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영화 산업은 극도의 속도전에 함몰돼 있다. 단기간에 이익을 회수하려는 과욕이 넘실거린다. 여기에서 스크린 독과점이 잉태된다. 퐁당퐁당(교차상영)에 죽어나가는 작은 영화들이 속출한다. 속도전에 함몰된 대자본이 유통망을 장악하면서 한 편의 영화를 오랜 시간 음미하던 낭만은 중세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멀티플렉스가 없었던 시절, <서편제>(93년)가 100만 관객을 달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204일이었다. 7개월에 걸쳐 이룬 100만 관객을 지금은 하루 만에 해치운다. 달성 속도가 문제는 아니다. 다만, 아쉬운 건 작품의 생명력이다. 빨리 소비되는 만큼 빨리 빨리 잊혀지는 여운이 아쉽다는 얘기다.
초단기 승부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과도한 마케팅도 낳았다. 영화 홍보에는 온라인·케이블TV·잡지·무가지 등이 가릴 것 없이 총 동원된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포털사이트 메인화면에 배너하나 띄우는데 하루 몇 천 만원이 든다. 코딱지만한 지면에 포스터 하나 싣는 것도 다 돈이다. ‘쩐(錢)의 전쟁’이 따로 없다. 최근 공개된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한국 영화의 홍보 마케팅 비용은 전체 제작비의 3분의 1이나 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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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객은 보다 다양한 영화를 즐길 자격이 있다. 그러나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는 자본과 그러한 흐름에 맞춰 움직이는 유통망(멀티플렉스)으로 인해 볼거리의 다양성을 제한 당한다. 같은 상권에 동일 프랜차이즈 빵집이 연이어 들어서면서 대기업이 찍어내는 똑같은 빵만 질리게 먹어야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필자는 관객들이 지금의 불균형한 시스템에 분노하고 항의하길 바란다. 하지만 관객 스스로가 속도와 편리함에 열광하면서 다양함을 누릴 권리를 포기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에서 포착된다. 오늘날의 영화 관객은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원하는 영화가 (접근성 좋은)멀티플렉스에 없으면 관람을 쉽게 포기한다. 원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먼 길 가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결국 그들의 선택권이라는 건, 마케팅에 의해 조작된 영화들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속도전에 불을 붙이는 또 하나의 공범자는 언론이다. 어떤 영화의 흥행이 어떤 영화보다 빨랐다느니, 최단기간 100만 관객 돌파라느니, 가장 빠른 오프닝 기록을 세웠다느니 하는 기사를 생산하며 경쟁을 부추긴다. 영화 예매율 순위 역시 언론사들에겐 좋은 기삿감이다. 문제는 언론이 예매율 기사를 경쟁매체보다 빨리 내보내는 데에만 주력할 뿐, 예매율의 신빙성은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매율에 꼼수가 있다는 건, 이 바닥에서 알만 한 사람은 다 안다. 모든 영화가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개봉을 앞둔 영화의 제작사가 해당 영화의 예매권을 대량 구입, 예매율을 조작하는 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언론은 예매율 수치를 옮기고 표피만 훑을 뿐이다. 결국 속도에 대한 강박관념을 언론이 미화하고 동조하는 꼴이다.
구태여 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해묵은 논쟁을 꺼내들 생각은 없다. 하지만 상위 20개의 영화가 80%의 관객을 차지하는 건, 누가 봐도 기형적이다. 1억 관객 시대가 됐다고 해서, 영화인 모두가 행복해졌을까? 과연 공정한 룰에 의해 경쟁했어도 1억 관객이라는 결과가 나왔을까? 관객 동원 속도가 LTE급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2013년 1월 22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