한 장면이다.
정이건: 임가흔씨와 말이 잘 통하는 이유는 둘 다 솔직 담백한 성격이라 속안에 얘기를 다 털어놓는다. 아무래도 이런 비슷한 성격 때문에 연기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임가흔: 아니다. 난 거짓말을 잘한다. (웃음)
두 배우 모두 <친밀>을 통해 국한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했다. 자신의 캐릭터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가?
정이건: 이번 영화에서 따로 노력 한건 없다.(웃음) 새로운 작품에 임하는 배우로서 최대한 주인공에 몰입해서 연기하는 것이 가장 큰 노력이며 숙제라고 생각한다.
아이비 호: 덧붙이자면 정이건씨는 이 영화를 위해 주변사람들의 세세한 모습이나 감정을 관찰해 캐릭터에 반영했다.
임가흔: 사랑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일반적인 직장 상사도 아닌 애매모호한 관계에서 감정을 잡기는 힘들었다. 최대한 그 상황에 맞게 상상하고 내가 맡은 캐릭터의 생동감을 부여하며 연기했다.
두 분 모두 지금까지 많은 캐릭터를 선보였는데, 이것만은 꼭 해보고 싶다는 역할이 있는가?
정이건: 예전에 찍은 영화들에서는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혼합한 액션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앞으로는 진실한 이야기를 전하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
임가흔: 딱 정해 놓은 역할은 없다. 먼저 매력적인 시나리오를 만나고 싶다.
영화 자체가 여주인공을 중점으로 이야기가 펼쳐나가는데,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임가흔: 16일 동안 영화를 찍은 것이 가장 어려웠다. 짧은 시간 안에 감정 잡기도 어려웠고, 또한 고생했던 스탭들과 너무 친밀해져서 헤어지기가 아쉬웠다.
영화 마지막 부분,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는 가장 처음 부분인 옥상 장면에서 임가흔씨가 슈베르트의 ‘숭어’ 를 흥얼거리는 장면이 있다. 이 음악을 삽입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이비 호: 슈베르트의 ‘숭어’ 라는 곡은 명쾌하고 밝은 음색을 가지고 있다. (갑자기 두 배우가 약속이나 한 듯이 ‘숭어’ 를 흥얼거렸다.) 두 주인공이 화재로 인해 옥상으로 올라와 대피하고 있는 상태에서 긴장감을 풀기 위한 요소로 사용했다. 또한 이 장면은 서로의 마음을 열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누구나 아는 편안한 음악이 필요했다. 참고로 엔딩타이틀에 흘러 나오는 '숭어'는 요요마가 직접 연주한 곡을 삽입했다.
전문 멜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고 현재 멜로 영화를 찍은 감독으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러브스토리의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아이비 호: 어떤 시각으로 이야기를 다루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주제로 만든 영화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매번 똑같은 이야기가 되풀이 된다. 여성 감독으로서 섬세한 감성을 담은 러브 스토리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여타 영화에서 그려지는 격정적인 사랑은 싫다. 그 대신 서서히 사랑의 감정들이 쌓이며 관객들에게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멜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첫 연출작을 마친 소감 그리고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이비 호: 예전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에 참여 했을 때 의도했던 부분이 나오지 않아 많이 속상했다. 하지만 감독이 되어 보니까 그 고충을 알겠더라.(웃음)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 올해 중매를 소재로 장학우, 탕웨이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크로싱 헤네시>를 연출했다. 이 영화로 다시 한국을 찾았으면 좋겠다.
글_ 김한규 기자(무비스트)
사진_ 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