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영화중에 하나인 [살인의 추억]으로 그 차기작에 대한 주목을 한 몸에 받던 봉준호 감독이 "한강에 사는 괴물에 대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상당수의 감독들과 평론가들은 '영화 하나 성공하더니 제 정신이 아닌' 감독으로 우려와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았다.
지난 봄, 깐느영화제에서 날아온 봉감독의 새 영화 [괴물]이 처음 공개되어, '뉴욕타임즈 선정 2006년 최고의 영화' 가 되고 기자 시사회에서 조차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는 보도는 "일반 관객들이 이 영화를 기다리느라 지쳐간다"는 오버에 가까운 기사들이 난무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9.38% 라는 전무후무한 예매율을 기록하였다.
[괴물]의 오프닝은 2000년, 맥팔렌 이라는 주한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한 실제 사건에 기초하여 시작한다. 강력마취제인 포름알데히드 20박스를 한강에 방류한지 2년이 지난 어느날. 평화로운 한강 위에서 낚시하던 두 남자는 흉칙하게 생긴 작은 물고기 한마리를 잡았다가 놓친다. 2년 뒤 또 다른 한 남자가 한강다리에서 투신자살 하면서 그 아래에 있던 '괴물' - 그 전까지 작은 물고기들만 잡아 먹었을 - 은 처음으로 인육의 맛에 매료된다.
강두는 한강둔치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살면서 끔찍이 딸(현서)을 아끼는 진짜 小시민이다. 여느때 처럼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던 마포대교 난간에 에 크고 반짝이는 시커먼 물체 하나가 물속으로 첨벙하더니 한강둔치 계단 아래까지 와서 어스렁대자 시민들은 신기한 듯 과자도 던져보고 재미있어 한다.
순간,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시야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저쪽 계단 아래편에서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다. 사람들을 밟아 죽이고 이어폰 때문에 상황을 전혀 몰랐던 여자의 머리채를 훽 잡아채 질질 끌고, 분식판매용 트레일러로 파고들어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한강 버스에 탄 승객들이 다리 아래의 아비규환을 창 밖으로 목격하는, 우리 일상생활과 매우 친숙한 장면들을 대하면서 이 영화는 실제상황을 방불케하는 매우 놀랍고 - 적어도 서울시민들에게는 - 생생한 흡입력을 과시한다. 이렇게 오프닝으로부터 "괴물"의 출현까지 이어지는 매끈거리고 육중한 시퀀스는 서울 시민들에게는 완벽하다는 말로도 불충분할 만큼 묘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킨다.
강두는 그의 인생이 그러하듯 자꾸 넘어지는 습관 때문에 이 중요한 아비규환의 순간에 현서의 손을 놓치게 되고 [괴물]은 몇몇 시민과 현서를 뱃속에 넣고 유유히 한강을 건너 사라진다. 그 시간부터 영화는 이 불쌍한 가족들이 한강에 출현한 괴물에게 당한 고통 보다 더욱 참혹한 고통을 안겨줌으로서 괴물과의 사투를 벌일 기회조차 차단시킨다. 정부와 언론은 근거도 없는 바이러스 확산설을 퍼뜨려 그 가족들을 강제로 격리할 뿐 아니라 현서가 살아있다는 증거조차 부정하고 가족들을 정신병자 취급하게 된다.
현서를 구하려는 눈물겨운 가족들의 사투는 공권력과 의료진의 비인간적인 대우에 짓밟혀 비참할 정도로 측은하다. 공권력은 진짜 한강 괴물에게는 관심이 없고 도망친 그 가족들을 잡는데 온갖 혈안이 되어있다. 봉준호 감독은 이렇게 무능한 대한민국 정부와 의료행위, 공무원들의 부정행위 등에 고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다.
이 땅에 사는 국민들의 불행은 이렇듯, 당면한 개개인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국민을 우습게 아는 정부, 그리고 힘있는 자들의 오만함과 부정부패로부터 기인한다는 기본전제를 깔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 비판적인 시각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보다 치밀하고 진중한 시선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상당히 실망스럽다. 무턱대고 시민들의 말을 개무시하는 경찰들의 행태나, 마취도 덜 되었는데 강두의 머리에 대바늘을 꽂는 혐오스러운 장면들은 오히려 감독의 의도를 지나치게 함축적이고 원색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중반에 이르면 이 영화가 혹시 박찬욱 감독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심각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가족들이 한강매점에 모여 앉아 라면을 먹는 중에 갑자기 현서가 튀어나오는 씬이나 [살인의 추억]의 향숙이~ 로 유명한 박노식이 까메오로 출연하여 강두의 아버지를 협박하는 장면, 그리고 강두가 뚱뚱한 간호사를 인질로 잡고 탈출하는 장면의 설정 등은 '올드보이'나 '친절한 금자씨'의 미장센과 너무나 흡사하여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인 "익숙한 터전에서 일어나는 공포"라는 컨셉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장면이 상징하는 의미는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그 표현 방법은 솔직히 기대와 다르다. 마치 보리밥 정식을 먹다가 갑자기 피자 한조각이 밥상에 올라온 것 처럼 어색하고 느끼하다. 그러한 표현방식이 어느 한편으로는 과감하고 예술적인 비유로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솔직히 말해 감동을 우려내는 재료로는 적절하지 않다.
괴물이 원효대교 남단 둔치로 올라와 날뛰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치밀하고 둔탁한 연출보다는 너무 매끈하고 폼나는 스타일로 뽑아올리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90년대 중반 학번인데도 화염병을 능숙하게 제조하여 던지는 삼촌이나, 양궁 동메달리스트인 고모가 정말 폼나게 불화살을 쏘고는 바로 돌아서는 슬로모션 장면은 [반지의 제왕]의 네골라스 가 맘모스를 쓰러뜨리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그 많던 경찰이 일순간에 죄다 사라져버리는 이해 불가능한 상황도 그러하며, 아무 관계도 없는 노숙자가 괴물을 잡는데 말도 없이 따라 나와 괴물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휘발유는 주둥이에 집중적으로 묻었는데도 불화살을 맞은 괴물의 안면부만 멀쩡한 상태를 유지 하는 등의 옥의 티를 생각해보면 "괴물"의 진정한 클라이막스는 영화 초반 등장씬에 이미 끝이 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약자를 무시하고 약자 편에 서지 않는 잔인한 한국사회이지만, 그러한 상황속에서 오히려 가난하고 착한 약자들은 자기보다 더 약한 사람을 동정하고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는 설정은 보석처럼 빛이 난다. 또한, 비록 Orphanage 라는 미국 특수효과 회사의 힘을 빌었다고는 하지만 '괴물'의 캐릭터 선정과 상황설정은 흠잡을데 없이 훌륭하고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지나치게 높았던 기대치 만큼 모두 채워지지 않은 점은 분명히 존재했다. 독극물을 먹고 돌연변이가 되었던 괴물처럼, 우리의 기대치 또한 기다림이라는 독극물에 비정상적인 형태로 돌연변이를 일으켜 너무 비대해져 있었던 건 아닌지.. 영화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차라리 그렇게 기대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거라는 후회가 남는다.
원효대교를 건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장마에 검어진 한강 아래 시커먼 그림자. 정말 섬뜩하다 ...
FILMANIA CROP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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