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기준이 너무 높아진 탓도 있다. <아바타>는 3D 입체영화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같은 장르의 영화들에게는 넘어야 할, 하지만 넘기에 버거운 산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렇게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을 들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하여 제작사들은 CG를 이용한 3D 컨버팅 기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제작 기간이나 제작비에 대한 부담을 줄이면서도, 3D 입체영화라는 타이틀로 홍보하고, 보다 높은 티켓 값을 받을 수 있으면서도 2D와 3D라는 두 개의 컨텐츠를 모두 확보할 수 있으니 이득이 되는 장사다. 하지만 이런 안일한 생각이 3D 입체영화에 대한 완성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3D 입체영화란 공간 캡처 방식을 근간으로 하는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란 점을 간과한 채, 단순히 영상이 튀어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입체감만을 부각시키고 말았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3D 입체영화는 다시 활로를 찾기 위해 노력 중이다. 같은 컨버팅 영화라도 완성도 높은 3D 비주얼에 많은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스텝업 3D> <레지던티 이블 4: 끝나지 않은 전쟁 3D> <쏘우 3D> 등 각 장르에 맞는 맞춤형 제작 방식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3D 입체영화를 내놓을 준비를 마쳤다. 하지원, 안성기 주연의 <제7광구>는 촬영을 종료하고 후반작업을 하며 3D 입체영화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 작업에 한창이며, 에로 장르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한 <나탈리> 역시 완성도를 떠나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제작 중인 여러 3D 입체영화들은 각자의 특징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입체감과 공간감을 만들어내기 위한 제작 방법을 연구하고 있고, 2D와는 다른 지금까지 보지 못한 영상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계속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흥행성적에서 조금씩 보상받고 있다. 여름 시즌에는 전통적인 2D 블록버스터들에게 다소 밀렸지만, 겨울 시즌에는 오히려 2D 영화들을 위협하고 있다. 시리즈 영화, 리메이크, 스타들의 참여, 색다른 기획,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등 기대되는 3D 입체영화들이 눈에 띈다. 과연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 컨버팅 영화로 이미지가 실추된 3D 입체영화에 어떤 긍정적인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인지, 1년 전 <아바타>와 같은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낼 작품이 있는지, 7편의 영화를 통해 일단 한번 맛이나 보자.
겨울 시즌, 2D와 맞짱 뜰 7편의 3D 입체영화
시리즈 영화의 다음 편을 3D 입체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해볼 만한 장사다. 게다가 <아바타>로 돈 좀 만져본 20세기 폭스사라면 더더욱 그럴 만하다. 시리즈의 고정 팬들은 후속작이 2D거나 3D거나 상관없이 극장을 찾아줄 테니까. 티켓 값이 조금 더 비싸다고 시리즈를 그만 보겠다고 할 사람은 없지 않은가. 물론 3D로 만들어진 이번 시리즈가 티켓 값만 높이는 ‘낚시’라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3D 입체영화에서 판타지 장르는 여러 곳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경우다. 더욱이 <나니아 연대기>처럼 새로운 시공간이 등장하는 영화라면 공간감에 입체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는 재창조의 작업에 욕심이 날만도 하다. 하지만 영화의 성격상 직접 촬영보다는 컨버팅을 택했다. 어차피 많이 들어갈 CG, 3D 쪽에서도 좀 쓰자는 얘긴데, 완성도 없으면 바로 <타이탄>된다. 긴장하시길.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태어난 바다거북 새미는 지구 끝 어딘가에 있을 파라다이스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절친 레이와 50년간 5대양 6대륙을 누비며 그물에 걸리기도 하고, 피라냐들과 싸우기도 하고, 독수리를 만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을 겪는다. 이야기만 보자면 동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가족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연출이 벤 스타센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벤 스타센은 3D 입체 애니메이션 <플라이 미 투 더 문>으로 <아바타>보다 먼저 3D 입체영화의 원년을 도래하게 한 인물. ‘창시자’까지는 아니지만, 초기 3D 입체영화에 대한 관심에 불을 질렀다는 점에서 기억해야 할 감독이다. 그의 차기작이, 그것도 3D 입체 애니메이션이라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지 않나. 게다가 한국 더빙 버전에는 대성! 설리! 윤형빈(응?)이 나온다니 이 또한 신선하다.
1982년 영화 <트론>의 새로운 버전인 <트론: 새로운 시작> 역시 화려한 비주얼로 돌아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트론>의 속편이다.(<트론 2>라는 제목도 사용한다.) 수퍼 컴퓨터의 내부로 들어가 프로그램과 사투를 벌인다는 독특한 아이디어는 20년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에 와서야 비주얼적인 완성도를 갖추게 됐다. 완전히 다른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동원된 막강한 CG는 지금까지의 그래픽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고의 디지털 세상을 창조했다는 극찬을 들으며 극장에 걸릴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하지만 조금 우려가 되는 것은 3D가 화려한 CG에 가렸다는 점. 안구에 쇼크를 줄 정도로 획기적이라고는 하지만 입체감과 공간감이 현란한 그래픽과 어떻게 잘 맞물릴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이소룡이 출연해 화제를 모은 1966년도 TV드라마 <그린 호넷>이 영화로 리메이크된다. 그것도 3D 입체영화로, 그것도 감독이 무려 미셸 공드리다. <그린 호넷>은 낮에는 백만장자이다가 밤만 되면 가면 뒤집어쓰고 나가 세상을 청소하는 캐릭터를 내세운 전형적인 히어로 영화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개과천선하는 아들, 그를 돕는 동양인 조력자가 있다는 점이 그나마 좀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미셸 공드리는 여기에 과감하게 3D 입체영상을 도입해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다. 히어로영화 역시 3D 입체영화에 어울리는 장르. 난무하는 액션에 적절하게 가미된 CG가 어느 정도의 파괴력과 호쾌함을 보여줄 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이보다 독특한 감독 미셸 공드리가 연출을 맡았다는 것으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또 과거 이소룡의 캐릭터를 이어받은 ‘가발청년’ 주걸륜의 활약도 지켜볼만 하다.
서열이 절대적인 늑대 사회에서 최상위 등급인 알파 늑대와 최하위 등급인 오메가 등급의 늑대가 우연히 만나 로맨스를 만들어 간다. 무리를 이끌 차세대 리더 알파 늑대 케이트는 자연을 사랑하고 삶을 즐기는 유유자적 오메가 늑대 험프리와 단 둘이 길을 떠나게 된다. 캐릭터만 늑대지 설정은 맥 라이언이 나왔던 과거 스크류볼 코미디와 다를 게 없다. 그래서 이게 약인지 독인지 판단하긴 다소 이르다. 하지만 3D 입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는 차별성을 지니지 않을까? 두 마리 늑대가 낯선 길을 떠난다는 로드 무비 형식이니 배경이나 캐릭터를 표현함에 있어서는 다양한 입체감, 공간감이 가능할 듯도 하다. 물론 <가디언의 전설>과 같은 ‘짱짱한’ 디테일의 영화는 아니겠지만, 유쾌한 이야기에 입체 영상이 배경처럼 깔린다면 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는 있을 것이다.
맞다. 우리가 아는 그 ‘걸리버 여행기’다. 물론 설정이 바뀌고 캐릭터가 바뀌어 원작과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겠지만 여하튼 그 ‘걸리버 여행기’다. 거기에 잭 블랙이 걸리버로 출연한다니 ‘웃기는 얘기’라는 건 물어보나 마나다. 문제는 3D 입체영화로서 얼마나 기능을 할 것인가다. <걸리버 여행기>에서 중요한 것은 크기의 비례다. 걸리버와 그에 대비되는 소인국 사람들이나 소인국 자체의 배경이 원근감을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될 것이다. 액션이나 어드벤처가 가미는 되겠지만 대표적인 특성으로 내세우지 않는다면, 일단 3D 입체영상은 자연스럽게 깔고 가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캐릭터와 배경 자체를 입체적으로 즐기면서 잭 블랙의 코미디를 즐기기만 하면 된다. 불안한 건 이 영화 역시 컨버팅 영화라는 점. 소인국이라는 특성상 CG가 많이 사용될 테니 후반작업의 완성도에도 기대가 되지만, ‘배신작’들이 많으니 완전히 염려를 지울 순 없다.
이미 미국에서는 성공을 거뒀다. <아바타>나 <해리포터> 급의 엄청난 성공은 아니지만, 소소한 시장에 3D 입체 애니메이션의 작은 바람을 일으킬 정도는 됐다. 물론 여기에는 브래드 피트라는 이름도 컸다. 히어로가 있어야 제 몫을 할 수 있는 악당을 주인공을 내세웠다는 점도 독특하다. 게다가 만듦새에서도 둘째가라면 픽사와 ‘맞짱’ 뜰 드림웍스가 제작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드림웍스는 모든 애니메이션의 3D 입체화 정책을 펴고 있으니 어떤 내용을 만들든 입체 비주얼의 완성도는 높다. 액션과 캐릭터 코미디가 적절히 가미된 <메가마인드>에서 입체감과 공간감이 어떻게 표현될 것인가는 사실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만들기만 하면 일단 비주얼에서 50점은 먹고 들어가는 드림웍스 입체 애니메이션이기이라면 눈이 안 갈래야 안 갈 수가 없을 거다.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