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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메마른 가슴을 적시다 오아시스
the12th 2002-08-14 오전 4:56:00 845   [2]
마치 오랜 갈증이 풀린 것만 같았다. 말라 비틀어졌던 마음이 촉촉해지면서 마른 입가엔 젖은 미소를 띄울 수도 있었다. 모처럼의 시원한 해갈은 <박하사탕> 이후 2년 7개월여만에야 비로소 만난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에 대한 믿음을 회복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창동 감독의 세 번째 영화 <오아시스>는, '이창동 영화'답지 않게도, 한편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선사한다. 사회의 관습적 시선이 '또라이'라고 부르는 남자랑 '병신'이라고 부르는 여자와의 사랑이라는 점이 기존 멜로 영화들의 문법에 견주어 조금 독특할 뿐이지, 두 주인공 사이에 오가는 애틋한 감정과 사소한 사랑싸움, 그리고 사랑을 방해하는 주변의 조건들은 여느 선남선녀의 사랑 풍경과 다르지 않다.

사회 부적응자 종두(설경구)는 건강한 신체 탓에 장애인 대접조차 받지 못하고 현실 세계와 끊임없이 소모적인 불화를 되풀이해야 하는 암담한 처지의 인물이다. 도무지 정리된 생각이라곤 있을 것 같지 않고, 앞날에 대한 꿈 역시 갖고 있을 것 같지 않은 종두는 그러한 세상과의 불화 탓에 가족에게조차 버림받고 소외되어 외로움에 목이 탄다. 하지만 종두는 생각이 없기에 속물적인 계산을 할 줄 모르고, 꿈이 없기에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며,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세상이 주입하는 뒤틀린 편견도 갖고 있지 않다. 그의 내면 깊숙히 빛나는 고운 심성만은 세상이라는 사막이 취해야 할 오아시스일지 모른다.

뇌성마비 지체 부자유자인 공주(문소리)는 단지 몸이 불편할 뿐이다. 몸의 장애로 거동이 다소 불편할 뿐 공주는 사리 분별도 또렷이 하고 머리도 꽤 똑똑하며 유쾌한 농담도 제법이다. 꿈꾸는 그녀는 거울로 빛을 반사시켜 새와 나비를 만들어 내고, 자기만의 세계 안에서 판타지를 그려내기도 하는 퍽 매력적인 아가씨다. 하지만 세상은 공주의 불편함을 짐으로만 여겼고, 유일한 가족인 오빠 내외는 허름한 아파트에 공주만 남겨둔 채, 공주 덕에 얻은 장애인용 아파트에 입주한다. 사랑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지만, 온전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 세상의 시선 때문에 그녀는 가슴이 아프다. 비록 몸은 뒤틀리지만 공주의 생각은 더 없이 반듯하고,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세상과 달라 종두의 고운 마음을 읽을 수도 있다. 그녀의 맑은 정신과 생각은, 그녀의 뒤틀린 몸보다 더 뒤틀린 마음을 안고 사는 메마른 세상이 찾아야 할 오아시스일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소외되어 사랑에 목마른 종두와 공주는, 서로에게 서로가 너무나도 소중한 오아시스이다. 그리고 둘이 만나서 함께 가꾸어나가는 '사랑'은 그들의 해갈을 증폭해 주며 더 큰 오아시스가 되어간다. 필요할 때 쓰고 이용가치가 떨어지면 사랑을 버리는 요즘 세상에서, 사랑은 애초의 의미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하잘 것 없는 작은 사랑도 목마른 이들에게 사랑은 그 자체가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처럼 생긴 싸구려 '오아시스' 벽걸이 카페트가 공주의 세계에선 더없이 소중한 것이듯이...

메말라 균열된 세상은 그들의 아름다운 오아시스를 그냥 두질 않는다. 사지가 멀쩡하고 이해타산에 밝을 만큼 정신도 말짱한 세상 사람들은, 그러나 '마음의 장애'를 앓으며, 종두와 공주의 사랑을 뒤틀고 비틀어서 모래바람에 묻어버리려 든다. 사회가 이 가련한 연인들에게 흩뿌리는 온갖 편견과 오해와 곡해와 폭력, 강제, 몰상식은 세상에 자신들의 뜻을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는 종두와 공주를 끝끝내 갈라놓지만, 오아시스를 함께 만들어나가고자 하는 이들의 의지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영화는 가슴이 미어지게 슬프지만, 또한 종국에는 가슴속을 촉촉히 적셔 미소를 머금게 해줄 만큼 행복하게 끝난다.

영화 연출만큼은 지독하게 한다는 것으로 이미 저명한 이창동 감독이나, 그 지독한 연출을 끝까지 견뎌내어 온 설경구, 문소리 두 배우의 호연에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이창동 감독은 멜로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제꼈다. 그가 끝내 사랑에 대한 희망을 읽는 것으로 영화를 닫음으로써, <오아시스>는 제목처럼 이 각박한 세상에 오아시스 노릇을 톡톡히 하게 되리라 믿는다. 설경구의 연기력은 이미 만천하에 의해 공인된 바, 이제는 어떤 찬사를 더해도 모자랄 지경이 되었다. 난 <박하사탕>의 영호 역을 두고, 아마 그가 평생 한번 할까 말까한 연기력을 선보였다고 섣불리 단정했었는데, 이제 그의 연기력이 지닌 한계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없게 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겠다. 문소리의 공주 역은 세 가지 측면에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는데, 그녀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가 여배우라는 점에서, 역할이 중증 장애인이라는 점에서 그러했다. 화려하지도 섹시하지도 귀엽지도 않지만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이 여배우는, 앞으로 보여줄 것이 더 많으리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최대 수확이라 할 만 하다.

공주가 꿈을 꾸듯, 사랑은 '판타지'이다. 새도 되고 나비도 되지만 잡을 수는 없는, 빛과 같다. 사랑은 메마르고 힘겨운 땅 위에서 우리가 찾고자 꿈꾸는 안식처이다. 하지만 대개는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우리를 해갈케 하는 오아시스라기 보다는 지나친 갈구와 환상이 빚은 신기루이게 마련이다. 신기루가 아닌 진짜 오아시스를 찾아내자면, 환상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이창동 감독은 그것을 '의지'라고 불렀다.

이창동 감독은 <오아시스> 개봉에 맞춰 한 어느 인터뷰에서 "의지가 있는 한 모든 사랑은 지킬 수 있다"고 했다. 열악한 조건과 세상의 어떤 악의적인 작당이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을 지켜내고자 하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의지가 있는 한, 사랑은 변치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오아시스>에서 종두와 공주의 강한 의지는, 그들의 소중한 사랑을 비로소 신기루가 아닌 오아시스로 지켜내었다.

그런 종두와 공주의 예쁘고도 의지력 있는 사랑이 좋다. 사랑하고 싶다.

calvin.(http://the12th.com.n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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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2002, Oasis)
제작사 : 이스트 필름 / 배급사 : CJ 엔터테인먼트
공식홈페이지 : http://www.cjent.co.kr/oasis/mai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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