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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들춰보기! 한국 영화 속 여성의 바람과 불륜
2008년 5월 26일 월요일 | 하성태 기자 이메일


엄마는 뿔났지만, 이 아줌마는 바람났다. 줄잡아 30여 년을 함께 산 남편을 옆에 두고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라며 옆방으로 뛰어가는 아줌마 봉순씨(김해숙). 설상가상 그 상대는 딸의 남자친구인 하숙생 총각이다. 그렇다. 이 아줌마, 단단히 바람났다.

<사랑과 전쟁>의 한 시리즈 아니냐고? 그런데 이게 그리 단순치 않다. 이 아줌마의 바람은 인간의 능동적 삶에 대한 욕구를 온 몸으로 긍정하고 있다. 오점균 감독의 <경축! 우리 사랑> 이야기다.

사실 불륜과 바람은 이제 이 시대 대중문화의 없어서는 안 될 주요 소재다. 지금도 TV를 틀어보면 아침 드라마를 제외하고도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차고 넘친다. <조강지처클럽>은 남편들의 바람에 맞바람으로 맞서는 '조강지처'의 모습을 그리며 인기리에 100회 연장이 결정됐고, 지난 3일 첫 방송을 시작한 <달콤한 인생> 역시 결혼과 불륜이란 소재를 가져온 정통 멜로드라마다. 그만큼 전통적인 TV 소비층에게 먹힌다는 반증이다.

대중문화가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비판에도 1953년에 제정된 간통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나라 대한민국. '심부름센터가 바라본 대한민국은 불륜공화국' 따위의 기사가 음지의 현실을 자극적으로 다룬다면 한국 영화가 그리는 여성들의 바람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리고 50대 아줌마의 바람이란 범상치 않은 소재를 취한 <경축! 우리 사랑>. 이 영화의 파격과 가치는 어디서 연원하나. 또 한국 영화 속 여성의 바람과 불륜은 또 어떻게 변모해왔는가.

우리 시대 아줌마 봉순씨는 어찌하여 불륜을 저질렀나

"20년, 30년 동안 그 아줌마 이름이 봉순이라는 건 모른 거예요. 누구 엄마, 누구 여편네, 노래방, 하숙집 아줌마로만 불렀던 거죠."

MBC <뉴스데스크>에 출연한 배우 김해숙의 말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건 김춘수의 <꽃>이 전부가 아니다. 결혼과 동시에 이름을 잃고, '제 3의 성'이라고 비하되는 아줌마 봉순씨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쉰 살 봉순씨가 온전히 그 이름으로 불렸을 때 그녀는 잊혀졌던 자기 정체성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길이 순탄하지 만은 않다. 집에서 빈둥거리던 딸 정윤(김혜나)이 눈이 맞아 결혼을 선언한 하숙집 총각 구상(김영민)은 처음에는 그저 순둥이 아들 같은 한 존재였다. 하지만 취직이 결정되고는 쪽지 한 장 달랑 남겨놓고 딸이 가출을 감행하자 상황이 반전된다. 홀로 눈물을 훔치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이 순수 청년이 애처롭게 보이기 시작한 것. 출발은 술에 취한 구상과의 하룻밤 해프닝이었지만 덜컥 임신을 하게 된 봉순씨의 일상은 변화가 찾아온다.

사실 남편(기주봉)은 진작에 동네 미용실 처자랑 바람이 난 상태였다. 그 와중에 봉순씨는 하숙집을 건사하고, 노래방을 지키며, 동네 아낙들을 데리고 봉투 붙이는 부업을 꾸릴 정도로 생활력이 강한 아줌마다. 돌아온 딸이 엄마를 조롱하고,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남편이 회유도 해 보지만 봉순씨의 뒤늦게 눈 뜬 사랑에 대한 감정은 견고하다. 더욱이 구상마저 "아줌마가 좋아요"라며 수줍은 미소를 건네는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봉순씨의 자세다. 일생일대의 사건을 맞았지만 봉순씨는 무척이나 담담하다. 그저 처음으로 느끼는 이 소중한 감정을 놓치고 싶지 않을 뿐이다. 게다가 내 안에서 숨쉬고 있는, 신이 내려 준 새 생명을 버리고 싶지 않단 생각이 간절하다. 단순한 바람이나 불륜으로 치부될 수 없는 일종의 신의 섭리 혹은 순리. 그건 봉순씨와 가족, 그리고 마을 주민들을 그리는 감독의 태도와 결부되어 있다.

2000년대 한국 영화가 주목한 여성의 일탈

사실 바람 난 여성을 그린 영화의 시작은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비석의 소설을 영화화한 정형모 감독의 <자유부인>이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때가 무려 1956년. 평범한 대학 교수의 사모님이 양품점에서 일을 하다 바람이 나고, 종국에는 가족에게 용서를 빈다는 이 영화는 50년대 우리 사회의 근대성을 드러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간통죄가 이미 발효된 그 시기, 주인공을 타락한 여성으로 묘사하고 종국에 용서를 구하는 서사구조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몽적 성격이 두드러졌다.

그 후로 50년이 흐른 2000년대의 한국 영화들은 좀 더 다변화된 시선을 보여준다. 여성 감독 변영주의 <밀애>에서 미흔(변영주)은 남편의 불륜에 맞바람으로 대응하지만 상처받은 여성의 이미지가 강했다. 더욱이 결말에 다다르면 사고로 인해 애인도 잃고 가정도 잃고 홀로 남겨진다. 변영주 감독이 2002년에 바라 본 30대 기혼 여성의 욕망은 여전히 용인될 수 없는 사회적 금기였다.

2003년 나온 임상수 감독의 문제작 <바람난 가족>은 좀 더 솔직하면서 남성 중심적 역사에 대한 반발이 두드러진다. "개인을 다루고 한 가족을 다루는 영화지만 가족사라는 건 그 가족이 속해 있는 사회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는 임상수 감독의 표현대로 영화는 평생을 한량으로 살아온 실향민 출신 아버지의 죽음과 위선적인 인권변호사 영작(황정민)의 반대급부로 바람난 여자들을 내세운다.

"나는 요즘에야 내가 진짜 어른이 된 거 같다. 얘, 인생 솔직하게 살아야 되는 거 드라, 내 내 느낌대로"라고 충고하는 어머니(윤여정)는 봉순씨와 계급적인 대비될 수 있는 캐릭터다.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초등학교 동창생 애인과 외국으로 떠나버리는 어머니는 다소 급진적이긴 하지만 분명 한국 영화에 처음 등장한 당혹스런 어머니 상이다.

여주인공 호정(문소리) 또한 당당하긴 마찬가지다. 옆집 고등학생과의 불장난으로 아이를 임신하고 이혼을 감행하는 그녀는 끝까지 위선적인 영작에 비해 훨씬 더 성숙한 인간형이다. <바람난 가족>은 이 도발적인 캐릭터들과 함께 임상수 감독이 견지한 '쿨한' 태도로 인해 그 해의 문제작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2007년에 개봉한 <바람피기 좋은 날>의 경우는 좀 더 가볍고 자유로운 시선으로 바람을 다룬다. 시작은 역시나 남편들의 무관심이나 외도지만 주인공 20~30대 주부 이슬(김혜수)과 작은새(윤진서)의 일탈은 따뜻하고 밝게 묘사된다. "여자만이 지닌 시선과 아름다움이 세계의 부정적인 것들을 해결하고 극복해 나가는 힘"을 강조하고 싶었다는 장문일 감독의 태도는 꽃이나 나무를 강조하는 화면에서도 보여지 듯 좀 더 생태주의적 관점과 맞닿아 있다.

어찌됐건 남성의 시선에서 처벌이나 간통죄와 같은 획일적인 시선에서의 탈피, 2000년대 한국영화가 여성의 일탈을 견지하는 시선은 분명 다분화됐다. 그리고 어떤 작품보다 소탈하지만 급진적인 <경축! 우리 사랑>이 2008년 등장했다.

우주와 인간은 하나다, 자연주의적 관점과 판타지

전작 <생산적 활동>에서 섹스라는 매개로 인간의 솔직한 욕망을 긍정했던 오점균 감독은 가부장적 한국 사회를 공격하지도, 섹스를 소재주의로 활용하지도, 불륜을 저지르는 인물들을 단죄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시대의 보통 아줌마 봉순씨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우리 대중문화나 예술 전반에서 주변부에 자리했던 아줌마라는 존재를 조명하는 것 못지않게 <경축! 우리 사랑>은 그녀가 세상의 일부이자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명시한다. 간간이 등장하는 곤충이나 식물들의 클로즈업은 장면들은 전체 맥락과는 동떨어져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 또한 우주 만물이 일부임을 드러내는 의도다. 이러한 사상은 마치 인간과 우주와 자연의 일체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일군의 몸철학을 닮아 있다.

그러니까 어떤 인위나 통념에 대한 배제보다는 세상의 일부로서 인간을 껴안으려는 제스처, 그래서 감독은 무심한 봉순씨의 남편이나 동네 남자들을 부정적인 가부장으로 몰아세울 생각도 없다. 부정은 반목을 낳고 갈등을 낳는 법. 순수하게 마음과 몸이 가는대로 자연의 섭리와 순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태도가 봉순씨의 일탈을 긍정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어쩌면 이건 이분법적으로 남성과 여성을 나누려는 시선에 대한 부정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그 자체로 '파격'일 수 있는 이러한 세계관을 지탱하기 위해 영화는 판타지를 끌어들인다. 봉순씨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아낙들과 남자들이 모두 모여 한 바탕 잔치를 벌이고, 일치 단결해 부부애를 확인하는 장면을 다소 익살스럽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로 묘사한다.

성욕과 식욕, 그 일차적인 인간의 욕망을 부인하지 않으며 자신의 울타리를 지켜나가는 것, 봉순씨와 구상이 데이트를 하는 청계천을 제외하고 단 한번도 봉순씨네 마을을 벗어나지 않는 이 소박한 영화는 현대인의 유목민적 삶 보과는 동떨어진 인간형들에 더 친숙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딸이 봉순씨의 아이를 돌보는 모습에서 젊은 세대에까지 자연주의적이고 목가적인 삶의 형태에 동참하자고 권유한다. 그게 더 인간 본연의 모습에 가깝지 않느냐고 넌지시 말을 건네는 것 처럼.

현실의 봉순씨는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봉순씨로 돌아와 보자. 20년의 나이 차이를 극복한 이 연상연하 커플은 행복할 수 있을까. 바람이고 불륜임이 분명한 봉순씨의 파격을 <경축! 우리 사랑>은 판타지와 자연주의적 관점으로 극복해 냈다. 그것이 또한 아직까지 간통제가 굳건한 한국 사회에서 리얼리티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영화적인 주제를 드러내려는 오점균 감독만의 방법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간통죄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한다며 간통죄 위헌 심판을 제청한 옥소리의 미니홈피가 악플러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개인의 이불 속 사연을 국가가 관리하고 더욱이 피의자가 여성일 경우 그 비난의 수위는 더 높다. 마치 '자유부인'이 처벌을 당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던 1950년대처럼.

한국 영화는 좀 더 이러한 이슈에 주목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물론 아침 드라마처럼 불륜 남편과 핍박 받는 아내라는 공식은 간통제가 피해자를 위해 존속해야 한다는 토픽만큼이나 식상하기 그지없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인 어머니 봉순씨의 욕망을 좀 더 근원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성찰한 <경축! 우리 사랑>은 용감한 기획임에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은 봉순씨의 사랑과 일탈을 긍정할까 아니면 영화이니 가능한 설정이라고 웃어넘기고 말까. 극장의 절반을 넘게 차지하고 있던 중년 관객들의 목소리가 궁금해진다. 더불어 그 각기 다를 목소리들은 더 높고 넓게 울려 퍼져야 한다. 이 땅의 봉순씨들이 사회적 통념 때문에 좌절하고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 없어질 그날까지.

2008년 5월 26일 월요일 |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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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maximus
김해숙 아줌마의 첫 영화 주연.. 흥행에선 빛을 못봤다는..   
2008-05-27 15:05
joynwe
...조강지처 클럽 재미있죠...   
2008-05-26 23:15
ldk209
분명 불륜영화인데.. 유쾌...   
2008-05-26 18:04
shelby8318
조강지처 클럽 드라마 재밌게 보고있다능   
2008-05-26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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