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한국영화 기대작 중 여름 시즌 첫 번째 주자로 나서게 됐다.
언론시사회에 이어 VIP시사회에서 한 번 더 봤다. 배우들은 원래 작품을 처음 볼 땐 자기 연기 위주로 보게 된다. 그래서 언론시사회 땐 작품 전체를 못 봤는데, VIP시사회에서는 개인적으로 재밌게 잘 봤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니 흥행 여부에 대해서 예단할 수 없지만, 내 필모그래피에서 최고 흥행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웃음)
해녀들의 리더 ‘진숙’은 밀수품을 건지다 아버지와 동생을 잃고 옥살이까지 하는 아픔을 겪는다.
‘춘자’도 불쌍하고 ‘진숙’도 불쌍하다. ‘진숙’은 아버지와 동생을 바다에서 잃고 유일한 친구이자 자매와 다름없는 ‘춘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혼란에 빠지고 만다. 영화는 시간 순서대로 찍는 게 아니니까, ‘진숙’이 ‘춘자’를 마주하는 장면을 찍을 때마다 감정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헷갈리더라. 또 다른 캐릭터들이 워낙 튀어서 ‘진숙’이 그걸 좀 눌러줘야 하는데 그때마다 감독님께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많이 물어봤다.
류승완 감독은 어떤 디렉션을 주던가.
연기를 하다 보면 스스로 ‘아, 방금 좋았는데?’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번엔 그렇지 않은 순간이 많아서 어려웠던 거 같다. ‘진숙’이 차라리 세게 표현하는 캐릭터라면 오히려 연기하기 수월할 거 같은데 속으로 삭히는 인물이지 않나. 그럴 때마다 감독님의 도움을 받았다. ‘방금 그 표정이 맞나’ 물어보면 명확하게 ‘맞다’, ‘아니다’ 대답해 주신다. 그런 게 정말 작지 않은 도움이 됐다. 감독님이 피드백이 명확한 만큼 칭찬에도 박하지 않다. 좋은 연기가 나오면 ‘내가 이 두 배우가 이렇게 연기하는 걸 가장 가까이서, 가장 먼저 본 관객이라니! 너무 좋다!’ 이렇게 직접 말씀한다. (웃음) 배우로선 최고의 찬사 아니겠나.
나도 1남 3녀 중 첫째라 그런 점에서 비슷한 점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솔직히 닮은 점이 많지는 않은 거 같다. ‘진숙’처럼 굵직하게 감정을 쭉 밀고 가는 역할은 많이 안 해봤다. 그래서 이번 ‘진숙’ 연기가 어려웠다. 연기적으로 고민이 많았고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혼자서는 풀어나갈 수가 없더라. 특히 혜수 언니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춘자’와 ‘진숙’의 관계를 만들어나갔다. 화해 아닌 화해를 하게 되는 다방 장면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짧지만 굵게 나온 것 같다. (웃음)
투톱으로 극을 함께 이끈 김혜수 배우와는 합이 어땠나.
이번이 첫 만남은 아니고 90년대 중반에 드라마 <사과꽃 향기>에서 잠깐 같이 연기한 적이 있다. 그때도 ‘저 언니 좀 멋있다’고 생각했다. (웃음)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묘하게 어렵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만나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 너무 사랑스럽다. 사랑도 많고, 칭찬도 많다. 하루에 칭찬을 몇 번을 하는지. (웃음) 상대방의 장점을 계속 말하는데 빈말이 아니라 그 안에 진심이 느껴진다.
김혜수 배우가 수중 촬영 때 당신과 눈빛으로 교감했다더라.
물 위로 올라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 둘이서 물 밑에서 스탠바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스태프들은 전부 물 위에 있었고, 감독님의 큐 사인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언니와 내가 상황을 보고 올라가는 타이밍을 결정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하나, 둘, 셋’ 하며 서로의 눈을 보고 있는데, 세상에 꼭 우리 둘만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서 눈물이 날 거 같더라. (웃음)
수중 촬영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물 밑에서 연기하는 건 어땠나. 이번 작품 전까지만 해도 수영을 전혀 못했다고 들었는데.
물 공포증이 있었는데 그걸 깨고서라도 이번 작품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감독님이 수중 촬영이 그렇게 많지 않다고 했었다. 그런데 전혀 아니더라. (웃음) 3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훈련을 했다. 수영을 전혀 못했던 터라 물 속에서 숨 참는 거부터 힘들더라. 30초부터 시작해서 1분 넘게 버틸 수 있도록 훈련했다. 결과물을 보니 뿌듯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영도 못하던 내가 ‘진숙’을 연기해낸 게 스스로 대견하더라. (웃음)
촬영은 어떤 식으로 진행됐을까.
배우마다 옆에 붙어서 도와주는 분이 있었다. 배우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셔서 무사히 촬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리에 함께해준 동료 배우들 덕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물 속이지만 마음만은 든든했다. 자기 촬영이 없어도, 수중 촬영이 있는 날이면 다 같이 현장에 나와서 촬영을 지켜보고 환호해줬다.
‘장도리’를 연기한 박정민과도 첫 만남이 아니다. <시동>(2019)에서는 모자로 나왔다. (웃음)
그러게. (웃음) 박정민 배우를 너무 좋아하고, 아끼고, 응원한다. 이전에 아들 역할을 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정민이야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니까 선배로서 조언할 것도 없더라. 편하게, 웃으면서 연기하는 걸 지켜봤다. 아! 이번 현장에 머리도 볶고 살이 쪄서 나타났는데, <시동> 때랑은 전혀 다른 사람 같더라. (웃음)
뮤지션 장기하가 음악 감독으로 참여해 70년대 음악도 많이 나온다. ‘진숙’이 직접 노래 부르는 장면도 있고.
이번 작품이 특별했던 게 시나리오에 노래가 명기돼 있더라. 대본을 읽을 때 그 노래들을 틀어놓고 읽으면 상상도, 몰입도 훨씬 더 잘됐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노래하는 장면이 없었다. 현장에서 만들어진 장면이다. 그래도 내가 뮤지컬영화도 했던지라 레슨도 받아서 노래는 곧잘 한다. (웃음)
가장 좋았던 노래를 꼽는다면.
‘앵두’, ‘연안부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등 좋은 노래가 너무 많은데, ‘진숙’이 잡혀갈 때 나오는 ‘무인도’라는 곡이 가장 좋다. ‘진숙’의 테마곡이라고 생각한다.
차기작은 정해진 게 있을까.
아직은 없다. 들어온 시나리오를 훑어보는 중이다. 제작사나 감독님, 작가님이 보장된 작품이 제작환경이 안정된 편인데 그런 작품들이 편하고 좋은 거 같다.
지난해 개봉한 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에서 하늘을 날아다니고 장풍을 쏘지 않았나. (웃음) 류승완 감독에게 좀 더 본격적인 액션영화 출연 제의가 온다면?
나는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배우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지. (웃음) 그런데 감독님도 내 몸 상태를 알 테니 내가 못 하는 건 요구하지 않을 거다.
사진제공_아티스트 컴퍼니